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20 17:32
- Requiem -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2,891  
 
 
2005. 2. 4(금) 오후 1시경 전주 남로타리클럽 사무실
현재 회장직을 맡고 있는 죽마고우 친구 놈이 다가온다.

대규 : “야, 설 연휴에 지리산 가냐?”
나 : “아직 모르겠는데 왜??”
대규 : “순 한 코스 잡아서 한번 데리고 가라”
나 : “그러자, 근데 모레 일요일에 가면 안되냐?”
대규 : “아니 상관없어”

골프광이어서 거의 일주일에 4-5번은 골프만 치다가 볼이 안 맞으면 하체 단련한다고 가까
운 모악산이나 다니던 놈이 지리산을 따라 오겠다는 것을 보니 체력에 자신이 생겼나보다

나 : “스패치는 있냐?”
대규 : “스패치가 뭐냐?”
나 : “이 새끼 스패치도 몰라? 장갑도 2-3켤레는 있어야 하니 내일 11시에 지리산악으로 나와”

2. 5(토) 11:30경 지리산악

일단 배낭 45ℓ, 스패치, 장갑 2켤레를 골라 놓고
산에서 라면 끓여 먹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웠던지...

“야, 라면 끓여 먹으려면 뭐뭐 사야 되냐?”

사장인 재홍이가 가스버너 몇 개를 내 놓는다

나 : “야, 기왕 사려면 좋은 것으로 사. 산에 가서 남들은 다 펄펄 끓는데
니 것은 김 만 퐁퐁 나고 있으면 왕짜증이니....”

그래서 담배갑 2/3정도나 되는 크기의 일제 프리모스로 권하고 라면 3-4개정도 끓일 코펠
도 골라준다

나 : “내일 아침 6시까지 전일 주차장으로 와라 5분 지나면 출발이니 늦을 것 같으면
아예 오지마”

2. 5(토) 밤 10:00경 가게
휴대폰으로 전화가 온다

대규 : “야, 의자 남는 것 있으면 내 것도 하나 가져와라”
나 : “알았어, 배낭에 넣을 비닐도 없지? 그것도 하나 챙겨가마”

11:40경 가게
다시 전화가 온다

대규 : “집에 오니 아무도 없다 처갓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애들도 각시도 없네 전화도 안되고..”
나 : “그래서 내일 못 간다고?”
대규 : “아마 못가기가 쉬울 것 같다”
나 : “알았어 올 수 있으면 오고, 6시5분이 지나면 못 오는 것으로 알고 출발 한다”

어제(2.13) 다른 친구에게 들으니 처갓집에 일이 생긴 게 아니고 술을 먹어서 같이 갈 자신
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술 먹어서 못 간다 하면 다시는 데리고 가지 않는다 할까봐 거짓말을 했다는 것.

2. 6(일) 오후 9:00경 가게
내가 대규에게 전화를 한다

나 : “야 너 오늘 안가기 다행이다 너 따라 왔으면 다시는 안 온다고 할 뻔 했어”
대규 : “왜?”
나 : “내려오는 코스가 길이 없으니 처음 겪는 사람들은 무지 짜증나고 자칫 다치고 하니까”
대규 : “그러니까 좋은 길 놔두고 왜 그런데를 가냐”
나 : “알았어 임마 너를 위해서라도 나중에 편안한 코스 잡아서 데리고 갈게”

그리고,
2005. 2. 13(일) 오후 8:54 가게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온다

‘오늘(2월13일) 박
대규 회장이 별세
하였기에 알려드
립니다.전북대병
원장례식장2층9호
실‘

소름이 쫘악 끼치며 순간 정신이 멍 해진다
........................

도저히 믿기질 않는다.

개스버너를 아직 못 써먹어서 라면 끓여 먹을 욕심에 골프 친구와 둘이서 전주 근교 운장산
을 갔다는 것이다
고갯마루에서 시작하니 쉬엄쉬엄 갔다 와도 겨우 왕복 3시간이면 넉넉한 코스다
라면을 먹으려고 보니 개스랑 코펠만 챙기고 정작 버너는 빠트리고 가서 그렇게 소원이던
라면은 끓여 보지도 못하고 생라면으로 씹어 먹고 말았단다.
거의 7-8부 이상 하산하여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뒷목이 뻐근하다며 주저앉다가 바
로 쓰러져 버렸다한다
혈압은 있었지만 무척 건강하고 건장했던 놈인데.....
그러게 그렇게 내가 담배를 끊으라 했건만......
헬기가 동원되어 전북대병원 응급실에 도착 했을때는 1시간여가 흐른 뒤였고 이미 손 쓸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한다

내일(2.15)이 출상이다
이 만큼 밖에 슬퍼하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놀란다
知天命이 지나니 죽음에 대해 순응 하는 건가??
이제 그 싸가지 없는 놈에게 또 가봐야지.....
공술로 잔뜩 취해봐야지.....

따뜻한 봄이 오면 그 자식 묏동 앞에서 기어이 라면을 끓여 먹어야겠다
지가 아무리 양이 크다고 해도 둘이 4개 끓이면 충분하겠지......



생전의 고인과 부인 (2003. 10. 26 불일암터에서...)
 
2013. 11. 30현재 조회수 : 1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