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22 18:48
[엽기주행]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3,819  
1. 酒行일시
2003. 1. 11(토) 15:15 - 1. 12(일) 17:20

2. 코 스
(적색글씨는 최초계획)
의신 -> 대성마을 -> 작은세개골 -> 선비샘 -> 벽소령 -> 삼정 -> 의신

3. 등반인원 3명
‘만복대’
‘산돌이‘
'나'

4. 시간대별 도착지
1/11(토)
15:27 : 의신 출발
15:47 : 절터(대성교 삼거리)
16:10 : 대성민박집
1/12(일)
16:40 : 대성민박 출발
17:20 : 의신

5. 酒行 일지
1/11(토)
15:27 우리 일행은 의신, ‘산악인의 집’ 앞에 주차를 한 뒤 대성마을로 출발



↑ 의신 마을의 말라 버린 감



밤송이도 까치밥??


출발 후 7-8분 갔을까???
나 : “어이, 철언이 옻 챙겼어??”
만복대 : “아참 차 뒤에 그대로 두고 왔네요”
그러면 그렇지 물건사고 마트에 그냥 놓고 오는 친구인데 그걸 제대로 챙겨올 리가 없지
나 : “둘이 먼저 가 내가 가지고 갈께”
(쩝, 정말로 둘이만 먼저 가네 어른인 날더러 갔다오라고...)

그때 그 자리 (1)



↑ 2002. 11. 13 07:30경 (좌), 2003. 1. 11 16:00경 (우)

그때 그 자리 (2)


- 가슴으로 걷는 길 -

저 시원한 그늘에서
가뿐 숨을 고르지 못함은
갈 길이 바빠서라기보다
식힌 심신에 다시금 땀을 뿌리기 싫어서이리라.

길동무를 은근히
멀리 할 수밖에 없음은
혼자가 좋아서라기보다
갈림길에서의 허전함을 미리 피하기 
위함이리라.

길 섶 산딸기에 손이 가지
않음은
먹기 싫거나 손에 묻히기 싫어서라기보다
저만치 가다가 돌아서
빨긋한 자태를 다시 보고 파 함에서이리라.

급히 재촉하지도 -
온 길, 갈 길을 헤아려보지도 않음은
정처없이 가고 있음이 아니고
깊은,
가슴으로 걷고 있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리라. *

                             - 프록켄타 -
2003. 1. 11 16:00경 (좌), 2002. 11. 13 07:25경 (우)


16:10 대성마을에 도착
민박집에도 옻이 있단다 괜히 가져왔네....
토요일이라 민박하는 등산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우리뿐이다.



대성마을 민박집에서 신발을 풀고 있는 ‘만복대’‘산돌이’


이윽고 옻닭이 제대로 고아졌는지 안방으로 와서 저녁을 먹으란다
다리뼈가 쏘옥 빠질 만큼 잘 고아졌다
대포알 한 병이 맞바람에 게눈 감추듯 비워진다
2개 채널 밖에 나오지 않는 T.V에서 기분좋게 이형택의 우승이 안주로 올라온다



↑ 민박집 내실의 장식된 벌집(호박벌, 땅벌)



저녁식사


아담한 우리 방으로 돌아와서 시간을 보니 겨우 저녁 7시경...
아무래도 술이 너무 부족하고 여러모로 서운하다
‘만복대’가 나가서 막걸리에 도토리묵을 시킨다
와~ 그 입에 쫘악~~ 달라붙는 막걸리 맛 너무 환상이다
이틀 전에 술을 내렸단다
민박집 아들인 전역한 김중사까지 불러와 술판에 합세시킨다



오른쪽이 민박집 아들 ‘김중사’


그러나, 김중사는 2-3잔 정도 마시고는 슬며시 자리에서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거기서 눈치를 챘어야하는데..)
10시경 ‘산돌이’가 먼저 눈이 풀려 누워버린다
1-2되 더 시켜서 먹은 뒤 그래도 서운해 ‘만복대’ 배낭의 비상소주를 마지막 입가심으로 마신 뒤
11:30경 모처럼 ‘만복대’의 연주소리가 나기 전에 꿈나라로 빠진다

1/12(일)
06:40경 민박집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아침식사 하라고 문을 두들긴다
모두 꼼짝도 안한다
아침에 06:30에 꼭 밥을 먹게 준비해달라고 신신당부한 건 우리인데...
07:30경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안방으로 갔다
전통청국장이 제법 맛있다 몇 가지 안 되는 반찬들도 아주 정갈하다

식사를 마쳐도 취기가 전혀 가시질 않는다
우리는 잠시 30-40분만 눈을 더 붙이고 가기로 했다
09:35경 ‘만복대’가 ‘산돌이’를 깨운다
‘산돌이’가 시계를 게슴츠레 보더니 10:00까지만 자잔다
둘이 실갱이를 한다
‘산돌이’가 ‘만복대’ 목을 끌어안고 자자고 눕힌다



더 자자고 막무가내로 ‘만복대’를 잡아끄는 ‘산돌이’


이때 내가 적절한 안을 내놓았다
“어이, 그러지 말고 우리 해장이나 한잔 하고 보세”
(낄낄~ 똥차가 똥 마다하겠어??)
만복대 : “에라 모르겠다 그럽시다 그럼 내가 묵하고 술 가져오라 할께요”
‘산돌이’도 더 잘 욕심으로 좋단다



아침 해장술상(‘산돌이’는 새집 진 머리 감추려고...)


이게 엽기의 발단일 줄이야
술상이 들어왔는데 아직 어제 술도 덜 깬 터라 술잔만 놓고 술이 쉬 굴지를 않는다
이럴 땐 아주 좋은 방법이 있지
화투를 가져와 2장씩 돌린다
3명이나 있는데 설마 내가 걸리랴
술잔이 팽팽~!!! 돌아간다
죠커가 나오면 지명하여 먹일 수도 있다
집중공격으로 ‘만복대’가 연달아 6잔을 먹고 헥헥댄다
이제 산행은 물 건너 갔다
2되 정도가 들어오고 취기도 취기지만 배가 불러 힘들다
시간 연장책으로 2장보기에서 고스돕으로 판을 바꾼다
따먹은 장수가 제일 적은 사람이 먹기다
투고를 하면 지명할 수 있고 쓰리고면 사람지명은 물론 잔 수까지 정해줄 수 있다
(다행이 그날 쓰리고는 없었음)
5되 정도가 들어왔을까??? 그때 시간은 12시가 조금 넘었었다
미처 어떻게 손 써볼 겨를도 없이 ‘산돌이’가 화투판에 오바이트를 해댄다
‘만복대’가 급히 되박을 들이대고 토사물을 받는다
와, 나이아가라 폭포가 저 정도일까??
쫘악, 쫘악 시원스럽게도 나온다
비위 약한 ‘만복대’도 친구라 그런지 참고 끝끝내 받아내고 있다
그칠 줄을 모른다
한 되박이 차고 다시 새 되박을 들이댄다
키키~ 안주로 김을 먹어대더니 꼭 흰죽에 김을 부셔 저어놓은 것 같다



킬킬킬~~~ 설명이 필요없는 사진



토사물을 받고 있는 ‘만복대’ 표정이 기막히다


‘산돌이’는 아랫목에 뻗어버리고 우리는 나머지를 처치해야지
그런데 화투장들이 모두 젖어버려 ‘만복대’ 손에 쥔 5장, 내가 쥔 5장, 바닥에서 벼락을 피한
8장으로 포카를 하여 남은 술을 비웠다
그때 시간이 12:40경 이제 한숨자고 가야지



뻗어 버린 ‘산돌이’


자다 눈을 떠 보니 15:30경 ‘만복대’ 배낭이 없다
저 먼저 내려간 것이다
우리 깨우지도 않고...내 배낭에서 차 키도 살짝 도둑질해서...
(흐흐~ 의신에 있을, 벽소령에서 내려온 짝사랑하는 여인네를 찾아갔군...)
‘산돌이’를 깨우니 1시간만 더 자잔다

16:40 한심하게 생각할 민박집 주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대성골을 떠난다
의신에 가까워 오니 ‘만복대’가 시멘트 길까지 차를 가지고와 자고 있다

화개 삼거리에서 주차시키고 2시간여를 더 잤다
자도 자도 술이 깨지를 않는다
‘모리미’(전라도 사투리로 집에서 쌀과 누룩으로 내린 술)가 사람 죽인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고, 예전에 20대 초반 때 겪어 본적이 있었는데도 너무 오래 전이라서 깜빡하고
막걸리로만 생각한 게 큰 불찰이다

22:40 그래도 집에 들어오니 편안하다
겨우 발만 씻고 소파에 걸터앉아 각시에게 한다는 말
“어이 소주 남은 것 있어?? 맥주는 있지?? 소맥이라도 하고 자야지”


2013. 11. 30현재 조회수 : 1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