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20 20:04
[5일 간의 축제]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7,412  
- 축제 첫 날 -
2009년 12월 10일(목) 오후 2시40분 전화가 걸려온다
아버님이 이상하시니 빨리 병원으로 오란다.
이런 전화가 사실 몇 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왔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급히 서두르지도 않고 택시를 잡아탄다.
병원에 도착하니 3시15분
병실에 들어서니 나를 외면하는 듯 아버님은 고개를 벽 쪽으로 돌리고 계시고,
어머니의 흐느낌으로 이미 운명하셨음을 감지한다. 3시경에 가셨단다.
환자복 밖으로 나온 아버님의 손과 발은 마치 갓 낳은 아기처럼 우유 빛으로 변해있다 
오랜 병환으로 뼈만 앙상한 손을 잡아보니 아직 따뜻하게 온기가 남아있다
전혀 눈물이 나지 않는다.
미묘한 전율이 온몸을 한번 훑고 지나갈 뿐
정신이 맑아지며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된다.
장례식장을 잡고, 신문사도 찾아가고, 영정과 수의준비 등등
어머니는 감정에 못 이겨 5일장으로 하자는 걸 가까스로 4일로 줄인다.
(나중에 조문객들이 왜 4일장으로 했냐기에 욕 먹을까봐 장지 사정으로 둘러 댄다)
상복도 두건에 지팡이까지 곁들이 전통 삼베복장으로 하자는 걸 겨우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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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실 분향소
오후 7시30분 조문객을 맞을 준비가 끝난다.
상조가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된다.
동생들이 도착하고 형이 마지막으로 온다.
내 첫 조문객이 지금은 목사가 되었다는 중학교 동창인데 내가 알아보지를 못한다. 
첫 날부터 삼우제가 끝나는 날까지 나의 식사는 맥주와 막걸리였다
나는 상가가 생기면 좋아한다. 공술을 맘껏 먹을 수 있으니(사실 공짜는 아니지만)
그런데 돈도 받고 술도 먹으니 어찌 이보다 더 좋을 쏘냐
- 축제 둘째 날 -
   
분향소를 지실에서 천실로 옮긴다.
처음 해보는 상주의 입장에서 조문객들을 보니 절하는 방법부터 헌화, 분향하는 모습들이
천차만별이다. 절은 그렇다 치고, 분향만 하는 사람, 헌화만 하는 사람, 두 가지 다 하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절만 하는 사람, 어느 게 옳다 그르다 말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앞으로 조문을 간다면 이렇게 하겠다.
향로에 향이 넉넉히 있으면 분향은 생략하고 절만 한다
제단에 국화가 너무 없으면 헌화를 하고 절을 한다.
절은 째를 내지 않고 간결하고 정중하고 신속히 한다.
상주와 절을 하고 인사를 할 때는 굳이 ‘얼마나 애통 하십니까’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연세가 얼마나 되셨습니까.’ 등등 통속적인 말보다 머리 한 번 더 조아리고 악수 할 때
눈을 마주치며 손에 힘을 약간 주는 걸로 그런 말을 대신하겠다.
향을 촛불에 불붙일 때는 향을 붓글씨 쓸 때 붓을 잡는 자세로 잡고 붙이면 빨리 붙는다. 
(상주가 비통한 심정으로 조문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생각은 않고 엉뚱한 것이나 관찰
하고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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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분들이 많아 온다.
‘저 분이 상을 당했다면 내가 갔을까? 아니 당연히 안 갔을 걸‘ 하고 생각할 정도로
그럼 내가 저 사람을 생각하는 것보다 저 사람이 나를 생각하는 비중이 더 큰거로군
그런데 그것은 아니었다.
상을 치러보니 알 것 같다 아마 그 사람들은 나 같이 상을 치러 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조문객의 고마움을 알고 그 때 상주의 심정으로 왔을 것이다

- 조기 10개와 조화 57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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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현대나, 삼성, 포스코 등등 대기업에서는 직원들이 상을 당했을 때 사용하라고 일회용 
용기와 숟가락, 젓가락을 제공한다.
우리도 막내가 삼성을 다니기 때문에 당연히 제공되었다
그 용기가 유용한 이유는 설거지가 필요 없이 그냥 버리면 되니 편리한 것도 있겠지만 더
큰 장점은 용기가 적어 국이나 밥이 조금 들어가기 때문에 음식물의 낭비가 적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쓰는 그릇은 상술에 한 방법으로 밥공기나 국그릇이 배 이상이 크기 때문에 
많이 담길 수밖에 없고 남길 확률도 훨씬 많다
만약 식구들 중 일회용 용기를 제공해 주는 기업체에 근무하는 사람이 없다 해도 돈 주고 
사서라도 일회용 용기를 쓰는 게 비용 절감의 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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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 셋째 날 -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입관식이다
오전 11시 정각에 지하 안치소로 내려간다.
    
염을 기다리며....
염(殮)장이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아버님의 온몸을 알콜 수건으로 꼼꼼히 닦아 드린다.
 
    
   
수의를 입혀드리고 있다
소렴(小殮)에 앞서 고인의 모습을 마음에 담아두라는 멘트에 가족들은 모두 눈물을 훔친다.
이제는 말랐을 법도 한 어머니의 눈물샘은 또 한 번 터진다.
기력이 쇠진한 통곡에 금방이라도 아버님이 일어 날 것만 같다.
나는 울지 않았다. 
울지 않으려고 누가 제일 슬퍼하고, 누가 눈물을 흘리나 안 흘리나 가족들을 찬찬히 살핀
다.
수의를 입혀 매듭을 짓고 소렴(小殮)을 끝낸다.
 
   
마지막 모습
   
하늘나라 가시려고 꽃신도 신으셨네
이어 바로 대렴(大斂)에 들어간다.
삼베로 다시 한 번 꼼꼼히 염을 하는데 매듭이 전혀 없이 아름답게 변해간다
염장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삼매경에 빠져있다
대렴이 끝난 아버님의 모습은 시신이라기보다 하나의 예술이었다.

    
대렴 뒤 입관
1시간 30분에 걸친 입관절차가 끝나자 상주 완장이 채워진다.
아버님의 친구 분은 딱 한 분 다녀가셨다 
진정으로 서럽게 울다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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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조의금을 낼 때 이렇게 하겠다.(내 의견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1. 이름을 한자로 안 쓰겠다.
2. 한글도 따복 따복 정자로 쓰겠다.
3. 상주가 2명 이상일 경우는 내가 어느 상주를 보러 왔는지 봉투 덮개 뒷면에 액수와 함께 
   쓰겠다. 
- 축제 나흘째 -
발인하는 날이다
장지가 멀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두른다.
7시에 장례식장을 떠나 전동성당에서 8시 장례미사를 보고 경기도 안성의 천주교 공동묘지
로 간다.
일요일 오전에 시간을 내어 장례미사를 여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신부님 세 분이 합동
으로 미사를 드리는 것도 드믄 일이다
 
   
장례미사를 위해 성당 안으로 운구
   
미사 집전 중
   
“이 양반이 돌아가신 범신부님 돈을 따 먹었습니다. 내 돈도 따 먹었습니다.”
김스테파노 전부주교님의 강론 중에서.....
슬픔 속에 웃음이라서 더 값지게 느껴진다.
   
미사가 끝나고......
오전 11시 30분경 장지에 도착한다.
   
‘모두 나에게로 오시오‘ 밑에 차량 안에 귀중품을 조심하란다.
묘지번호 25 더 40
화장을 하지 않고 들어 갈 수 있는 유일한 천주교 공원묘역이다
여기도 20년 후에는 의무적으로 이장을 해야 한다
 
   
하관 준비가 다 끝난 묘지로 향한다.
   
하관
   
이 대목에서 한 번 더 어머니의 몸부림이 있을 법도 한데 의연하셨다
이렇게 싱겁고 허무하고 허전하게 안장을 마쳤다
- 축제 마지막 날-
삼우제(三虞祭)날이다 보통은 출상 후 2일이 지나서 삼우제를 지내지만 우리는 4일장을 
했기 때문에 바로 다음 날 삼우제를 지내기로 한다.
삼우제는 석 삼자에 헤아릴 우자를 써서 묘를 쓰고 세 번을 둘러 살펴본다는 뜻이란다.
짐승들이 파 헤쳤는지 비뚤어지게 써지지는 않았는지....
간단한 제찬을 마련하여 간단한 제를 올린다.
   
삼우제가 끝나고......
“모두 웃어~~!! 누구 초상 났가니 그렇게 찡그리고 있어???”
(이청준의 축제 중에서...)
이렇게 5일 간의 축제가 막을 내린다
원작 양한승, 제작,감독 이양자, 주연 네 아들과 며느리, 조연 손주들......
그리고 조문객을 관객으로 한 드라마가 막을 내린다
   




2013. 11. 30현재 조회수 : 1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