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19(목)
나는 1983년 회사에 다니면서부터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고 출근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집에 나만 사용하는 욕실이 있었음에도 꼭 목욕탕에 가야했던 이유는
샤워의 마무리를 열탕과 냉탕으로 해야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좋아하는 온도는 열탕 45도 냉탕 18도인데 목욕탕에서 일반적으로 설정해 놓은 걸 보면
열탕 42~44도 온탕은 38~40도 냉탕은 18~22도 정도이다.
80년대는 회사가 구 도청 삼거리 지금의 우리은행 맞은편에 있어서
바로 뒷골목에 있는 '영빈탕'을 다녔고 80년대 말 중앙시장 부근으로 이전을 하면서
'거북탕'으로 옮기게 된다.
나는 샤워 시간이 옷 입고 벗는 시간 합하여 30분이면 충분하다.
이 닦고 면도하고 비누칠은 발, 겨드랑이, 사타구니, 얼굴과 머리만 한다.
샴푸도 린스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샤워로 거품을 씻어 낸 뒤 열탕 2분 냉탕 2분이면 끝난다.
사우나 도크도 들어가지 않는다.
거품수건으로 온몸을 부비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다.
때는 내 평생 단 한 번도 밀어 본 적이 없고 거북탕 다니던 시절 두 번인가 세 번 정도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때밀이에게 오일과 우유로 전신 마사지를 받아본 적은 있다.
90년대 중반 쯤 코아호텔 사우나 회원에 등록하게 된다.
회원은 두 부류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초창기 멤버로 보증금 400만 원에 연회비가 전혀 없는 회원이었고
두 번째는 그 당시 모집하던 회원으로 보증금 200만 원에 연회비가 22만 원이었는데
연회비는 고정이 아니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오른다고 했다.
나는 그 때 코아호텔 지하에서 나이트클럽을 하던 선배 입김으로
판매 중단된 연회비 없는 400만 원짜리로 계약 할 수 있었다.
사우나는 호텔 3층에 있었고 시설은 별로인데 면적만 엄청 넓었다.
헬스장은 후져서 이용하는 사람들도 드물었고 여자 사우나는 아예 없었다.
내가 이용하는 시간대는 사우나가 오픈하는 아침 6시다.
그 시간대에 만나는 면면을 보면
그 당시 전주 시장이던 전 김완주지사, 코아회장인 이창승, 장세환 전 국회의원,
선친의 친구였던 산림조합연합회 고 김한태 회장님 등
전주에서는 그래도 말마디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던 2000년 즈음 우성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계열인 전주 리베라호텔도 매각 수순을 밟자
코아호텔 이창승회장이 인수를 하게 된다.
호텔 공식 명칭은 주)전주코아리베라호텔이 되고
외형상의 명칭은 '리베라 호텔'을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
2013년 상표권 분쟁으로 '르윈'으로 바뀐다.
그런데 호텔 업계에서는 이 '사우나'라는 게 계륵이라 한다.
구색을 갖추려면 있어야 하지만 제대로 된 시설로 운영하려면 무조건 적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코아호텔은 물 낭비와 시중꺼리가 많은 여탕은 아예 개설을 안 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새로 생긴 '그랜드힐스턴' '더 메이' '글로스터' 등 대형호텔에 사우나가 없다.
하지만 리베라 사우나는 좀 달랐다.
전주시 조례로 관광호텔급 사우나를 한 개소에 한정하여 지정해서
면세 혜택을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리베라가 적용을 받은 것이다.
지역 기업이 인수했다는 이점과 더불어 전 시장이었던 이창승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다.
2011년 코아호텔은 폐업을 한다.
1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런 모습으로 폐쇄되어 있다.
2011년 코아호텔이 이랜드계열에 넘어가면서
실버타운으로 리모델링은 하네 요양병원으로 바꾸네 하며 호텔은 폐업을 하게 된다.
그때 사우나 회원들은 그 누구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반 강제적으로 리베라 사우나로 옮기게 된다.
리베라 쪽은 보증금이 600만 원이었는데 코아는 400만 원이라서
당장은 추가로 200을 더 받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연회비가 더 비쌌고
무료 숙박의 횟수랄지 이런 저런 차등이 있었다.
이런 사실을 옮길 당시는 몰랐었고 3~4개월 후에야 기존 회원들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코아에서 옮겨 온 회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불만이 있었지만 대부분 점잖은 체면들이고
이창승 회장과는 아는 처지들이라 밖으로 표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도 물론 코아 시절부터 이회장과는 인사를 하고 지내는 처지였지만
이회장이 선친을 알거나 나의 신상을 아는 것은 아니었고
작고한 이동관형님의 소개로 인사를 했었기 때문에
아마 나를 건달 부류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점은 차라리 내가 어필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연 사흘을 아침 9시만 되면 호텔 사무실로 찾아가 깽판을 쳤다.
다른 말은 일절 하지 않고
"나 여그 안다닐 라니까 400 껄리란 말여!
당장 쩐이 없으면 언제 주겠다고 각서라도 써 주면 될거 아녀!"
말도 무식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 당시 이회장의 동생 이주승씨가 상무로 있었는데 나보다는 4년인가 위였다.
두 번째 날인가 소란을 피우는데 그때 사무실에 들어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 바로 나갔는데
이회장에게 보고가 안 되었을 리가 없었다.
세 번째 날이었다.
그 동안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이었던 팀장이 안쪽으로 문을 열고 안내를 하는데
초라한 응접실이 있었다. 위에서 어떤 언질을 받았을 것이다.
한 번 말문이 터지자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는데 요지는 호텔 경영 상황이 좋지 않아서
보증금 빼 줄 상황이 아니고 나 말고도 내용증명이나 점잖은 방법으로 보증금 반환 청구를
한 회원들이 몇몇 있는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 한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다음 회계 연도부터는 연회비를
기존 보증금 600만 원낸 회원과 똑같이 462,000원 으로 낮춰 준다는 것이었다.
400만 원짜리 코아 회원들은 연회비를 660,000원 내고 있었거든...
그리고 봉투를 하나 건네주며 상무님이 특별히 드린다고 해서 열어 봤더니
무료입욕권 20장이 들어있었다. 그 뒤로 상무하고는 친하게 되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회원의 유형이 가지가지 였다.
하지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보증금 400에 연회비 462,000원을 내는 걸로 만족했다.
리베라, 르윈 사우나를 약 9년 동안 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알게 된다.
고 최승범 교수님, 고 김백호 전 전북건설협회회장, 고 김용 전MBC 아나운서 등은
이미 사회에서 선친이나 모친을 통해 알고 있었던 분들이었고
월드컵과 나이트 보스인 주오택과 김용구도 이미 안면들이 있는 사이고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은 거의가 의사 였는데
특히 서강정형외과 안승수 원장과 삼성가정의학과 이해훈 원장은 나보다 4년 위였는데
지리산 산행도 여러 번같이 하고 지금까지도 호형호제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 당시 사우나에는 5명의 고정 직원이 있었다.
여직원 4명 남직원 1명이었는데 남직원은 남탕 락카 보이로 알바였는지 수시로 바뀌었다.
여직원 4명은 교대로 카운터 캐셔를 봐서 모두 캐셔 요원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2명은 캐셔, 2명은 여탕관리 및 청소 담당이었다.
하지만 업무 분장은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 중 정직원은 캐셔이며 가장 어린 20대 후반의 김한솔 한 명인데
그녀가 업무 시간표를 모두 짜고 실질적으로 팀장인 셈이었다.
나머지 셋은 계약직으로 40대인 캐셔 김이경과 청소 요원 김민경은 갑장이었고
나머지 청소 요원은 제일 나이 많은 50대의 고순희였다.
그리고 궂은 청소를 하는 이들은 양쪽 탕의 때밀이들이었다.
청소를 한다고 그들이 거저 영업을 하는 것은 아니고
호텔 측에 천만 원 가까이 보증금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이런 것들을 알 수 있었던 것은 4명의 여직원들과 몇 번 식사를 같이 했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하면서 들은 남자 회원들의 행태는 여러 가지 였는데
사탕을 주면서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긁는 달지... 등
현재 살아계신 제일 고령자(90대 중반쯤?) 분인 한소아과 한학수원장님은
굳이 지갑을 꺼낼 이유가 없는데 지갑을 꺼내 빳빳한 만 원짜리 지폐를 늘 보여주기만 하는 등
가벼운 에피소드들이었다. 더 찐하고 노골적인 정황은 아마 말하지 않았겠지.
그리고 이 식사중 대화도 그녀들이 현직에 있을 때가 아니고
르윈호텔이 넘어간 2019년 3월 이후의 만남에서이다.
2019년 5월 13일 리베라 호텔 사우나 캐셔들과.... (서 있는 여인은 '객주' 주인)
내가 리베라 사우나를 다니던 2011년부터 2019년까지 9년은
내 일생에서 가장 비참하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기였다.
이미 부도가 나서 신불 상태였으며 내 명의로 된 통장 하나도 없고
심지어 휴대폰도 남의 명의였다.
주소는 친구 사무실에 옮겨 놓고 금융권의 우편 송달을 차단하며 유령처럼 살고 있었다.
그때 사우나에 다니던 사람들은 나의 사정은 전혀 모르고
부자집 아들로 먹고 살 걱정 없이 지리산이나 다니며 한량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별명도 '지리산 산신령'으로 불렸다.
이 즈음 한 친구가 개인택시를 샀다는 소식을 듣는다.
박진문이란 친구인데 재산도 몇십 억대이고 외국계 제약회사를 퇴직해서
연금만 가지고도 생활은 충분할 터였다. 더구나 부양 할 가족도 없는 싱글이었다.
이 친구 왈
"사지 멀쩡험서 현재 먹고 쓰고 허는건 벌어서 해야지..."
이런 논리였다.
고개는 끄덕여지지만 내가 그 친구 상황이라면 절대 하지 못 할 아니 안 할 생각이었다.
그때 그 친구는 내 롤모델이 되었고 나는 바로 자문을 구했다.
"야 어떡 허면 되냐?"
친구 놈은 능글맞게 웃으며
"한번 히봐"
친구 웃음과 말의 진정한 의미는 택시를 시작하고 2년 후에나 알게 된다.
쉽게 말해서 예전에 우리 군대 갈 때 '까짓것 한 삼년 몸으로 때우면 되지머'
하지만 만만하게 몸으로만 때워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가 보면 알듯이
그와 비슷한 상황으로 보면 된다.
회사 택시를 무사고로 3년이상 운행을 해야 개인택시 살 자격이 생기는데
그 친구는 중간에 사고가 있어 4년 6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친구의 조언을 참고로 하여 나도 드디어 '택시'를 해보기로 결심한다.
그러자 예전 선친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봉황은 천리를 날다 쉬고 싶어도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좁쌀은 먹지 않는다.'
내가 제대하고 '시보리'(물수건)장사를 해 본다니까 화를 내시며 하신 말씀이다.
나를 봉황으로 봐주셔서 고맙긴 하지만 지금 봉황은 고사하고 쭉지 빠진 뱁새 꼴도 못되니
쓴웃음이 나왔다.
택시를 시작하면서 6가지 목표를 세웠다.
군대 3년 다시 간다고 마음 먹고 모든 모임이나 취미 등 다 접고
일에만 몰두 하려다 보니 그 3년 동안 뭔가를 이뤄야만 손해 보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나는 여느 택시기사와는 다르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어막이었을 것이다.
1.개인택시 자격
2.돈(개인택시 넘버 값이그 당시 1억3천이었다.)
3.내적 건강(혈압, 콜레스테롤, 당 관리 등)
4.외적 건강(체력 관리)
5.중국어 간단 회화(당시 6개월 정도 중국어를 배우고 있었음)
6.책 발간(택시 영업에 대한 에피소드)
이렇게 목표를 정했다.
스스로에게 최면처럼 걸었던 캐치프레이즈는 '낭만과 여유'를 갖자는 거였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택시라는 극단 선택을 하며 억지로 의연하게 보이려는
온갖 몸부림 중 하나였지 않나 싶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은 택시와 일용 막노동은 직업 중 막장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사람에게 자괴감 자긍심 자존감 이런 것들이 없다면 맞는 말이다.
2016년 11월 16일 택시 운행을 시작한다.
한 달도 못되어 중국어 공부를 포기한다.
택시 영업을 하면서 병행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6개월 정도는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지나갔다.
주변에서 어떠냐고 물으면 아주 재미있다고 호기롭게 허세를 부려 보지만
뒤 끝은 처량하고 씁쓸했다.
그 뒤 3년을 채우는 시간은 철저하게 크로노스적 이었으며
6가지 목표중 제대로 달성한 것은 첫 번째뿐이었다.
5일 일하고 1일 쉬는 3년 동안 나의 원칙은 하루 15시간 이상 일하고
사납금 빼고 10만원을 쥐어야 일을 끝냈다.
쉬는 날의 막걸리 값은 2만 원 이하로 정했다.
그 결과 3년 동안 모은 돈이 8,500만원이었다.
어차피 모자라 빚을 내야 했고 파산절차 비용 등등을 지출하고 나니
1억 원 정도를 빌려야 했다.
군대보다 더 한 지옥 같은 3년을 보내면서 하루 중 유일하게 자칭 '나'다운 시간은
아침 호텔 사우나에서의 1시간 이었다.
부르조아적 허영심이 잡고 있는 마지막 동아줄이었을 것이다.
그 1시간 중 30분은 런닝머신에서 뛰었는데 속도 6으로 시작하여 계속 올린다.
마지막 1분은 14까지 올려 사실은 자학에 가까웠고
런너스하이를 느낄 정도로 폭주를 했다.
런닝머신을 멈추고 숨을 헐떡이며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면
옆에서 속도 5.5로 놓고 총총히 걷고 있는 삼성가정의학과 이행훈 원장님이 하는 말
"어이 동생, 기계 뿌서지것네"
이 멘트는 내가 심하게 뛸 때마다 반복되었는데
그 형님은 내가 기계에 한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2019년 3월, 이중계약에 코가 꿰어 3년여에 걸쳐 애를 먹던 르윈(구 리베라)호텔이
드디어 라한호텔에 넘어가게 된다.
사우나가 채 폐장하기도 전에 보증금 400만원과 연회비가 일할 계산되어 입금된다.
그러고 나니 당장 4월부터 다닐 사우나를 물색해야 하는데
행동반경에 가까운 남문탕이나 한옥스파는 운동기구가 없거나 협소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저분해서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을 갖고 범위를 넓혀 신양파크, 우성 사우나 등등 신중하게 답사를 하다가
서부시장의 동방아로체로 정했다.
2019년 6월부터 정식으로 이용한다.
회원은 오른쪽 비회원은 왼쪽으로 드나드는 아로체 입구
좀 협소한 아로체 사물함이다.
헬스장 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깨끗했다.
1년 회비가 115만원이었는데 2년이 지나고부터는 1년짜리는 없어지고
최장계약이 6개월로 줄고 회비는 85만원이었다.
여기에 불만을 품고 다른 데로 옮긴 회원들도 몇몇 있었다.
처음 아로체로 다니면서 얼마 동안은 새벽부터 북적대는 분위기에 적응이 안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고
특히 같은 시간대에 만나는 안과병원의 실장은 형님 형님하며 어찌나 붙임성이 좋은지
사교성이 제로인 나마저도 친해지게 되어 하루라도 못 보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 보는 사이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여기에서는 내 과거나 신상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으니
택시를 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몇몇은 택시를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기도 했었다.
이렇게 저렇게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새 6년이나 지났다.
아로체 헬스장은 일반 헬스크럽 수준의 기구가 갖춰져 있다.
아로체 탈의실, 아고 거울에 비치네...
왼쪽 앞에 공짜 안마의자도 있다.
그러던 2025년 1월 어느 날 단골집인 객주에서
라한호텔 사우나에서 회원을 받는다는 정보를 얻는다.
그 동안은 적극적으로 알아보지는 않았고
일반 손님은 받지 않고 호텔 투숙객만 받는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호텔측에 문의를 하니 팀장을 연결해 준다.
팀장은 도리어 어떻게 회원을 받는다는 소식을 알았냐고 조심스레 되묻는다.
아마 공개적으로 회원 모집을 한 게 아니라 알음알음으로 선별해서 받아왔던 모양이다.
나는 예전 회원이었다고만 말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니까 무작위로 받지는 않지만 양질의 회원은 적극 유치하는 전략으로 보였다.
내가 문의했던 2025년 2월 현재로 총회원이 50여명 인데 여자회원이 절반이 넘는다고 했으니
남자회원은 20명 남짓 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 의외로 적다.
아로체와 계약기간이 2025년 3월 21일까지 이었기 때문에
라한사우나는 4월 1일부터 나가기로 한다.
보증금 같은 것은 없고 연회비가 250만원이었다.
아로체에 비하면 좀 비싸긴 하다.
내가 아로체에서 라한으로 옮긴다는 말은 딱 두 사람에게만 했다.
카드키를 반납하고 사물함 보증금 만 원을 돌려 받아야하니 카운터 직원에게 말했고
그 동안 친해졌던 후배인 안과 임실장에게 말했는데 임실장은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하루에 7천원 꼴이네요? 형님, 가지 말고 그냥 1년에 돈백만원 애껴요"
그 후배는 순수하게 말했겠지만 내 자격지심에는
'택시 기사가 먼 호텔사우나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요즘 콩나물국밥 한 그릇에 9천원 시대인데 가격을 바꿔서
나에게 사우나가 9천원이고 국밥이 7천원인데 하나만 택하라 하면 나는 무조건 사우나다.
그것도 매일 선탁하라면 매일이라도...
(요즘 목욕탕 가격은 어딜 가나 9천원이다. 라한호텔은 투수객에게 12,000원을 받는다.)
2025년 4월 1일 아침 6시경 라한호텔 프론트에 안내를 요청한다.
호텔 전체를 리모델링해서 1층 로비의 구조부터 완전 생소하다.
사우나도 2층에 있었는데 지하1층으로 옮겼다.
사우나를 출입하려면 지문등록을 해야 하는데 담당직원이 출근 전이어서 카드키를 발급해준다.
그러면서 마음에 드는 락카 번호를 알려주면 전용락카로 지정해 놓겠단다.
옷장은 25번 신발장은 35번으로 정했다.
모두 번호키여서 내가 설정해 놓으면 되었다.
사우나에는 상주하는 직원이 단 한명도 없었다.
여탕과 남탕 중간에 프론트 데스크가 있긴 한데 모니터만 한 대 덩그러니 있을 뿐
항상 비어 있었다.
사우나 출입이 회원은 지문으로 가능하고 투숙객은 로비 프론트에서 키카드로 등록을 하니까
관리 인원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탈의실이나 탕내 정비는 다른 분야를 담당하는 듯한 직원이 간간이 들어와서
사용한 수건을 수거한다든지 비누 등 소모품을 보충하고 그때그때 간단히 청소도 해버리니
비전문가인 내 눈에도 인건비 절약에 의한 이익의 극대화가 느껴진다.
상주 직원이 5명이나 되던 리베라 시절과 극명하게 비교가 된다.
공식적 오픈 시간은 06:00로 되어있지만 05:50에 가도 준비가 되어 있고
05:30에 가도 되었다.
온통 리모델링을 했지만 예전과 바뀌지 않은 게 딱 두 가지가 있다.
지하주차장과 엘리베이터 위치였다.
그래서 나는 일반 고객들은 잘 모르는 직원용 엘리베이터와 가장 가까운 주차 공간이
지하 2층 안쪽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주차하고 바로 문하나 열면 직원용 엘리베이터이고
지하 1층으로 올라가 또 문하나 열면 사우나다.
이 문들에는 '제연실' '직원출입구'라고 써 있으니 나만 알고 있는 듯한
이 비밀통로(?)를 지나다닐 때면 치기어린 쾌감을 느낀다.
지하 2층에서 사우나로 가는 지름길
키카드와 엄지 지문으로 출입 가능한 라한 호텔 사우나 입구이다.
지문을 대고 사우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완전 딴 세상이다.
항상 일정한 독하지 않은 은은한 향기와 시원하고 청량한 공기,
무엇보다 조용히 흐르는 클래식 음악이 맘에 든다.
잘 아는 곡도 귀를 기울여야 제목을 구별 할 수 있는 정도의 볼륨이다.
내가 손꼽게 좋아하는 마스카니의 오페라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이나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이 나올 때는 그리 길지 않은 곡이기에
멍하니 앉아 다 듣고 탕으로 들어간다.
회원용 개인 라커이다.
항상 조용하고 깔끔핟.
왼쪽으로부터 열탕(43도 +- 0.5) 온탕(40도 +- 0.5) 냉탕(19도 +- 1)
여기서 내가 사용하는 것은 오로지 선풍기와 면봉 뿐!
내가 가는 시간대는 아침 6시 10여분 전쯤이다.
거의 1등이다.
6시가 조금 넘어 고정적으로 오는 사람이 있는데 서로 정체는 모르지만
이제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가 되었다.
간혹 투숙객 손님이 오는 경우 외에는 거의 둘 뿐이다.
7시가 넘어서 갈 때면 치과를 하는 친구 약훈이와 나이트파 보스인 김용구를 종종 본다.
쉬는 날 모악산 산행 후 9시쯤에는 서로 하는 일은 모르지만 반갑게 인사는 하고 지내는
옛 리베라 멤버 두어 명도 만난다.
내가 여기 사우나로 온 지 6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탕 내에 입욕인원이 5명을 넘는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
단점이 있다면 열탕 온도가 45도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43도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과
냉탕 깊이가 일반 목욕탕들은 허리까지 오는데 반해 무릎 위까지 밖에 오지 않는다는 것,
또 헬스 운동복을 내가 준비해야 한다는 것 등등 소소한 불편사항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 라한호텔 사우나가 나에게는 아우라다.
아침 이른 시간 캐리어를 끌고 분주히 움직이는 단체 투숙객들을 보고
나도 어느 여행지에 온 듯한 순간적인 들뜸은 하루를 시작하는데 유쾌한 덤이다.
여기 헬스장은 투숙객에게 무료이다.
빨리 적응해서 열심히 해야하는데...
택시를 시작한 지 9년이 되어가고 그 동안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여행 한 번도 못 가봤다.
골프채를 놓은 지도 오래고 동창들 당구 모임조차 나갈 마음에 여유가 없다.
낙이라고는 스스로 산, 술, 글, 잠이라고 외치고 있는데 여기에 사치스런 '욕(浴)' 하나 살짝 얹히면 안될까?
나는 이 조용한 사치를 위해 매월 25일에 25만씩 적금을 붓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