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22 19:04
[南南종주]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3,553  
[프롤로그]

2003. 6월 초...

나 : "어이, 철언이(만복대) 작년 휴가 때는 태극종주 했는데 이번 여름엔 뭘 하지??"
만복대 : "산청 쪽에서 반대로 할까요??“
나 : "무박으로 해버리면 모를까 반대로 한들 특별한 의미 있겠어?? "
만복대 : “무박은 좀 무리일 것 같은 데요 그건 형 혼자 하든지 하고요..”(지도를 뒤적거리며..)
"그럼 구례구 역에서 시작하는 서부능과 엮어서 해볼까요?? 5박 6일 정도면 되겠는데..."
나 : "흠 그거 이으면 지리산에서는 제일 길겠지?? 근데 5박6일은 너무 길고 4박5일로 잡아보세"
만복대 : "4박5일은 힘들 것 같은데 암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죠"
...........어쩌구..... 저쩌구......
........
그 뒤로도 몇 번 그 코스를 종주하는 것에 대해 술안주로 거론해 본다....

나 : “근데 그 코스를 이으면 아직 이름이 없으니 뭐라 붙여야 되는 것 아냐?”
만복대 : “코스 모양이 완전한 M자이니 ‘매머드 종주’라 할까요??”
나 : “그거 보다는 시작하는 구례나 끝나는 산청이 모두 지리산의 남쪽이니 ‘南南종주’가 어떼?
더구나 동서로 지역감정도 있고 하는데 우리 산꾼들이라도 ‘지리남도’로 해서 경남, 전남 엮어버리지 뭐
그런 의미에서 그냥 ‘남남종주’로 하세“
만복대 : “하하 그럼 그러죠 뭐...”

이렇게 해서 감히 가칭 ‘南南종주’란 명칭을 쓰게 된다


1. 산행일시
2003. 8. 13(수) 05:00 - 8. 17(일) 16:33 <4박 5일>

2. 코 스
1일차(8/13) 구례 월암마을
깃대봉 -> 갈미봉 -> 누룩실재 -> 천왕봉(스침) -> 형제봉 -> 비득재 -> 깃대봉 -> 둔산치 -> 천마산 -> 견두산 -> 밤재
2일차(8/14)
밤재 -> 숙성치 -> 영제봉 -> 다름재 -> 서북능 -> 만복대 -> 성삼재
3일차(8/15)
성삼재 -> 주능 -> 장터목
4일차(8/16)
장터목 -> 천왕봉 -> 중,하봉 -> 국골사거리 -> 새봉,재 -> 왕등재 -> 도토리봉 -> 밤머리재
5일차(8/17)
밤머리재 -> 웅석봉 -> 918삼거리 -> 감투봉 -> 이방산 -> 덕산 (시천)

3. 등반인원 3명
‘만복대’
‘최재홍’ (전주지리산악 사장)
‘나’

4. 일자별 시간대별 도착지

8/13(수) 1일
05:00 : 월암마을 출발
05:14 : 깃대봉
06:00 : 철탑
06:48 : 갈미봉
08:04 : 전망바위
08:50 : 누룩실재
09:33 : 천왕봉(좌측 100여m에 두고)
10:36 : 형제봉
11:19 : 사계재
13:45 : 비득재
(점심)
14:30 : 출발
15:01 : 깃대봉
15:50 : 둔산치
16:11 : 천마산
18:00 : 봉화대
19:42 : 견두산
23:24 : 밤재

8/14(목) 2일
07:30 : 밤재 출발
08:03 : 철탑
08:47 : 숙성치
10:20 : 수락폭포 삼거리
12:43 : 영제봉
13:44 : (점심)
14:20 : 출발
15:02 : 다름재
16:39 : 서북능
16:50 : 만복대
17:50 : 묘봉치
19:19 : 성삼재

8/15(금) 3일
06:35 : 성삼재 출발
07:17 : 노고단 산장
07:33 : 노고단
08:59 : 임걸령
10:08 : 삼도봉
10:42 : 화개재
11:34 : 토끼봉
12:36 : 총각샘
13:30 : 연하천대피소
(점심)
14:20 : 출발
15:33 : 형제봉
16:28 : 벽소령
17:46 : 선비샘
19:40 : 세석대피소
(저녁)
20:35 : 출발
20:56 :촛대봉
21:56 : 삼신봉
22:11 : 연하봉
22:32 : 장터목(못미친 비박지)

8/16(토) 4일
05:20 : 비박지 출발
05:27 : 장터목
06:32 : 천왕봉
07:02 : 중봉샘
(아침)
08:00 : 출발
08:08 : 중봉
09:10 : 하봉
10:25 : 국골 사거리
10:38 : 조계골 상류
11:27 : 독바위
13:16 : 새재
13:55 : 외고개
(점심)
14:30 : 출발
15:26 : 왕등습지
17:32 : 깃대봉
19:15 : 도토리봉
19:58 : 밤머리재

8/17(일) 5일
06:30 : 밤머리재 출발
07:24 : 헬기장
08:25 : 왕재
09:23 : 헬기장
09:40 : 웅석봉
09:56 : 딱바실, 웅석봉 삼거리
12:09 : 918봉 삼거리
(점심)
12:40 : 출발
13:26 : 감투봉
14:34 : 이방산
16:33 : 덕산

5. 산행시간 및 거리(도상거리)
1일차 : 18시간 24분 25.7㎞
2일차 : 11시간 49분 16.4㎞
3일차 : 15시간 57분 24.8㎞
4일차 : 14시간 38분 19.6㎞
5일차 : 10시간 03분 17.6㎞

총 : 70시간 51분 104.1㎞
일평균: 14시간 10분 20.8㎞

6. 산행일지

8/13(수) 02:15경
전주 역에 도착하니 ‘만복대’가 먼저 와 있다
소풍가는 날처럼 들떠서 한숨도 못자고 뒤척이다가 그냥 나왔단다
잠시 후 재홍이도 도착한다
전주 역은 휴가철이어서 그런지 새벽인데도 상당히 북적거린다
열차는 7분 정도 연착한다

열차 안에서 잠을 청해 보지만 실내 공기가 너무 후덥지근하여 숨이 막힌다
더구나 옆자리에 늘어져 자고 있는 아가씨의 모습에 잠은 더 달아난다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내비치는 무릎, 허벅지.... 배꼽티는 위로 말아 올라가 배는 다 보이지...
애써 창밖으로 얼굴을 돌리지만 깜깜한 밖이 보일 리 없고, 창에 비치는 건 다시 자는 아가씨의 모습
뒷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만복대와 재홍이도 보아하니 쉽사리 잠을 청하지 못하나 보다

04:10경 구례역에 내려서 해장국집을 찾는다
딱 한군데 ‘구여수집’이라는 곳만 문을 열었다
내 다시는 굶어 죽어도 그 집은 가지 않으리...
5천원짜리 시래기국이 그게 뭐야 그저 산행을 위해서 아귀아귀 입에 몰아넣는다

택시는 성삼재나 쌍계사 쪽만 연신 호객 할뿐 코앞의 월암마을은 본체도 않는다
아쉬운 우리는 기웃거리다 그거라도 가야지하며 나서는 택시를 겨우 탔다
월암마을 앞쪽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읍소재지 쪽으로 더 진행하다가 월암마을 뒤편 길로 들어가야 한다
3천원의 택시비가 무척 싸게 느껴진다

05:00 드디어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딘다
시멘트 포장길을 지나 무덤에서 능선을 타기 시작한다
하루 지난 보름달이 구름사이로 살짝살짝 얼굴을 내민다
동네 뒷산인데도 잡풀들이 길을 막고 있다
05:14 삼각점과 깃대봉을 지난다

새벽인데도 엄청 덥다 낮에 얼마나 푹푹 쪄대려고 이러는지 원...
06:00경 철탑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헤드랜턴도 갈무리하고....
산불이 나서인지 민둥산인 갈미봉 부근에 다가가자 발밑으로 운해가 가득하다
압록에서 오른쪽으로 다가와 우리가 시작하는 능선 끝을 왼쪽으로 돌다가 하동방향을 뻗어나가는 섬진강을 못 보는 게 아쉽지만
그 대신 운해가 그 서운함을 덮어준다
오늘 노고단의 운해는 더 기막힐 것 같다



철탑부근에서 본 왕시루봉


06:48 갈미봉을 지난다
월암마을에서 갈미봉까지는 야산이지만 독도에 상당히 신경을 써야한다
모두들 땀에 젖어 팬티까지 이미 축축하다
허벅지와 사타구니 헐음 방지를 위해 우리는 쉴 때마다 홀딱 홀딱 옷을 내리고 몸을 건조시킨다

“어이 이렇게 시원하게 맘대로 내리다가 주능 쪽에서는 어쩌지???”

사실 장기산행에 있어 실패하는 변수는 체력을 떠나 여러 가지이다
사소하지만 허벅지나 항문쪽등이 헐어버리면 도저히 진행이 안 된다
헐음 현상은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이 당연히 더하고 땀이 나지 않아도 이슬이나 비에 옷이 젖으면 옷의 박음질 부분이 순식간에 사포로 변해버린다
일단 약간이라도 쓰린 느낌이 들면 이미 때는 늦는다



맨 왼쪽 철탑이 우리가 지나온 방향이다



갈미봉에서 본 노고단 방향


08:04 전망바위에서 다시 운해를 감상한 후 길을 재촉한다
예상했던 것 보다는 잡풀이 길을 덜 막는다
날씨도 비올 듯 흐릿하여 해를 감춰주니 더 할 나위 없이 고맙다
08:50 임도인 누룩실재를 지나 고도를 높여간다



누룩실재


09:33경 좌측 100여m 부근에 천왕산을 두고 능선은 비껴간다
선두에는 재홍이 서고 중간이 만복대 난 맨 뒤에서 간다
뱀하고 거미를 무서워하는 재홍이가 선두에서 거미줄 때문에 연신 짜증을 낸다
급기야 나뭇가지를 꺾어 앞으로 내민 채 진행한다



형제봉에서 본 견두산

10:36 형제봉을 지나고 11:19 역시 임도가 있는 사계재를 지난다
우리가 점심을 먹기로 한 비득재는 왜 이리 안 나오는지...
‘이제 다 왔네’ 하고 가면 봉이 또 있고 ‘진짜 이번엔 다 왔다’ 하고 보면 아직도 아니다
차라리 초행길이라면 모르고 가니 맘이라도 편하지...

이 ‘南南종주’의 깃대봉-밤재 사이의 코스가 가장 어려운 이유가 물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거리도 멀고 길도 험(잡풀, 가시등)하지만 물이 가장 문제이다
유일하게 비득재가 물에서 제일 가깝지만 그것도 20여분을 임도 따라 내려가야 한다

13:45 예상보다 1시간여를 더 걸려 비득재에 도착했다
구례역전 식당에서 비닐팩에 넣어 사온 공기밥에 김치로 점심을 떼우자니 처량하다

‘남남종주’ 출발 전 식단 짜 놓은 걸 본 재홍이 하는 말
“5일 동안 고기를 한번도 안 먹어요????”
나 : “먹고 싶으면 알아서 지고 와 달라고 안 할께..”
그 때 재홍의 표정은 거의 울기 직전이다
별명이 ‘먹부’ 인데.... <먹부 = 먹고 부대끼자>
(사실 식단과는 별개로 간식을 엄청 숨겨왔다 덕분에 우리도 잘 먹었지만..)

점심을 마치고 우리는 고민한다
물이 부족할 것 같은데 내려가서 떠 오느냐 아니면 그냥 아껴 먹으면서 가느냐
각자 1.8ℓ 2통씩을 지고 왔는데도 (재홍은 3통) 벌써 3/4을 먹은 것이다
결론은 그냥 가자, 비득재에서 임도로 내려갔다 오는 것이 장난이 아니거든...
단, 각자 물은 각자가 마시고 남의 것 달라고 하기 없기!!!

14:30 비득재를 출발
15:01 깃대봉을 지나 15:50 실제 차량 통행이 가능한 임도의 둔산치이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차량이 2대나 주차해 있고 공사가 한창이다

※ ‘남남종주’를 무리 없이 하려면 여기 둔산치에서 1박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2박을 밤재 3박은 임걸령 4박은 중봉샘 5박이 밤머리재...
물론 계획과 실행에는 사정에 따라 변수가 많겠지만...

16:11 전남북도 경계의 마지막 봉인 천마산이다
서북능에서 서부능으로 갈라져 내려오는 도경계는 영제봉, 밤재, 견두산을 거쳐 천마산까지 왔다가는
우리가 온 등산로를 버리고 서북방향을 틀어버린다



천마산 정상에서 ‘재홍’


갑자기 만복대의 다리에서 쥐가 나기 시작한다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니고 온 다리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난다
내가 가지고 간 스프레이를 뿌려주자 곧바로 쥐가 풀린다
구하기 힘든 ‘PERSKINDOL' 란 건데 하나 뿐인 제자가 구해 준 것이다

제자 : “선생님 이거 드릴 테니 무릎 고장 나면 이거 뿌리면서 꼭 성공해야 해요 실패하려면 차라리 돌아오지 말아요”

난 내가 가장 걱정되는 것이 무릎이다 최근에도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더더욱 불안하다
아직은 조짐이 보이지 않지만 무척 조심하는 중이다
무릎 때문에 아껴 써야 되는데 만복대가 먼저 마수걸이를 해버린다

천마산까지의 길은 그야말로 비단길이었다
천마산을 지나면서 길은 온통 가시밭길이다
대한민국에 있는 가시는 총 망라되어있다
언젠가 11월에 이 길을 다녀간 적이 있지만 그때와는 비교가 안된다
맹감가시, 산딸기가시, 찔레가시, 두릅가시, 등등 이름모를 가시들의 농성장이다
우회를 해보지만 우회를 해도 온통 가시덤풀 뿐이다
어느 경우에는 10여미터를 가는데 20분이 더 걸린다

18:00 봉화대를 지나다
에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훨씬 지체된다
어두워지기 전에 견두산까지는 가야 할 텐데 견두산 도착 전에 어두워지면 거의 실패다
훤해도 길 찾기가 애매한데 캄캄하면 헤드랜턴으로는 도저히 진행이 안된다
견두산에서 밤재야 그래도 확실한 길이기 때문에 안심하지만...

<서남능 상처모음>



내 다리



만복대 손



재홍이 팔 (엥~ 핀트가 안 맞았네...)


19:42 어둑어둑 하지만 그래도 견두산에 도착하다 휴~~ 천만 다행이다
한숨 돌린 우리는 물을 아낌없이 마셔본다
이제 2시간이면 밤재니까 다 온거나 마찬가지다 (정말 그럴까?)
우리는 희희낙락하며 여유부리며 헤드랜턴과 함께 견두산을 출발한다

그런데 쉽게 볼일이 아니었다
분명한 길인데도 몇 번을 헷갈리고 진행도 엄청 더디다
개 짖는 소리 자동차소리가 바로 곁인데도 왜 이리 멀기만 할까
남원이 내려다 보이는 묘지가 나와야 거기서도 30분인데 그 묘지조차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피곤한 우리 발걸음이 늦기야 하겠지만 이리도 지루할까

어이없게도 23:24가 되어서야 밤재에 도착한다
아~~~!!!! 오늘 드디어 기록을 갱신했다
작년 태극종주 마지막 날 18시간 12분을 걸은 게 기록이었는데 오늘 18시간 24분으로 12분 늘렸다

물 때문에 임도를 따라 민가까지 내려온 우리는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잠자리를 다시 밤재 방향으로 한참을 올라가 잡았다
인스턴트 미역국에 햇반을 말아 둘둘 마시고 서둘러 침낭으로 몸을 들이미니 이미 새벽 1시가 넘었다
만복대의 코고는 소리가 밤재 하늘에 울려퍼지고....
재홍이도 금새 잠들어 버린다
난 왜 근데 잠이 안오지?? 큰일이네.....그러면서 기억을 놓친다

8/14(목) 06:00경
“기상!!!!”
꿈쩍도 안 한다 침낭카바를 벗기고 마구 흔들어대니 만복대 특유의 “5분만요...”
5분후에는 ‘3분만요’ 분명 그럴거다
인스턴트 북어국에 햇반으로 아침을 해치우고 서두른다 했지만 벌써 7시가 훨씬 넘어있다

07:30 밤재출발
어제는 구름이 끼어 그래도 나았는데 오늘은 해가 쨍하다 걱정된다
온몸이 묵지근하다
오늘은 페이스조절을 하기로 했다
예정했던 임걸령을 의식하지 말고 최소한의 속도로 어제의 피곤을 반감시키기로...

08:03 어제 천마산-견두산 구간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짜증나는 가시구간인 철탑부근이다
곧이어 철망이 쳐진 길을 따라 진행한다
금새 땀에 절어버린다

08:47 두 번째 움푹 파인 골짜기 숙성치이다
우리는 쉴 때마다 옷을 홀딱 내려 건조시키기를 반복한다
문제는 항문 쪽인데 이번에 좋은걸 배웠다 휴지로 미끈거리는 땀을 닦자니 그 휴지감당을 다 어떻게 해?
그렇다고 더러운 곳인데 얼굴 닦는 수건으로 닦을 수도 없고(하긴 만복대는 그냥 아래 위 다 닦드만..)
준비해간 생리대가 아주 왔다다
친구인 약사에게 부탁했더니 적은 것, 중간 것, 큰 것, 날개 있는 것 아주 골고루 줬는데 난 그렇게 종류가 많은 줄 몰랐다
큰 걸루 뒤쪽 땀을 닦아봤다 금새 보송해지는데 이 생리대는 축축하지도 않고 멀쩡하다
큰 거 하나 가지고 난 하루 종일 썼다. 접으니 보관도 간편하고....
나중에 적은 것도 아주 유용하게 썼다
감자쓰림에 아래에서 감싸듯 해 놓고 팬티를 잔뜩 올려 입으니 그 편안한 감촉이라니...

밤재에서 영제봉 구간도 독도에 상당한 신경을 써야 한다
거의 Z자 형태가 2번이나 나온다
혹 ‘남남종주’를 결행할거라면 월암마을에서 영제봉까지는 미리 한번 쯤 답사를 한 다음에 종주를 하는것이
길을 잘못 들어 실패하는 것을 막아줄 것 같다



나무사이로 보이는 영제봉


10:20 묘지와 877봉을 지나 수락폭포로 가는 길과의 삼거리다
이제부터는 고도를 좀 쳐야 영제봉에 도착한다
조릿대와 철쭉가지가 사정없이 얼굴을 긁어대고 배낭을 잡아 끈다

12:43 영제봉이다
날씨는 맑은데도 자외선 때문에 시야는 그다지 좋지않다
어제부터 걸어온 길이 아주 까마득하다



영제봉에서 본 만복대



영제봉에서 본 서북능 (우측부터 정령치, 고리봉, 바래봉)


13:44 라면으로 점심을 먹다
항상 코펠 밑바닥까지 긁어 대는 건 재홍이다 먹어도 먹어도 양이 안차는 모양이다

14:20 점심을 마치고 출발...
아~! 그런데 우려하던 것이 현실로 나타난다
왼쪽무릎 안쪽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난 줄곳 오른쪽 무릎만 신경을 썼는데 의외이다
제자가 준 스프레이를 뿌리고 옷 위로 무릎보호대를 졸라 맨다
잔뜩 졸라매니 조여서 아픈건지 무릎이 아픈건지는 구별 못하게 자극적인 감각은 오지만 그래도 어쩐지 좀 안심이 된다
쉴 때마다 풀어놓는 보호대가 무릎을 더 시원하게 해주는 것 같다



서부능과 서북능이 합쳐지는 부분

15:02 선유폭포쪽과 산동 상위마을 사거리인 다름재이다
웃자란 잡풀이 키를 넘는다
오르막이지만 편안하게 고도를 높인다 좌측 산허리로 감아 돌아가는 등산로에는 얼음같이 시원한 바람이 불고있다



우측 꺼진 부분이 다름재 (정령치 도로가 보인다)



만복대에서 노고단까지...


16:39 탁~ 트인 전망바위가 있는 서북능과의 갈림길이다
이제야 길고 긴 갈미봉능선, 형제봉능선, 천마산능선, 견두산능선과 서부능을 포함한 ‘서남능’이 끝났다
그리고 서북능으로 들어선다

16:50 만복대



만복대에서 본 반야봉



간식 먹는 재홍



만복대에서 찍은 사진이 없다나???


산행 시작 후 처음으로 만복대에서 등산객을 만난다
혼자 태극종주를 하는 중이라 한다
밤머리재에는 언제 도착 계획이라 물으니 새재부근은 전에 해버렸다 한다
......?????
그 분을 먼저 보낸 후 우리는 천천히 출발한다

‘만복대’와 재홍은 발길이 무지 가볍다
난 절뚝거리며 그들에게서 자꾸 쳐진다
속도를 못 내고 더듬거리는 내 모습에 ‘만복대’는 신이 나서 놀려댄다
“이런 때도 있군,,, 뭐해요 빨리 안오고...”
“형은 이제 끝난거요...”
(쩝...두고보자...)
그나저나 오늘은 그렇다치고 내일 산행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갑자기 실패란 생각이 들고 우울해진다



뒤 돌아본 만복대


17:50 묘봉치
아득히 멀리서 둘은 쉬고 있다
난 느린 덕분에 쉬어서는 안 된다



고리봉을 지나면서 본 성삼재



서북능 끝자락에 걸린 석양


19:19 성삼재
시간상으로 노고단산장까지 충분하나 거기까지 갈 이유가 별반 없다
빨리 쉬고 체력을 보충하고 차라리 아침에 일찍 움직이자
돌계단 아래 주차장구석에 옹색한 자리를 잡는다

막내인 재홍은 매점으로 장보러간다
손가락을 빨며 아무리 기다려도 함흥차사다
만복대랑 궁시렁거리며 기다리다 깜박 잠이 들었나???
재홍이 목소리에 언뜻 깨어보니 와 진수성찬이다 성삼재 휴게실에는 살만한게 없다며 히치하여 달궁까지 다녀왔단다
양념하여 볶은 돼지고기에 대포알에(이번 준비물에서 무게등등 땜에 술을 제외시켰었음) 아침에 먹을 된장국과 공기밥도 얻어왔다
역시 막내가 똘똘하니 쓸만하다

노골노골한 몸을 침낭속에 묻은게 11시가 좀 넘었던가???
그래도 얼큰한 기분에 쉽게 꿈속으로 빠져든 것 같다
침낭 속에서 야광시계를 눌러보니 벌써 05:25이다 이크 빨리 서둘러야지...

8/15(금) 05:30
한바탕 소동을 벌여 깨워일으키니 05:45이다
침낭을 빠져나오는데 으~~~ 바람이 엄청차다 이가 덜덜 떨릴지경이다
도대체 지금이 8월 맞나????
별수 없이 침낭을 몸에 말아 두르고 국을 데우는둥 마는둥 밥을 말아 입에 훑어 넣고 바삐 몸을 움직인다
빨리 운행을 해야 몸에 열이나지.....
배낭을 메려하니 무릎에 찌릿하니 전기가 오는 듯하다
스프레이로 떡칠을 하고 무릎보호대를 차려하자 어제 오후 내내 찼던지라 무릎 뒷부분 뼈 있는데가 헐어서 조이질 못하겠다
주능이라서 반바지를 꺼내 입은 탓이다
이 상태로 갈지 어쩔지 모르겠다
“어이, 철언이 굴러가든 기어가든 몇시가 되었던 장터목까지 가서 그 다음은 결정할거니까 일단 가세 늦으면 먼저가...”
무릎보호대가 주는 통증이 더 심해서 둘둘 말아 배낭주머니에 처박는다

06:35 출발, 노고단으로 가는 도로로 올라서니 인파가 엄청나다
난 산행을 하면 거의 모두를 앞질러 간다
그런데 오늘 모든 사람이 나를 앞질러 간다
참으로 처량하고 한심하다
모두들 나를 보는 것 같다 ‘저 사람 저러고 어디를 가려하지??’ 하면서....

그래도 안 쉬고 거북이같이 꾸준히 가면 되겠지...



만복대와 재홍



코재부근의 전망대



우리가 시작한 남남종주(서남능) 시발점


07:17 노고단산장



07:15경의 노고단 산장


만복대가 지사랑의 ‘산수유’님과 아는체를 하고 있다
노고단산장 부근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발붙일 곳이 없을 정도다
하긴 8월 15일이니 마지막 피크겠지...
07:33 노고단
08:59 임걸령,



2003. 8. 15 09:00경의 임걸령


나는 그야말로 눈물겹게 또박또박 쉬임 없이 간다
만복대와 재홍은 자주 쉬며 나를 기다린다
내 뒤로 줄줄이 등산객이 따라 올 때면 비키고 기다리자니 그 줄이 한도 끝도 없고
그냥 가자니 내 앞은 텅텅 비고 뒤는 한없이 밀리고.....
이럴 때는 별 수 없이 비킬 수 있는 넓은 길이 나올 때까지 통증을 무릅쓰고 오버를 할 밖에...

10:08 삼도봉



2003. 8. 15 10:00경 삼도봉


10:42 화개재
12:36 총각샘 (아마 조만간에 총각샘은 마를 것 같다 수량이 차차 줄어든다)
13:30 연하천대피소,



2003. 8. 15 오후 1:30경의 연하천대피소


6월25일 이 남남종주를 위한 트레이닝때, 성삼재에서 연하천까지가 3시간 39분 걸렸는데
오늘은 6시간 55분이 걸렸으니 참으로 황당하다

연하천대피소도 발디딜 틈이 없다 어디 비집고 들어가 3명이 밥 먹을 자리가 보이질 않는다
심지어 냄새나는 화장실 앞까지....
우리는 절터골 초입부근까지 가서 한가롭게 먹기로했다
만복대가 나를 위해 연하천 친구에게서 진통제를 얻어다준다
그리고는 자기 배낭 속 비상약에도 진통제가 있다는 걸 기억해낸다
‘뫼가람’이 종류별로 분류하여 선물로 줬다한다 (흠...나는 안주고....)
그 이후로 난 거의 2-3시간마다 진통제를 복용한다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재홍이 친구를 우연히 만나 소주를 한병 얻는다
재홍과 나만 한잔씩하고 절반이상을 잘 때 먹기로 하고 남겨둔다

14:20 점심을 끝내고 출발
쉬었다가 걸으니 통증이 더 심하다

통증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통증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방법 밖에는 없다
문제는 그 통증이 그 강도로 지속되는 게 아니고 어느 순간에 심해지는데 있다
그 불규칙 때문에 묵묵히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견디기 힘들다
그런데 이 진통제가 그 불규칙을 억제해주는 것 같다
통증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고.....

15:33 형제봉
16:28 벽소령,



2003. 8. 15 오후 4:30경 벽소령


벽소령에서 백도 통조림을 간식으로 먹는다
난 원래 간식을 안 먹는데 이번 종주에서만은 꼬박꼬박 닥치는 대로 먹는다



벽소령을 떠나는 만복대와 재홍


내가 이번 종주에 준비한 간식의 총 무게는 300g 밖에 되지 않는다
코코아 성분이 가장 많이들은(20%) 1회용 코코아 5봉지로 친구 약국에 가서 조제약봉지로 15개를 만들었다
그거 약 1봉이 내 간식 1회분이다 약 먹듯 입안에 털어 넣고 물로 간단히 마셔버린다
또 한가지 'Leppin Squeezy'라는 고칼로리 액체 영양소이다 1봉에 45g 인데 2,3,4일째를 대비해 6봉을 준비했다
(그나마 두가지 모두 남겨왔지만..)

벽소령 작전도로를 타다가 만복대가 살모사를 발견하고 질겁을 한다 재홍은 만복대보다 500배 더 뱀을 무서워한다
아예 책에 나오는 뱀도 외면할 정도라니 알만하다
그러고 보니 둘째날 다름재부근과 만복대를 내려오면서도 뱀을 봤었다
내가 지리산에서 뱀을 만난 것이 모두 7차례인데 모두 독사였다



벽소령 작전도로의 살모사


17:46 선비샘, 벌써 선비샘에는 야영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럽다



영신봉 부근에서 본 반야봉 방향의 낙조

19:40 세석대피소
세석대피소는 그야말로 전쟁터이다
자리를 배정 받지 못한 사람들이 모든 공간을 점령하고 있는데도 아직도 벽소령에서 넘어오는 등산객들은 끝이 없다
더구나 바람은 거의 한겨울을 연상케한다 체감온도가 영하 3도 정도라니....
남의 걱정 할 형편이 아니다 우리는 한쪽 구석에 겨우 자리를 잡고 인스턴트 미역국을 끓인다
물 떠오는 당번은 역시 막내인 재홍...
그 사이 만복대는 매점에 식량을 사러 갔다 (다음날 먹을 햇반등등...)
재홍은 오버쟈켓을 빼놓고와서 판쵸우의를 둘러쓰고 저녁을 먹는다
밥을 먹으면 몸이 훈훈해 져야하는데 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오히려 더 추워진다

20:35 세석을 떠난다
밥 먹은 뒤 진통제를 2알이나 먹었다
만복대와 재홍에게는 애써 통증을 숨긴다
자칫 내 부상이 그들의 의욕마저 떨어뜨려 종주를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56 촛대봉
21:56 삼신봉
22:11 연하봉
삼신봉과 연하봉사이의 안부를 건너는데 우와~!!!! 난 난생 그런 바람은 처음이다
우리를 북쪽방향으로 사정없이 밀어 붙인다
등산로 옆으로 쳐진 밧줄이 없었으면 몇 번 위험할 뻔 했다
세석이 춥고 공간이 없어 출발했다는 등산객한명이 따라 붙는다

22:32 장터목이 눈앞에 보이는 적당한 공간에 우리는 보금자리를 만든다
낮에 남은 소주가 완전 보약이다
만복대는 금새 코를 골고 평소에 죽은 듯이 자던 재홍도 피곤한 듯 코를 곤다
난 무릎이 쑥쑥 아려와서 잠들려다 섬칫섬칫 짜증나게 잠을 설친다

8/16(토) 04:30
“어이 철언이 기상!!! 빨리 일어나소...”
‘5분만 더요‘ 할줄 알았더니 대사가 바뀌었다
“왜 맨날 나만 먼저 깨워요~!!!”
“재홍이는 자네만 일어나면 자동으로 일어나니 그렇지..”
그런데 사실은 잠자리에서는 재홍이가 더 꼼지락거리고 안 일어난다

서둘러 짐을 챙기고 아침은 진행을 하다가 먹기로 했다
난 빈속이지만 다시 진통제를 삼켜야했다

05:20 비박지 출발
05:27 장터목대피소를 지난다
한가로운 것이 이미 일출을 보러들 떠났나보다
난 제석봉정도에서나 일출을 만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사실 이번 산행에서는 사진에 신경을 못 썼다 무릎통증에 완주 생각만 했지 카메라마저 부담스러웠으니...)
주위가 희뿌옇게 밝아오는 모양새를 보니 오늘 일출은 물 건너 간 것 같다
개스가 온통 주봉 부근을 휘몰아쳐 돌고 있다



새벽의 제석봉



통천문을 지나서...

06:32 천왕봉



2003. 8. 16 06:30경 천왕봉


아침 먹을 중봉샘이 코 앞인데 만복대는 배고프다고 꽁알댄다
재홍이가 아껴 숨겨놓은 오이를 하나 꺼내준다
만복대는 맞바람에 게눈 감추듯 혼자 먹어치운다



천왕봉에서.....재홍..


07:02 중봉샘 위 안부
역시 물은 재홍이 뜨러 내려가고 우리는 아침상을 편다
만복대는 배가 고픈지 정량보다 하나 더 햇반을 꺼낸다
국은 인스턴트지만 미역과 북어를 한꺼번에 넣어 끓이기로 했다
아침을 먹는 동안 많은 등산객들이 우리를 스친다

08:00 아침을 끝내고 출발
08:08 중봉 09:10 하봉에 다달을 무렵 안개비로만 알았던 물방울이 빗방울로 변한다
잠시 그러다가 말겠지 생각했는데 비는 차분하게 자리를 잡는다
이슬에 디카를 한번 망쳐먹었는지라 얼른 양피에 카메라를 말아 배낭에 깊숙이 넣는다
에이, 오히려 홀가분하다

인적이 드문 동부능인데 앞에 두 사람이 떨며 배낭에서 뭘 꺼내고 있다
아들 극기훈련 삼아 백무동에서 어제 올라 왔다는 부자간이다
천왕봉 부근에서 추성가는 길을(국골로...) 알려줬었는데 아직도 여기있다
우리를 보며 반갑게 묻는다 이 길이 맞는 길이냐고.....
능선은 바람이 세차고 비는 점점 더 많이 오는데 걱정스럽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국골이 얼마 안 남았으니
일단 계곡쪽으로 내려가면 바람은 없으니....
국골사거리를 얼마 남겨놓지 않았는데 오목하게 들어간 바위가 나온다
바람도 없는 아늑한 자리이다
거기서 잠시 쉬고 있으려니 부산에서 왔다는 등산객 한명이 담배를 한 개피 청하며 젖은 옷을 갈아 입는다
어름터로 내려간다는 등산객은 ‘만복대’를 알아본다
유명한 만복대는 좋겠네....

10:25 국골사거리를 통과하고..
10:38 조계골 상류에서 물을 한통씩 확보한다 원래는 2통을 준비하려했으나 비도오고 하니 1통이면 충분하겠지...
바람이 거센 능선은 뼈까지 한기가 스며온다
잠시라도 운행을 안 하고 쉬면 바로 한기가 엄습한다
발속은 이미 철벅철벅 물바다이다

※ 발뒷꿈치 등 각질을 제거하거나 발바닥을 핑크빛으로 가꾸려는 분들은 홈쇼핑의 그 뭣이냐
그런 것 쓰지 마시고 두툼한 등산양말에 등산화를 신고 물을 한바가지씩 부은 다음 10시간만 걸어다니십시오
아주 깨끗하고 빛나는 발이 만들어 집니다
단, 등산화가 고어면 안됩니다 발이 안에서 쪄지니....

11:27 독바위
독바위에서 너른바위 사이에서 배낭 뒤에 걸어놓은 의자를 잃어 버린다
손 때묻은 의자인데 평소 산행 같으면 주우러 돌아갔겠지만 엄두가 안난다
실밥이 풀려 앉는 부분이 덜렁거리는걸 구두수선소에가서 다시 꿰매고 했는데....

<다행이 우리 뒤에서 태극종주를 하시던 ‘덕이아빠’ 일행이 의자를 주워 보관하시고 있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근데 의자값 보다 더 드는 것 아냐??)>

13:16 새재
새재로 내려가다가 나뭇가지가 내 왼쪽 눈을 찌른다 무지 아프고 짜증이 확~! 난다
발은 미끄러지지, 힘을 주면 무릎은 아프지, 눈까지 찔리니 미치겠다
만복대 : “20분만 내려가면 개운하게 샤워하고 내가 한턱 낼텐데...”
절뚝거리는 나를 실실 약올린다
재홍이도 비에 젖어 미끄러지는 등산로에 엄청 짜증을 낸다
지금 산행기야 이렇게 편안하게 쓰지만 그때 상황이야 으~~~!!!!!!!

오늘 저녁은 밤머리재에서 비박예정인데 지금 상황으로는 불가하다 옷도 다 젖었지
‘뫼가람’님이 온다고는 했지만 불확실한데 부담가게 전화 할 수도 없고 별수 없이 난 집에 원조를 청한다
“밤머리재 알지?? 경남 산청 부근 작년 태극종주 어쩌구저쩌구...마른 옷 몇벌 가져오고 나까지 3명이니..
아이스박스...어쩌구 ....통닭...시원한 맥주....운운,,“
한결 안심이 된다

13:55 외고개
난 그냥 먹지 말고 꾸준히 진행을 하자고 했지만 둘은 안 먹으면 못 간다고 기어이 먹고 가잔다
별수없이 판쵸우의를 지붕삼아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는다

14:30 출발
15:26 왕등습지
쉬고 나니 무릎이 완전 가버렸다 마디가 굽혀지지가 않는다
그제야 만복대가 심각한 얼굴을 한다
“동주형 그러고 어디 가겠어요??”
“가 어서 내 걱정말고....”
속도가 더 떨어진다 보상심리로 평지가 나오면 죽마처럼 펴고 기우뚱기우뚱 뛰어본다
둘이 쉴 때면 난 기를 쓰고 한발이라도 더 간다
만복대는 나를 만난 이후로 오늘같이 편한 산행이 없단다

17:32 깃대봉
봉우리 바위위에 사과가 3개 놓여있다 누군가가 제물로 놔뒀나보다
뒤따라 오던 만복대와 재홍이 먹어버렸단다

개스가 잠깐 걷히며 도토리봉이 어렴풋 보였다가 다시 숨는다

깃대봉부터 도토리봉까지는 완전 약 올리는 길이다
왔다싶으면 봉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그래도 내가 늘 되뇌이는 말이 있다 ‘시간만 가라 내가 움직이는 한 시간만 가면 언젠가는 도착한다’

19:15 도토리봉, 골초인 둘이는 도토리봉에서 한대 태워 물고 나는 한 발이라도 먼저 가려고 서두른다
날은 어두워지고 헤드랜턴을 꺼내기는 귀찮고 우리는 미끄러지면서 스틱으로 장님이 길 더듬듯 더듬거리면서 내려온다
밤머리재 불빛이 보일 무렵 할 수없이 만복대가 헤드랜턴을 꺼낸다
밤머리재 위 헬기장에는 텐트가 쳐져있다
밤머리재에 거의 도착할 무렵 밑에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양사장님~!”
반가운 ‘뫼가람‘ 목소리다
비도 오고 미안해서 안 왔으면 하고 일부러 전화도 안했는데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19:58 밤머리재
밤머리재에는 의외로 ‘중봉’님 ‘꼭대’님 ‘돌메이’님 등등 많은 분들이 와계시다
태극종주를 하는 ‘덕이아빠’ 일행을 기다리는 있는 중이시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급급히 산청읍내 모텔을 찾아 내려간다

문명이란 이렇게 좋은 거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니 긁힌 상처는 쓰리쓰릿 하나 상쾌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게 왠일???
세수를 하며 눈을 부비다 보니 새재에서 내려오며 나뭇가지에 찔린 왼쪽 눈에 통증이 오며
눈을 뜨지를 못하겠다
어찌어찌 떠보면 시고 눈물이 막 흐르고 깜박이면 쓰리고 이거 무슨일인지 모르겠다
짐작해 보니 작은 가지나 가시가 눈 윗꺼풀이나 아래꺼풀에 있다가 세수하며 눈을 부비니
그게 눈알에 박힌 모양이다
쩝 별걸 다 한다.....

뫼가람님은 흑돼지 양념구이 저녁까지 사주고, 모텔에 수박과 맥주까지 넣어주고는 11시경 떠났다
그 원수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모르겠다
모처럼의 완벽한 잠자리는 눈과 무릎의 통증으로 인해 뒤척임으로 변한다
산행만 고역인줄 알았더니....꿈에서 마저 계속 헤매는 꿈만 꾼다

8/17(일) 05:00경 차라리 일어나 버리는게 편하다
모처럼 편하게 잤는지 만복대와 재홍이는 안 깨워도 잘 일어난다
비라도 개 주길 바랬는데 부실부실 오고 있다
배낭에서 필요 없는 것을 비워버리니 배낭은 홀가분하다 점심 도시락하고 물만 있으면 되겠지

해장국집을 찾아 터미널부근으로 이동하니 2층에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식당에 아침식사가능하다 쓰여있다
우거지해장국인데 그래도 제법 먹을만 하다
점심으로 공기밥을 비닐에 3봉지 싸달래니 마침 찰밥이 있다고 찰밥을 싸준다

밤머리재를 향하는 차 안은 조용하다
말은 안 해도 모두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서로 자존심 때문에 말은 안하지만 발이 팅팅 부어 등산화를 신으려고 킹킹거렸고,
허벅지 종아리 모두 알이 박혀있을 것은 뻔하고...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스틱에 힘을 줬으니 어깨, 등 근육도 여차하면 그냥 쥐가 나버리고..
비에 손바닥이 불어터져 스틱을 잘못 잡으면 껍질이 벗겨질정도로 불안한 통증이 오고..
거기에 비하면 난 상대적으로 단순 할 수도 있다 눈과 무릎 뿐이니...
무릎은 이미 압박붕대로 안에서 감고 옷 밖으로는 무릎보호대를 했고 진통제도 듬뿍 먹어뒀고..
눈의 통증만 참아주면 할만하다
어제 스스로 생각한 것이 있다
무릎이 병신이 되는 것하고 남남종주를 완주하는 것 하고 하나만 택하라면 완주를 택하겠다고..

비는 오락가락한다
카메라를 들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망이 트이면 후회하고 말지 뭐 하며 차 속에 놔둔다 스틱도 귀찮을 지경인데..
06:30 마지막 코스인 달뜨기능선을 정복하러 밤머리재를 떠난다
처음 20-30분을 잘 참으면 근육은 바로 적응을 한다
이럴 땐 나무계단이 차라리 고맙다

07:24 헬기장
08:25 왕재, 선녀탕과 웅석봉 갈림길이다
시간이 가고 거리가 줄어들수록 통증들이 줄어드는 것 같다
09:13 웅석봉 코밑의 헬기장이다
배낭을 내려놓고 웅석봉을 찍고 오자는 재홍의 말에 만복대는 맨날 가본데 뭐하러 가느냐고 그냥 쉰단다
나도 별로 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놈의 ‘의미’가 뭔지
억지로 만복대를 끌어 세운다

09:40 웅석봉
09:56 다시 딱바실 웅석봉 삼거리

난 이번 산행에서 느낀 것이 많지만 그중 중요한 한 가지는 산행시 고통은 하나라는 것이다
비 맞아 춥고 떨리고, 숨차고, 쥐나고, 무릎에 통증이 있고, 눈에 통증이 있고 등등 여러 고통을 동시에 겪지만
그 모두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고 그 중 제일 힘든 것 하나만 자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것 아닐까 모든 고통을 모두 쓸어 안는다면 그걸 어찌 감당하랴...

고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모두는 거의 말을 않는다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겠지

12:09 딱바실, 마근담 푯말을 지나 밋밋한 918봉 삼거리다
우리는 여기서 식당에서 싸온 찰밥을 먹는다
같이 싸준 부추김치가 시어터져 쉰내가 난다

12:40 점심을 끝내고 출발
맘 같아서는 훤하고 가까운 수양산방향으로 진로를 잡고 싶지만 이제 얼마나 남았다고...
기수를 우측으로 돌린다
개스가 살짝 살짝 거칠때마다 카메라 생각이 나지만 막상 있다면 의욕있게 찍고 싶은 풍경이 아닐수 도 있다

13:26 헬기장 아마 감투봉인 모양이다
임도를 지난다
길이 편안해 지면 눈이 더 아파온다 아마 눈물을 3-4사발은 흘렸을 것 같다
대책없이 눈을 깜박이면 흘러나온다

이방산이 다가오며 고도를 치게되자 미끄러지며 올라가며 하는 지긋지긋한 반복이 오히려 눈을 잊게한다
재홍은 미끄러짐에 민감하게 짜증을 낸다

14:34 이방산, 아 ~! 이제 되었다 이제부터는 진짜 기어도 완주는 하겠지
한바탕 내리막을 겪고 나니 야산냄새가 풀풀 나는 것 같다
담배들이 떨어져 쉴 때 정서불안인 듯한 모습이 고소하다

486봉을 돌아 내려오다가 훤한 우측길로 접어들어 30여분 떨어지니 아 꿈에 그리던 59번 국도가 발밑에 있다
16:33 59번도로를 우비입은 할아버지가 한가롭게 자전거를 타고 가신다

※ 이번 종주에서 터득한 노하우 하나!!!
비나 땀에 옷이 젖어 허벅지가 쓰라릴 경우를 대비해서 여러 방법이 있으나 내가 썼던 확실한 방법은,
BYC같은 속옷 전문점에 가서 여학생용(치마 안에 입는 속옷) 면 타이즈를 산다.
사이즈는 두 치수 적은 걸로... 내가 100, 105를 입는데 90짜리를 샀다
목이 긴 것이 좋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옷을 뒤집어 입어야한다 박음질 자리가 밖으로 나오도록...
일반 팬티도 뒤집어 입는게 좋다

기나긴 ‘南南종주’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다른 때 같으면 가장 급한 것이 하산주 이건만 지금은 안과 응급실이다

전주에 도착하자마자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가시를 빼고 안대를 붙여준다 다행이 시력에는 지장이 없다한다

내일은 무릎과 피부(풀독) 때문에 정형외과와 피부과도 가야할 것 같다

같이 고생한 ‘만복대’와 재홍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집사람과 ‘산돌이’ ‘뫼가람’, 하산주를 거창하게 베풀어준 ‘장발짱’과
스프레이와 고칼로리 간식을 구해준 제자,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3. 11. 30현재 조회수 : 2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