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오메 30년간 참았던게 다나오네
'가정부 아줌마'
그녀가 서둘러 나간 뒤,
자는 척 하던 나는 방 불을 켜고
옷을 입다가 보니
요와 이불이 온통 피범벅이었다.
내 손톱사이에도 피 때가 끼어있었다
이불과 요를 돌돌 말아 붙박이 다락에 처박았다
당분간 베개로 쓰던 군용 담요로 살아야지 뭐
내 방은 안채에서 정원을 지나
대문을 열고 나가면 대문 밖에 있는
문간방이다
하지만 완전 바깥은 아니다
선친께서 풍수지리를 신봉하셨던 까닭에
바깥 대문이 또 하나 있었다.
어쨌든 내 방은 안채와 떨어져있어
굿을 해도 모를 정도였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나 방으로 끌어들였던 것은 아니다
더구나 여자를 들인 것은 처음이거니와
이 이후에도 한 번도 없었다.
(아, 아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났는데
몇 년 뒤 딱 한 번 더 있었다)
며칠 후, 다락을 열어 보다가 깜짝 놀랐다
우렁각시가 왔다 갔나?
홑청을 갈았는지 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와 이불이 깨끗하게 개어져있었다
개운한 마음보다는
불안함이 앞선다.
'어머니가 봐버린 거 아냐?‘
'당분간 안채 쪽에 얼씬도 말아야지’
밤 10시 즈음이 되자 여느 때처럼
안채 대문소리가 나더니
"밥 좀 비벼다 주까?“
"예!“
큰소리로 반갑게 대답했다
오늘은 배가 고픈 거 보다 이불이 궁금했다
전남 순천이 고향이라는 과부 가정부 아주머니의
나이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40대는 넘었을 거 같고
60대까지는 아닐 것 같고 암튼 추측의 폭이 컸다
머리는 항상 뒤로 낭자를 단정히 하고
비녀를 꽂았다
언젠가 가출하는 나에게 은비녀를 쥐어줬는데
차마 팔아먹지 못하고 다시 돌려준 적도 있었다.
몸은 거구였다 키도 컸으며
몸집도 좀 있었다.
얼굴은 고운 게 1,
험한 게 10 이라면
8이나 9정도?
아줌마는 나를 보고 눈물바람 할 때가 많았다
매일 똑같은 찬합 같은 밥도시락과
김치하나 눌러 담긴 커피 병을 건네 줄때 그랬고
늦은 야밤에 비벼다 준 밥을 허급지급 먹을 때
옆에서 지켜보며 밥도 마음대로 못 갖다 주고
안채 어머니가 잠자리에 들고서야 가져 올 수 있다며 그랬다
이윽고 양푼에 그득한 비빔밥과
물김치 한 종발을 쟁반에 들고 왔다
평소의 무표정과는 달리 빙글거리고 있었다.
내가 물어 보기도 전에 쟁반을 내려놓으며 먼저 물어왔다
"아리께 누가 왔다갔당가?“
"....... “
나는 대답을 안 하고
양푼을 집어 들고 밥을 퍼 넣었다
"언치것네 찬찬히 묵제...
이불은 나가 사모님 모르게 단도리 할랑께 걱정 놓고...“
이불 사건이 있고 난 후로
아줌마는 비빔밥을 먹고 난 뒤
내 방에 남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 동안은 아들 정도로 생각했다가
내가 여자를 끌어들이는 걸 보고 남자로 본 걸까?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학교 체육시간에 발목이 접질려서
걸음을 제대로 못 걷고 절뚝거리며 부엌에 도시락을 내놨다
아줌마는 그날 밤 비빔밥과 함께
안티프라민을 가지고 왔다
밥을 먹고 나니 안티프라민으로 마사지를 해준다고 하는데
나는 예나 지금이나 파스나 맨소래담 같이
냄새나고 화끈거리는 것은 질색이다
손사래를 치며 싫다고 했더니 그럼 안티프라민 바르지 않고
주물러만 주겠단다.
그건 좋지...
나는 어릴 때부터 주물러 주는걸 아주 좋아했는데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1968년 12월 이었다
5일에는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되기도 했었고
중학교 입학시험도 끝난 그야말로 후련하고 기나긴
겨울방학을 맞은 초딩 6학년 시절이다
선친의 시골 고향마을에 놀러갔다가
나무에서 미끄러지며 떨어져 나뭇가지 옹이에 걸려
불알이 찢어졌다
읍내 병원에 입원해 누워 있었는데
발을 뻗지 못하고 120도 각도로 세우고 있어야 했다
종일 그러고 있는 게 안타까웠는지
병문안 오신 큰어머니가 허벅지 아래쪽을 어루만지듯
살살 주물러 주셨는데
아~! 어찌나 시원한지 신음이 절로 나왔다
그런 연유로 나는 어릴 때부터 안마에 인이 박혔고
지금도 섹스보다 안마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줌마는 처음에는 발목을 주무르다가
종아리로 올라왔다
나는 시원한 나머지 끙끙댔을 거고
내 소리를 아줌마는 어떻게 이해했을까
몸집만큼이나 투박하고 큰 손은 무릎을 지나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이제는 시원해 할 겨를이 없었다.
꼼짝 못하고 마른 침만 삼키고 있는
17살의 말초신경들은 터질 듯 아우성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구체적인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리드를 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줌마 턱이 빠져 다음날 병원에 갔다는 것과
흐느끼듯 되뇌이던 나직한 목소리다
"오메, 오메 삼십년간 참았던 거 다나오네
오메, 오메 삼십년간 참았던 거 다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