작성일 : 13-11-25 21:37
[주천-운봉-인월](둘레길)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4,739  
1. 일    시               
2009. 10. 24(토) 07:14 - 15:30                             
 
2. 코    스               
주천 - 운봉 - 인월
3. 참가인원 3명
‘파솔라’
‘도레미’ 
‘나’                             
4. 시간대별 도착지               
07:06 : 주천 내송마을 출발              
07:14 : 개미정지
08:10 : 구룡치  
08:55 : 사무락다무락   
09:11 : 느티나무 쉼터 (아스팔트길)
09:25 : 회덕마을
09:30 : 다시 농로진입
09:45 : 노치마을
09:53 : 덕산저수지
10:21 : 가장리
10:42 : 가장교
11:00 : 행정마을 숲
점  심  
12:03 : 출발
12:35 : 양묘사업소
12:45 : 운봉읍
13:05 : 운봉 고향다방 출발           
13:23 : 신기마을
14:15 : 비전마을
14:33 : 군화동마을
14:53 : 옥계동(대덕리조트)
15:29 : 흥부골 휴양림
15:50 : 구인월 월평리
16:00 : 인월터미널
5. 시간 및 거리               
총 8시간 44분             
표시거리 22.7㎞(주천-운봉 13km, 운봉-인월 9.7km)                            
6. 운행일지 
10월 12일에 10. 24(토)둘레길 공지를 올렸더니 곧바로 ‘산돌이’에게서 전화가 온다.
“성님 그러니 말고 둘레길은 경방때나 갑시다”
“어이 그래도 지금 가야 볼 것이 있지 그때는 삭막해서 쓰것어?”
‘장발짱’도 예약 때문에 갑자기 빠져버리고, ‘만복대’도 집안일로 빠진다.
참석한 ‘파솔라’님도 일요일 일이 생겨 부득이 광속정에서 자는 것은 포기해야겠다.
그러다 보니 산내까지 잡았던 일정을 차편 때문에 인월에서 끊기로 한다.
06:15경 임실을 지나면서 ‘청풍’에게 전화를 하여 임실을 지난다 하니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벌써요?”...... 좀 미안스럽다
 
        
남원 터미널에 ‘도레미’ 차를 주차시키고 ‘청풍’이가 각시차로 우리를 데려다 주기로..
        
주천 소재지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내송마을까지 데려다 줘버린다.
 
07:06 내송마을 출발
 
내송마을(안솔치)은 조선 초기 한양 조(趙)씨와 경주 김(金)씨 등이 자리를 잡으면서
20-30여 호의 마을을 이루었다
농토와 산림이 비옥하고 울창하여 비교적 부유한 마을이었다 한다.
여기 출신인 조경남(趙慶南) 장군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한다.
 
        
발걸음도 가볍게......
 
07:14 개미정지
        
개미정지를 지나면서 등산로 같은 느낌이 들고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화려한 단풍나무 같은 것은 없지만 그래도 가을색은 완연하다
        
“어어... 부숴먹었다고 일러버려야겠네.....”
“아녀요 살짝 손만 댔는데 빠져버렸어요”
이 표지판에는 숫자가 있는데 일정한 거리를 나타내는 게 아니고 단순한 표지판 개수였다.
 
        
신경 써서 길을 닦은 것 같다
        
노송 숲은 내내 이어진다.
        
처음으로 카메라를 꺼내 든 ‘파솔라’님
        
렌즈가 향한 곳
        
내송-구룡치 코스는 둘레길이라고 그냥 쉽게 볼 수만은 없겠다
08:10 구룡치
이 구룡치는 예전에 달궁, 덕동에서 남원장을 다닐 때 이용했던 길이라 한다.
육모정에서 고기리 삼거리로 가는 60번 지방도는 구룡계곡의 오른쪽으로 간다면
이 구룡치 길은 구룡계곡의 왼쪽으로 간다. 물론 계곡이나 구룡폭포는 보이지 않지만..
        
여기까지만 오면 이제 오르막은 없다
        
간식타임
        
구룡치를 지나면서 길은 운치를 더해간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지나가야지 삭막한 경방때 가자고?
08:55 사무락다무락
사무락다무락은 합성어인데, 사업이나 일의 번창을 희망하는 사망(事望)이라는 낱말과
담장=>담벼락=>담우락=>다무락 이렇게 표현되는 담장의 방언이 합쳐져 운율에 맞게 
‘사무락다무락’ 되었으며 주로 장돌뱅이들이 오가며 액을 막고 화를 없애고, 재운을 빌며
돌을 쌓았다 한다.
        
뜻은 그러한데 돌은 어찌 옛것이 아니고 최근에 모아진듯.....
 
        
사무락다무락에서 보이는 도로
이 도로는 육모정에서 고기리 가기 전에 구룡폭포 쪽으로 난, 확장 포장된 지
얼마 안 된 도로로 회덕마을 앞을 지난 뒤  덕치보건소 부근에서 다시 60번 지방도와 
합쳐진다. 다시 말해 구룡폭포와 회덕마을만을 위한 도로인 셈이다
        
사무락다무락을 지나면서 이제 산 길은 끝나간다
        
“어, 저기 봐.. 저기 봐.. 고기가 있네...”
(쩝 그럼 고기가 물속에 있지 도로에 나와 있남)
        
느티나무 쉼터가 있는 곳
09:11 느티나무 쉼터 (아스팔트길)
        
앞서 설명했던 도로로 올라선다.
        
쉼터까지는 가지 않고 사진만 한 컷
        
여기서 아스팔트길로 300여m 간다.
09:25 회덕마을
예전에 운봉이나 달궁에서 남원장을 보러가려면 필히 거쳐야 하는 길목이란다.
그래서 모인다는 뜻의 ‘모데기’라 불렀는데, ‘모데기’라는 말을 풍수로 풀어 덕두산(德頭山),
덕산(德山), 덕음산(德陰山)의 덕을 둘러 모은다는 의미로 회덕(回德)이라 했다 한다.
 
        
회덕마을 입구, 콩을 털어 말리고 있다
 
        
회덕마을에서 본 고리봉과 서북능
        
아스팔트길을 벗어나며 화살표는 다시 농로로 인도한다.
검정색은 주천방향, 빨간색은 운봉방향
        
이 시멘트도로가 흙길 이었으면 하는 쓸데없는 바램을 가져본다
        
추수가 끝난 논바닥은 허전함 보다는 안도와 풍요가 더 느껴진다.
09:45 노치마을
노치마을은 백두대간이 고리봉에서 내려와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다
 
        
금방이라도 “톡톡톡~ 이장입니다~~!!!” 라는 외침이 들릴 것 같다.
        
노치마을의 벽화
        
본인은 힘들게 하고 있는데 나는 왜 한가롭게 보일까?
        
이런 논두렁길은 처음이것 같다
09:53 덕산저수지
        
↑↓ 덕산저수지 뒷길로 들어 선다
        

        
문득, 사춘기 적 서먹한 사이의 애인과 이런 길을 걸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덕산 저수지 너머로 본 바래봉
        
그리고 2003. 11. 1(토) 바래봉에서 본 덕산저수지

        
덕산저수지 너머로 본 고리봉과 만복대
        
길은 들판을 벗어나 저수지를 막고 있는 야산으로 이어진다
 
        
못된 심사가 든다. 장난감으로 만들어 놨다면 다 흩으려 놓았을 것 같다.
 
        
쓰러진 움막에도 가을은 오는 가!
10:21 가장리
풍수지리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화장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가장리(佳粧里)라 
불렀다 한다. 
지금은 농사짓는 움막를 뜻하는 농막장(庄) 자를 써 가장리(佳庄里)로 쓰고 있다. 
입향조는 동복 오(吳)씨와 강릉 유(劉)씨라고 하며 마을이 뱀 형국으로 마을 앞에 입석을 세
워 뱀의 기를 눌러 마을의 액 막음을 하고 있다한다
        
화장실도 있고 그럴 듯한데 서운 한 것은 주막이 하나 있었으면....
        
가장리에서 60번 지방도를 약 100m걸어 덕산리 쪽으로 길을 건넌다.
 
        
바싹 마른 주촌천 옆으로 길은 이어진다.
        
가장교를 건너 다시 둑방길로....
        
“여보, 좋지...” (민망하게 그런걸 뭐 하러 묻나)
11:00 행정마을 숲
행정마을은 조씨들이 새로 들어와 정착할 무렵 이곳 일대에는 은행나무가 숲을 이루어 풍치
가 아름다웠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은행마을’ ‘은행몰’이라 이름 부르게 되다가 
이를 한문으로 표기하여 은행리(銀杏里)가 되었는데 이를 줄여 ‘행정(杏亭)’으로 고쳐 지금
에 이른다한다.
        
서어나무 숲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 점심을 망설였는데 다행이 우리가 도착하자 모두 빠져나간다.
        
여기는 주막이 있다 막걸리가 한 초롱에 2천원, 비싸지는 않다
도토리묵은 5천원....
        
우리는 소맥이 있으니 맛보기로 한초롱만 시킨다.
전주막걸리에 길들여진 내 입에 맛은 그저 그렇다
길이 마땅땅한지 ‘도레미’가 나수 과음을 하네....
따를 때마다 건배....
        
술잔에 낙엽이 떨어지니 안주로 만추를 마신다.
별 먹잘 것도 없는데 1시간이 넘게 점심을 먹는다.
12:03 출발
        
“여보, 우리 손잡고 가자” 술이 좋긴 좋군.
        
“가위 바위 보해서 업어주기...” 점입가경인데 근데.. 배낭은 어떡하고 업나?
12:35 양묘사업소
        
아, 고로쇠도 이렇게 묘목이 있구나
        
둘레길은 양묘사업소를 한 바퀴 돌아 나온다.
        
이제 운봉 읍내에 들어선다.
12:45 운봉읍
화장실이 없다
운봉 지서는 문이 잠겨 져 있고.....
큰 거는 아니지만 여자가 있으니....
하는 수 없이 다방을 들어간다.
고향다방,
        
팔자에 없는 커피를 마신다.
        
쥔아줌마는 아랑곳 않고 고스돕에 열중
화장실 다녀오면서 보니 풍을 덜컥 싸버린다... 흐흐 고소하다
        
1인당 2천 원짜리 소변을 보니 시원한 것 보다는 쎄~~하다
그런데 길을 놓쳤다
무작정 인월 방향으로 빠져나가보자
 
        
카센타가 어째 눈에 익다했더니....
        
2007, 12, 22. 빵구 떼우고 있음
세동치에서 망년회하고 다음날 ‘청풍’과 ‘풍경’ 결혼식 참석하려고....
        
번암방향으로 가니 다시 둘레길이 나온다.
        
1-3번은 빼먹었다. 서림공원으로 해서 뚝방길을 타고 오나보다
 
        
이제 길은 남천을 계속 끼고 간다.
13:23 신기마을
선조 28년(1595) 임진왜란이 휴전상태에 접어들어 왜적이 잠시 철수하고, 영남이 아직은 안
정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런 때였다. 비교적 전란의 피해가 적은 호남지방을 유랑하며 정착
지를 찾던 사람들 중 맨 처음 이곳 길지에 터를 잡은 새터 마을 입향조는 인동 장씨 장덕복
(長德福)이었다.
장덕복은 영남의 전란에 고통을 받다가 지리산 영봉이 멀리 바라보이고 우뚝 솟은 운봉 고
원이 마치 마을을 보호하고 만복이 자손대대로 이어지는 명당터인지라 새 삶을 시작하는 터
전이란 뜻으로 ‘새터(新基)’라 하였다한다
        
  
남천은 갈대와 억새가 같이 어우러져 있다

        
남천 너머로는 덕두봉과 바래봉이 다정하다
        
모두 특징이 있는 길들이지만 특히 이 구간이 마음에 든다
        
평소에 눈에 안 들어오던 긴 능선이 옥계에서 바래봉 쪽으로 이어진다.
옥계계곡은 해봤지만 저기는 안 가본 것 같은데??? 당장 가봐야겠다
        
황산대첩비가 있는 곳. 여기를 그렇게 많이 지나쳤는데 와보는 건 처음이다
        
14:15 비전마을
황산대첩비가 세워지고 이 비각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형
성되었는데 마을이 비(碑) 앞에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비전(碑前)으로 불리게 되었다한다
또한 서편에 하마정이 있어 말을 탄 관리가 황산 대첩비를 지날 때면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는 이곳에서 말을 내려 걸어와 비 앞에서 절을 하였다. 이곳에는 구한말까지 2층 정자가
있어 주변의 주막과 기녀(기생)와 소리꾼, 가마꾼(轎軍)이 상주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비전을 역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동편제의 가왕(歌王)이라 일컫는 송흥록과 송만갑의 생가가 비전 마을이고 명창 박초월이
성장한 곳이기도 하다. 
비전 마을이 동편제의 발상지가 된 것은 이곳 하마정과 무관하지 않다고들 말한다. 
 
        
늘 지나던 길, 지척에 이런 데가 있었네 진즉 와볼걸...
 
        
복원해 놓은 생가
14:33 군화동마을
군화동은 1961년 대홍수 때 소멸된 화수리 이재민들의 가옥을 군인들이 주둔하면서 13가구
를 건립하였는데, 이주 후 마을 이름을 ‘군인들이 지은 화수 마을’이란 뜻으로 군화동(軍花
洞)이라 부르게 되었다한다
        
군화동을 떠나 옥계동으로.....
둘레길 일지를 쓰면서 마을이름의 유래 등을 알아보려고 예전에 받아놨던 ‘신운성지’(新雲城
地 )를 보다보니 전에는 그저 옥계타운, 옥계타운 했었는데 옥계(玉溪)란 지명이 신라시대까
지 거슬러 올라간다. 
비록 옥계타운이 부도가 나서 대덕리조트로 바뀌긴 했지만 옥계동이란 명칭은 간직해야 할
것 같다. 가령 옥계동의 대덕리조트랄지....

14:53 옥계동(대덕리조트)
        
옥계저수지를 올라가는 중
        
2007. 2. 4(일) 옥계계곡 산행을 위해 둑을 오르고 있음
 
        
보기에는 한량해 보여도 굉장히 힘이 들었다는데.... 흐~ 알지...
15:29 흥부골 휴양림
        
차로 드나들 땐 금방이든데....
 
        
‘도레미’가 힘들어 하는 것 같아 흥부골에서부터는 그냥 도로로....
원래 계획대로 산내까지 잡았더라면 더 힘들 번했다.
        
쯧쯧....일찌감치 들어가 잘 것이지 뭐하느라 늦어서 그렇게 맞아 죽니
15:50 구인월 월평리
1800년대 후반 천석꾼인 운봉 박씨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사람을 모아 살기 시작하여 새마을
(新村)으로 불리다가 후에 마을 형국이 반월형이라 월평(月坪)이라 불렀다한다
또는 마을 터가 동쪽 팔랑치를 마주하고 있어 달이 뜨면 정면으로 달빛을 받아  ‘달이 뜨면
바로 보이는 언덕’이란 뜻으로 월평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수고하셨습니다. 자 공식적으로 월평리까지 끝났습니다.

 - 개념도, 개략도 -
   
   
   
   

16:00 인월터미널
남원 가는 직통이 운 좋게도 16:05에 있다.
1인당 2,900원
        
“총 몇 시간 걸었죠?“
이때는 한국시리즈 7차전 마지막 승부에서 기아가 3:1로 지고 있었다.
        
남원터미널까지 30분도 채 안 걸린다.
이때도 5:3으로 지고 있었다.
전주로 오는 길
한울집으로 전화를 건다.
‘어라 안 받네? 일요일만 쉬는데...’
하는 수 없이 남부시장 성수식당으로 간다.
‘장발짱’과 ‘작은세개‘가 합류한다.
성수식당은 TV가 없다
갑자기 다른 가게에서 함성이 나고 난리가 아니다
기아가 역전했단다.
술맛 땡기네 초원수퍼로 2차가자!!
        
‘도레미’ : “아 북어를 저렇게 굽는군요 연탄불 위아래로...”
        
얼큰하면 안는 ‘파솔라’님의 특기
        
“자~~ 단칼 단칼~~” ‘작은세개’는 보내고...
지리산 둘레길을 처음 해봤지만 좀 아쉬운 게 산자락에 바싹 붙여서 길이 있었으면....
하긴 그러면 능선이 안 보이려나???






2013. 11. 30현재 조회수 : 1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