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19 11:29
[태극종주]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3,629  
[지리산 태극종주]

1. 산행일자
최초계획 : 2002. 7. 30 - 8. 3 (4박5일)
실제종주 : 2002. 7. 30 - 8. 1 (2박3일)

2. 종주코스
최초계획 : 인월(흥부골)->덕두봉->바래봉->정령치->만복대->성삼재->노고단->임걸령->노루목->삼도봉->화개재->토끼봉->연하천->벽소령->선비샘->세석산장->장터목산장->천왕봉->중봉->국골사거리->쑥밭재->새재->왕등재->밤머리재->웅석봉->이방산->덕산(시천)
총 도상거리 82㎞
실제종주 : 인월(흥부골)->덕두봉->바래봉->정령치->만복대->성삼재->노고단->임걸령->노루목->삼도봉->화개재->토끼봉->연하천->벽소령->선비샘->세석산장->장터목산장->천왕봉->중봉->국골사거리->쑥밭재->새재->왕등재->밤머리재->웅석봉->어천
총 도상거리 76㎞

3. 참가인원(총 3명)
이철언(만복대) : 25년여를 주말이나 시간이 나면 오로지 지리산만 고집한, 지리산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지리산 박사로, 직장인임에도 불구 최근 1-2년 토요일이면 무조건 비박내지 무박 산행으로 주말을 가족과 지낸 적이 없음 제사때도 지리산으로 떠난 위인
산행시 속도보다 남이 모르는 코스를 개발하고 유유자적 놀며 가는 스타일.

정 혁(산딸기) : 닉네임은 여자 같지만 남자임 30대초반의 총각이며 철언과 같은 직장인으로 철언에게 지리산을 많이 배우고 있으며 계곡이 나오면 목욕도 해야하고 빨래도 해야하는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로 1시간 간격으로 간식을 먹어줘야 하며 산행과 더불어 요리하고 먹고 즐기는 스타일

양동주(프록켄타) : 오로지 속도욕심, 거리욕심에 시간이 아까워 쉬지 않고 먹지 않고 경치도 무시한 채 마냥 가는 스타일 자칭 광속단(狂速團) 단원이며 광속단원의 숫자는 1명 저 혼자임.

4. 날짜, 시간대별 도착지
(#) 표시는 식수 보충지역
(☎) 표시는 휴대폰 통화 가능지역
7월 30일
05:15 흥부골 출발
06:26 덕두봉(간식)
07:00 바래봉(아침식사) #
07:25 바래봉 출발
08:58 세동치 #
10:57 고리봉
11:57 정령치(점심) # ☎
12:20 정령치 출발
13:08 만복대 #
13:54 묘봉치
14:45 작은 고리봉
15:15 성삼재(식량 보충 및 재분배) # ☎
16:00 성삼재 출발
16:52 노고단
17:42 돼지평전
18:40 임걸령 #

7월 31일
06:45 임걸령 출발
07:17 노루목
07:45 삼도봉
08:05 화개재 # ☎
08:50 토끼봉
09:40 총각샘 #
10:24 연하천(간식) #
11:00 연하천 출발
11:49 형제봉
12:40 벽소령 #
13:47 선비샘(점심) #
15:08 선비샘 출발
16:00 칠선봉
17:12 세석산장 #
17:31 촛대봉
18:56 장터목 산장 # ☎

8월 1일
04:05 장터목 출발
05:00 천왕봉
05:30 중봉 #
06:12 하봉(아침식사)
06:53 하봉 출발
08:15 국골사거리
09:06 조계골 상류(샤워) #
09:36 조계골 출발
12:46 왕등습지
15:56 밤머리재(점심) # ☎
17:00 밤머리재 출발
17:52 헬기장 ☎
18:59 왕재
19:42 헬기장 #
20:11 웅석봉
22:05 어천

5. 일자별 산행시간 및 거리
7/30 : 13시간 25분, 26.8㎞
7/31 : 12시간 11분, 18.2㎞
8/1 : 18시간, 31㎞
1일 평균 : 14시간 12분, 25.3㎞

6. 산행일지
7월 30일
05:15 아직 잠에서 덜 깬 흥부골 휴양림은 고즈넉하게 우리를 반긴다.
배낭의 멜빵 끈과 등산화 끈을 졸라매고 스틱의 높이를 조정한 다음 우리는 4박5일 예정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맨 앞에 혁이가 서고 그 다음이 철언이 맨 마지막에 내가 가기로 했다.
모든 시간 계획과 휴식, 비박장소 등은 체력에서 약간 쳐지는 철언에게 맞추고 그가 결정하기로 했다.
일기예보에는 가끔 흐리고 구름약간(요즘 일기예보 맞은 적 있나?) 그러나 믿지 않았다.
아닌게 아니라 산행시작 30여분이 지나자 자욱한 안개를 뚫고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06:26 봉우리 같지도 않은 길가에 덕두봉이란 팻말이 있다. 1월만 해도 없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 더 가면 나오는 헬기장을 덕두봉으로 착각한단다(철언의 말)
혁이가 벌써 배가 고프다고 찡얼댄다. 덕두봉에서 간단히 김밥 2줄로 요기.

07:00 바래봉이다 자욱한 비안개로 시야가 20미터도 채 안된다.
철쭉 시즌이면 여기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는 곳일텐데 오늘은 야영을 한 학생 2명을 봤을 뿐.
예전에 호주인들이 목장을 할 때의 초지가 아직도 남아있다. 움막 옆의 샘가에서 남은 김밥 4줄로 아침을 떼우고 07:25에 다시 출발한다.

08:58 세동치다 길 왼쪽으로 40여미터 내려가니 물이 있다 물을 보충한 다음 철걱철걱 젖은 양말을 짜서 신었다. 조금 더 걸으면 다시 철걱거리겠지만....
가랑비는 계속 짜증나게 옷을 적시지만 그나마 퍼붓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지

10:57에 고리봉을 지나, 처음 계획보다 2시간이나 앞당겨 11:17에 정령치에 도착했다. 빗방울이 그쳤다 이어졌다 한다.
정령치의 관광객들이 우리를 불쌍하고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물에 젖은 생쥐 같겠지
주차장 한쪽 구석에서 점심으로 준비해온 바지락 생칼국수를 4인분을 끓였다.
세상에 그렇게 맛없는 것이 있다니 그런 상황이 아니면 개도 안주고 버려버릴 정도로 맛탱가리가 없지만 그저 맛있게 먹을 수 밖에, 열심히 물을 떠와 끓여준 혁이 땜에도 불평을 못하고...12:20 정령치를 뒤로하고 도로를 건너 만복대로....

13:08(오후1:08) 만복대에 도착했다 몇 년전에 철언이가 안내해서 지리산으로서는 처음 와봤던 만복대, 그때 철언이가 가져와서 술안주로 볶아준 아~! 그 송이의 맛.
만복대를 내려서니 그제서야 비가 그치고 시야가 트이며 오른쪽 아래 구례 산동마을이 아스라히 보인다.
이런 속도라면 애초 계획했던 노고단에서 첫 박을 임걸령으로 늘릴 수 있겠다.
나는 열심히 시간 거리 설명을 하며 잡아 빼자고 충동질을 해대고 다들 임걸령까지 가기로 결정.
(*. 만복대에서 성삼재 방향으로 약 6-7분 내려가면 왼쪽목책 너머 어렴풋이 풀밭사이로 길이 보이는데 그 길을 따라 50여미터를 가면 바위밑에 샘이 있음. 목책에 파란색의 '매일상호저축은행' 리본을 부쳐놨음)

15:15(오후3:15) 우와 주차장이 꽉 들이차서 길가에까지 주차된 차량이 즐비하다.
휴일도 아닌데 왠 성삼재가 이렇게 분빈담, 하긴 휴가철이니...
성삼재에서 시원한 캔맥주를 들이키고 식량을 보충하고 고루 재분배한 다음 셋이서 사진도 한 컷 박고 16:00(오후4:00)에 노고단으로...

16:52(오후4:52) 안 쉬고 단숨에 올라오니 혁이랑 철언이 안 보인다(이런, 내가 항상 뒤에 서기로 했는데...담부턴 절대 안 그래야지)

17:42(오후5:42) 멧돼지들의 천국이라는 돼지평전을 지나 18:40(오후6:40)에 드디어 오늘의 보금자리인 임걸령에 도착했다.
철언이 여기 저기 비박 장소를 찾아다닌다. 샘에서 가까운 좋은 자리들은 오물들이 널려있어 께림찍하고 너무 물에서 멀면 불편하고, 이윽고 적당한 자리가 있다고 와보란다.
아, 아주 좋네. 샘에서 약 30미터 떨어진 숲 속에 자리를 잡았다.
첫날이니 누릴 수 있는 사치스런 안주! 통닭에 소주를 걸치면서 혁이는 열심히 저녁준비를 한다. 그 어려운 해발 1,000고지 이상에서의 밥짓기에 아직 실패한 적이 없다는 철언의 칭찬에 혁이는 심각하게 밥 냄새와 김으로 불꽃 조정을 한다.
가스램프를 켜니 어둠이 드리우기 전의 아쉬운 하늘빛과 램프의 붉은 색이 어우러져 그 숲 속의 만찬은 가히 형언 할 수 없는 동화 속의 그림 같았다.
우리는 풍족한 저녁을 담소를 나누며 서서히 아껴가며 즐겼다.
미역국도 왜 그리 맛있는지...
비닐과 노끈으로 대강 비&이슬을 피할 수 있게 비닐 지붕을 만들고 바닥에도 비닐을 두 겹 깐 다음 각자 매트리스와 침낭으로 비박 준비를 했다.
22:30(오후10:30) 혁이는 일기를 쓴다며 내가 시간 및 도착지 메모를 해둔 수첩을 빌려간다.
그리고는 열심히 뭘 적고 있다.
가운데에 자리 잡은 철언은 벌써 코를 골기 시작한다.
조용한 숲 속에 오직 철언의 코고는 소리만 퍼진다.
난 묘한 행복감에 피곤도 잊은 채 잠을 쫓는 몸서리를 연신 친다.
잠들기 싫다.
얼마나 시간이 갔을까?
비몽사몽간에 갑자기 감은 눈 꺼풀위로 강한 빛이 스며든다
눈을 그냥 감고 있고 싶은데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내 눈이 점점 커졌으리라.
아, 나무 숲 사이사이로 용케도 피해 빠져 나온 달빛이 나에게 어여삐 보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게 아닌가! 잠이 싸악, 달아난다. 참으로 아름다운 반달이다.
그것도 잠시, 못 된 지리산의 개스(산안개+산구름)가 질투로 그 꼴을 그냥 보고 있을 리 만무하지 1-2분도 채 안되어서 그 환상적인 빛을 어둠속으로 끌어가 버린다.
하긴 그 모자람이 더 큰 아름다움으로 기억되겠지만.....
야광시계를 보니 새벽 2시다.
다시 잠결, 뭔가가 팔 소매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리고는 어깨로 등으로 종횡무진으로 돌아다닌다. 에이 귀찮아, 헤드랜턴을 켜고 옷을 터니 침낭으로 떨어지는 작고 귀여운 풍뎅이다. 죽여버릴까 하다 예쁘장한 모습이 안쓰러워 멀리 던지고 다시 잠을 청해본다.

7월 31일
05:10 기상
혁이가 마늘과 청량고추를 정성스럽게 썰어 시원하게 콩나물국을 끓였다.
아주 배부르게 먹고 서둘러 짐을 싼다고 부산을 떨었지만 아까운 시간은 7시가 가까워온다.

06:45 임걸령 출발
주능선은 길이 좋아서 셋이 모두 반바지 차림이다.
모두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다.

07:17 노루목을 지나 고도를 잔뜩 높여 07:45에 전북, 전남, 경남의 경계인 삼도봉에서 가뿐 숨을 고른다. 철언의 체력이 본인도 놀랄 정도로 아주 좋다 선두인 혁이 뒤를 바싹 쫓아 몰아 부친다.
오늘도 시야는 아주 나쁘다 가고자하는 길 외에는 조망 제로.

08:05 뱀사골 안부인 화개재에 도착했다. 짐을 꾸리는 야영객, 뱀사골에서 자고 올라왔는지 젊은 남녀단체들, 꼬마를 대동한 가족들, 매우 어수선하다.
여기서 핸드폰이 터지는 곳이 있다면서 철언이 전화기를 들고 여기저기 터지는 곳을 찾는다. 이윽고 찾은 듯 집에 통화를 하고 애들이 보낸 문자 메시지에 어린애처럼 좋아한다.

08:50 토끼봉을 넘어 09:40 총각샘이다. 약초 캐는 총각이 발견했다해서 총각샘이란다
총각샘은 안내판이 없어 모르는 사람은 찾기가 어렵다. 길에서 오른쪽으로 20여미터 아래쪽에 있는데 물이 마치 냉장고에서 꺼낸 것처럼 아주 시원하고 물맛이 좋다.
배낭을 풀어놓고 물을 실컷 먹고 올라오니 여대생 4명이서 쉬고있는데 1명의 다리가 아파서 산행을 계속할 수 없는데 어찌해야 될지 고민들인 모양이다.
그때 지리산 박사인 철언이가 탈출로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리고 그 탈출로 입구에 내가 가지고 간 광속단(狂速團)이란 리본을 걸어 놓기로 했다.
여대생들의 감사의 인사를 뒤로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10:24 철언이 친구인 노시철이가 산장주인인 연하천산장에 도착했다.
현재 우리의 속도면 천왕봉을 넘어 중봉에서 2박째를 챙길 수 있다 그러면 4박5일의 일정에서 1박을 줄일 수가 있다.
연하천에서 사발면으로 간식을 하기로 했는데 난 시간땜에 딱 20분에 먹고 떠나자했다.
<연하천 결의>
철언 : (친구를 만나면 시간이 더 걸릴걸 예상한 듯) 어떻든 야간 산행을 해서라도 중봉까지 가면 되자나요
나 : 그러면 상관없지
혁 : 과장님(철언)이 가는데 내가 못가요? 과장님 걱정이나 해요.
연하천에서 캔맥주와 사발면을 먹고 산장주인의 보약 다린 차와 김치도 서비스를 받고 혁이랑 철언은 커피도 얻어먹고 (난 커피 안먹음) 덧붙여 뻔뻔한 철언이는 "야 시철아 부탁하나 하자 양말 있으면 하나만 주라"
11:00 연하천 출발

11:49 형제봉을 지나서 12:40에 벽소령에 도착. 벽소령에서 시원한 캔사이다로 목을 달래고
점심은 연하천에서 간식을 했으니 선비샘에서 하기로 했다.
여태까지 혁이를 바싹 뒤쫓던 철언이 발바닥이 타는 듯 하다며 속도가 떨어진다. 나는 선비샘에서 내 두툼한 양말을 줄테니 선비샘까지만 참으라 했다.

13:47(오후1:47) 선비샘
철언이 신발과 양말을 벗어보니 아 그 끔찍한 발바닥 상태, 혁이는 발금 봐준다고 놀려대고.. 셋이 모두 양말을 벗었는데 유독 철언의 발이 더했다. 그 이유는 철언 신발이 고어라서 안으로 들어온 물이 밖으로 방출이 안되니 안에서 발이 쪄 질 수밖에(교훈:여름 종주산행시 신발은 비불암창에 비고어로 선택하라. 설사 우중일지라도)난 두툼한 양말을 꺼내줬고 혁이는 버너불에 철언 신발 깔창을 말려준다 으~~ 꼬랑내~~~
철언 깔창을 대충 말린 띨띨한 우리 혁 선수 자기 신발을 뒤적거리더니 "어 신발에 깔창이 없네???" 빨아 말리고는 다시 집어 넣지를 않았나보다. 그러니 빨랑 장가를 가라.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그 넣지 않은 깔창 땜에 혁이는 엄청 고생을 한다)
<선비샘 결의>
철언 : 동주형, 장터목에서 중봉까지 2시간 거리이니 무리해서 중봉까지 가지말고 차라리 오늘 장터목에서 자고 내일 새벽 3시에 기상해서 4시에 출발합시다. 그리고 아침을 중봉에서 먹죠 저녁에 아예 내일 아침밥까지 해서 팩에 넣고 대강 설거지랑 짐 정리한 다음 일찍 떠나게요
나 : 좋지 나는 상관없어
혁 : 좋아요
장터목으로 잠자리를 정하니 여유가 있어 반주를 곁들인 라면으로 느긋한 점심을 끝내고

15:08(오후3:08)에 선비샘에서 일어났다.
5분여를 가니 어느 등산객이 무릎땜에 아예 걷지를 못하고 절뚝거리고 있다. 자상한 철언은 배낭을 내려 급속소염진통제를 발라준다.
일행이 연신 감사의 인사를 한다.

16:00(오후4:00)에 칠선봉을 넘고 17:12(오후5:12)에 세석을 쉬지않고 지나쳤다.

17:31(오후5:31) 촛대봉에 도착하여 쉬는데 철언이 걸음을 못 걷는다. 양쪽 사타구니가 헐은 모양이다. 어제 비를 맞고 강행을 한 후유증이 이제서야 나타나는 것 같다.
이제 장터목이 얼마 안 남았으니 천천히 갈테니 먼저 가란다.
난 혁이에게 철언이랑 같이 오라하고 혼자 장터목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혁이도 마찬가지고 나 역시 왼쪽 사타구니가 정상이 아니다.
(교훈:비에 젖은 산행시나 땀으로 옷이 완전 젖었을때는 허벅지나 젖은 옷이 심하게 마찰되는 부분은 반드시 상처가 나니 비상으로 파우다, 바셀린 그리고 상처에 바르는 연고를 준비할 것)

18:56(오후6:56) 장터목에 도착
바람이 엄청 불고 습기 찬 안개가 마치 연기처럼 온 장터목을 휘감고 있다.
비박장소를 물색해보니 공터 출입금지간판 앞이 제격일 것 같다.
배낭을 내리고 샌들로 갈아 신은 다음 물주머니와 패트병 2개를 들고 식수터로 갔다
산장중 장터목수량이 제일 빈약하다(수용인원에 비례해서)
30여분 뒤 철언과 혁이 깔리는 어둠을 배경으로 나타난다. 생각보다 일찍 왔다.
바람이 너무 불어 자리잡기가 사뭇 어설프다.
일단 모두 옷들을 갈아입고 나무 간판 아래 빈 부분을 비닐로 감싸니 바람을 막아줘 훨씬 아늑하다.
<장터목 결의>
나 : 식량을 줄이세 내일이 가장 난코스인데 어떻게 하든 밤머리재까지는 강행을 해야하니 짐을 가볍게 하세
철언 : 그러죠
혁 : (먹을걸 줄이자는 게 못내 아쉬운 듯) 저것, 이것은 내가라도 지고 갈께요
오늘 찌개 담당은 철언이다 마른 해물탕을 끓인단다. (맛이 있을까?)
별걸 다 넣는다 마른 홍합, 마른 새우, 마른 꼴뚜기, 고것만 꼴랑 코펠에 넣고는 혁이에게 건네 준다.
후후 정작 양념은 혁이가 다 한다. 그리고는 뻔뻔한 철언, 혁이에게 하는 말 "마른 해물 배합량이 중요하다"
그래도 끓고 나니 국물이 제법 시원하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술이 최고다
오손 도손 저녁을 먹고 있는데 왠 남녀 학생이 와서는 "죄송한데 김치 남는 것 좀 있으세요?" 하하 있고 말고 그렇지 않아도 퍼 줄려는데 김치에 덤으로 육포도 듬뿍 줬다.
한참을 술자리가 무르익는데 어, 뭔가가 이상하다???
주위를 둘러보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니 언제 이랬지????
아까의 그 광풍과 안개가 말끔하게 사라져버렸다.
촘촘한 하늘의 별이 너무 깨끗하고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이 가깝다.
'세상에, 이 지리산은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구나.'
이 개운한 날씨에 우리는 사기 충천하여 이미 밤머리재에 가 있는 듯한 기분이다.
장터목산장 공원 관리원이 불조심하라고 비박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고 다닌다 우리는 그를 불러서 무게 나가는 식량을 한아름 안겨줬다. 입이 함박만하게 찢어진다.
대강 정리를 한 다음 우리는 침낭을 폈다.
약을 바르고 온 철언이 어두운 얼굴이다.
"상처가 장난이 아닌데요 허벅지에서부터 항문쪽까지 다 헐은 것 같은데요 내일 일어나 봐야 알겠지만 심상치 않네요 봐서 내일 힘들 것 같으면 동주형 먼저 밤머리재로 가서 기다리거나 영 안되겠으면 난 그리로 차량지원이나 할께요."
분위기가 좀 무거워졌다.
하지만 침낭 속에 누운 우리는 금방 그 기분이 가셔버렸다.
저 신비로운 별, 별자리, 뻗어있는 은하, 손 뻗으면 자루가 잡힐 것 같은 북두칠성, 이렇게 많은 별은 난생 처음이다.
혁이 묻는다 이런 광경은 어떻게 표현해야죠??
이건 표현하면 안 된다. 인간의 언어나 글로 저 대우주을 표현하려는 자체가 모독이다.
저렇게 화려한 빛들이 어떻게 눈이 부시지 않게 존재할 수있을까?
온 밤을 눈 뜬 채 깜박이지도 않고 이렇게 바라보고 싶다.
하지만 3시에 일어나야 하는 부담이 침낭카바 안으로 머리를 집어 넣게 한다.

8월 1일
03:05 눈을 떴다.
엄청난 바람이다 머리를 침낭카바 밖으로 내밀자 얼굴을 바람의 정면에 두면 숨을 쉴 수가 없다.
아니 그 많던 별들은 다 어디 갔지??? 지리산의 변덕이란.....
걱정이다 이런 날씨에 어떻게 산행을 하지?
바람막이 비닐을 고정시키려고 묶어 놓은 붉은색의 노끈이 바람에 퍼덕이는데 거의 무기수준이다. 뺨에 스치니 따끔하다
"기상!!!"
둘 다 꼼짝도 안한다.
"빨리 안 일어나!!! 준비하고 가야지"
침낭카바 밖으로 빼꼼이 얼굴들을 내민다
철언 : "딱 5분만 더요"
혁 : "날씨가 왜이리 변덕스럽죠? 바람소리에 잠을 한 숨도 못잤어요"
난 일단 내 침낭과 침낭카바를 챙겼다 바람은 여차 놓치면 날려 버릴 기세다
침낭카바 속이 결루로 축축하다 침낭도 젖어 있다 '큰일이네 무게가 엄청 늘겠는데'
혁이 침낭카바에 손을 넣어 보니 보송보송하다 내려가면 당장 침낭카바부터 바꿔야지

03:15 "어이, 일어나 3시 15분이네"
철언: (무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다시 얼굴을 내민다)
혁이는 아예 반응이 없다.
아무래도 혼자 가야할 듯, 철언의 사타구니만 아니면 억지로라도 일으켜서 가겠는데 어제밤 했던 말처럼 속도가 안 맞으면 먼저 가서 밤머리재에 가서 기다리면 되지
한쪽에 모아 놓은 공동 식량 중에서 라면 2개 꼬마김치 2개(이상이 내가 오늘하루 먹을 식량의 전부다) 그리고 혁이 코펠 적은 것을 챙겨서 바람을 피해 산장 현관쪽으로 가서 배낭을 꾸렸다.
에고 참 팬티를 안 입었는데 깜빡하고 짐을 다 싸버렸네 그것도 옷은 깊이 들었는데..
에라 그냥 가자.

04:05 천왕봉으로
이런 날씨에 무슨 일출이라고 산장에서 자고 나온 사람들이 걸리적거린다.

05:00 천왕봉 왼쪽 밑 길로 돌아 중봉 쪽으로 가는데 후후 내가 가는 길이 천왕봉 가는 길인 줄 알고 몇 명이 졸래졸래 따라오다가 중봉쪽으로 내려가니 그제서야 꿈을 깨고 "여기가 아닌가본데" 하고는 돌아간다.
풀이 스치니 그 지긋지긋한 이슬들이 다시 신발과 고실고실한 옷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각오해야지 뭐

05:30 벌써 중봉이다 서서히 어둠이 깨기 시작한다
미안하지만 출입금지 밧줄을 넘어서 하봉쪽으로..

06:12 길 바로 옆의 하봉에 올라가니 와~ 파랗게 갠 하늘, 산행 후 처음으로 보는 온통 트인 시야에 비치는 지리는 너무 깨끗하다. 진즉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 철언이가 있어야 저기는 어디 쪼기는 어디 물어보지. 나중에 물어보려 사진 몇 컷.
아침을 먹어야겠는데 위에는 너무 바람이 세차서 길에 상을 차렸다.
상이래야 라면에 꼬마김치가 전부지만 아참! 볶은 고추장이 있었지 싱겁겠지만 국물이라도 많이 먹어야지 물을 몽땅 부어 끓였다.
점심은 몇시가 되든 밤머리재에 떨어져서 먹으리라.
자 뛰자....

08:15 국골 사거리다
신발 속은 또 물이 철걱거린다.
오른쪽 사타구니도 간간이 쓰려온다.
새재 삼거리까지만 참자 황제처럼 샤워하고 한 켤레 남은 솜이불 같은 양말도 갈아 신고(흐~ 혁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어젯밤 '과장님 마른양말 없어요??'하고 철언이에게 물었었는데 난 짐짓 모른 척 하고 있었는데 하긴 난티 안 물어봤으니..)
허벅지도 깨끗이 씻고 말린 다음에 연고 바르면 좀 낫겠지
쏴아~~하는 물소리가 가까워 온다 언뜻 들으면 마치 바람이 숲을 헤치는 소리 같다.

09:06 드디어 새재 삼거리(조계골 상류)
길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야영지 같은 공터에서 오른쪽으로 물소리를 따라 30여m 내려가면 제법 아기자기하고 수량도 풍부한 계곡이 나온다.
입은 채 텀벙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꾹 참았다.
바위 사이 제법 널찍하고 오목한 곳을 찾아 홀딱 벗고 서서히 앉으니 으으으으~
질릴 때까지 노닥거리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이제부터는 약 7-8시간 물이 없으니 충분히 보충해 가야한다.
2ℓ짜리 물주머니를 채우고 0.5ℓ 피트병에도 목까지 부어 물은 준비완료.
근데 좀 불안하다 다른 간식은 안 먹어도 물은 무지하게 먹는데....

09:36 힘차게 출발
힘이 솟아 속도를 높인다.
갈아 신은 양말이 다시 젖고, 스틱을 계속 잡으니 손바닥도 살이 접혀져 아파 온다.
새재삼거리에서 약 바른 사타구니도 다시 쓰려온다. 어기적대며 걷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난다
어차피 노팬티니 동대문을 열고 가면 어떨까 아무도 없는데 뭐, 쭈우욱~ 햐아~ 진즉 열걸...
무아지경으로 걷는다. '시간만 가라! 내가 쉬지 않는 한 시간이 가면 반드시 거리도 준다'

12:46 잰 걸음으로 인공으로 가지런한 나무 길을 만들어 놓은 습지보호구역인 왕등습지를 지났다
이제 이슬이 말라서 밖에서는 공격하지 않지만 땀이 비오듯하니 젖는 건 마찬가지...
오른쪽으로 지리산의 주봉들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배낭이 무거워지고 아껴먹지만 물이 자꾸 줄어든다.
아무리 간식을 안 먹는 나지만 아침 6시에 라면하나 먹고 여지껏 물만 먹었으니 정신이 멍~하고 몸이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흐느적거린다.
오로지 먹을 것이라곤 죽염뿐. 죽염을 얼마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남은 라면 1개와 꼬마김치가 있긴 하지만 그건 다음 목적을 위해 아껴야된다.

15:30(오후3:30) 와! 드디어 밤머리재 위 헬기장이다.
남아있는 물을 미련 없이 벌컥벌컥 마지막. 한방울까지 핥듯 마셔버렸다.
발아래 구비구비 삼장쪽(대원사쪽)에서 밤머리재를 지나 산청쪽으로 이어진 59번 국도가 보인다.

15:56(오후3:56) 밤머리재다. 문명세계와 만나는 순간이다.
밤머리재 공터에 5-6대의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다 대부분 공터 한쪽에 설치되어 있는 간이화장실을 이용하려고 잠시 쉬어 가는 사람들이다.
초췌한 몰골에 옷 밖으론 온통 소금기가 허옇게 끼어있고 바지가랑이 한쪽은 찢어져 덜렁거리고(왕등재부근에서 나무등걸에 걸려 찢어짐) 왠 때아닌 스키폴을 양손에 쥔 내 모습을 괴상한 듯 바라들 본다. 그러다가 내가 눈이라도 마주칠 양이면 얼른 눈을 피한다 하하, 미친놈이 시비라도 걸까 싶어 그러겠지.
지게꾼 장작부리듯 배낭을 부려놓고 물주머니를 들고 밤머리재에서 삼장쪽으로 200여m 떨어진 도로가의 약수를 뜨러 부랴부랴..... 왜이리 머냐....
지금 내가 누구 눈치 볼 상황이 아니다.
그늘도 없는 공터에 자리를 잡고 마지막 남은 그 금 같은 라면을 끓였다.
어~! 근데 뭐가 이렇게 시원하지???
내려다 보니 아뿔사 노팬티에 동대문을 열어 놓은 채로 여지껏 이렇고 있었다니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이 보는 사람은 없는데...
남아있는 고추장도 박박 긁어 라면에 다 넣었다
후루룩~후루룩~ 캬캬!! 이 맛,
살 것 같다.
경남 검은색 무쏘 5886호가 저편에 세운다 꼬마랑 엄마인 듯한 여자가 화장실로 가고 운전석에서 30대 후반정도 남자가 내려 나를 보더니 한가로이 다가온다.
난 마지막 라면 국물을 빨 듯 입에 털어 넣고 코펠 닦을 휴지를 찾는다.
왠 남자 : 어디서 오셨어요?
나 : (지가 어디라면 알아??) 인월서 오네요
왠 남자 : 아하, 태극종주 하시는군요
나 : (어 제법이네) 네 잘 아시는군요 태극종주 해보셨습니까?
왠 남자 : 아뇨 저는 등산을 잘 모르는데 술친구놈 하나가 극성이라서 들은 풍월입니다
떠나면서 얼린 생수를 한통 주고 간다 아~ 얼음, 너무 고맙다.(그래서 차넘버를 봐둔것임)

17:00(오후5:00) 배도 든든하고 이제 마지막 관문인 웅석봉을 치러가자.
7분여 통나무 계단을 올라가니 시야가 트인다.
능선길을 따라가며 우측으로 시선을 고정시키니 우와, 지리의 동부능선(나는 남동능선이라 칭했는데 철언이 동부능선이라 한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숨겨진 신비한 자태를 왜 웅석에게만은 이리도 적나라하게 나신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일까? 천왕의 주봉으로부터 동편으로 구비구비 출렁이고 넘실대며 밤머리재까지의 여정이 손에 잡힐 듯 하다.
보폭은 자꾸 줄어든다.

18:59(오후6:59) 왕재, 선녀탕과 웅석봉 갈릴길이다.
오른 발바닥이 찢어질 듯 아프다. 어제 철언의 발 상태를 본 터라 지체 않고 신발을 벗고 발바닥을 보니 두어군데가 완전히 살이 접혀져 곧 찢어질 것 같다(종이를 접고 그 접힌데를 손톱으로 몇번 찝어 긁어 당기면 종이가 반으로 찢어지는 현상이랑 비슷)
바람을 좀 쏘이자. 아참 샌들이 있지, 샌들로 갈아 신고 등산화는 배낭뒤에 묶었다.
흐흐~ 이게 복일까? 화일까?
웅석봉으로 향하는 한발 한발이 괴롭다.
차츰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랜턴이 어디있지???
난 등산을 시작한 뒤로 오르막을 싫어 한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내 등산사에 있어 특별히 기록되어야 하는 날이다.
이 산행에 끝이 과연 있을까???

20:11(오후8:11) 이게 웅석봉인가? 갈림길 표지판에 청계, 어천이 있는걸로 봐서 맞긴 맞나보다. 이제 굴러가든 기어가든 걱정없다.
난 등산을 시작한 뒤로 내리막이 힘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내 등산사를 새롭게 쓰는 날이다.
난 다섯 걸음 걷고 쉬고 또 다섯 걸음 걷고 쉬고 이 말을 이해를 못했다.
그냥 서서히 천천히 한발 한발 디디면 될게 아니냐 왜 쉬느냐,
앞으로 다시는 누구에게 감히 그런 말 안 하리라.
발끝에서 목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다.
왜 이 놈의 샌들로 갈아 신어 이 내리막에..... 아 어떤 표현이 좋을까
저 아래 산청에서 진주로 가는 3번 국도가 마치 우주의 먼 별 같이 느껴진다.
한도 끝도 없는 이 내리막! (두고 보자 며칠 후 멀쩡한 체력으로 밤머리재에서부터 웅석이도 포함해서 너, 내리막을 단숨에 한칼에 뛰어주마 치사하게 지친 사람을 이렇게 공격한단 말야?)
이윽고 어천 계곡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난 정지해 있는데 고마운 내 발이 저절로 가는구나
양 무릎은 아프다고 아우성인데 난 주인으로 해줄 게 없구나.

22:05 아!!! 어천

[에필로그]
8월 2일 00:15
피가 아래로 쏠려 팅팅 부어있는 발, 소파에 앉아 약을 바르고 있다.
무릎에는 소염진통,맨소래담, 가시와 풀에 난 상처와 허벅지 벗겨진데는 후시딘, 그리고 발목 종아리 허벅지등 두드러기같이 온통 울긋불긋한 이름 모를 가려운 부분엔 전에 피부과하는 친구가 처방해준 그저 그런 연고, 손바닥엔 아미나이프로 벤 상처에 밴드를 붙이고....
8월 2일 09:15
지금 모처럼 개운하게 사우나를 한 뒤 편안한 마음으로 기억을 더듬으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조금 전 사우나를 하고 나와서 핸폰을 확인해 보니 부재중 전화가 3통이나 와있다.
앗! 모두 철언이에게서 온 전화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밤머리재(동부능선상 핸폰이 터지는 지역)거나 아니면 집이거나...
띠리릭~ 띠리릭~
철언 : 여보세요
나 : 철언인가?? 어딘가??
철언 : 지금 밤머리재요 어제 밤 8:45에 도착했어요
(훗 그러면 그렇지 갸들이 누군데 이 절호의 태극종주 기회를 포기하겠어)
나 : 아, 그 시간이면 난 웅석봉에서 어천으로 내려가고 있을 땐데 그럴 줄 알았으면 기다릴걸 그랬네. 내가 뭐 지원해 줄거 없어??
철언 : 없어요 알아서 할께요
나 : 사타구니는 괜찮아??
철언 : 쓰라리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나 : 그래 애쓰고 내일 보세.

강행군을 하고 있군 하지만 마지막날인 오늘은 헐렁헐렁 할거다

어제 그 힘들었던 기억이 벌써 지워졌나??
지도를 물끄러미 내려보며 머리 속으로 금을 그리고 있다.
서북능 주능 중북부능 심마니능 등등을 모두 섭렵하는 대장정의 코스는 없을까?
이번엔 ∽을 했으니 卍은 어떨까??
아니면 계곡으로 올라가 계곡으로 내려오고 다시 계곡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만들어 볼까?
후후 나중에 철언이와 상의해 봐야지...

아, 오늘 점심은 뭘로 할거나*
 
2013. 11. 30현재 조회수 : 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