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25 19:37
[와운-천년송능-5암자-도마동]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4,209  
1. 산행일시
2004. 9. 4(토) 07:05 - 14:51

2. 코 스
와운 -> 천년송능선 -> 영원령 -> 영원재 -> 영원사 -> 도솔암 -> 영원사 -> 상무주 -> 문수암 -> 삼불사 -> 도마동

3. 참가인원 4명
‘작은세개’
‘작은세개’부인
‘아멜리아’
‘나’

4. 시간대별 도착지
07:05 : 와운마을 출발
08:14 : 헬기장
08:22 : 작은암릉
08:58 : 중북부능선
09:17 : 영원재
09:48 : 영원사
10:33 : 도솔암
11:15 : 영원사
12:26 : 상무주
12:57 : 문수암
13:35 : 삼불사
14:13 : 문수암삼거리
14:51 : 도마마을

5. 산행시간 및 거리
총 7시간 46분
도상거리 13.2㎞

6. 산행일지
이번 산행은 20년만에 지리산에 가 본다는 ‘작은세개‘의 부인 (이하 ’작부‘ 잉? 어감이 이상하네 다시, ’작은부‘)
과 함께하는 만큼 편하고 짧으면서도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의미가 있는 코스를 생각하다보니 칠암자 코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실상사에서 시작할까 영원사에서 시작할까 궁리를 하다가 지리99모임때 ‘한상철’님 산행이 문득 생각나
와운 ‘천년송’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사실 90년도 초까지만 해도 ‘천년송’이란 존재는 외부에는 그리 크게 알려지지 않았었다
겨우 동네사람들만 오래된 고송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었을 뿐,
그러다가 90년도 초반에 반선에서 요룡대까지 도로 확장공사, 그리고 요룡대 다리와 와운까지 도로가
남원군 차원에서 ‘생활도로‘라는 명분으로 개설되게 될 즈음,
전주 MBC에서 환경파괴를 주제로 기획 방영을 하며 도로개설 계획을 막고 나섰다
그러자 와운주민들이 전주 MBC 방송국으로 몰려가 데모가 벌어지게 되고 급기야 전북도가 관여 할 만큼 일이 확대되었다
지금이야 10여세대 이쪽저쪽으로 작은 마을이지만 70-80년대는 덕동분교가 있었을 만큼,
20여가구가 넘는 동네였기 때문에 그 잠재력도 무시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지리산 구석구석의 대부분의 마을들이 그렇듯이 쉽게 현실과 타협하며 사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천주학이네 동학혁명, 이념적 반골 등 신념을 추구했던 사람들의 후손이기에 그 기질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결국, 전북도에서는
전설이 깃들인 고송을 ‘천년송’이라는 천연기념물로 승격시켜 주면서 와운마을에 손을 들어 주고 명분까지 준 것이다.
불과 10여년전의 일이다

이제는 ‘와운’보다 ‘천년송’이 더 어필되는 만큼 와운에서 영원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천년송능선’으로 부르는 것이 당연할 것 같다

덕동이나 반선, 내령 토박이들은 지금도 와운마을이라 안하고 ‘눈골’이라 부른다
아마 ‘누운골’을 줄여 ‘눈골’이라 하리라 엎드린 것이나 누운 것이나 비슷하니...
토끼봉도 위가 평평하다하여 ‘마당봉’이라고 부른다

사설이 너무 길었네

07:05 계단 앞의 공터에 주차를 하고 계단을 올라 ‘천년송능선’을 시작한다.
천년송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간 듯 길이 번들번들하다
경사도가 서서히 날을 세우면서 ‘작은부’가 쳐지기 시작한다
일요일이면 항상 오전에 가족산행을 한다고 해서 2-3시간은 거뜬히 쳐지지 않고 따라 붙을 줄 알았는데....

07:30 지뢰매설겸 ‘작은세개’부부를 기다리니 ‘작은부’가 신발이 작은 걸 신고 왔다며 절뚝거리며 온다.
장비점 주인이 잘하는 짓이다
‘아멜리아’와 서로 신발 칫수를 물어 보며 바꿔 신는다
신발을 바꿔 신던 ‘아멜리아’ 왈

“사모님 신발에 깔창이 없네요”

점입가경이다
깔창마저 있었다면 아예 신발이 안 들어갈번 했구만....
진짜 장비점 여주인 맞아?????

08:03 고도 1,100m쯤에서 몸통 굵은 잣나무가 나타나고 앞쪽 능선이 펑퍼짐하게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길이 이리저리 희미하게 흩어지지만 그냥 위만 보고가면 한 곳으로 다시 모여진다

08:14 헬기장을 지나다

08:22 시야가 한껏 트인 전방바위에 다다른다.
중북부능선에 가려진 삼각고지와 반야봉에 가려진 노고단만 보이지 않을뿐,
바래봉에서 시작해 고리봉 정령치 만복대로 이어가는 서북능을 비롯하여
웅장한 주능과 주봉들, 뻗어나가는 동부능의 일부까지 모조리 잡힌다.
마치 이 조그만 전망바위를 위해 서북능과 주능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느낌이다
더더욱 중북부능선이 찌를 듯이 앞으로 다가오고 와운능과 심마니능이 앞으로 넘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늘어져있다



↑ 작은 전망바위에서 본 큰 전망바위



↑ ‘사람과 산‘ 2002년 9월호 별책부록 ’지리산‘ 168쪽에 나와있는 사진



↑ ‘작은부’에게 주능부분을 설명하고 있는 ‘작은세개’



↑ 천왕봉 방향



↑ 서북능

더 높이 위쪽에 큰 전망바위가 또 있지만 이 작은 암릉에서의 조망이 훨씬 나은 것 같다



↑ 큰 전망바위로 오르는 ‘아멜리아’



↑ 큰 전망바위에서 본 반야봉



↑ 우리가 올라온 ‘천년송능선’ 밑에 보이는 게 와운마을

08:58 영원령(중북부능선)
넉넉하게 잡아도 1시간30분정도 예상했는데 거의 2시간이 걸렸다
내리막에서는 ‘작은부’도 잘 간다
영원재를 지나 1,250봉을 넘어가야 도솔암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작은부’ 때문에 무리일 것 같다
그냥 영원재에서 영원사로 내려가 ‘작은부’는 영원사에서 쉬고 있고 셋이서만 도솔암에 다녀오기로 결론을 낸다.

09:48 영원사
영원사에 도착하니 마음이 슬며시 변한다
“도솔암 빼먹어 버리고 상무주로 그냥 가지...”
‘작은세개’는 찬성인데 ‘아멜리아’가 펄쩍 뛴다 지금 아니면 언제 도솔암을 가보냐고...
별수 없이 도솔암을 향해 가는데 ‘작은세개’는 ‘작은부’를 혼자 두고 가기가 불안 했는지 같이 주저앉아 버린다
기다리는 두 사람을 위하여 빨리 갔다가 오기로 한다

10:33 도솔암
언제나 그렇듯이 고요 그 자체이다
가끔 살랑이는 바람에 풍경마저도 큰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삭인다
퇴고(推敲)의 고뇌를 이해 할 것 같다
‘아멜리아’는 이렇게 기막힌 곳을 못 올 번 했다면서 연신 감탄을 해 대며 뒤란의 약수를 맛있게도 마신다
도솔암 처마 밑에서 천왕봉을 보니 천왕봉이 도솔암을 바라보고 있는지 도솔암이 천왕봉을 향해 앉아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숨소리를 죽이며 스틱소리도 감추고 도솔암을 물러 나온다



↑ 도솔암



↑ 도솔암의 풍경소리에 갇혀 있는 주봉들...

11:15 다시 영원사
부부간에 나란히 누워 맛있게도 잔다
둘이 매실주도 한잔씩 걸친 모양이다
‘작은부’를 위해 차라리 먼저 출발을 하라 할 걸 잘못했다
푹~ 쉬어버리니 다리가 굳어 더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가다보면 풀리겠지



영원사에서 잠자고 있는 ‘작은세개’부부

11:51 다시 영원령의 횡치(빗기재)에 도착
‘작은부’가 몹시 힘든가보다
아무래도 약수암은 생략을 하고 도마마을에서 산행을 접어야 할 듯 하다
‘작은세개’가 꼬나보고 노려보고 난리가 아니다



횡치에서....

12:26 상무주
스님이 뭔가 톱질을 하고 있다
재작년(2002년) 12월에 달력과 고무장갑을 나눠주는 산행을 했었는데 그때 일을 말해더니 기억을 하신다
이번에는 암자라서 생각코 녹차를 조금씩 준비했는데 ‘아멜리아’가 녹차를 건네는 순간 스님이 녹차를 받으며 왈.....

“들어 오셔서 커피나 한잔씩 하시지요”

난 상무주에 오면 항상 바보가 되는 느낌이다
‘아멜리아’도 벙~~ 찐다

그런 의미에서 재작년에 썼던 산행기에서 한 토막 퍼 오자면......

--------09:23 고려때 지눌선사가 2년여 머물렀다는 상무주

법당과 산방을 겸하는 문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달력 등을 꺼냈다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스님이 나오신다
별로 달갑지 않다는 듯, 굳어있는 무뚝뚝한 얼굴 너머로 감춰진 고마움을 나는 이내 발견한다
나도 최대한으로 생색을 감춘다
다시 배낭을 조여매고 지려는데 부엌에서 ‘삶은호박‘을 접시에 내오신다
아...난감, 난 간식을 안 먹는데 더구나 저건 너무 먹기 싫다 그러나 어쩌랴 성의를
무시해서도 안 되겠고, 한 입을 베어 무니 너무 달다 으휴, 난 단 것도 싫은데
(그거 억지로 먹고 오후 6-7시 저녁술 먹을 때까지 부대꼈음)
설상가상으로 “목메이니 같이 자슈”하며 설탕 탄 커피까지.....
흐흑~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어쩌면 나 싫어하는 것만.....

<우문현답 1>
나 : (호박 먹으면서) “여기 혼자 계시려면 적적하지 않으세요???”
스님 : “사는 게 다 적적한 거지요....”
나 : “................”(머쓱~)

<우문현답 2>
나 : “이거 껍질까지 다 먹어요???”
스님 : “무공해로 여기서 기른겁니다”
나 : (쩝, 그니까 먹어도 되는거야? 안되는거야?)

<우문현답 3>
나 : (쌓여진 장작더미를 가리키며) “나무도 스님이 다 하세요???”
스님 : “나무는 일꾼들이 하지요....”
(에고 산 속 스님이라고 내가 너무 우습게 봤나보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커피를 먹었네
극구 커피를 사양하고 상무주를 떠난다
‘작은부’는 점점 더 쳐지고 ‘작은세개’의 눈꼬리는 더 올라간다
‘아멜리아’는 나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혹시라도 늦는다는 둥 싫은 눈치를 절대 보이지 말아달라고...
내가 어린애인가??? 참내...



“스님 녹차 받으세요”

12:57 문수암
문수암의 주지스님은 출타중인 모양이다
삼불사로 가는 도중 아주 통통한 살모사를 발견했는데 금새 바위사이로 들어가 버려 사진도 못 찍었다



일어나기 싫은 ‘작은부’ (삼봉산이 보이는 문수암에서..)

13:35 삼불사
‘이멜리아’가 부엌에 있는 비구니스님에게 녹차를 갖다 드리면서 재작년의 달력 이야기를 했나보다
늘 받기만 해서 어떡하냐면서 밖에 있는 나에게까지 들린 스님이 하는 말

“씨 가가세요, 씨가가세요......”

????? 무슨 씨를 가져 가라는 거지???
‘아멜리아’와 나는 멍청하게 마주보며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알아차린 해석 ‘씨가가세요’ -> “쉬어가세요” 참 어렵다
나무 밑에 있는 평상에서 쉬었다가 가란 말이었다
한참 만에 ‘작은부’를 끌고 ‘작은세개’가 도착한다
‘작은부’는 거의 옆으로 걷다시피한다

갑자기 부엌에서 스님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맷맹이요???”

부엌에서 표고를 넣은 된장국을 끓이고 있다는 스님에게서 ‘아멜리아’가 식혜 4그릇을 받아가지고 온다
‘작은부’와 ‘아멜리아’는 한 숟갈 맛을 보더니 화다닥 수저를 놔 버린다
나도 맛을 보니 식혜라고는 하나 도무지 정체를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산중에서 음식을 버릴 수도 남겨서 반납할 수도 없는 상황아닌가
‘작은세개’와 나는 어쩔 수 없이 두 그릇씩 억지로 비울 수밖에.....

산꾼님들 혹시라도 삼불사 가셔서 식혜 준다고 하거든 미리 사양하시길.....

그래도 아주 잘 먹었다고 인사들 하고 삼불사를 떠난다



↑ 정체모를 식혜와 ↓ 들고 먹지도 못하고 걱정스러워 하는 여자들



14:13 문수암에서 바로 내려오는 삼거리

14:51 도마마을 정자
정자에서 ‘아멜리아’와 내가 내기를 한다 ‘작은부’가 몇분에 도착할까???
‘아멜리아’는 15:17 나는 15:25..... 그런데 그들의 도착은 15:22 이니까 내가 이겼는데 글 쓰는 이제야 생각나네...




↑ 도마마을 정자에 잠들은 ‘아멜리아’



↑ 선수 입장

인월의 단골 개인택시를 부르니 반선 일출식당까지 2만원 달란다
기사가 요령껏 내령매표소를 공짜로 통과시킨다 안된다면 2단계를 준비했는데 2단계를 써볼 필요도 없다

일출식당에 도착하여 택시를 보내고 안으로 막 들어가려는데 ‘아멜리아’가 청천벽력과 같은 일을 기억해 낸다
일출 차로 와운 가서 내 차를 회수 해야는데
일출사장 춘식이가 이번 주말에 서울 간다고 했었다는 것이다
택시를 보내고 기억해 내면 어쩌란 말이냐!!!!!!!!!
혹시 몰라 춘식이에게 전화를 해 본다 차를 놓고 갔기를 바라며.... 그런데 가지고 갔단다
와운까지 차를 회수하러 가자니 까마득하다
가만히 있으면 차가 저절로 올 리도 없고......
옛길로 가면 빠르겠지만 혹 히치라도 할까 싶어 석실 도로로 타고 가지만 내려오는 차만 있을 뿐 올라가는 차가 없다
차를 회수해 오니 셋이서 버섯탕에 비빔밥 한 그릇씩을 뚝딱 비워 놓고 있다
나는 남원 콘도에서 벌초 끝낸 ‘만복대’와 만나 그때 맛있게 먹어야하니 그냥 맥주 한잔으로 배를 채우고 만다
그러고 보니 종일 먹은 것이라고는 물 빼놓으면 이상한 식혜 두 그릇과 맥주 한잔 뿐이네...

2013. 11. 30현재 조회수 : 1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