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6-06 15:47
내 기억 속의 여자들(1~5화)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2,363  
마작에 '엎어!' 라는 용어가 있다
내 패를 엎어 놓으면서 하는 말인데 
이러는 순간 
나는 이 판에서 내 패를 바꾸지 못하고 
다른 모든 경우의 수는 없어진다. 
그 대신 남의 패는 마음대로 볼 수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외길 수순으로 끝나는 한 판이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성이 연관된 내 인생의 한 판에서 
'엎어!'를 외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성에 눈을 뜬 이후 처음으로 
철저하게 혼자다 주위를 둘러봐도 여자가 없다 
외롭고 허전하다기 보다 
비로소 고요하고 잔잔하다
그래서 남의 패를 보듯 객관적으로 돌아보려는 것일까?

훌륭한 선배들 덕분에 14살 중딩 때부터 
전주의 일명 '뚝너머'라는 사창가에 굴려진 놈이 
뭐 얼마나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이 있을까마는
스스로 금기시 했던 주제를 끄집어내서 이렇게 글까지 
쓰는 데에는 이제 진짜 대단원을 접으려는 것일까?
그러려면 별 수 없이 '팩션'이라는 아주 치사한 가면이 
필요하겠다

이 글에서 몇명의 여자가 등장 할 지는 모르겠다
아직 대상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으니....
하지만 제외될 대상은 확실하다
나와 같이 10여년 이상을 같이 산 두 명의 여자는 기억에 
없어서 쓰지 않는 게 아니고, 쓸 게 너무 많아서도 아니고
최소한의 예의상? 암튼 이런저런 이유로 쓰지 않겠다.


시작은 했지만 이 게시판의 이 글은 
영원히 마무리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막상 쓰려니 누구부터 써야 할 지...
순서를 어떻게 정해야 할 지....

서론이 너무 기네
'에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키는 대로 쓰자'
그래서 말인데 앞에 붙인 일련번호(NO)는 뜻도 의미도 비중도 없다
단순한 갯수일 뿐이다.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이 글의 제목은
'내가 좋아했던 여자들' 이었는데
생각을 정리하고 막상 쓰기 시작하니
마음이 바뀌었다
'내 기억 속의 여자들' 로...



1. 내 생애 최고의 키스

‘PJA’ 

나는 키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첫 키스 때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이다

중3 때이던가?
고향.... 정확히는 아버님의 고향인 전남 보성에서
동네 여자아이와 생애 첫 키스(사창가의 여자들은 
절대 키스 같은 것은 하지 않음)를 했는데
아~~!!! 상추쌈의 쌈장 된장냄새가 너무 지독했었다.
그걸 참고 일정 시간을 견딘 나는 참 예의바르다
나중에 넌지시 물으니 저녁으로 상추쌈을 먹었다고 해서
그 냄새가 된장냄새인줄 알았는데 그 날 이후
키스를 할 때면 늘 냄새에 무의식적으로 대비한다.
그러니 무슨 무드가 잡히겠는가!
더 나아가 지금까지도 상대의 입 냄새에 유난히도 예민하다
반대로 나에게서 날 입 냄새에도 항상 신경을 쓴다.

그런 나에게 지금까지도 느낌이 남아있는 키스 순간이 온 것이다
따지자면 키스라기보다 단순한 뽀뽀였지만 주변 여건이 가능했다면
냄새를 따지지 않고 주저 없이 깊은 키스로 이어질 수 있는 그런 
절실함이 서로에게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1990년대 초중반 쯤?
여름이 거의 지나가고 간간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는 9월 중순의
해질녘 금정역이었다.
그녀는 A시로, 나는 전주행 기차를 타러 수원으로 가야하는 이별의
순간이다 내가 타야할 수원행 전철이 들어오고 있고 있는데....
우리는 전혀 헤어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러시아워는 아니어도 주말에 환승역이니 만큼 많은 인파가 붐비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인파마저 그냥 배경음악 같았다

우리는 점심때 한남동에서 만났다
단둘이 만난 게 아니고 십수 명이 만나는 모임이다
그리고 그녀와는 두 번째 만남이다 첫 번째도 
몇 달전 강원도에서의 같은 모임이었는데 사실 그때부터 뭔가의 교감이 있었다.
한남동은 수제소시지 맛집이었는데 음식보다는 서로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가까스로 다른 사람들이 눈치 못 채게 강남터미널 부근에 약속을 잡았다
내가 강남에서 고속버스로 전주에 내려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강남에서의 시간은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고속버스 표를 무르고 수원에서 기차를 타기로 한다

전철이 서서히 정차를 한다
서로의 눈빛은 헤어지기 싫음이 분명하지만, 또 더 같이 있지 못 할 이유도 없지만
둘 다 이 준비 안 된 아쉬운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주 가벼운 입맞춤이 지나간다

약간의 건조함과 까칠함이 전해져 왔지만 마음 속의 느낌은 전율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고 전철 안으로 비비고 들어간다.
전주까지 오는 내내 그 미묘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나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다

그로부터 7~8개월 후 A시의 J역 부근의 모텔 같은 호텔에서
그녀와 SEX가 이루어진다
아~~  하지 말 것을 그냥 그 날의 그 키스만 간직 할 것을.....

그녀는 통통하고 이뻤다. 가무잡잡한 남방계 마스크였고....
착한 심성이었다
이 후로 2~3년 정도를 더 간간이 서로의 지역을 오가며 만났지만
SEX는 딱 한번 뿐이었고 헤어질때 간간이 키스를 했지만
그 날의 감흥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다시 키스를 하고 싶다면 이런 키스를 하고 싶다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적당히 입에서 풍기고....
싸구려 분 냄새가 천한 본능을 자극하는 농익고 질탕한 작부와의 키스......  *



2. 어둠 속의 정사

‘HKH’

그녀는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나는 끝끝내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9살 차이가 났다
나는 30대 초반 이었고 그녀는 40대 초반이었다

나는 모 금융기관의 I시 지점에 근무를 했었는데
그녀는 그 부근의 H병원의 원장 부인이었다
우리 지점에서는 상당히 큰비중의 고객이었다
나는 그 당시 담당 업무가 채권관리여서 대출도 없고 
예금만 있는 그녀와는 업무적으로는 만날 일이 없었다.
그런데 회사 밖에서 만나자는 요청이 지점장을 통해서 
들어왔다 지점장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상의할 일이 있다니
들어보고 중요한 고객이니 잘 상담을 해주라는 것이었다

회사 인근 다방에서 만나보니 밖에서 만나자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 고객이 아닌 다른 여자 2명과 같이 있었고
모두 의사 부인들이었다 
셋이서 돈을 합쳐 폐차장 사업에 투자를 했고 떼일 위기에 있는데
고리의 사채로 빌려줬기 때문에 사회적 이미지가 있어 공식적으로 변호사나
법무사에 상담하기에는 부담이 가 결국 나에게까지 온 것이다

(서론이 기네.... 빨리 가자....)
투자한 돈은 조폭 손을 빌리기 전에는 어려우니 포기하라 했고...
2~3번의 공식적인 만남이 있은 후에 결과는 어찌되었든 그 동안 고마웠다고
저녁식사나 하자는 것이었다
그때 저녁식사 메뉴가 뭐였는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세 여자들 모두 술을 그다지 잘 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중에도 나의 사모님이 
제일 못 마시는 것 같았다 나야 그때만해도 술이라면 말마디 할때니 나수 했겠지

우리의 2차 장소는 I시에서 60~70키로 떨어진
Y온천의 어느 호텔 지하 나이트 클럽이었다
널찍한 우리만의 룸으로 안내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베리나인 골드'가 나왔다 

이 상황이 어찌된 건지 되집어 보면
식사 장소에서 이야기 중에 누가 나에게 사교춤을 출 줄 아냐고 물어봐서
아는 정도가 아니고 여자스탭까지 다 하니까 쌩딩이로 전혀 춤을 모르는
여자도 내 손에 오면 다 출 수 있다고 말했더니 저녁식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나의 사모님이 서둘러 운전을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때만 해도 노래방이나 가라오케 기계가 아예 없던 시절이라
룸이라고 해도 바깥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놀 수 밖에 없었다
두 명의 여자는 많이 춰 본 솜씨로 약간의 리드로도 훌륭하게 따라 왔지만
나의 사모님은 그야말로 쌩딩이였다

그리고는 그 날 이후로 나는 그 두 명의 여자는 다시 보지 못했다.

그리고 또 그 날 이후로 나의 사모님은 거의 매일 우리 사무실을 출근하다시피 했다
오면 지점장실에서 차를 마시고 잠시 머물다 가는데 나와는 가벼운 인사 외에는 
대화도 없었다. 그러기를 한 달 여????
여직원이 넘겨준 그녀로부터의 전화를 받는다
"양주임님 3번 전화 받아보세요~~" (그 당시는 핸폰은 커녕 삐삐도 없었던 시절이니)

"여보세요~"

"동생~! 왜 나를 보면 아는 체도 안해?"  

그 동안 업무적으로 여러번 통화를 했지만 '동생'이라는 지칭은 처음이다 그리고 늘 인사 했는데...

"지금 시간 있으면 잠깐 올래?" (느낌상 못하는 술을  한 모양이다)

불과 1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오라고 한 장소는 병원의 3층 안집이다.

그 안집을 가 본 것은 그로부터 7~8개월 후 쯤일 것이다


1:1의 만남을 이렇게 시작했다
채권관리란 업무가 밖으로 도는 일이니 주로 점심을 같이 했고
퇴근하고는 전주에서 내 개인 사무가 바쁘니 시간을 내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누나'라 부르라 했지만 '사모님'을 고집 했다

나는 뭐 급할 일도 없고....
서두를 일은 더 없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무척 어려운 말을 너무 쉽게 꺼낸다

"동생, 쥐도 새도 모르게 남자하나 소개 시켜줘라"

"네? 무슨 말씀?"

"깜깜한 방에서 서로 얼굴도 보지 말고 단 한번의 밀회로 끝내기"

"그렇게 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동생이 찾아봐"


나는 당연히 그런 사람을 익히 옛날부터 알고 있었지만 뜸은 좀 들여야지....


그들은 그렇게 만났다
지금 U성당이 있는 H장여관이다
그 여관의 구조는 특이했다 2층 홍실, 3층에 청실 하나씩이 창문이 전혀 없는
건물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어 불을 끄면 완전 암흑이다

남자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고 그녀에게는 3층의 청실을 내가 알려줬다
여자는 약 10여분 늦게 들어갔다
그녀가 원했던대로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격렬했다

그게 모르는 사람끼리의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아는 사람으로 만난다

차속에서.....

그녀의 집에서....

체취가 특이했다 결코 좋은 냄새는 아니었지만 그리 싫지도 않았다

중키에 약간 살집이 있었고 머리숱이 너무없어 늘 고민이었다

미인형인데도 그렇게 마음이 가지는 않았다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까지 였다.     *


이글 쓰면서 다음 글의 주인공이 생각났다



3. 내가 처음이었던 여자

'JSJ'

나는 20여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름 고수했던 원칙이 있었다.
출퇴근 때의 인사와
최소한의 업무적인 대화 외에는 여직원들과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그 시절의 나는 '불필요한 낭비'가 싫어서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밖에서 조차 여자를 돌보듯 했던 것은 아니다
가령 예를 들어 내 고딩때 생활기록부를 보면
'교내 생활은 정상이나 교외 생활이 심히 의심스러움' 
이렇듯 나는 어릴 적부터 안팎이 좀 달랐다

I지점에는 여직원이 3명 있었다. 
그녀는 그중 키가 가장 작았다 아니 그중이 아니고 
내 기억 속의 여자들 중에서도 제일 작았던 것 같다

그녀는 키가 작고 뒷목이 절반 정도 보이는 단발머리였는데 
목 뒤쪽 우측인지 좌측인지에 콩알만 한 검은 점이  항상 눈에 띄었다
얼굴은 가무잡잡했고 예쁘다기보다는 이목구비가 작아 그저 여성스러웠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가 진심으로 죄책감을  느꼈던 
몇  안 되는 여자 중 하나였다

말 수도 적고 아주 조용한 여자였는데
어느 날 아주 황당한 상황을 연출 한 것이다

"왜 H병원 아줌마는 자꾸 양주임님 한테 전화를 한대요?"

이때쯤이 내가 I지점으로 가서 1년 정도가 흘렀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앞에서 말했다시피 그 동안 모든 여직원들과 의례적인 인사나 
업무 외적인 대화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돌발적인 질문 아닌 질문은 
너무 뜻밖이었다.
전화 상대에 대한 호칭도 늘 '사모님' '사모님' 하다가 
'아줌마'로 격하 시켜버리고...

이때는 휴대폰은커녕 삐삐도 없었던 때라서 연락을 하려면 
사무실 전화밖에 없었는데 그녀가 맡은 업무가 창구가 아닌 
서무부서라서 거의 외부 전화를 독점해서 받아 키폰으로 
'김대리님 2번 전화 받으세요'
'차장님 3번 전화 받으세요' 하며 교환수를 겸했으니 
그 동안 H사모님의 처음 업무적인 전화에서 
사적인 전화로 변해 온  야릇한 변화를 관심 있었다면 알아차렸으리라
하지만 그걸 어려운 나에게 대 놓고 말한다는 것은 
관심 이상의 것이었고 발톱을 잔뜩 숨기고 있는 하이에나 같은 
내가 그 정황을 어떻게 이용했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뻔한 스토리다

그녀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언제 어디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에 비해 뭔가 정상이 아닌 듯한 본 게임은 너무 생생하다 
내가 처음이라고 항변하는 시트에 묻은 피와는 
상반되게 이해 못 할 이상한 정황이었다.

나는 총각시절부터 내가 처음이라고 가장하려는 여자들을 여럿 봐왔다 
비교적 양이 적은 생리의 시작이나 끝쯤을 D데이로 잡아 
슬픈 사연을 만들어 술에 취하고...
기대다가...
뿌리쳤다가...

나는 이런 상황에서 상대가 영 싫으면
자존심 상하지 않게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한 적도 있지만 
응했을 때는 끝까지 모른 체 하며 가장된 통증, 
눈물까지 모두  다 믿는 것처럼 다독여줬다

이때 터득한 나만의 감별법이 있다
처녀성을 상징하는 피는 시트 같은 곳에 묻었을 때 
수채화처럼 그 경계가 흐릿한 반면 생리의 혈은 
경계가 검붉은 색으로 분명하다

또 한 가지,
이게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는데 
어릴 때 오다마라는 아주 큰 사탕이 있는데 
이걸 입속에 넣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턱뼈에 유격이 없을 정도로 입을 한껏 벌리면 힘을 줄 수가 없어 
깨물지 못 하는 것은 물론 입안에서 굴리기도 힘들다
다시 말해 뭘 어쩌지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처음 입안에 넣을 때의 아픔까지 합쳐지면 
온몸에 아무런 힘을 줄 수가 없고 
오로지 주먹만 꼭 쥘 수 있을 뿐이다

난 그녀에게 이 두 가지를 모두 보고 느꼈다
의외였다
나에게 접근하던 그 당돌함에 당연히 경험녀라고 
생각하고 쉽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울지도 않을 뿐더러 
마치 나하고의 관계가 처음이 아닌 것처럼 
의연함과 뻔뻔함을 애써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모든 증거는 저를 처녀라고 가리키고 있는데 
저 혼자 도발적인 눈빛으로 
나는 능숙한 여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농익은 연상의 여자와 만나니까 
그런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리고 그 당시 H사모님 말고도 찾아오거나 
전화를 해대던 여자가 3명이 더 있었다.

그로부터 그녀에게 편지를 건네받던 
2~3일 동안은 우리는 사무실에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5장의 장문의 편지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 가정생활에 추호도 지장을 주지 않겠다는 것
경제적 도움도 필요 없다는 것
빌딩 뒷골목 단칸방도 좋고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와도 좋으니 
기다리며 살겠다는 것...
대강 이러한 요지였는데
말마디 하는 나도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몰랐다
내가 맨 먼저 한 것은 
사모님을 포함한 4명의 여자에게 사무실로 
전화를 못하게 한 것이다
맨 먼저라기보다 그냥 그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난 그녀에게 어떠한 답도 주지 않았고 만나지도 않았다
나의 부담을 감지했는지 그녀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본점으로 발령이 났다 
송별 회식자리에서도 멀리 떨어져 앉았다
회식이 끝나고 남직원들은 2차를 가기위해 
여직원들과 헤어진다.
이제는 인사를 해야 된다
술기운이 있어 좋다
여직원들과 악수를 했다 
그녀와는 맨 마지막에 했다 
그녀의 손은 너무 작았다
매직아이 보듯 초점을 흐렸기 때문에 
그녀의 눈빛은 읽지 못했다
나는 큰소리로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조만간 꼭 연락 한 번 할게"

그녀는 아마 자기에게 한 말인지 알 것이다

2차가 끝나고 나는 YJ미용실에서 잤다 
자매가 운영하는 미용실이었는데 언니와 사귀는 사이였다 
가까스로 미용실 상호는 기억해 냈는데 
그 언니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나머지 2명, 아티반에 중독되어 있던 J목욕탕집 딸과  
스탠드바를 운영했던 여자도 얼굴만 아련히 떠오를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참으로 많이도 되살아났다
88올림픽이 있었던 즈음이었다.

본점으로 옮긴 후
약속대로 내가 연락을 하여 
한 번인가 그녀가 전주에 온 것 같다
자고 갔는지는 잊고 싶은 무의식속의 기재가 
작용하여 억누르고 있어서 그런지 정말 생각나지 않는다.

- 에필로그 -
내가 본점으로 옮긴 부서는 총무부서로 
직원들의 애경사 등도 챙긴다.
1년 정도가 흘렀나?
아니면 2년이나 3년일 수도 있겠다.
그녀 부친의 부고를 접한다.
그녀의 집은 I시 외곽의 논밭이 있는 시골이었다.
천막이 쳐져있는 마당을 지나 
영정이 차려져 있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회사에서 미리 보낸 화환은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J회사에서 왔습니다. "

절을 하는 동안 부엌 쪽을 향하여 
그녀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sj 와보라고 해 회사에서 왔대"

상주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상복을 입은 그녀가 들어왔다
나를 보는 순간 그녀의 눈이 커졌다
난 그녀의 눈이 그렇게 크고 예쁜지 처음 알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내가 뭐라 말도 꺼내기 전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누군가의 품에 돌아 안겨 
흐느끼기 시작한다.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나를 뒤에 두고 
복수라도 하듯이 서럽게 서럽게 운다.
그 날, 
그 첫 날 
참았던 눈물까지 모두 쏟아내는 듯

이후의 일은 역시 기재에 갇혀 
기억하지 못한다.
오직,
돌아 흐느끼는 그녀의 뒷목의 
까만 점만이 
하얀 동정에 대비되어 
슬프게 선명했다 *



4. 아름다운 도둑

'KYH'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전라선 하행 새마을호 열차에서였다 
그리고 그녀를 알게 된 것은 3가지의 우연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우연은 좌석이 바로 옆자리였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기차나 버스를 탈 때면 
습관처럼 따지는 원칙이 있다
물론 좌석이 여유가 있어서 선택할 수 있을 때 하는 일이지만  
상행이냐 하행이냐, 오전이냐 오후냐에 따라 햇빛이 들지 않는 쪽으로 
좌석을 잡는다는 것이다

가령 아침에 우등고속으로 서울을 간다면 혼자서 앉는 3, 6, 9... 좌석은 
해 뜨는 동쪽이라서 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이 앉는 좌석일 때는 창 쪽이 아닌 통로 쪽을 선택한다
유난을 떤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같은 돈 주고 조금만 신경 쓰면 불편을 덜 수 있는데 
그걸 안 하는 게 나는 더 이상하다

내 객실을 찾아 올라갔다 
평일 오전의 하행선 기차는 한가하고 조용했다
뒷모습을 보이고 드문드문 앉아있는 승객들은 전부 해봐야 10명도 안 되어 보였다
통로쪽 지정된 내 좌석에는 그녀가 앉아 있었다
다시 확인해 봐도 내 자리가 맞았다
다른 빈자리가 많아 아무데나 앉아도 되었지만 은근히 오기가 생긴다

"이 좌석이 맞으신가요?"

그녀는 이미 자기 자리가 아닌지 알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창 측 좌석 위에 올려놨던 백을 황망히 집어 들며 옮겨 앉는다
그렇게 옮기게만 해 놓고 다른 두 좌석이 모두 비어있는 곳으로 
가려했는데 그러기에는 그녀가 너무 예뻤다
최소한의 절제된 동작으로 예를 갖추고 옆자리에 앉는다.
지금 다시 맡아도 기억할 깔끔한 향기가 잠시 스쳤다가 사라진다.

나는 향수의 향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하지만 살짝 풍겼다가 다시 맡으려면 사라지는 은은한 향은 그 어떤 향도 괜찮다
어색하게 자세를 잡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우연을 발견한다. 
베이지색 평범한 면바지에 갈색 블라우스, 약간 더 짙은 니트 조끼...
브라운 계열 세트 였고 모두 '톰 보이' 브랜드인데 공교롭게 
나도 회색 계열의 톰 보이(코모도)로 통일해서 입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나도 모르게 내 뱉어진다

"어, 톰보이네요"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던 그녀가 이 한마디에 흠칫하며 눈을 마주친 후 
안 보는 척 내 위아래를 훑고 지나간다 
그리고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살풋 웃는다 
순간 '내가 너무 가벼웠나?' 생각도 들었지만 
그 웃음이 다음 대화로 이어갈 용기와 빌미를 줬다

이즈음(90년대 중후반)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마인' 이나 '시스템' 같은 양극의 옷들을 주로 입었고 
수수한 케쥬얼이어서 내가 좋아했던 톰보이를 입는 여자들은 드물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더 호감이 갔을까?

그 다음의 대화는 그녀의 신발에서부터 이어졌다
군화풍의 단화였는데 역시 갈색계열이었다
수수한 옷차림에 비해서 언밸런스하게 거친 스타일이었는데 
차라리 그 투박함이 그녀의 단정함을 더 돋보이게 했다
머리는 그 어떤 펌도 하지 않은 생머리 같았고 목 뒤 한 뼘쯤 내려오게 묶고 있었는데 
불규칙하고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앞머리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부담스럽지 않게 해줬다

목적지인 s역에 도착할 즈음 결정적인 3번째 우연이 겹쳐진다.
나의 최종 목적지는 s시가 아니라 s시에서 30킬로쯤 떨어진 k읍이었는데  
퇴직직원의 사우나 개업식에 회사를 대표해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집도 그 부근이었으며 
휘트니스 클럽과 같이 오픈하는 사우나를 기대하고 있었다며 이런 우연을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경기도 친정 행사에 다녀온다는 그녀는 s시역에서 k읍까지 버스 편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내가 어차피 출장비 처리를 하니까 택시를 타자하여  동승을 하게 된다
사우나 개업이니 사장이 퇴직사원이니 하는 대화과정에서 은연중 나의 신원확인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나에 대한 호감이 있어서인지 목적지에 다다를 무렵 

그녀는 별로 망설이지 않고 전화번호를 줬다

물론 내가 알려 달라해서 줬지만...

내 기억에 나는 사적으로 여자에게 명함을 줘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룸살롱 마담들에게 외상 증빙으로는 몇 번 줘봤지만 
그녀에게도 값없이 명함을 주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파트는 아직 입주도 다 끝나지 않은 듯한 신축 아파트 단지였고 
사우나는 걸어서도 7~8분 거리 밖에 안 되었다

"언제 연락한번 드리겠습니다" 라는 인사에 
택시에서 먼저 내린 그녀는 미소 띤 얼굴로 가벼운 목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그 언제 한 번이 너무 빨리왔다

오부장님(사우나 사장)은 갑자기 들이닥친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반가워한다.
나보다 10여년 이상 연상이지만 재직 당시 나와는 공사 막론하고 아주 각별했고 
죽이 잘 맞았다
3층인가 4층인가 안집으로 안내를 받아 연도가 꽤 된 로얄샬루트를 깠다
내 이럴 줄 알고 차를 안 가져왔지
그 덕분에 그녀도 만나고...

오부장님이 극구 자고 가라는 걸 기차시간에 맞춰 일어선다.
개업 기념품인 수건과 우산을 몇 개씩 싸 주는데 평소 같으면 차도 없겠다 
무조건 사양했겠지만 문득 그녀 생각이 떠올라 흔쾌히 받음은 물론

"무료 입욕권 같은 건 없어요?"

오부장은 씩 웃으며  누군가를 시켜 가져왔는데
텀턱스럽게 10매 짜리 선물 포장을 5묶음이나 가져왔다  
아까 술자리에서 스치듯 그녀 이야기가 잠시 나왔었는데 
어느새 낌새를 눈치 채셨나보네

암튼 이렇게 해서 그녀에게 전화할 핑계거리가 생기긴 했다
초가을의 오후 6시면 그리 어둡지도 않거니와 너무 늦은 시간도 아니니 
크게 실례되지는 않겠지
술기운도 있겠다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한다.

"아,  저는 오전에 같이 기차 탔던 사람인데요 
이제 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데 전해줄 게 있는데 
잠시 아파트 앞으로 나오실 수 있으세요?"

이런저런 사설이 있었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고 
응낙을 한 그녀는 흔쾌히 대답을 한 게 아니고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는데 그 망설임은 갈등이 아니고 
떨림임을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세트의 외출복으로 차려입고 나온 그녀에게 
'별거 아닙니다'라는 말과 함께
기념품 꾸러미와 티켓을 쥐어주고
그녀가 고맙다는 말이나, 뭐냐고 물어 볼 틈도 주지 않고 
타고 왔던 택시에 다시 올라타 문을 닫아버리고 출발을 재촉한다.

나에게 전화할 구실을 주는 거지 뭐

S역에서 고맙다는 그녀의 전화를 받는다.

그 무료 티켓을 주위 친지들에게 주며 어깨가 으쓱할 그녀를 떠올리니  
절로 미소가 짓게 된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이름도 모르네

지루하게 서술한 만남 첫날이 이렇게 끝난다. 

그녀에게 다시 전화를 한 것은 그로부터 달포쯤 지나서였다

나는 여자에게 연락처를 받으면 바로 전화하지 않고 
'아, 이 사람이 나를 잊었구나' 할 정도로 뜸을 들이는 수법이 습관처럼 배어있다
근데 이렇게 뜸을 들이다 보면 대강 세 가지 경우의 수가 나온다.

첫 째는 놓치는 경우,  상대에게 씹히거나 요샛말로 
까여서 그대로 끝나는 것이고 

둘째는 상대에게서 먼저 전화가 오는 것인데 이런 경우는 너무 쉬운 게임이어서 
한두 번의 만남으로 끝나게 된다.

세 번째가 내가 의도 하는 대로 되는 건데 세 번째까지 왔더라도 제대로 성공하려면 
몇 가지 필요충분조건이 있어야하는데 
이것까지 설명하려면 너무 장황해서 다른 편에서 기회 있으면 언급하기로 하고, 
이 세 가지 경우의 수를 얻게 한 '뜸'도 연락처를 받았다고 무턱대고 들이면 되는 게 아니고 
이번 케이스로 예를 들자면 
기차에서 3가지 우연이 겹치고 그녀에게 연락처를 받았다고 
바로 '뜸'으로 들어가면 첫 번째 경우가 되어 실패하는 게 십상이고 
기념품이나 입욕권 같은 미끼가 있었으니 바로 '뜸'으로 들어간 거지 
만약 그게 없었다면 플랜B로 들어갔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뜸'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호감' 내지는 '호기심' (두 가지 다면 더 좋고)을 
제대로 유발시켜야 두 번째나 세 번째 경우를 얻을 수 있다

나는 한창때는 언제 다가 올 지모를 우연의 겹침을 대비하여 
현재에는 연연하거나 조급해 하지 않고 언제가 될지 모를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밑밥을 던지고 어느 경우는 그 효과를 10여년 후에 본 적도  있다

그녀와의 첫 약속은 S시에서의 점심이었고 장소는 그녀가 정했다
그 후로도 우리는 2~3달에 한 번 정도 만났는데 항상 평일 점심에 S시에서였다
몇 년 후 그녀가 D시로 이사한 뒤로는 나의 행선지는 하행에서 상행으로 바뀌었다

전주에는 세 번 정도 온 것 같다

몇 번째 만남에서 sex가 이루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가 술을 워낙 좋아하고 잘 마셔서 술의 힘을 빌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술이 취하면 전혀 다른 티는 나지 않는데 말을 속삭인다.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을 한다.
그리고 키스 등을 할 때 처음 하는 행동이 대마초 피우듯 ‘후우웁~’ 입술을 오므리며 들이마신다.

상습적인 그녀의 멘트는 “프로야.... 세계적인 프로야....”
근데 프로를 알아보는 저는 뭔데?


몇 번이나 만났을 때였을까?  대여섯 번 쯤???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바지를 걸어 놓은 옷걸이 밑에 내 신용카드가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지갑을 열지 않고는 신용카드가 떨어져 있을 이유가 없다. 
설마 내 뒷조사를??? 
아니면 도벽???

나는 평소에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전주를 벗어나 외지를 갈 때나 현금 20~30만 원 정도와 
10만 원 권 수표 2~3장(5만 원 권이 없었던 때이니)넣어 간다.
현금은 항상 일련번호가 순서대로 있는 신권을 넣어 다녔다
그리고 나는 내 지갑에 얼마가 들어있는지 알지 못한다.
지금까지도 특별한 이유가 있어 일정액을 찾았을 때를 빼고는 지갑에 얼마가 있는지 모른다.
일단 그녀에게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 다음에 만났을 때는 정확히 10만원 수표 2장과 현금 30만원을 넣어갔다
그녀와 헤어진 뒤 헤아려 봤더니 수표는 그대로 있고 현금 6만원이 비었다
여러 생각이 교차되고 안타까웠다
그 뒤로 그녀와 만날 때는 수표는 넣지 않고 신권 아닌 그냥 만 원짜리로 50만원을 넣어 간다. 
그리고 헤어진 뒤에도 얼마가 비는지 세어보지 않았다
그냥 필요한 만큼 가져가기를 바랐을 뿐이다
내 마음 같아서는 지갑이 홀쭉해질 만큼 가져가기를 바랐지만 
항상 티가 나지 않을 만큼만 가져갔다. 
아니, 그 뒤로 가져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D시로 이사를 간 뒤 일까? 
여느 때처럼 반주를 곁들인 점심 식사 도중에 그녀는 밑도 끝도 없이 
눈물을 비치며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때 내가 받은 느낌은 그녀는 그녀의 행위를 내가 앎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 하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라 느꼈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지금도 알고 싶지 않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녀는 친한 친구가 쥬얼리를 오픈하여 팔아주는 차원에서 샀다면서 
한 쌍의 18k 커플 목걸이를 주면서 각시랑 걸고 다니란다.
하나는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 1년에 한 번 걸까말까 하고 있지만 
다른 하나는 각시는 아니고 그 누구에게 줬는데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녀는 내가 연락하기 전에는 본인이 먼저 연락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연락을 하여 약속을 잡으면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녀는 예뻤다
내 평생 알았던 3명의 미인 중 하나에 속한다. *


5. 젊은 날의 소품

'?B?'

"같이 잤냐?“

"아니“

"그럼 보듬고 키스라도 했어?“

"아니“

"그럼 도대체 
뭐여! 왜 결혼을 해야한단 거여“

"둘이 손잡고 결혼하기로 약속했어.“

"참내!....“

평소에 집으로 찾아오지도 않거니와
돈도 없는 놈이 고구마도 아니고 비싼 군밤까지 사가지고 와서 
죽을상을  하기에 진짜 큰일이나 난 줄 알았네 
하긴 저로서는 큰일 일수도 있겠다.

카톨릭 신부가 될 몸이니 구두약속이라도 신품을 받을 때 짐이 될뿐더러 
부적격 사유가 될수도 있겠지 

"그러면 갸 입에서 너랑 결혼 약속 한 것 취소한다고 말하면 끝나는 거네?“

고개를 숙이고 군밤을 까지도 먹지도 않고 만지작거려 손이 새까매진 채로 
숙인 고개를 끄덕거린다.

사실 그녀와 우리는 아는 사이다 
우리는 성당에서 늘 테니스를 쳤고 
그녀는 성당 안에 있는 수녀원에서 잡일을 하고 있었는데 예비수녀는 아니었다. 
그래서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었고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친구같이 지내는 사이도 아니고  성당이란 울안에서 자주 보니 
목 인사나  하는 그저 아는 사이였다
나이는 우리 또래나 아니면 한두 살 위나 아래였겠지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복'자가 들어갔다 
성씨는 아예 모르고 복희, 순복, 복순?  이런 이름 이었던 것 같다

"그럼 내가 해버려도  되지?“

그는 손장난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라? 이게 떫다 이거지

그로부터 며칠 뒤
수녀원에서 사제관으로 가는 길을 쓸고 있는 그녀를 발견한다.
복희(가칭)에게 무슨 말로 어떻게 접근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정공법을 택한다.

"복희씨 이따가 저녁에 영화 보러 갈까요?“

사적으로는 처음 건네 보는 말이라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고 불쑥 던져본 말인데 반응이 의외였다
밝게 웃는 얼굴로

"좋아요“

순간 도리어 내가 할 말을 잃는다.
무슨 영화를 몇 시에 어디서 볼지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정신을 챙긴다.

"그럼 이따 6시에 성당 앞 서약국에서 봐요“

4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바빠지네...
집 부근 이발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삼남극장. 코리아극장, 제일극장이 있는 
극장가로 달려간다.
삼남극장에서는 ‘흑과 적’이라는 전쟁영화를 하고 제일극장은 삼류한국영화를 
2편  묶어서 상영한다.
코리아극장은 홍콩 영화인데 '소녀'라는 애로물이었다.
'소'자는 한자로 부를 ‘召’자로 영어로 하면 '콜걸'이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멜로, 애로물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날은 어쩐지 그 영화를 봐야만 할것 같았다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마지막 영화가 8시에 시작했다
정탐을 마친 뒤 집에 돌아와 돈이 모자랄 것 같아 
저금통을 털어 지폐로 바꾸어 보탠다.

약속시간이 2시간이나 일러 남부배차장 인근의 
유명한 말x빵집에서 말x빵이랑 조갯살튀김으로 저녁요기를 대신했다
(사실을 무심코 썼는데 뉘앙스가 묘하네)

복희는 뭐가 좋은지 한시도 안쉬고 조잘댔다

극장 안은 텅텅 비다시피 했다
드문드문 7~8쌍이나 될까?
영화가 시작되고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 복희의 손을 잡아끌고 나왔다
복희는 더 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내가 잡아끌자 순순히 나왔다
민망해하는 나를 보며 놀리듯 싱글거리며 즐거워한다.

중딩때부터 6미리 필름 포르노로 단련된 몸인데 
아무려면 이런 정도로 민망해할까 다 작전인 게지

극장에서 나온 우리는 맥주 한병과 그녀가 마실 오란씨 한 병을 사가지고 
성당 테니스코트 벤치로 왔다
바닥이 차갑다는 이유로 내 무릎에 앉힐 수 있었고 
입맞춤까지는 못했지만 살며시 안아보기까지는 했다

그리고 이 날 지금까지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명언을 그녀에게 듣는다.

'남자가 여자를 생각하는 것은 한강에 돌 던지기지만 
여자가 남자를 생각하는 것은 접시 위에 돌 놓기'라고...

암튼 중요한 것은 그러는 과정에서
그녀가 내 친구는 포기하고 나랑 사귀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나는 그녀에게 별 느낌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관심사가 여자보다는 의리, 친구 그리고 완전범죄 이런 것들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던 때이니 만큼 그녀와의 만남은 친구를 위한 숙제였고 의무였다

다음날,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약을 올릴까도 생각해봤지만 
순진한 놈 이중으로 상처 받을까봐 간단히 몇 마디로 정리해줬다

"복희 갸 생각보다 깐깐하던데? 
하여튼 힘들게 이야기해서 너희 약속은 없던 걸로 한다했으니까 
못 믿겠으면 확인해 보든가“

믿는 눈치였다 
내가 굳이 들통 날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겠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역시 반가워하거나 고맙다는 표현은 전혀 없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내심 의기양양했다
나는 내가 여자도 잘 꼬시고 겁나게 잘 난줄 알았다
하지만 그 환상은 불과 이틀 만에 깨졌다

성당 앞 골목에 있는 미미제과점에서 k수녀님과 마주 앉았다
k수녀님은 복희가 있는 수녀원의 원장수녀이며 성모병원의 수간호사였는데 
그 즈음 나에게 테니스를 배우고 있어서 친밀한 사이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불길한 생각에 잔뜩 긴장이 되었다.

“복희 만났다면서?”

(올 것이 왔구나)
낯이 뜨거워 얼굴을 못 들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그 뒤로 이어지는 말은 뜻밖이었다.

“친구를 위해서 어려운 일을 했더구만”

이렇게 말을 시작해서 이어지는 말은 나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고
수녀님이 말하는 복희는 의외였다
친구와의 일, 나와의 만남과 만나서 했던 모든 대화를 빠짐없이 수녀님에게
말했고 되바라진 것 같은 복희의 행동거지와 말 등은 탐독한 연애소설의 
부산물이라는 것이었다.
4살 때인가 고아원에서 데려와 초등학교만 졸업시키고 줄 곳 수녀원에서만
있었기 때문에 밖의 물정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와 나, 복희 문제는 수녀님이 이제부터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그윽한 미소로 끝을 맺으셨다

이후 수녀님이 친구를 만났는지는 알지 못한다.
복희와는 예전처럼 목례와 더불어 날씨이야기나 하며 지나치는 사이로 돌아갔고
어느 순간부터 기억에서 사라졌다

친구는 바라던 사제가 되었다

고 2때의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