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19 11:29
[새재-새봉-쑥밭재--하봉-조계골-새재]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4,601  
[프롤로그]
2002. 8. 16(금) 오후 5:20경
나 : "어이, 철언이(만복대) 수퍼에 가서 간단히 맥주 한잔 하세"
철언 : "아직 업무 안 끝났으니 멀리 가지 말고 요 옆에서 하죠"(똥차가 똥 마다할 리 없지)
몇 순배 돌고...
나 : "내일 지리산이나 갔다 올까 하는데..... "
철언 : "어느 쪽으로 가실려구요?"
나 : "저번 태극종주때 그 새재 삼거리 계곡을 잊을 수가 없네 그래서 가까운 코스로 느긋이 가서 정땜이나 하고 올려고..."
철언 : "아 그러면 '중봉'님이 이끄는 지사랑 태극종주대가 오늘 저녁 중봉에서 잔다고 하니 형이 새재쪽으로 올라가면 중간에서 만날 것 같네요"
나 : "그러면 내가 아침 일찍 가야겠네??"
철언 : "가게 되면 캔맥주 사드릴테니 좀 전해줘요 시원하게 얼려서요"

1. 산행일시
2002. 8. 17(토) 07:40 - 15:30(오후3:30)

2. 코 스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새재마을
새재산장앞(새재마을) -> 새재 -> 새봉 -> 독바위 -> 쑥밭재 -> 새재삼거리 -> 국골사거리 -> 하봉 -> 헬기장 -> 조계골 -> 비둘기봉산장(새재마을)

3. 등반인원
홀로

4. 시간대별 도착지
07:40 : 새재산장앞길(새재마을)출발
08:07 : 새재(능선)
09:24 : 너른바위
09:53 : 독바위
10:18 : 지사랑 태극종주대와 조우
10:31 : 새재삼거리(조계골지류 상류)
11:05 : 국골사거리
11:41 : 하봉
12:04 : 헬기장(좌측 치밭목대피소 방향으로 진행)
12:40 : 점심(조계골 상류)
13:25 : 출발
13:34 : 치밭목대피소 갈림길
13:46 : 1차 계곡삼거리(계곡 합류지점)
14:30 : 2차 계곡삼거리
15:03 : 3차 계곡삼거리
15:30 : 비둘기봉 산장(새재마을) 도착

5. 산행시간 및 거리
총 7시간 50분
도상거리 : 13.2㎞

6. 산행일지
03:50 맥주캔 6개 들어가는 미니 아이스박스에 얼음과 맥주를 넣고 간단히 배낭을 꾸린다.
04:20 매일 아침 들르는 '다래' 해장국집에서 국밥 한 그릇 비우고 비닐팩에 공기밥 2개와 메추리알 만한 달걀 2개를 얻어 챙겼다.
바로 옆 편의점에서 삼양라면 1개, 드럽게 비싼 꼬마김치(700원) 1개, 팩소주(200㎖) 1개를 산 뒤 전주 출발.
진안을 거쳐 장계에 도착하니 05:40으로 동편이 서서히 깨어오기 시작한다.
대전 통영간 35번 고속도로를 타고 산청쪽으로 달리는데 으~ 덥치는 졸음, 갓 길에 차를 세우고 약 20분간의 기막히게 맛난 잠을 잤다. 기억은 안 나지만 멋진 꿈도 꾼 듯...
산청 톨게이트를 나와 우회전, 마천방향의 60번도로로 5-6분 가니 좌측 화살표로 대원사라 쓰여있는 59번 국도가 나온다. 밤머리재를 거쳐 덕산(시천)으로 가는 길이다.

06:52 밤머리재, 왠 산꾼 남자 2명이 배낭을 꾸리고 있다 아마 여기서 비박을 한 듯, 그리고 배낭 크기로 미루어 종주를 하는 듯 싶다.
나 : "태극종주 하십니까??"
산꾼A : "예.."(어째 대답이 시원찮다)
나 : "그럼 지금 웅석봉으로 넘어가나요?"
산꾼A : ".............."
산꾼B : "...."
(이런, 아무리 초면이지만 사람이 묻는데 묵묵부답??)
어쩐지 서로 말을 미루는 듯하다.
산꾼B : "휴~~~ 태극종주를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실패네요"
나 : "왜요??"
산꾼B : "지곡사에서 어제 아침에 출발했는데 웅석봉을 거쳐 내려가보니 어천이 나와 버리네요"
에고 힘이 빠지고 말을 하고 싶지 않을 만도 하다.
그 심정 헤아리고도 남지....
난 재빨리 그 자리를 떠 줬다.

07:10 유평리 매표소
매표원 : "혼자이십니까??"
나 : "저기요, 내가 어제 비둘기봉산장에서 민박을 하고 나왔는데 거기에다 버너를 놓고 와서 찾으러 가는데요"
매표원 : "네에 그럼 다녀오세요"
힛~ 늘 써먹는 수법(난 술값은 안 아까운데 관광지나 유원지 입장료는 어쩐지 꽁돈 같아서..)

07:30 새재산장 밑 공터에 차를 주차시킨 후 등산로를 찾느라 뚤레뚤레, 천황봉과 치밭목 표지판은 왼쪽방향을 가리키고 있는데 '새재'라 써있는 표지판은 없다. 분명 오른쪽일 텐데...
오른쪽 방향으로 눈을 들어 올려보니 전에 태극종주때 봤던 벌채한 고사리밭이 보인다.
그때, 7-8미터 앞쪽 길을 지게를 맨 아줌마가 가로질러 건너간다.
"아줌마, 뭐좀 여쭤볼께요" 들은 척도 안한다.
"아줌마,"
"아줌마!!!!!!!"
잰 걸음으로 쫓아가 바싹 뒤에서 "아주머니!!!" 하고 불렀더니 소리보다는 느낌으로 감지한 듯 놀란 모습으로 돌아선다.
등산로를 물어 보려는 순간, 어눌한 소리와 손짓 몸짓으로 벙어리인 것을 알았다.
에고 죄송해라....

07:40 출발. 새재산장 바로 밑, 임도 비슷하게 나 있는 길로 올라 가란다.
산장옆을 지나 계곡으로 접어드니 출입통제 표지판과 나무에 걸린 시그널이 보인다.
비 때문에 작은 또랑이 되어버린 길을 10여분 올라가니 온 몸이 젖는다.
(젖는데는 이골이 났으니 이쯤이야)
벌채 지역에 도달해서 이슬찬 계곡길을 버리고 경사가 급하지만 훤히 트인 능선을 잡아 챘다.

08:07 태극종주길로 이어지는 동부능선상의 새재에 올라섰다.
기억이 새로운 길이다.
고도를 서서히 높여 30여분 갔나? 배낭 옆구리를 더듬어 보니 지도주머니가 없네.
'이런 멍청이 또 비너를 안 걸었군'
오던 길을 15분쯤 더듬어 가니 나무가지에 덜렁덜렁 걸려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08:40경 개스와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나온다.
물 먹은 잎들에 눈이 부시고 한결 싱그럽게 느껴진다.

09:24 너른바위를 지나 발을 재촉한다. 예상에 이쯤에서 태극종주대를 만날 듯도 싶었는데.... 간간히 서서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본다.
맥주를 전해주려면 그래도 길 섶에 비켜설 공간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외길 산죽숲에서나 좁은 바위능선 같은데서 만나면 곤란하니....

10:18 드디어 인기척과 함께 2명의 선두와 만났다.
곧바로 3번째에 중봉님, 그리고 낭자군과 마지막에 철화님이 등장한다.
(죄송, 내 수박이 한계가 있어 중봉님과 철화님 닉 밖에는 생각이 안남. 그나마도 두분은 닉이 짧아서)
난 의외로 깨끗한 차림과 환한 모습들에 놀랐다. 아침에 집에서 출발한 나보다도 훨씬 더 단정하고 활기찬 모습들이다. 난 종주했을 때 완전 거지같은 행색이었는데...
그것도 노하우가 있는 것일까???
만복대가 전해준 시원한 맥주를 기분 좋게들 들이키는 것을 난 흐뭇하게 지켜봤다.
인원에 비해 턱도 없이 부족하였지만...
얼려온 녹차도 중봉님에게 줘버렸다.
모두를 스쳐 지내고 혼자가 되니 문득 쓸쓸해진다 따라 갈까??(하하 농담)

10:31 드디어 오늘에 목적지인 새재삼거리, 그 얼마나 그리던 곳이였던가!!
실패한 태극종주때나 완주한 종주때 모두 엄청난 힘을 줬던 그 신비의 계곡!!
그러나,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한 것이다.
지금 목도 마르지 않고 물 또한 넉넉하고 샤워도 필요 없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서 조계골에 도착하면 뭘로 보나 그보다 몇백배 더 나은 비경과 수량이 있는데...
머쓱한 뒤꼭지와 미안하기 그지없는 간사한 마음만을 보이고는 촘촘히 새재삼거리를 지나쳐버린다. 내가 싫다.

11:05 국골사거리를 지나다
간간히 철언(만복대)이가 걸어 놓은 파란색의 '매일상호저축은행'이란 시그널이 눈에 뜨인다. 11:41 하봉을 거쳐 헬기장에 도착하니 12:04이다.
천왕봉 방향의 능선길을 버리고 왼쪽 치밭목산장 방향으로 고도를 내린다.
100여미터 내려가면 검은파이프를 박아 놓은 샘이 나온다. 물 맛이 총각샘 물 맛에 버금가게 좋다.
내려 가는 길이 사뭇 미끄럽다. 몇번을 미끄러져 넘어졌는지 모르겠다.(에고 리쯔화를 신고오는 건데) 하하 근데 왜 뻥뻥 넘어져도 다치는데가 없지?? 내 몸이 너무 날렵해졌나??

12:40 헬기장으로부터 1㎞ 남짓 내려오니 계곡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물줄기가 나온다.
오늘의 점심식사 장소다. 라면물이 끓을 동안 젖어 철벅거리는 양말을 빨아 짜서 바위에 걸쳐놓고 '우선 소주를 한잔 해야지'
오잉? 아무리 뒤적거려봐도 새벽에 편의점에서 산 팩소주가 안 보인다. 라면, 꼬마김치, 밥, 달걀 모두 있는데 이놈의 소주만 어디갔지????
물이 끓기 시작하고 사뭇 배가 고픈 나는 라면을 양이라도 많도록 잔뜩 불려먹기로 했다.
달걀을 깨 넣고 밥까지 말아 휘휘~ 저으니 코펠로 하나 가득이다. 보기만 해도 뿌듯하다.
우걱우걱 입속으로 개밥(?)을 구겨 넣으며, 둔한 수박으로 못내 아쉬운 소주를 찾아 기억을 한참 더듬어 올라가 본다.
아뿔사~! 이렇게 멍청할수가.....
아침식사하고 편의점에서 라면 등을 산 뒤 차 트렁크에서 배낭을 다시 꾸릴 때 얼음과 맥주가 있는 아이스박스에 소주도 시원하게 집어 넣을려 하다가 문득, 맥주는 중간에 종주팀에게 꺼내 줄텐데 소주를 보고 달라면 어쩌지??? 3박4일째 고생하는 사람들인데 매정하게 안 줄수도 없고 차라리 미지근하게 먹자. 이렇게 순간적으로 넣을까 말까 망설이는 가운데 내 멍청한 손이 봉지에서 소주만 꺼내서 배낭 옆에 놓았고 결국은 고것만 쏘옥 빼고 배낭의 지퍼를 올려버린 것. 쩝 죄 받았지 근데 배낭 꺼낼 때 왜 소주가 눈에 안 뜨였지???
기억을 더듬다가 퍼뜩, 현실로 돌아와 보니 그 잠깐의 사이에 난 또 멍청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밥 말은 라면이 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상념에 젖은 내 젓가락이 배식에 실패해서 꼬마김치를 홀라당 다 먹어 치워버린 것이다.
아고 팍팍해 그래도 다 먹긴 먹어야지

13:25 그래도 풍족한 오찬을 마치고 다시 배낭을 졸라 맸다.
10여분 내려가니 치밭목대피소와의 갈림길이다. 치밭목까지는 0.6㎞ 남았고 왼쪽방향 내가 가야할 새재마을은 4.9㎞ 남아 있다는 표지판이 있다.
미끄러운 계곡 암반길을 조심 조심 더듬어 간다.
잊을만 하면 나타나는 오묘한 물줄기들이 계곡산행의 맛을 더하게 한다.
'앗! 벌러덩!!!'
순간 숨이 막힌다.
오른발이 돌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오른쪽 허리뼈가 돌출된 바위에 찍혔나부다
아이고, 온통 주위가 노랗다. 아까 안 다친다고 까불더니.....
몸을 배낭에 의지한채 한참을 반 누운 상태로 있다가 통증이 우선해져 옷을 까보니 외상은 없는 듯하다.
암튼 어디가 찍히고 찢어져도 좋으니 제발 발, 다리만 온전해다오 그래야 적어도 산행은 할 수있지

14:30 계곡을 우로 건너고 좌로 건너고 우측에 두고 좌측에 두고......
이제는 조계골의 본류에 다다른 것 같다. 물줄기와 바위들이 웅장해진다.
물 흐르는 소리도 굉음에 가깝다.
몇해전 수십명의 인명을 앗아간 그 위용, 오죽하랴
거대해 지는 계곡을 오른쪽 아래에 끼고 고도계를 보니 690m이다
거의 다 온 것 같다.

15:30 내 갈아 입을 뽀송뽀송한 옷과 갈아 신을 샌들을 품고 있는 나의 애마 '로시난테'가 보인다.
애타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 반갑다.
비둘기봉산장에서의 사치스런 샤워는 지금 동부능선에서 땀에 젖어 헐떡이는 종주대를 떠올리게 하여 (히히 그 시원한 맛을 더하게 한다)

16:25 밤머리재에서 다시 차를 멈췄다
아득히 흘러 들어오는 동부 능선을 다시금 우러러 본다.
저 멀리 지사랑의 태극종주대가 나무숲을 헤치며 능선을 뚫고 전진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오늘 저녁엔 여기서 파티(?)가 벌어지겠지
난 전주에 도착하면 원루삐 쓰리껄리가 기다린다. 어서 가자.

[오늘의 반성]
난 내가 늘 좀 아둔 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같이 멍청할 수가 있을까???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반성해본다.
멍청1. 지도와 지도카버를 배낭 옆주머니에 말아서 낄려면 카버끈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비너를 배낭끈에 간단히 걸면 될 것을, 1초면 될 그 짓을 안해서 30-40분을 허비하다니..

멍청2. 태극종주대에게 캔맥주를 줬을 때 다 먹고 난 빈 캔을 담아온 아이스박스에 다시 넣어서 가져오면 될걸, 힘들게 오고 또다시 힘들게 가야할 그들의 배낭에 담게 했을까??
(이쁜 낭자들의 얼굴을 훔쳐보다가 생각을 못 한건 절대 아님)

멍청3. 소주 두고 온거야 그럴 수 있다 치고 얼마나 멍청하면 밥과 라면은 절반이나 남았는데 그 금 같은 김치를 분배를 못하고 다 먹어버릴수가 있을까??

멍청4. 새벽산행을 하면 어차피 젖을 건데 리쯔화가 안 말랐다고 비블암화를 신고 벌렁벌렁 넘어지고 다치고....

그래 이렇게 배우고 성장하는거야.....*
 
 
2013. 11. 30현재 조회수 : 1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