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8-17 21:45
나의 죽음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257  
2024. 8. 17(토)


불로장생을 그렇게 원하던 진시황은 50세에 갔다.
조선 왕들의 평균수명은 46세 였다.
나는 이제 70세(2025년에)이다.
너무 오래 살았나?
물론 시대가 많이 다르긴 하지...
현재는 거의 100세로 육박하고 있는 시대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나는 남은 생을 
위해 새로운 계획을 짤 것인가?  아니면 남은 생을 정리해야 할 수순을 밟을 것인가? 
흠 근데 다시 들여다보니 그 말이 그 말이군.
새로운 계획을 죽음을 맞이하는 계획으로 짜면 되겠네.
잘 못 살았으니 죽는 거라도 잘 죽어야 할 거 아냐 근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제일 중요한 것은 죽음을 초연하게 맞이할 수 있는 마음가짐인데 그런 수양이 내게 있어야 말
이지. 
2019. 3. 25에 규팔이란 친구가 인근 엠마오 사랑병원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우연찮게
죽기 이틀 전에 병문안을 갔는데 바싹 야윈 얼굴에 훵한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나와 아주 잠깐 눈을 마주치며 표정에 변화가 있는 듯 마는 듯 하더니 이내 원
래대로 돌아갔다. 규팔이 각시는 그게 알아보고 아는 체 한 거란다. 



그 날의 규팔이 각시와 딸래미


그리고 다음다음날 문상을 가게 된다. 친구 중에서는 내가 마지막으로 배웅을 했단다. 규팔이
는 원평에서는 제법 유지로 살았는데 말기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로는 주변을 정리하
기 시작했다고... 
재산 상속관계는 물론이고 본인의 물건들도 물려줄 것, 폐기 할 것, 처분 할 것 구분하여 
처리 했는가 하면 부고장 보낼 곳도 다 체크해 놓고 장례식장까지 미리 정해 놓았다 한다. 
시한부라서 가능한 일이었겠으나 죽음을 앞두고 담담하게 스스로를 정리하는 게 쉽지는 않았으리라.
나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시도는 해 보겠지만 평상심을 유지하며 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
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요즘 부쩍 죽음이 가까이 있는 느낌이
다. 특히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더 한다. 신호대기 중 한가롭게 바람에 살랑대는 나뭇잎을 
봐도 죽음의 손짓 같고 천변을 달릴 때 눈부신 윤슬 너머로도 죽음이 보이며 배경 음악으로 
종일 틀어 놓는 관현악곡은 시도 때도 없이 레퀴엠으로 바뀌어 들린다. 
이것들은 영화의 복선 같은 본능적인 초감각적 지각 아닐까?
 
나는 서완산동 552번지에서 태어났다.
우리 집은 동쪽에서 다가산을 업고 있는 형국이었다.
지금은 원룸살이를 하고 있는데 이 원룸은 공교롭게도 서쪽에서 다가산에 업혀있다.
쉽게 말해 나는 다가산 동쪽에서 태어나 서쪽에서 꺼져가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의미심장하
다. 한편 전주천은 동남동에서 흘러와 다가산과 부딪히며 방향을 틀어 북북서로 흘러나간다.
내가 한때 풍수와 명리학에 빠져 잠시 공부해 본 적은 있으나 정작 믿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 
모양새를 음양오행을 불러와 풍수학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70평생을 군대 3년 빼
고는 전주를 떠나보지 않은 토박이로서 의견이 없을 수 없다. 군더더기 없이 말하자면

'전주의 젖줄인 전주천을 발아래 두고 사대문 안을 그윽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은 다가산 
밖에 없다.' 

나의 전주는 이 만큼이면 충분하다. 
북쪽으로 뻗어나가고 서쪽으로 번창하는 거창한 전주는 나에게는 필요 없다. 
내 기억들 향수들... 다가산에서 내려다보는 이 만큼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이 (지)면을 통해 분명히 말한다.

'나 죽으면 화장을 하여 반은 다가산에 반은 전주천에 뿌려다오!' 

내 절반은 다가산에 남아 고향을 지켜볼 거고, 다른 반은 전주천과 같이 흘러 두루두루 세상 
구경을 해야겠다.

사실 작년(2023년)에 치표(가묘)할 생각이 아주 찰나에 스친 적이 있긴 하다. 
선친께서 생전에 심혈을 기울여 가꾸어 놓은 소산원 앞마당 화단에 2013년 5월 11일에 생모
를 평장으로 이장하였다. 2020년 5월 17일 형도 세상을 뜬다. 3년 후인 2023년 5월 13일에 
형도 소산원으로 모셔온다. 생모 옆에 형의 자리를 잡는데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 또 한자리가 눈에 보인다.
그 때 아주 잠시 그 생각이 스친 것이다. 하지만 바로 고개를 내 저었다. 
갇히기도 싫고, 고정되어 정체되기도 싫고 먼 훗날 이 자리를 누가 어떻게 관리하여 유지 할 
것인가! 그래서 바로 간격을 더 벌려 공간을 없게 만들었다.



형을 좌측으로 조금 움직이면 우측에 공간이 나오는데 일부러 공간이 없게 우측으로 당겼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는 이미 작성하였다.
시신 기증은 생각은 있지만 아직 결정은 못하고 있다.
살아있을 때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으로 깨끗하게 처리를 할 계획이다.
하지만 사후는 내 맘대로 할 수는 없겠으나 여기에 유언처럼 남기겠다.
내 동생들, 아들들에게 분명히 고한다. 아니 부탁 겸 명한다.
시신 처리는 앞에서 말했듯이 화장하여 반은 다가산, 반은 전주천에 뿌려라.
그것도 귀찮으면 다가산이나 전주천 한 곳에 뿌려도 좋다.
그러면 당연히 삼우제도 필요가 없어지겠지.
기제사도 지내지 말 것이며 명절에 차례 상도 차리지 마라.
내 생각에는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이니 내 말대로 해주기 바란다.
또 한 가지 유골을 뿌리고 장례가 끝나면 내 홈페이지 ‘kscam.com'도 폭파해 주기 바란다.
소스와 사이트, 비번 등은 내 폰의 메모장 및 모두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보관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