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4-07 22:00
'쩐 질'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121  
2025. 4. 7(월)

'쩐 질'을 쉽게 풀이하면 그저 '돈을 쓰는 행위'지만 곱씹어 보면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우선 정상적이나 통상적으로 돈을 쓸 때는 '쩐 질'이라 하지 않는다. 또한 '쩐 질'이라 해서 
꼭 돈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형태상으로 보면 돈일  수도 있고 물건, 크게는 부동산 등 
환가 가능하면 포함된다고 봐야한다. 
쓰임새의 성격으로는 일반적인 상거래 외에 뇌물인 경우도 있을 거고 단순한 팁이나 순수한 
선물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긍정과 부정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안 줘도 되는데 주거나 일반적인 상식선 보다 많이 줄 때 '쩐 질'이라 하겠다. 
 
나 스스로가 쩐 질을 잘하는 지 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좋아는 한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쩐 질은 삼십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직장에서 한창 일하던 대리, 과장 시절이었다. 
그 당시는 신용카드가 상용되는 시절이 아니라서 유흥업소에서 외상은 일반적이었다. 
암묵적인 결제 주기가 룸싸롱은 3개월, 요정은 6개월이었다. 
물론 명절 앞이나 연말에는 당연히 결제를 해 주는 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술값 갚는 게 어디 약속이나 상식으로 되나? 그래서 마담이나 지배인의 소임 중 외상 
수금이 제일 막중한 임무였다. 
외상은 몇 백 깔렸는데 갚기는커녕 발길마저 끊어버린 진상 손님에게 수금하는 지배인들의 수법이 
현재의 사채업자들이 돈 받는 수법의 원조 일 듯싶다.
이러던 시절 나의 결제방식은 24시간(휴일 빼고 근무일 기준) 결제였다. 
술 마시는 당일에는 단 돈 십전도 안 준다. 일반 외상 손님들도 웨이터 팁과 아가씨 2차비는 
그날 주는데 나는 그마저도 주지 않았다. 우리가 보통 아가씨 팁이나 2차비는 즉시 줘야 되는 
걸로 알고 대부분 그렇게 하지만 실상 아가씨 본인들은 외상을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전주 같은 경우 A급 호스티스들은 거의 청주 소개소나 대구 소개소를 통해
서 들어왔는데 계약 기간은 2~3개월 정도이고 저마다 200~1,000 만 원쯤 5부 이자로 선불
을 땡기고 온다. 그러니까 천만 원을 땡겨서 2개월을 채우고 간다면 이자로 백만 원이 나간다
는 말이다. 
빚(선불)을 내는 이유는 세 가지 정도인데 하나는 진짜 빚이 있어서, 옮기면서 예전 빚을 갚는 
경우인데 이런 아가씨들은 소개소에서 직접 돈 관리를 하며 감시 차원에서 소개소가 있는 지역에
서 멀리 보내지는 않는다. 빚이 줄지 않고 계속 늘어나면 결국 섬 지역 같은 데로 팔려간다. 
그러니 전주에는 그런 아가씨들이 올 확율이 거의 없다. 
또 다른 경우는 보통의 경제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빚을 내어 저축을 하는 아가씨들이 
있다. 수입은 매일 있지만 목돈을 만들기는 어려우니 비록 이자는 비싸지만 아예 빚으로 목돈을 
만들어 갈무리 하고 일수로 꺼나가는 것이다. 나름 일리는 있다. 
마지막으로 아가씨들이 계약 기간이 끝나고 나갈 때 팁이나 2차비가 외상으로 깔려 있으면 업소 
주인이 그걸 대납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걸 받아 준다는 핑계로 단 며칠이라도 소개소 
수수료 없이 굴려 이용해 먹으니 그걸 방비하기 위해 땡기는 것이다. 가령 천만 원을 땡겨서 
왔는데 외상이 200이 깔렸다면 800만 갚고 정산하면 그만이니 굳이 신경쓰고 얽매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팁을 외상하든 2차비를 외상하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24시간 후에 결제를 해준다고 그것이 쩐질은 아니다. 
가령 술값이나 또는 외상값이 103만원이라면 보통은 3만원은 떼고 100만원만 주는 것이 일반
적이다. 하지만 나는 110만원을 준다.
이것부터가 쩐 질이다.
물론 팁이나 2차비는 별도이다.
2차비 같은 것도 기분 나쁘게 했다고 기본에서 깎지는 않지만 동료들이 만족해했다면 그 상대에
게는 추가로 더 줬다. 그 돈이 아가씨들에게 전달되는 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뜨내기 아가씨들
을 부리는 건 결국 붙박이 마담이기 때문에 쩐 질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결제는 내가 바쁠 때는 회사로 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회사 옆 지하다방에서 만나
서 줬는데 어디에서 주든 늘 만 원권 신권으로 줬다.(직장이 금융기관이어서...) 열십자로 묶
어진 띠지를 뜯어내고 세지도 않고 엄지와 검지로 드르륵 훑어 건네주면 세어 보고는 딱 맞으니 
깜짝 놀라곤 했는데 사실 띠지로 묶어 나오는 신권은 첫 장 일련번호가 1로 시작된다. 그러니 
80만원이면 끝자리 숫자 80에서 끊어 주면 된다. 계산은 이미 내 머리속에 180만원으로 되어 
있지만 부러 100만원 뭉탱이 2개를 가져가서 이런 저런 째를 내며 쩐 질을 하는 것이다.
수금하러 오는 마담은 항상 빈손이 아니었다. 꽃바구니, 난, 벨트, 지갑, 넥타이 등등 수금 
액수에 따라 다르기도 하였거니와 술집을 한 군데만 가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마담의 취향에 따
라 다양했다. 꽃이나 난 같은 것은 내 사무실로 가져갔지만 다른 선물들은 나는 단 하나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러면 누구를 주느냐, 이걸 밝히려면 월급쟁이 시절 그 비싼 룸싸롱을 어떻게 
다녔나부터 설명을 해야 한다. 주로 직원들 하고 다녔는데 무조건 더치페이였다. 뻔한 월급에 
대부분 기혼자여서 갹출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 당시 우리 회사는 급성장
하던 시기여서 크고 작은 특별 보너스가 수시로 지급되었다. 나는 그때마다 미리 걷었는데 내가 
총무 부서를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 한 몫 했다.
그렇게 걷어 놓은 돈이 있었기에 24시간 결제도 가능했다. 그리고 앞에 말했던 선물은 동참했던 
직원들에게 차례로 돌아갔다. 이때 회원(?)이 7~8명 정도 되었는데 그 누구도 내 독단적인 
쩐 질에 대해서 토 달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개인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자기들이 내는 돈 
보다 더 들었으면 들었지 덜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고 또 나와 룸을 갈 때와 자기들 끼리
나 다른 사람들과 갔을 때 호스티스들의 질과 서비스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나는 공금을 쓰면서 룸에서는 대우 받고 동료들에게서는 인정을 받은 셈이다. 
공금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실제 공금으로 쩐 질을 했던 경우는 따로 있었다. 
회사에 금융 감독원 감사가 정기, 수시 포함하여 1년에 한 번씩은 나왔고 광주지방국세청 감사는 
3년에 한 번 정도 나왔다. 감사는 숨기는 게 있든 없든, 잘못이 있든 없든 회사로서는 아주 
부담 가는 행사였다. 감독원 감사는 보통 15일~30일, 국세청은 30일에서 길게는 두 달까지도 
받았다. 어느 기관이든 감사 시작하고 일주일 정도는 사내 탕비실에서 제공하는 차 종류 이외에는 
그 어떤 접대도 사절한다. 
일주일이면 대강 중요 체크 포인트는 끝나고 잔잔한 사안으로 넘어 가는데 그 후에는 적발 할 것, 
봐 줄 것 등을 실무책임자와 밀땅을 하며 가리를 탄다. 
하지만 나의 접대는 그들이 오자마자 그들도 모르게 진행된다. 가령 예를 들면 주차가 잘못되었
다고 키를 받아와 그 차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다 한다. 세차, 오일 교환, 기름 
만땅 등등
그리고 그들이 묵고있는 모텔을 알아낸(거의 90%는 한성여관이었음)뒤 여관 조바(객실관리 아줌마)
를 시켜 과일, 음료 등 온갖 서비스를 베풀도록 하면서 절대 우리 회사 말은 꺼내지도 말고 
자기네 영업 방침이 그렇다고 시키면서 비용은 후하게 줬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그들이 모를 
리는 있겠는가. 서로 모르는 척 하는거지. 사실 고단수 접대는 받는 사람이 접대 받는다는 부담
을 안 느끼게 하면서 접대를 하는 것이다.
지적 할 것과 봐줄 것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면 공식적인 접대가 시작된다. 그렇다고 그들
이 대 놓고 우리 임원들이나 실무자들과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끼
리 먹지만 계산만 내가 한다. 직접 가지도 않고 전화로 식당주인에게 부탁을 하는데, 식사가 
끝나고 계산을 하려고 하면 "동료분이 계산 했습니다." 라고 하고 아예 영수증까지 건네주라 한다. 
감사팀은 보통 4~5명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가장 후임자가 서무를 보고 나중에 출장비 청구를 
할 것이다. 그 서무가 아주 초짜거나 깐깐하면 한두 번은 거절하고 직접 계산 하지만 결국은 
접대를 받게 된다. 그 뒤로는 모든 식대는 우리가 계산하고 영수증은 영수증대로 그들이 가져가
니 그들은 공짜밥 먹고 식대는 식대대로 챙기게 되는 것이다. 
진짜 접대인 룸싸롱은 그 후에 가게 되는데 두 번 정도 간다. 
다 끝나고 강평하기 전 날 가고 또 한 번은 예민한 부분을 감사 받기 전 날로 잡는데 숙취에 
대강 넘어가게 하려는 목적이다. 
이 때부터 제대로 된 '쩐 질'이 이루어진다. 
그 당시 내가 쪽지로 사장과 감사에게만 보고하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감독원 감사 때는 
약 2천만 원 국세청 감사 때는 3천만 원 정도였다. 이 비자금 조성 역시 내 몫이었다. 비자금
을 만드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한 가지 예로 들면 그 때 우리 회사는 항시 판촉물들이 있
었다. 신규 거래자나 예금, 적금 가입자에게 주기 위해서 이었는데 고무장갑, 랩, 팩 등 주로 
주방 소모품이었다. 한 번 주문하면 보통 천 개 단위였고 가령 2천 원짜리 고무장갑 천 개가 
필요하면 삼천 개로 공문을 결재 받아 600 만원을 출금하고 천 개 금액 200백만 원과 이 천개분 
부가세 40 만원은 지급하고 나머지 360만원을 비자금으로 갈무리 하는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물품 대금을 예를 들었으나 큰 금액은 지점의 이전이나 증개축 등 업무용 부동산에서 세이브 되었다.
룸싸롱 접대는 나 혼자 단독으로 하는데 접대 사실은 임원들과 소수 실무 담당자들만 알고 일반 
직원들에게는 쉬쉬 하였다. 
감사팀의 서무에게 미리 감사관들의 서열과 성향 등을 알아보고 마담과 상의하여  파트너를 미리 
정해 놓는다. 하지만 마담에게는 뭐 하는 사람들인지는 말하지  않고 그냥 중요한 거래처라고 
해둔다.
당일 저녁식사 자리에 마담이 전투복 차림의 A급 아가씨들을 데리고 나타나면 모두 입이 벌어진다. 
전투복이라 함은 힐과 스커트 차림의 현란하면서도 예의를 갖춘 '홀 복'과 대비되는 말로 그녀들이 
입는 편한 평상복을 뜻한다. 술자리를 끝내고 2차를 나갈 때 흔히 이렇게 말한다.

"자, 모두 전투복으로!"

룸에 가서 홀 복을 입은 아가씨들을 들어오게 하면 그저 돈 주고 사는 느낌이다. 하지만 맨 
정신에 저녁식사 자리에서부터 같이 하면 여염집 여자하고 소개팅하며 연애하는 기분이 들어 접대 
받는 입장에서도 신선하게 느끼고 거부감이 별로 없다. 
이 날은 나는 저녁식사 때만 반주로 소주 몇 잔 마시고 룸으로 가면 일체 마시지 않는다. 
룸 2차, 모텔 2차가 무사히 마치고 다음날 아침 해장국 접대가 끝날 때까지는 마담과 나는 
대기 상태다.
그렇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보다 더 먹는 줄 안다. 계속 건배하며 분위기 잡고 취한 척 하고...
이 때 내 파트너의 임무는 내 술을 처리하는 거였다. 먹든 버리든. 
사실 내가 룸싸롱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아가씨들이 술 버리는 건데 이 접대 할 때만은 
예외를 뒀다.  
룸은 현재 다가동의 풍남관광호텔 자리에 운남장여관이 있었고 지하에 '운남룸싸롱'이 90년에 
오픈 했는데 주로 여기를 이용했다. 여기 말고도 일류 룸싸롱이 덕진의 '은비' 중앙시장의 
'로제' 관통로에 '백악관' 등이 있었는데 여기를 택한 이유는 룸싸롱과 여관이 붙어 있어 2차 
이동이 편했고 바로 주변에 식당가와 해장국집이 있고, 사장도 잘 아는 선배였었고 무엇보다 
회사나 그들이 묵는 한성여관이 도보로 10분 이내였다.
90년대 중후반으로 들어서며 모텔과 룸이 같은 건물에 들어서는 게 유행했지 그 당시만 해도 
운남 말고는 드물었다.  
이 때 아가씨들에게 제일 고역이 아침 해장국 먹으러 나오는 것이었다. 아침은 거의 안 먹고 
낮과 밤이 바뀐 그녀들이 쌩얼로 해장하러 나온다는 게 쉽겠는가. 그래서 해장국 자리에 모두가 
모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내가 해장국 자리를 만드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9시까지 출근이니까 8시에는 아침을 먹어야한다. 나는 그들의 출근을 잔인하게 배려한 것이다. 
정시에 출근하는 사람은 서무 한 사람 정도고 순차적으로 점심때나 되어야 다들 출근한다.
그리고 나면 나는 소귀의 목적을 달성하며 임무가 끝난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쩐 질'이 남아있다. 전 날 못 먹은 술을 점심에 곁들이며 마담을 부른다. 
마담은 예의상 계산서를 가져오지만 나는 거들떠도 보지도 않고 알아서 계산한다. 
지금 현재도 비록 남부시장 막걸리집 같은 곳만 다니지만 단골집은 내가 알아서 계산을 하는데 
그 때부터 밴  습관이리라. 
'알아서 준다'라는 것은 더 줬으면 더 줬지 덜 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아가씨들은 2차비 기준 3 따블, 그러니까 30만 원 정도 될 것이다. 마담, 웨이터, 밴드마스터, 
지배인까지 까락까락 챙긴다. 메인 술값은 200전후이니 그런 일을 한 파스 치르려면 500 겐또라 
생각하면 된다. 어느 해 국세청 감사에서는 보안 때문에 룸을 통째로 빌린 적도 있었다. 
그럴 때는 더 큰 쩐 질이 필요하지만 알탕갈탕 어렵게 비자금을 조성하는 입장에서 목적과 상황
에 합당하게 기분을 냈지 공금이라고 결코 '조자룡이 헌 칼 쓰듯' 하지는 않았다. 

어느 여름 회사에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양과장님이세요? 저 서울 한 조사역인데 기억하시겠어요?"

"아이고, 한 팀장님 그럼요 항상 마음 속에 모시고 있습니다."

지난 감사 때 나온 감사관들 중 한 명인데 서열은 중간쯤 되었었다. 
그들은 감사 나오면 명함에 모두 감독원 조사역으로 직책이 쓰여 있고 수석만 팀장이라고 쓰여 
있다.

"본가가 광주인데 이번 휴가에 내려가는 김에 일전에 너무 접대를 잘 받아서 전주에 들러 점심
이라도 대접 할까 싶어서요."

'쩐 질'의 승리이고 회사로서는 횡재를 한 셈이다.
나는 곧바로 사장에게 보고를 했다. 사장님은 전남 나주 사람이었다.
.
"오, 그래? 그거 쓰것네 자네 알아서 허소."

내가 총무부 과장이었지만 위로 차장이나 부장이 없었기 때문에 결제 라인이 바로 임원에게 이어
졌다. 앞에서 말 한 비자금 조성이나 이번 접대처럼 업무 외적인 것은 다이렉트로 사장에게 
직접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내가 나이나 근속연수에 대한 형평성 때문에 더 빠른 승진은 어려웠지만 사장의 총애를 받아 
과장으로 부장 업무를 다 맡아 했었다. 그때 나는 30대 중반이었다.

한 조사역의 속내를 익히 짐작하기에 점심 약속을 3시로 잡았고 장소는 한정식 집인 수구정으로 
하였다. 그 전에 마담에게 연락을 하여 상황을 알리고 한 조사역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파트너
였던 아가씨가 아직 있냐고 묻자 예상대로 계약기간이 끝나서 가고 없었다.
마담의 역할은 아가씨들의 통솔, 고객의 접대 및 관리, 외상수금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고객과 아가씨의 파트너 관계를 정확히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친구나 같이 왔던 일행이 나중에 따로 왔을 때 같은 아가씨를 넣어 동서가 되는 것을 방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소개소 아가씨 말고 전주 토박이로 물색하여 같이 오라하고 밴드마스터도 5시까지 준비 시켰다. 
여름 5시면 대낮이다. 
낮 술 좋지~!  
6시 좀 못되어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코아호텔에 스위트룸으로 방도 하나 미리 예약했다. 
이 날은 나도 편하게 같이 취했다. 그리고 형님 동생 하기로 했는데 나 보다 7살이 많았다. 
이른 저녁 호텔 로비에서 주머니에 백만 원 다발 한 뭉치를 넣어줬다. 
다음날은 안부 전화만으로 인사를 했고 
그 이후 짭잘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명절에 회사 차원에서 인사해야하는 명단에도 올렸다. 
그 후 나는1998년 IMF 직 후에 군산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10개월 만에 원위치로 복귀
하였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나는 역시 영업보다는 '쩐 질'하는 총무가 체질에 맞았다. 
나의 룸싸롱 편력은 회사를 그만 둠으로서 끝이 나지만 
내가 경제적으로 허크러졌을 때에도 쩐 질 가락은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명절이면 아무리 없어도, 받지는 않으면서, 딱히 줘야 할 이유도 없으면서 선물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단가가 내려가고 갯수를 줄이는 한이 있어도 지금까지 빼먹은  명절은 한 번도 없다.

지금은 아주 소박한 '쩐 질'을 한다. 
쉬는 날이면 일찌감치 한 잔 하고 어슬렁거리는 남부시장의 나만의 동선이 있는데 그 길가에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는 나이 드신 아줌마들이 여럿 있다. 



무심코 지나다니면 거의 눈에 뜨이지도 않는 왜소하고 남루한 늙은 아낙들이지만 
나름 나름 한 시절이 있었고 각기 한 시대를 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밀납 인형 같이 회색 낯빛이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아는 체 한 마디에 활짝 웃는다.
거기에 박카스나 미니 던킨도너츠라도 하나 씩 드리면 맑은 얼굴로 더 없이 고마워한다.
거나한 기분에 방앗간 들르듯 단골 대포 집에 들어간다. 잘팍하게 더 마실 상황은 아니고 
5천 원짜리 맥주 한 병으로 입가심을 하고 3만 원을 척~ 껄리고 온다.
예전과 비교하면 비록 초라한 '쩐 질'들 이지만 절대적 만족감은 그때 보다 훨씬 나은 것 같
다. 



돈을 직접 주면 안 받으니 이렇게 눌러 놓고 나온다.

내 아지트 술집이 있는 동문 사거리에 삼양다방이 있는데 금, 토 저녁이면 친구가 기타 치며 
노래를 한다. 팀이라야 단출하여 두 명이서 할 때도 있고 많아야 네 명이었다.   
삼양다방 측에서 보정을 해주지 않는 지 앞에는 커다란 투명한 돈 통을 놓고 처분을 바라는데 
나는 일부러 거기를 가는 게 아니고 내 아지트에서 먹을 술 다 먹고 귀가하는 길이 삼양다방
을 거치게 되는데 밖에서 안이 다 보였다. 친구가 보이면 들어간다. 
차를 마시는 것도 아니고 갸 노래를 들을 목적도 아니다. 빈 돈 통에 2만원 넣고 친구에게 손
을 한 번 들어주고 그냥 나온다. 나는 술자리를 비교적 이른 시간에 끝내는데 그 친구는 이제 
막 시작이고 그래서 내가 갔을 때는 항상 빈 통이었다. 
내 아지트의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노래를 듣는 것도 아니고 신청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돈만 던져 놓고 가면 아무리 친구라
도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

사실 나는 그 친구를 좋아하지만 그 친구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노래는 잘 하는데 선곡이 그게 뭐냐고 대 놓고 뭐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돈 통에 
'쩐 질'하는 행위를 그 친구는 절대 모욕으로 보지 않는다. 손 흔들고 나갈 때 표정을 보면 안
다. 그리고 작두도 마중물이 있어야 펑펑 나오는데 쩐인들 안 그러겠어? 
마수걸이 돈이 보여야 새끼를 치지. 
어느 날은 친구가 보여 들어갔더니 주변에서 한의원을 하는 친구가 후배로 보이는 일행과 같
이 있었다. 반갑게 아는 체를 하고 잠시 앉았다. 
통은 아직 비어 있다. 
꾹 참고 노래를 한 곡 들었다. 
첨 일이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나는 박수를 치며 일어나 우황을 떨며 5만 원짜리를 꺼내 통에 넣었다. 
택시 기사도 5만원 을 넣는데 원장님이 가만있겠어? 
그 친구도 바로 5만 원짜리를 넣는다. 
'봐, 새끼를 치자나!'
그런데 친구 5만 원짜리와 내 5만 원짜리는 서글픈 차이가 있었다. 
내 돈은 거의 반으로 접혀 있다시피 한 반면 친구 돈은 120~130도 가령 펴져 있었다. 
뒷주머니에서 꺼냈기 때문에 장지갑은 아닐 텐데 권종을 떠나 적어도 20~30장 이상은 지갑 
안에 두툼하게 있어야 저런 각도가 나오지.
그 친구는 진득하게 더 있을 요량이었고 나는 바로 나왔다. 
내 깝지에는 10전도 없었다. 그 5만 원짜리 딱 한 장 들어 있었거든...
속은 약간 쓰렸지만 이 일로 나를 싫어하는 그 친구 놈이 쪼끔은 곱게 보지 않으까?

적당한 '쩐 질'은 기분도 좋고 뿌듯하기까지 하지만 종이 한 장 차이로 '쩐 질'이 '돈 지랄'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