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그녀는 나만의 포주였다
'KJN'
그녀는 처음 룸살롱 호스티스였었다.
그때는 일명 빠순이라고도 불렀다
얼굴은 예쁘지도 아주 못생기지도 않았지만
여러모로 빠순이와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었다.
일단 딱 보면 선머스마였다
아주 작은 키는 아니지만 보통보다는 작았고
단발도 쇼트커트도 아닌 어정쩡한 머리에
뚱뚱하지도 않은데 들어가고 나온 곳이 없는 민짜 몸매,
그래서 그런지 그 어떤 옷을 입어도
도무지 어울리질 않았다
그녀가 내 파트너가 되던 날은 여느 때처럼 일행들이 다 짝 짓고 나서
남은 찌끄래기가 그녀여서 내 파트너가 되었다
그때가 그녀가 업소에 나온 지 3개월쯤 되었다고 했다
그날 전체적으로 2차를 나가는 분위기였고
2차비도 모두 계산된 상태였다
나직이 그녀에게 말했다
"계산은 2차비까지 다 끝났으니 2차는 가는 척만 하고
나가서 각자 가세"
"제가 싫으세요?"
그녀는 당돌하게 물었다
나는 뜨끔했지만 얼른 정색을 했다
"아가씨는 술 한 잔 먹고 돈 받았다고
쌩판 처음 본 사람하고 자고 싶어?"
화류계 생활 1년이라도 넘었다면 웬 개소리냐 했겠지만
이제 초짜신삥이라 먹히겠지...
2~3일 후에 룸살롱 마담에게 전화가 왔다
(마담은 9화 주인공의 친구이다)
"동주 씨가 우리 막내에게 잘 해줬나봐
지가 밥 산다고 약속 잡아달라네?"
나는 마담 전화를 받으면서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보통 아가씨들이 2차를 나갔다오면
마담들에게 미주알고주알 꼬아 받치기 마련이어서
우리가 2차를 나가지 않은 것을
마담이 당연히 알 줄 알았는데
말을 안 했다니 기특하다
"되얏네 무슨 코 묻은 돈
슈킹하는 것 같아 먹겠는가"
"동주씨, 커나가는 애 석 죽이지 말고
한 번 만나봐 밥이야 내가라도 사면되는 거고.."
"그럼 겸사겸사해서
식구 한 번 짜보까?"
"저녁은 내가 사고 서비스로
베리나인 골드 소짜 한 병!"
(마담은 지가 투자하면 그 만큼 팁을
두둑이 준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좋아 내일 6시에 솔밭,
나까지 3명이고 1차부터 전투복!"
그 즈음 저녁식사는 거의 회사부근의
'솔밭회관'이란 곳을 이용했는데 그 식당의 주인은
아직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은
또 한 명의 여인과 연관되어 있다
나는 그 시절 더치페이로 직원이나 친구들과
룸살롱을 자주 갔는데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아가씨는 1차 저녁 먹을 때부터 다음날 해장국 먹을 때까지
동행해야하고 아가씨 복장은 홀복이 아니고
자유복으로 입게 했다
1차 저녁부터 같이 먹고 룸에서 홀복을 안 입으면
2차를 나가도 애인 같이 어색하지 않고
돈으로 거래된다는 느낌도 덜 든다.
둘이 합의하에 같이 긴 잠을 안자고 숏타임으로 끝나도
다음날 해장국 장소에는 나와야한다
그 당시 대부분의 아가씨들은 타 지역 직업소개소를 통해 들어와
숙소에서 합숙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그 당시는 신용카드가 없었던 시절이라서 외상이 많았으며
그 외상값은 명절 앞에는 당연 결재를 해줘야 했고
사회 통념상 룸살롱은 3개월, 요정은 6개월 결재였다
그런데 나는 술 값 결재를 24시간 안에 했다
아가씨 팁이나 웨이터 팁도 당일에는 단돈 10원도 안 준다
하지만 24시간 후에는 후하게 줬다
105만원이 나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5만원 깎고 100만원을 주는데
나는 110만원을 줬다 (그 안에는 아가씨차지는 물론
마담과 웨이터 팁까지 다 포함되어 있지만)
술 취했을 때는 객기 부리다가 술 깨고 나면 본전 생각하는
부류를 싫어해서 아예 후 결재를 한 것도 있지만
술자리에서나 2차를 나가서 실수를 방지하는 목적도 있었다.
더치페이를 하면 내가 주관을 하기 때문에
거의 내가 손해를 보지만 돈질을 내가하니
물주대접 받는 걸로 감수했다
그 당시는 금액이 크면
자기앞수표나 가계수표를 사용했지만
나는 항상 신권 현금으로 결재했다
5만 원 권이 없던 시절이라 100만원이 넘으면
열십자 띠지로 묶어진 백만 원 한 묶음과 나머지 돈은
띠지를 뜯어낸 새 다발에서 일일이 세지 않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대강 드르륵 훑다가 떼어내어 주면
금액이 정확히 맞았다 수금하러 온 웨이터나 지배인들이 놀라지만
사실은 신권은 일련번호가 있기 때문에
그 번호를 보고 떼어내니 정확할 수밖에...
그 당시 저녁식사는 거의 삼겹살이었다.
우리는 3명이 나갔고 그녀들은 마담까지 4명이 나왔다
접대나 승진 등 특별한 이슈가 있어 룸을 찾을 때 외에
이렇게 식구짜서 놀자는 목적일 때는 3명이 딱 좋다
그녀는 처음 봤을 때나 똑같았다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꼭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그런데 남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나에게 너무
흔연덕스러웠다 마치 몇 년 알고 지낸 사이처럼...
"막내야, 이제부터 양대리님
니 아저씨해라"
그날부터 그녀는 나를 '아저씨' '동주아저씨'
'우리아저씨'라 칭했다
지금도 그러겠지만 그때 화류계 아가씨들은
손님을 부를 때 처음에는
'X사장님' 'X과장님' 등등으로 부르다가
단골 되고 친해지면 나이가 고하간에 '오빠' 라고 했다
정으로 엮이거나 애인 사이가 되어야 '아저씨'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두 번째 봤는데 아저씨?
말이 씨 되라 이거지?
결국 말이 씨가 되어 20년 지기가 되었다
후반 7~8년은 '우리아저씨'에서
'동업자아저씨'로 변해있었지만.....
그날 우리는 2차를 나갔다
2차비는 지난번에 받은 게 있다고 부득부득 받지 않겠다 했고
그 이후로도 2차비는 한 번도 주지 못했다(받지 않으니...)
물론 다른 명분으로 그 값어치는 했겠지
그녀와의 잠자리는
내가 평생 섹스를 해본 중 11화의 동생인 석녀를 제외하고
제일 무미건조한 여자였다
(또 한 명이 있긴 하지만 서두에서 말한 논외의 여자이고...)
두 손은 나를 안지도 못하고 늘어뜨린 채 주먹을 꽉~! 쥐고
그녀 스스로는 희열음(音) 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듣기로는 그냥 ‘끙끙댐’ 이었다
온 몸에도 힘만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녀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나를 무척 좋아하는 했고
사치도 남자도 놀음도 멀리한 그녀는
불과 4~5년 사이에 아가씨들을 거느리는
마담으로 성장했다
전주 토종 출신으로 Y여상에서 일진으로 활약한 전력과
그녀 특유의 남자다운 의리, 이재의 밝음이 성공 발판이었다.
구두쇠 같이 돈을 아끼는 그녀도 방은 항상 혼자 썼다
공짜로 쓰는 숙소도 이용을 안했다
3개월에 한 번 올 지 1년에 한 번 올지 모르는
나를 위해서란다.
난 믿지 않았지만...
그녀가 마담을 하면서 야릇한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러 가면 내 파트너가 문제였다
마담이 앉을 수는 없고 비워두자니 분위기도 죽거니와
다른 일행들이 불편하고
결국 파트너를 앉히긴 해야 는데
지 가오가 있고 체면이 있으니 아무나 앉힐 순 없고
그러다보니 A급에 그녀가 믿을 수 있는
아가씨를 앉히기 시작했다
한두 번 그러다가 2차 문제가 불거졌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식구를 짜면 2차는 물론
담날 해장까지 해야 하는 룰을 내가 정한 건데
내가 깰 수는 없는 일이었고
이런 상황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처음 한 번이 어려웠다
"아저씨, 쟤 지인~짜 괜찮거든?
눈 딱 감고 한번 나가봐"
"얌마 내가 어떻게 나가냐?"
"아이구, 다른데 가서나 나가지 말고
내가 엮어주는 대로만 해요"
(뜨끔...)
이렇게 우리는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녀는 같은 아가씨를 두 번 앉혀주는 일은 없었고
나 또한 한 번 이상은 안 잤고
또 한 번 이상은 흥미도 없었다.
그러나 한 번이지만
그 아가씨들에게는 스스로가 화류계 호스티스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인간답게 대해줌은 물론
가외로 팁도 줘서 그녀의 체면을 살려줬다
그녀의 귀에 내 얘기가 당연히 좋게 들어갈 거고
그게 기분 나쁠 리 없었겠지
나중에는 소개소를 통해 괜찮은 아가씨가 오면
돈 든다고 룸살롱을 생략하고
1차 식사에 이어 곧바로 데이트를 포함한 2차로 보내줬다
그녀는 마치 때 잘 빠지는 빨래방망이를
동네 아낙들에게 돌려 자랑이나 하듯 나를 돌렸다
그녀가 질투심도 전혀 없이 그렇게 한 것은
내가 한 번 이상은 만나지 않을뿐더러
그 아가씨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황금알을 낳는 오리 배를 가를 일이 있나)
하지만 그녀의 자조 섞인 미묘한 심리를 충분히 이해 할 것도 같았다
심지어 지 고딩 친구까지 붙여 줬다
진희(본명)라는 얘로 얼굴은 보통이었고
키가 크고 몸매가 수준급이었는데 만남은 역시 딱 한번이었다.
그런데 기억에 남는 이유가 11화의 ‘KHS’처럼
등을 손톱으로 찍어 눌렀기 때문이다
정작 그녀와의 잠자리는 손을 꼽았다
그녀는 근본적으로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 체질이었다.
그녀와의 섹스는
그녀는 나를 위해 나는 그녀를 위해
서로 엄숙히 원하지 않는 봉사를 하는 행위였다
그녀와의 그런 포주 관계는 10년을 넘게 지속되었다
그 사이 나는 여러 여자들과 무수한 교집합으로 얽혀 있었지만
그녀는 알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았으니
나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내가 직장을 그만 두고 대부업(사채)를 시작하자
그녀는 마담 일을 그만 두고 보도방을 차리겠다고 나에게 상의를 해왔다
보도방을 하려면 일단 직업소개소를 차려야하는데
그녀는 자격이 안 되어 내 명의로 직업소개소를 열고
운영은 그녀가 하고 아가씨들의 선불 등 자금을 내가 댔다
5부 이자로 2억만 있어도 한 달에 천만 원이다
관리는 그녀가 다 했으니 나는 땅 짚고 헤엄치기 였다
그녀는 그녀대로 룸 마담 경력으로 아가씨가 모자랄 정도였다
이 때부터 그녀와 나의 관계는 애인에서 동업자로 바뀌었다
보도방은 불법이었다.
시작할 때부터 불법인지는 알았지만 실제 단속에 걸리는 예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별 신경을 안 썼다
잘 나가다가 단속 기간에 시범케이스로 걸렸다
나는 경찰 출신 선친 덕에 여러 번 구속되었어도 전과가 없었는데
불법 보도방으로 난생 처음 벌금전과자가 되었다
벌금이야 100만원 조금 넘었지만 실형은 실형이다
그 이후 나는 생각을 바꿔 중앙시장 상인들 쪽으로 자금을
바꾸기 시작했고 그녀에게도 시간을 두고 돈을 빼겠다고
준비를 시켰다
그녀도 그 때를 계기로 보도방을 접는다.
그리고 그녀는 결혼을 한다.
결혼 선물로 그 당시 막 나온 200만 원짜리 슬림 TV를 사줬다
결혼 뒤로는 연락을 안했고 그러다보니 끊겼다
나는 상인들 상대로 일수를 시작했고
그 어느 해인가 카드 돌려 막기가 금지되면서 난 망했다
얼마나 흘렀나? 몇 해 전인가?
전동성당 부근 길거리에서 우연이 그녀를 만났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같이 였다
우리는 서로 놀랐다
“아저씨~!!!”
나는 아이를 의식해서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어, 오랜만이네...”
여전히 선머스마 같은 그녀 눈에 언뜻 물기가 비치는 게
내 착각이었을까?
“xx야 아저씨한테 인사해”
“안녕하세요~”
어라 남자가 아니라 여자아이였다
지 에미랑 똑같군....
지갑을 톨톨 털었다
몇 만원인지 모르겠다.
그녀나 아이나 어려운 행색은 아니고 납납해 보였지만....
“자 이거 받아라 학용품 사지 말고
다 까먹어....“
아이는 받지 않고 지 엄마 눈치를 살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