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7-06 23:23
전주 콩나물국밥 이야기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3,154  
2016. 7. 6(수)
 
전주콩나물국밥은 크게 나누어 보면 두 종류이다
말아 주는 것과 끓여 주는 것.
 
지금 현재(2016년)는 그 경계가 모호해져서
말아 주는 데에서도 끓여 주기도 하고 끓여서만 팔았던 곳이 말아 주기도 한다.

간단히 말해,
말아 주는 것은 미리 육수를 솥에 끓여 찬밥을 뚝배기에 담아 국자로 국물을 떠서
토렴질(뚝배기에 국물을 넣었다 딸기를 반복하여 밥을 뜨겁게 그리고 국물이 밥알에 배게...)을
한 다음 거기에 갖은 양념을 수저로 얹혀서 내는 방법이고,
끓여주는 것은 뚝배기에 찬밥, 콩나물(익힌 것), 갖은 양념을 넣고 내용물이 펄펄 끓을 때 내는 방법이다.
 
어느 것이 맛이 있느냐는 개인의 입맛에 따라 다르겠으나
현재의 추세는 대부분 말아주는 경향으로 가고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은 끓인 것을 더 선호하기는 한다)
하지만 지금은 말아주는 국밥집에서도 토렴질은 거의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 시간이 필요하고 힘들고 귀찮거든....
 
그럼 본격적으로 전주콩나물국밥집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1960년대(그 이전에는 내가 어리거나 안 태어나서 모르겠고...)에는
전주콩나물국밥 하면 ‘삼백집’을 떠올리지 않고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욕을 했다는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하고,
하루에 삼백 그릇 이상은 팔지 않았다 해서 삼백집이라 이름 붙였다는데..
그건 좀 과장이 심하고...
암튼 그 시대에 전주 콩나물국밥의 대표였고 끓여주는 콩나물국밥집이다
 
 
 
현재도 예전의 그 자리에 있기는 하지만 2~3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정통성을 잃은 지는 오래다
이제 정서적으로 전주 사람들은 삼백집을 향토 음식점이라 생각치 않는다
 
뒤이어 한일관과 삼일관이라는 콩나물국밥집이 생기면서
70년대의 전주의 콩나물국밥집은 삼파전을 이룬다.
여기에서 삼일관은 선지해장국을 하면서 약간의 정통파에서는 벗어나지만
삼일관은 지금까지도 대를 이어 원 주인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나는 요즘에도 삼일관을 가끔 이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침에도 소바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콩나물국밥보다 소바국물이 훨씬 더 속풀이가 되거덩~~)
 
 
 
여기도 삼백집과 같이 예전의 그 자리이다
주인도 아들이 이어서 그대로 한다
 
근데 작년까지만 해도 소바가 4,500원이었는데 5천원으로 올랐네
 
 
 
한일관은 원래는 고사동에 있었는데 지금은 어은터널 부근
중화산동으로 이사를 갔다
고급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맛은 둘째 치고
좀 어려운 손님과 해장을 할 경우 많이 찾는다.
 
60~70년대는 이렇게 끓여주는 전주 3대 콩나물국밥의 아성에 대적할 자가 없었다.
그리고 전주콩나물국밥 하면 그냥 이 세 군데였다
그리고 지금도 씩씩하게 잘 되고 있고...
 
 
지금부터는 전주에서 그래도 이름 있는 콩나물국밥집을 내 아는 성의껏 기억해 보겠다.
어디까지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니 착오가 있을 수 있겠지~~?
 
70년대 중후반으로 가면서 남부시장을 시작으로 말아주는 국밥집이 등장한다.
대부분 남부시장의 말아주는 콩나물국밥하면 ‘현대옥’을 떠올리지만
‘현대옥’은 뒤에 생겼고 ‘3번집’이 원조이다
 

 
 
영선상회라고 써 있는 가게가 예전의 '3번집' 자리이다
이 자리가 지금의 ‘3번집’ 사장의 장모님이 시작했던 최초의 자리이다
 
‘3번집’ 상호의 유래는 특별히 무슨 뜻이 있는 게 아니고
그 때 이 부근에 지금은 송천동으로 이전해 버린 생선야깡(수산물 경매장)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도매상들의 상호는 대부분 번호로 붙여 몇 번 집 몇 번 집 했는데
그 중 생선 3번집과 친해서 그냥 ‘3번집’으로 했단다.
 
1971년에 개업을 했는데 그 때는 대포집 같이 시멘트다이에 일자로 6~7명 앉으면 꽉 찼다
내가 고딩 졸업하고 국밥 먹으러가서 가서 벽에 영화배우 노주현이가 한 싸인을 봤는데 어찌 보면
전주 유명인 벽싸인의 원조도 될 법하다.
이 ‘3번집’ 국밥의 특징은 토렴 뒤 간을 쇠고기장조림과 새우젓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장의 의미 보다 한 끼 식사의 의미가 강했다.
숙취로 시달려 온 시장사람이 
 
“속 아프니 밥은 거지깔로 쬐끔만 넣어주세요”
 
그러면
 
“쯧쯧 지랄낫다고 퍼마시고 ...”
 
싫지 않은 구박을 주며 밥은 조금만 넣고 국물을 시원하게 해서 주고는
밥이 적으니 허기 질까봐 종재기에 생계란 깨 넣어
육수 솥에 뜨거운 김으로 살짝 익혀서 덤으로 준 것이
지금의 콩나물국밥 서비스 사이드 메뉴인 수란의 원조이다
 
80년대가 되어 ‘3번집’의 손님이 많아져 지금의 장소로 확장하여 옮겨 오면서
딸(지금 사장 부인)이 와서 도와주게 된다.
딸의 의욕이 지나쳐 다른 메뉴를 도입하게 되면서 ‘3번집’이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위쪽이 돌아가신 할머니
아래가 딸...
 
해장을 하러 가서 딸이 국밥을 말고 있으면 나는 그냥 나와 버린다.
참 희한하다 똑같은 재료에 똑같은 초식으로 마는데 딸이 말아 주는 것은 맛이 없다
내 기분이었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딸이 맡아 하면서 내 발길은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3번집’은 90년대를 막 지나서 영업부진으로 가게는 세를 주고 간판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는 이 장소는 성옥식당이니 다모아니 대포집들이 거쳐 간다.
 
 
그러던 2014년 9월 1일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 그 자리에 ‘3번집’이 다시 오픈을 한단다.
여기도 한옥마을 ‘훈짐’을 제대로 받은 모양~
기대 반 의혹 반 기다렸지
바로 그 딸이 리모델링을 하고 다시 오픈을 했다
나랑은 개인적으로도 잘 아는 사이니 맛은 차치하고라도 반가웠다
 
 
 
왼쪽이 현재 딸의 모습~
 
날 잡아 찾아갔다
밑반찬이 콩나물국밥집 답지 않게 호화롭다
국밥 맛도 할머니만큼은 아니지만 옛 맛에 충실했다
추억의 맛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흠이 있다면 6천원......
왱이집이니 어디니 6천원으로 올린 지 오래 되었지만 남부시장에서는 이게 아닌데?
 
 
 
새로 단장한 '3번집'
 
하지만 그 이후로 비록 비싸지만 전주에 손님이 오면 꼭 그리로 모시고 갔고
(나는 개인적으로는 콩나물국밥 안 먹는 다니깐? 4천 원 정도 하면 모를까)
갈 때마다 모두에게 입에 발린 말이 아닌 진짜 호평을 들었다
 
 
 
2015년 10월에 서울 손님 모시고.... 이때만 해도 맛깔스러웠지....
 
근데 내 속으로는 말 못할 비밀이 있었다.
내가 대 놓고 말은 안했고 또 그 딸도 나에게 묵계적으로 말은 안했지만
여럿이 가면 내 것만 살짝 토렴을 해주는 것이었다.
토렴의 목적은 앞에서 말했듯이 밥을 뎁히고 밥알에 국물을 배게 하고 하는 역할도 있지만
또 중요한 게 뚝배기를 뜨뜻하게 해서 국밥이 쉬 식지 않게 하는 역할도 하거든....
근데 여럿이 가면 언제 그 짓을 다 하고 있냐고....
그래서 국밥을 만 뒤에 연한 개스불 위에 올려놨다가 내 오는데 자칫 시간을 못 맞추면
끓어 버릴 수도 있고,
원래의 목적인 국물과 밥알의 어우러짐은 아예 없는 것 아닌가
뚝배기를 데울 다른 편법으로는 뜨거운 물에 담가 놨다가 밥을 마는 것인데
그 또한 물기를 닦아 내려면 바쁠 때는 일이니...
 
콩나물국밥집의 특성상 오후 3시면 문을 닫는 ‘3번집’은 손님이 좀 있었기는 하지만
아주 잘 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예전의 ‘3번집’을 알았던 나 같은 사람이 서서히 오면서 소문이 나면서
한옥마을 바람에 편승을 해서 늘어나리라는 바램은 다분히 가지고 있었겠지
 
그러던 2015년 11월.... 그러니까 재 개업하고 1년 2개월이 지날 때
백종원의 삼대천왕에 출연을 하게 된다
그 이후로는 말 안 해도 알겠지
 
 
 
 
방송이 나가자 난리가 났다
 
그렇지 않아도,
손님이 미어지지 않아도 토렴사기를 하는데 이런 상태에서 토렴은 언감생심
더구나 손이 모자라니 주방을 아무나 보는 거.... 
젊은 아들이 봤다가, 종업이 봤다가...
 
뭐 그래도, 뜨내기라도 계속 몰려오니...
나를 비롯한 남부시장 사람들과 예전의 단골들에게 이제 ‘3번집’은 없다.
 
 
이제 ‘현대옥’ 이야기를 해 볼까?

전주에 살아도 3~4번 이상을 가봐야 찾아갈 수 있을 동 말 동한
남부시장의 구석의 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특징은 육수는 ‘3번집’과 비슷하지만
 
토렴 뒤에 생으로 살아있는 파, 마늘, 고추를 즉석에서 다져서
국밥위에 한 주먹 올려주면 그 자극적인 맛~!
식사의 의미보다 해장 속풀이의 의미가 강한, 국물이 살아있는 국밥이다

‘3번집’ 보다 5~6년 늦게 시작을 했으나 어느 순간 앞질러 버렸었다
 
 
 
'현대옥'이 있는 골목
오후가 되어 불꺼진 '현대옥' 간판
 
‘현대옥’을 알린 주역은 전주의 흘러간 건달들이 주를 이룬다.
한때, 거짓말 쫌만 보테면 늦은 아침(건달들은 일찍 안 일어나거든~)에
여기를 오면 시내의 헌다하는 주먹들을 거의 볼 수 있었다.
식대 계산은 선배가 되었건 후배가 되었건 먼저 내는 사람이
나머지 모두를 계산해버리는 게 여기의 법도고 미덕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한 선배의 말을 빌려보자
 
“씨발 저그는 멀국에다 아편 넣는 개벼~~”
 
아침 6시에 문을 열어 오후 2~3시에 문을 닫는 ‘현대옥’에서 국밥이 가장 맛있는 시간이 있었다.
대략 오전 10시경인데 그 이유는 손님에 따라 오징어를 넣어 달라면 오징어를 데쳐야 하는데
따로 물을 끓여 데치기가 번거로우니 국밥 육수에 데쳐서 줬는데
 
그 오징어 맛이 육수에 조금씩 조금씩 배다가
10시쯤이 되면 절정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근데 그 이후가 되면 이제는 뜹뜹한 맛이 돌기 시작하여 국물 맛이 반감되는데
이런 맛 까지 구별하려면 어지간한 단골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현대옥’을 잘 찾지 않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 줄서는 것이 싫어서이다
수용인원이 여남은 명으로 잘못 시간을 맞추어 가면 짧게는 3~5분
많게는 10여분을 기다려야 했다.
둘째, 여편네가 너무 말이 많아.... 국밥 말면서 끊임없이 씨부린다.
이런 것들이 싫어 잘 안 갔다
 
근데 기다리는 시간 때문에 또 하나의 사이드 메뉴가 등장한다.
무료하니 여러 명이 가면 한명이 남아 순서 기다리고 나머지는 시장을 뒨전거린다.
방천가로 가면 김 굽는 가게가 있는데 간 김에 김을 한 봉다리 사온다
물론 ‘현대옥’에서 주는 김도 있다 잘라서 포장된 서너 장 들어있는 꼬마 김,
근데 그건 맛이 없으니...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기다리는 줄 상관없이 ‘현대옥’을 가려면 김 집부터 다녀간다.
너도 나도 한봉다리씩 천 원짜리 김을 사들고 간다.
먹다 남으면 놓고 오고 그 뒷사람이 앞 사람이 남긴 김 자연스럽게 먹고...
 
이것이 이제는 모든 콩나물국밥집에서 김을 주는 원인이 되었다

그렇게 ‘현대옥’은 남부시장 말아주는 대표 콩나물국밥집으로 이름을 굳혔다
 
그러다가 2009년도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남부시장에서 싸전을 크게 하는 손사장과 그의 친구가 ‘현대옥’을 인수하게 된다.
1억 3~4천인가에 상호, 레시피 등등 일습을 인수를 한다.
초기에는 그 자리에서 전통의 맛을 지키며 서서히 확장을 해 나간다커니....
지점을 내줘서 브랜드화를 시켜야한다커니....
갑론을박 하는 것 같더니 후자로 결정되었는지 ‘현대옥’ 지점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한다.
모든 지점이 다 잘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호를 가져가려고 줄을 설 때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손사장은 아중리에, 그 친구는 중화산동 본점을 각자 운영하고
분점에 대한 로열티는 나누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내력이야 내 알바 아니고 그럼 그 맛은 과연 어떨까?
나는 전혀 모른다.
2009년 그 이후 ‘현대옥’ 국밥을 먹어 본 적이 없으니
하지만 중화산동 본점 같은 데는 24시간 영업을 하며 기업화되어가고 있다.
 
 
 
중화산동으로 옮겨 간 '현대옥' 본점
 
 
 
남부시장 최초의 ‘현대옥’자리
지금도 그 자리에 있지만 현재는 어느 한 분점으로
보통명사의 ‘현대옥’이지 고유명사의 ‘현대옥’은 아니다
 
젊은 부부가 얻었나보다
예전에는 이렇게 한가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남부시장의 토렴해주는 ‘현대옥’은 사라졌지만 아직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중앙시장 태평동 오거리에 가면 ‘오거리콩나물국밥’집이 있다
생긴 지는 대략 15년 전 전후가 될 것이다.
여기 주인아주머니가 ‘현대옥’에서 일했던 아줌마인데
초식과 레시피가 초기 ‘현대옥’과 같다 맛도 가장 비슷하다
썅~!  말 많은 것 까지 같다
지금 현재 토렴을 해주고 있으며 값은 5천원이다
 
 
 
태평동에 있는 '오거리콩나물'
 
‘현대옥’에서 일했던 아주머니가 차린 콩나물국밥집이 또 있다, 아니 있었다.
남부시장 내에 ‘명성옥’이라고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가 돌아가시고
젊은 딸이 ‘다올콩나물국밥’이라고 상호를 바꾸고 깔끔하게 영업을 하고 있다
토렴을 해주고 있으며 5천원이다
 
 
 
남부시장 청년몰 올라가는 바로 옆에 있다
 
 
 
다올콩나물국밥집 내부
 
‘현대옥’의 토렴은 사라졌지만 ‘현대옥’을 이어받은 토렴은 아직은 살아있다.
 
 
이제 ‘왱이집’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왱이집’을 전주의 말아주는 콩나물국밥의 효시로 생각하고 있다
‘삼백집’과 대응하는 상징적인 전주 콩나물국밥집...
굳이 반론하지는 않겠다.
지금 현재 전주에 500명 데려와서 당장 콩나물국밥 대령하라하면 떠오르는 데가 ‘왱이집’ 밖에 없으니....
‘왱이집’의 역사는 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왱이집’이 어디 있어요? 하고 물으면
 
“‘꼬꼬통닭’ 바로 옆에 있어요”
 
그러면 어지간한 전주 사람이면 다 알았다
 
지금은 ‘꼬꼬통닭’집 어디 있어요? 물으면
 
“‘왱이집’ 맞은 편 골목이요” 그러면 통한다. 꼬꼬 사장님 폭폭헐 노릇이다
 
어쨌든 그 시절(80년대 중반) ‘왱이집’이 꼬꼬통닭 옆으로 이사했을 때만 해도 확장이전이었고
그전에 동문사거리에 있을 때는 완전 영세한 이름 없는 분식집 수준이었다.
그래도 꼬꼬 옆으로 이사하면서 당구장 배달(현재 여 사장님이 쟁반에 이고)도 다녔고...
우리는 간혹 꼬꼬에서 통닭 먹다가 옆에서 콩나물국밥 배달 시켜서 먹기도 하고 그랬다
 
사실 ‘왱이집’이 그때도 크게 맛이 있지는 않았다
‘3번집’이나 ‘현대옥’에 비하면 맛으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는데
마케팅 전략이 뛰어난 것 같다
 
택시기사가 손님을 태우고 오면 그냥 보내는 법이 없고...
나중에는 개인택시건 영업용택시건 기사들한테는 국밥 4천 원 할 때 2,800원을 받았다
기사라고 말만 하면 천원을 깎아서 3천원만 받고 밖에 자판기에서 커피 뽑아 드시라고 200원을 내줬으니...
나도 심심하면 기사라고 하고 만 원짜리를 주면 뻔히 알고도 웃으며 기사 취급해서 거슬러 줬다.
시키지 않아도 여분의 콩나물건더기를 한 대접씩 갖다 놨으며 수란도 달라는 대로 더 줬다
‘왱이집’ 이름이 알려지기도 전에 미리 예측이나 했듯이
‘왱이집’ ‘옹이집’ ‘왕이집’ 등등 유사 상호를 다 상표 등록 할 만큼 촉이 있었다.
지금처럼 커지지 않았던 90년대 중반쯤 친구 두 명이랑 셋이서
일요일 아침은 항상 ‘왱이집’에서 먹을 때가 있었다.
그 때 설중매가 처음 나왔을 때인데 항상 2병을 사가서  셋이서 반주로 나눠 마시곤 했는데
두어 번 그러고 나니 우리가 나타나면 아예 잔(설중매에 어울리는 잔)을
3개 준비해서 놔줄 정도로 생각하며 장사를 하는 타입이었다.
 
또한 가족들과 콩나물국밥을 먹을 요량이면 사실 ‘3번집’을 가겠어? ‘현대옥’을 가겠어?
(토렴을 제대로 해주는 집은 4명이 가면 처음 사람 다 먹을 때 쯤 4번째 국밥이 나온다)
맛을 차치하고 분위기상 ‘왱이집’ 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번창해 가고
그 뒤로 단체들이 들면서 나의 발길은 갈 이유가 없어지게 되었다
이제 ‘왱이집’은 그 주변 일대를 모두 사들여 주차장으로 만들며 왕국을 만들고 있지만, 
브랜드 자체로 유명하고 전주콩나물국밥집의 대표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내 기준에서의 맛 집은 아니다.
 
또 하나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면 ‘왱이집’과 최근의 ‘현대옥’이 전주 대내외적으로
전주콩나물국밥이라는 해장국을 단순한 해장국이 아닌
한 끼의 훌륭한 식사로 자리매김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외에도 남부시장 안에는 ‘운암식당’이니 ‘그때그집’ 이니 ‘우정집’이니
오래된 콩나물국밥집이 많고 모두 그저 그런대로 되고 있다
 
 
 
운암식당 내부....
 
 
 
'그때그집'과 '우정집'이 있는 골목
 
 
2015년 여름
‘미가옥’이라는 신성이 등장한다.
보아하니 체인점이다 어디분점 어디분점 하는 걸 보니...
우리 집하고 가까운 중화산점이 개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허실 삼아 가 봤다
깔끔하다 성의와 은근한 괘미가 있다
오리지날 토렴이다
5천원이다.
 
 
 
'미가옥'에서 제대로 토렴 하는 중...
 
 
 
미가옥 국밥
 
갈수록 손님이 는다.
좁은 길인데 점심 즈음 집에 가려면 짜증이 난다
교통유발부담금이라도 내놔야하는 거 아냐...
 
 
하지만 짜증 속에서도 노력하는 주인이 갸륵하다
밀려도 더 잘 되라~~
 
그렇다고 모든 미가옥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중화산 미가옥이 그렇다는 말 (다른 데는 벌써 문 닫은 데도 있다)
 
40대? 중반쯤 되었을까 결백한데다가 성깔 있게 생겼다
보아하니 완벽주의자 같다
남편은 어느 금융기관 노조에 있나보다(개업할 때 화분 리본들을 보니...)
남편의 직업은 왜 들먹이냐 하면 궁색해서 먹고 살자고 하는 장사가 아니고
나름 철학이 있고 추구하는 바가 있으면 초지일관 할 가능성이 많으니...
암튼 싹수가 있다
 
이번 내 조카가 친구들을 데리고 전주에 놀러 오는데 콩나물국밥집을 소개해 달라길래 여기를 알려 줬다
 
음식의 맛은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다
내가 맛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맛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꼭 맛으로만 따질 것도 아니다
 
전주 콩나물국밥 이야기를 쓰면서 MSG에 대해 여러 번 쓰려고 망설였지만
별의미가 없어서 안 썼다 코 묻으나 겨 묻으나... 50보 100보니...
하지만 맛도 맛이지만 음식은 그 음식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있다
본연의 초식이 있다
전주 콩나물국밥의 제대로 된 초식은 나는 ‘토렴’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라면
남부시장 ‘다올’
태평동 ‘오거리’
중화산동 ‘미가옥’ 
 
이 밖에도 물론 토렴하고 맛있는 집이 있겠지만
내가 모르니...
 
이상하게도 우연인지 토렴해 주는 곳에는 모두 모주를 안 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