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20 20:29
[아버님 기념비 제막식]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3,991  

<프롤로그>

<2010. 9. 22(수) 추석> 

올 가을에 아버님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자는 뜻이 모아지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결정을 못
하고 차일피일 하던 차에 9월 중순경 팔복동에 있는 ‘거문예석’이라는 석비 전문 업체에 
형이 구두 예약을 해버렸다 한다.
추석 차례와 점심 후 형이 예약해 놓은 돌을 보러 가 본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가운데 찾아간 ‘거문예석’,  봐 놓은 돌은 밑에 있는 길 따란 오석

<그리고 며칠 후.....> 

     
글씨의 배열과 디자인을 위해 실측을 하러간다
     
위에 누르고 있는 돌들 때문에 겨우 쟀네....
     
처음 계획은 대만의 공이평씨가 쓴 글씨로 하려 했는데 아들들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
잘 쓰던 못 쓰던 어머니의 친필이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전면은 어머니의 글씨, 뒷면은 장남의 글과 글씨, 그리고 뒷면의 아들 손자의 이름은 각자
자필로 새기기로.....
이 모든 글씨를 받아 장손인 성열이가 취합, 디자인 한다.
     
디자인 된 초안
     
그리고 시뮬레이션

<2010. 10. 7(목)> 

오후 3시에 거문예석 사장과 글씨 배열을 위해 약속을 한다.
     
사장은 돌을 손 보고 있다 불꽃이 아니라 쏘는 압력으로 면을 매끄럽게 다듬는다.
     
글씨는 그대로 확대를 하여 간격과 수평을 본다.
     
뒷면도 역시 수평과 간격을 보고.....


<2010. 10. 20(수)> 

     
     
약속 날짜인데 연락이 없어 가보니 파 놓기는 했다
오후 2시에 작업하기로 한다.
 
     
진안에서 온 크레인은 준비를 마치고....
40분이나 늦게 도착한다.
    
     
받침석부터 앉히고....
 
     
줄 묶는 것도 상당한 기술이 필요한 듯....
     
서서히 제자리로.....
     
     
수평 맞추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표지석과 받침석 사이의 공백은 시멘트로 메꾼다.
시멘트 색깔이 거슬리면 나중에  검정 수성페인트를 묽게 돌 색과 맞춰 바르면 된다나


<제막식>

<2010. 10. 23(토)> 


     
비는 답답함을 참고 제막을 기다리고 있다
     
손님맞이를 위해 마당을 정비하고 파라솔 탁자와 의자도 준비완료
     
요놈들은 잠시 사랑채에 옮겨 놓고...
     
아침부터 도시락 준비 등등 바빠서 아침을 못 먹고 막걸리로 대신...
     
기본 세팅된 손님 탁자
     
‘주인공이 먼저 기다리는 법도 있다’
     
예지원의 강영숙 원장님이 도착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이제 곧 제막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전 KBS아나운서실장, 전주방송총국장이셨던 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인 김상준님의 사회로
제막식을 진행한다.
김상준님이 준비한 진행 전문을 소개하면......
笑山 梁漢承 先生 記念碑 除幕式
2010년 10월 23일
여러분 반갑습니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면서 산으로 들로 떠나시는 분들이 많은 이 때, 소산선생의 기념비 제막 식에 함께 모이신 여러분께 유족들과 함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중국 동진시대의 대문호였던 陶淵明 선생의 歸去來辭가 생각나는 날입니다. 歸去來辭 田園將蕪胡不歸이랴 “돌아가자 논밭이 묵어가는데 내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이렇게 시작된 귀거래사의 첫 구절은 이곳에 터를 잡은 소산선생의 마음이었을 겁니다. 도연명은 三徑就荒이나 松菊猶存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정원의 작은 길엔 잡초가 우거져도 노송이며 국화는 그대로 남아있네“ 이렇게 노래했으니 바로 소산선생이 가꾼 오룡산 자락에 황국이 피어나는 이 시절과 어울립 니다. 오늘 기념비 제막식은 제막에 이어 유족 대표의 헌화, 김용태 신부님의 강복이 이어지겠습 니다. 그리고 소산 선생의 약력 소개에 이어, 소산선생에게 부치는 헌시 낭송으로 진행됩니다. - 기념비 제막 제막하실 분은 유족을 대표해서 미망인 이양자 여사님, 김용태 신부님,김환철 신부님, 한국 방송인회 한영섭 회장님, 아드님들을 대표해서 양동주씨, 며느님을 대표해서 셋째 며느리 김우학, 손자를 대표해서 장손 양성렬군입니다.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제가 하나, 둘, 셋 하면 줄을 당겨 휘장을 걷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보시는 비문 전면 소산원은 강암 송성용 선생의 애제자였던 서예가 이면서 한국화가인 미망인 오송 이양자 여사가 쓰셨고 후면 ‘濟州 后人 笑山 梁漢承’이라는 명호(名號)는 소산 선생의 생전 친필입니다 그리고 그 밑의 “이곳은 양한승 옹이 생전에 가꾸어 온 쉼터입니 다. 여러 자손들이 고인의 뜻을 모아 기립니다”라는 비문은 장남이 양동화씨가 썼습니다. 아래쪽에는 가족들의 이름들이 있습니다. 4형제와 7명의 손자들이 자필로 이름을 새겼습니다. - 헌화 손자 종렬군과 명렬군이 꽃바구니를 할아버님 기념비 앞에 올리겠습니다. - 강복 강복은 전주 전동성당 김용태 주임 신부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전동성당은 우리나라 문화재로 1914년 호남지방 최초로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로 사 적 288호입니다. - 소산 양한승 선생의 약력 소개 소산 양한승 선생의 약력을 들으시면서 생전의 선생을 추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산 양한승 선생은 1923년 전라만도 보성궁 득량면에서 제주 양문 혜강공 학포 후손인 부 친 양회남과 모친 죽산 안씨 사이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셨습니다. 선생은 1941년 순천중학교를 졸업한 후 4년간 고향인 득량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습니 다. 1948년 경찰에 들어가 여수 순천 반란사건을 겪으면서 무고한 주민들을 많이 살리면서 조 정래 태백산맥에서는 의로운 경찰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26세 때인 1949년 전국 경찰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해서 경위로 임관되면서 보성경찰서 수 사과장으로 부임했습니다. 1950년 6. 25 전쟁 때는 보성군 율어지서장을 거쳐 이듬해 광주경찰서 수사과장을 역임하 는 등 경찰로 승승장구하시다가 1952년 전라북도 경찰국 비서실장 겸 수사과장으로 부임했 습니다. 이듬해인 1953년 경주 김씨 댁의 규수와 혼인 하셨고, 1958년 경감으로 승진했으나 기쁨 도 잠시 이듬해인 1959년 상배를 당하셨고, 그 이후 공직에서 물러나 건설업을 종사하셨습 니다. 1960년대부터는 모든 사업을 접고 귀거래사를 읊으면서 이곳 자연 속에 들어와 살면서 임 업에 종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1965년 12월 당시 대학에 재학 중이던 미모의 어린 규수, 전주 이씨 집안의 이양자 양과 결혼했습니다.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나무와 숲을 가꾸면서 이 나라 산림녹화사업에 전념하셨습 니다. 선생께서는 전라북도 독림가로 활약하시면서 한국표고생산자협회장과 산림연합회 이사를 역 임하셨고, 우리나라 산림에 맞는 수종갱신 사업과 산림녹화 사업과 병행해서 우리나라의 표 고버섯 재배와 장뢰산삼 재배의 선각자 역할을 하셨습니다. 선생은 이곳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오룡리 오룡산 자락 소산원의 자연을 아끼시면서 유유 자적하시다가 2009년 12월 10일 오후 3시 소천하셨습니다. 미망인 오송 이양자 여사와 네 아드님, 동화씨와 동주씨 동연씨 동제씨와 며느님들, 그리고 7명의 손주를 남기시고 소천 하셨으니, 이 세상 복은 다 누리셨고, 떠나시면서 남은 이들에 게 많은 복을 남기셨습니다. 오늘 이 가을 우리가 이렇게 소산원의 황국과 가을꽃과 가을 열매들, 그리고 꽃보다 아름다 운 단풍 등 자연을 앞에 두고, 그동안 쌓인 정을 나누게 된것도 그분이 남기신 복을 누리게 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산 양한승 선생 약력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 헌시 낭송 미망인 오송 이양자 여사의 시를 한국예절문화원 원장이신 시낭송가 정옥희 선생께서 낭송 하시겠습니다. - 지인들의 추억담 초남이 성지 김환철 신부님 홍콩영사관에 근무 하셨던 외교관 채희준님 대검찰청 국장을 역임하셨던 이용식 변호사님 - 내빈 여러분께 인사말씀 유족을 대표해서 차남 양동주씨가 인사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유족 소개 삼남 양동연 오늘 제막식은 1부에 이어서 2부는 오찬을 드신 후 널마루 무용단장이시며 호남 살풀이춤 보존 회장이신 장인숙 교수님께서 진행해 드리겠습니다.
맨 앞줄에 한영섭 회장님과 어머님 그리고 신부님들....
     
“지금부터 소산원 기념비 제막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한쪽에는 말 안 듣는 사람들..... 끼어 앉기 싫어서....
     
“제막 하실 분들 나와 주세요“
 
     
“하나, 둘 셋 하면 천천히 당겨 주세요”
     
“자~ 하나~~~~”
     
“셋~!!!!!!!”
     
     
모습을 드러낸 비
     
     
지금 보시는 비문 전면 소산원은 미망인 오송 이양자 여사가 쓰셨고 후면 ‘濟州 后人 笑山 
梁漢承’이라는 명호(名號)는 소산선생의 생전 친필입니다 그리고 그 밑의 “이곳은 양한승 
옹이 생전에 가꾸어 온 쉼터입니다. 여러 자손들이 고인의 뜻을 모아 기립니다”라는 비문은
장남이 양동화씨가 썼습니다.
그 아래쪽에는4형제와 7명의 손자들이 자필로 이름을 새겼습니다.
     
손자들의 헌화
     
신부님들의 강복
     
     
그리고 축성
     
그윽하게 깔리는 배경음악과 함께 헌시 낭송
 
     
그 분위기에 감정이 북받쳐.......
     
김스테파노 신부님의 회고담 단골 메뉴인.....
“내 돈 다 따먹었습니다. 법신부님 돈도 따먹었습니다.....”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주차장이 좁다.
    
채영사님의 회고담.......... 어찌나 길던지...........
    
마지막으로 용식이 형님의 회고담
    
내빈께 나도 한마디...... (난 왜 그렇게 스피치가 약하지???)
    
동생 동연이의 가족 소개
    
그리고 어머니의 내빈 소개
    
“자~! 이렇게 제막식 1부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잠시 오찬 후 2부 진행을 맡으실 장인숙 교수님을 소개합니다”
    
딱~! 식사시간에 맞춰 도착하신 천희두 원장님의 인사말
    
50개의 도시락이 모자랄 줄 알았는데 음식은 충분하다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햇볕이 따갑지도 않고 아주 좋다
    
술도 많이 남을 듯싶다
    
우리는 사랑채에서 먹는다. 성렬이와 지 앤
 

- 2부 시작 

    
영렬이가 첫 번째..... 고수는 전북대 한국음악과 겸임교수인 최만님
    
    
잘 들을 줄은 모르지만 갈수록 느는 것 같다
    
할아버지도 흡족하게 내려다보시고...
    
여자 분들은 그러든지 말든지 먹는 것이 우선....
    
“아이고, 이놈 겁나게 잘허네....”
    
진도 민요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광주 시립국악단 소속의 기성희님의 판소리 
한 마당 ‘가을의 추억’
    
앵콜 창으로는 ‘꿈길’
    
감상들이나 할 줄 아나????
    
여자분 들은 구름 속으로 들랑날랑 하는 햇볕이 성가시다
    
너무 즐거운 2부 마당이다
    
쓸쓸한 지필묵......
    
공식적인 2부 마지막 순서, 성금연 가락 보존회 대표이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40호 가야금 산조 보유자인 지성자님의 가야금 산조
    
“계획에는 없지만 특별히 오송 선생님의 살풀이를 청해 봅니다”
    
“괜찮으시겠죠?”
    
    
    
(살아생전에 보여 드릴 것을......)
어머니의 살풀이 춤을 끝으로 행사가 끝난다.
    
“자 차들 좀 빼주세요~~”
    
“너무 감사합니다 회장님~~”
    
“원장님도 고맙습니다”
    
2부 주인공들은 이제야 허기를 달래시고....
    
사회자 김교수님에게는 특별한 선물을....
    
‘노안의 비상’
    
마지막을 요놈들이 장식하네.....
    
비의 뒷면
 
헌시 내용이 빠져서 아직 미완이다

2010년 가을..... 이렇게 아버님의 기념비 제막식을 마치다  

배경의 대금소리는 영렬이가 어제(10/26) 지 방에서 녹음했다고 메일로 보내 온 대금산조.





2013. 11. 30현재 조회수 : 1213

오봉양동제 14-01-02 10:10
답변 삭제  
이렇게 거창할 줄 몰랐는데 엄청 고생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생전에 하시던 일은 내가 자주 얘기해줬는디..이상하네
2010-10-28
윤태연 14-01-02 10:12
답변 삭제  
암튼 볼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아주버님은 이런 기록들을 너무 재미있고 의미있게 잘 정리하시는거 같아요.. 현장의 분위기가 실감 납니다 성렬이 영렬이.. 조카들까지 한 몫했는데 이거 뭐 저희가족은 참 면목이 없습니다.. 성렬이 여자친구는 왠지 성렬이하고 느낌도 비슷한 것이 보기 좋네요.. 결혼식에 갈수 있어야 할텐데요..아참 그리고 이번기회에 저도 아버님께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자세히 알수 있었네요.. 유열아빠는 뭐 하도 얘기해 주는게 없어서요..ㅠㅠ
2010-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