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0-25 12:52
전주 '가맥' 이야기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1,854  

가맥(가게맥주) 문화는 유일하게
전주에서만 발달한 문화이다
처음 우리 보다 앞서서 다닌 선배들은 
'점빵맥주' 라고도 했지만
지금은 '가맥'이 거의 고유명사화 되어버렸다

유래랄 것 까지는 없지만 굳이 유래를 쫒아보자면
맥주 먹고 취해보는 게 소원이었던 고단했던 시절,
동네 점빵에서 주인 옆의 여분 의자나 평상에 걸터앉아
라면땅 한 봉다리 까놓고 마시던 것을
탁자 하나 주어와 편하게 놓고 마시라는
똘똘한 주인의 배려가 시작이라면 시작일수도 있겠다.
그때는 좀 소프트한 OB맥주와
쌉쌀하면서 거품이 많았던 크라운맥주
두 가지가 있었을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점빵 안에 공간을 만들어 탁자와 의자를 놓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후반이었다.


웨딩거리의 진미반점 맞은편 이 아로마웨딩 자리가 과거 '영광상회' 자리이다


가장 원조는 '영광상회'인데
지금의 웨딩거리 진미반점 맞은편에 있었고
폐점한 지 오래되었다
그 다음으로 1978년경에 생긴 곳이
지금의 경원동 kt건물 후문 쪽에 있는 '경원상회'와
구전주우체국 사거리 동락일식 골목 입구에 있었던 '도일상회'이다
경원상회는 주인이 조카로 바뀌어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지만
도일상회는 그 뒤 '옹달샘'으로 상호가 바뀐 후
영광상회와 마찬가지로 문을 닫았다


kt 후문 앞에 있는 경원상회  현 경원상회 주인과 초원슈퍼 아들은 친구이다



동락일식 골목을 좌우에 두고 있는 안경집 자리가 도일상회였는지 공예품전시관 자리가 도일상회였는지는 아리까리 하다


현재 전주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전일슈퍼'와 '초원슈퍼'로
대부분 이곳들을 원조로 아는데
초원은 1979년, 전일은 80년대 초에 열었다
그 즈음 시내 권에서는 좀 떨어진
서신동에 '은성슈퍼'도 생긴다.
은성슈퍼는 현재도 성업 중이다


서신동 낭주골 사거리의 은성슈퍼


그 이후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영업이 제법 되었거나
현재까지 되고 있는 곳을 꼽아 보자면
평화동 사거리의 'ok슈퍼',
경원슈퍼 맞은편의 '영동슈퍼',
중화산동의 '삐루봉 가맥',
동문사거리의 '임실슈퍼',
평화동 동아현대아파트 부근의 '노고단 가맥'
덕진광장의 '슬기네가맥' 등등이 있는데
개업  시기나 규모, 매상 불문하고
원조 가맥에 끼지 못하는 이유는
구멍가게 점빵을 먼저 열고나서
그 후 맥주를 팔기 시작한 게 아니라
'가맥'을 팔기 위해 '슈퍼' 허가를 냈기 때문이다
그 후로 '가맥'이라는 상호를 붙인 가게는 모두 그렇다고 봐야한다
맨 앞에 거론한 'ok가맥'은 최씨 다형제가 운영을 했는데
가맥은 부업(오래 전 폐업)이었고
전주 마른안주 시장을 거의 20~30% 이상 장악하고 있었다.
최소 17~18년 전이었으니 현재까지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전주의 똥꾼(술꾼)들이 가맥을 선호한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가격이다
가게에서 파는 '가정용' 맥주는 음식점에서 파는 '일반음식점용'이나
술집에서 파는 '유흥음식점용' 보다 주세가 덜 붙기 때문에
술값이 저렴하기도 했거니와(그래서 상호에 '슈퍼'나 '상회'를 붙여
점빵으로 허가를 내는 것임)
안주 역시 싸고 고르기도 쉬었다
고구마과자나 새우깡도 즐겨 먹었고
두꺼운 종이 바탕에 손바닥 절반만 한 비닐에 싸여
호지키스에 다닥다닥 박혀있어 하나씩 뜯어 먹는
멸치나 땅콩 등 갖은 마른안주도 값 싼 안주였으며
그도 저도 싫으면

"아줌마, 새곰새곰하게 익은 군둥내 나는 김치 있으면
쫌만 줘봐요“

때로 기분 내키면 정체모를 부께미도 서비스하는
초원슈퍼 아줌마의 별미는 고춧가루 넣은 김치를 달달 볶다가
꽁치간스메(통조림)를 통째로 넣어
다시 한 번 더 볶아주는 꽁치 볶음이었다
김치와 요리는 공짜고 꽁치통조림 값만 받는 인심이었다.

(40년이 지난 최근 어느 날 꽁치볶음 이야기를 했더니
기억이 나는지 안 나는지 그냥 듣고 빙긋이 웃기만 하였다)



꽁치를 볶아주던 초원슈퍼는 지금의 자리(좌측 달마선원 1층)가 아니고 우측에 '錦和商事' 간판이 붙은 자리이다



현재의 초원슈퍼...  근데 언제부터 편의점으로 바꿔 달았는지 그 동안 뻘로 봐서 잘 모르겠네...


나는 초원이나 전일 모두 단골이었지만
처음 다니기 시작한 곳은 초원이었다.

그런데 전주 주류문화에서 '가맥슈퍼'를
하나의 술집 장르로 반열에 올려놓은 곳은
전일슈퍼이다.
전일슈퍼가 뜬 가장 큰 이유는 '간장소스'와 '가격'에 있었다.
청량고추를 쫑쫑 썰어 넣어 북어를 찍어 먹으면
매콤 달콤 짭짤하니 일품이었다.
팍팍한 북어를 짭짤한 간장에 찍어 먹으니
맥주가 얼마나 잘 넘어가겠는가!
물론 초원슈퍼나 다른 가맥집도 간장소스를 주기는 하는데
그저 진간장에 계피나 마요네즈를 넣어줄 뿐이니,
파뿌리, 감초, 북어대가리 등등 10여 가지의 재료와
물엿과 전분을 넣고 끓여 쫀독쫀독한 점도를 맞추고
MSG로 마무리한 전일의 간장소스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북어 가격도 다른 곳 보다 1~2천원은 싸게 받았으며
맥주 값 역시 다른 가맥보다 2~300원씩 저렴했다


'가맥슈퍼'에 전일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 중 또 한 가지는
가맥의 안주를 '정형화' 시켰다고나 할까?
가령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초원에서는
안주로 꽁치볶음, 골뱅이무침, 이런저런 부께미 등
손님이 주문하면 할 수 있는 것이면 뭐든 해줬다
그리고 여타 다른 가맥집들도
마른안주로는 갑오징어와 북어 외에도
마른오징어, 피대기, 쥐포, 한치, 노가리 등 여러 가지였다
그런데 전일에서는 딱 세 가지  안주로 주 종목을 정해버렸다
'갑오징어'  '북어' '계란말이' 이다
슈퍼란 형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많이 찾는
웨하스, 새우깡, 빠다코코넛, 꼬깔콘 등등의 과자류와
다른 마른안주도 구색은 갖춰져 있고
간혹 그런 안주를 찾는 손님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세 가지 안주 중 선택을 한다.
그 중에서도 갑오징어나 계란말이도 중요하게 한 몫 하지만
메인은 단연코 북어이다


연탄불에 북어를 초벌 굽고있는 전일슈퍼 아주머니....



북어를 손질하고 있는 초원슈퍼 아주머니....


전일슈퍼는 빠삭한 북어만을 고수한 반면
초원슈퍼는 퍼석한 북어 말고도
나름 개발한 쫄깃하게 씹는 맛이 있는 일명 '명태'가 있고
임실슈퍼는 초원슈퍼와 같이 쫄깃하면서 촉촉한 명태만을
주안주로 팔고 있는데 명태대가리에 수제비 두어 점 넣어
뜨끈한 국물을 서비스로 내는 걸로 다른 집과 차별화 하고 있다
가맥집들의 메뉴판에 보면 황태나 먹태 등으로 표기해 놓고 있으나
그냥 북어일 뿐이다
거의 99%가 러시아산으로 딱딱한 마른명태(북어) 상태로 들여와
가공하는 방법과 정도에 따라 전일슈퍼식 북어도 되고
초원이나 임실슈퍼같은 명태도 된다.
전일 북어나 초원 북어가 단연코 맛이 더 있는 이유는
초벌 말리는 것부터 나중에 구워 나올 때까지
모든 과정이 연탄불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연탄불에 구워야 속까지 파삭할 뿐 아니라 포장해가서
며칠을 두고 먹어도 눅눅해지지 않는다.



촉촉한 명태와 국물을 내는 걸로 차별화 하고 있는 동문사거리의 임실슈퍼


갑오징어는 가격이 통통하다 언제나 북어 가격의 2.5배 정도 비싸다
가령 북어가 10,000원이라면
갑오징어는 25,000원이다 비싼데다가 양도 적다
다리가 퇴화(?)중이라 아예 먹잘 게 없어서 더 그렇다
그래서 갑오징어라도 시킬 양이면 물주의 눈치를 봐야하는데
일단 나오면 먹기 편리하게 찢어놓는다는 핑계로 도톰한 부위
몇 첨은  손바닥 안에 자연스럽게 갈무리 확보한 뒤

"어이, 아껴서들 먹어
철언이 자네는 술 마시고 안주로 먹어 
그냥 막 먹지 말고“

3년 전에 췌장암으로 죽은 친했던 후배가
지독히도 좋아했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갈 줄 알았으면
실컷 먹으라고 할 것을...
그리고 공동안주가 다 떨어지면 확보해놨던
도톰한 놈을 혼자만 몰래 야금야금 먹는다.
마른 갑오징어는 너무 딱딱해서 구운 다음
망치로 두들겨 패서 먹어야한다
망치바탕은 철도 레일을 자른 토막 같은
강철로 된 바탕이어야 제대로 찧어진다.
은성슈퍼 주인은 갑오징어 망치질 때문에
팔에 엘보가 걸려 거의 반병신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그래서 수요가 많은 전일이나 초원슈퍼에서는
아예 전기 모터로 찧는 '프레스'라는 기계를 맞춰서 쓰고 있다
전주에서 갑오징어와 북어를 가맥슈퍼들에게 도소매하는
동부시장의 대웅상회 사장은 매년 4~6월이면
서남해안 일대를 돌며 마른갑오징어나 반건조갑오징어를
매입하러 다니는데 스타렉스에 가득 채워오면
보통 1,500만원~2,000만원어치 가량 된다고 한다.
근데 대웅상회 사장 말에 의하면  특이하게도
전국적으로 이 마른갑오징어 수요의 90% 이상이
호남지방도 아니고 전라북도도 아니고 옴쓰락 전주라고 한다.



동부시장의 대웅상회



올해(2019년)부터는 갑오징어는 어장과 소매점에 다이렉트로 연결하여주고

오로지 북어만 전문으로 취급하기로 했다고....

북어 손질이 완전 노가다보다 더 한다고  여주인 손은 늘 병원을 필요로 한단다



그래도 하루종일 묵묵히 북어 손질에 열중하고 있는 대웅상회 여주인....



프레스에 갑오징어를 찧고 있는 전일슈퍼 아주머니



초원슈퍼의 프레스...  앞에 앉아 있는 주인아저씨는 10여 년전 전일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2019년 추석날에 돌연사를 하였다 지병도 없었고 징후도 없었다고....



계란말이 안주는
빈속에 술 못 먹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딱이다
싸기도 하고 푸짐하기도 하다
그런데 전일슈퍼가 이 계란말이로 한때 수난을 겪은 일이 있다
전일이 워낙 장사가 잘되다보니까
전주의 어지간한 군소 술집들의 질시를 받았다
그래도 IMF이전에는 너나 나나 그저 먹고 살만했으니
장사가 잘되든 말든 그러려니 했는데
IMF 이후로 매상의 차이가 극명해지고 부익부빈익빈이 심해지니
그렇게 잘나가는 전일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어떻게 슈퍼에서 일반음식점에서나 팔 수 있는
조리된 계란말이를 파느냐며 해당 처에 먹어댄 것이다
그때 당시 그런 걸로 신고 되고 적발되어 봤자
형식적인 벌금 몇 푼 부과되고 전일 수입으로 봤을 때
그 정도야 매달이라도 물을 수 있었겠지만
그 결과보다 그것을 계기로 재미있는 논란이 일었다
슈퍼(업종이니 업태니 따지지 말고..)에서 합법(?)적으로
어디까지 팔 수 있는 것이냐?
조리한 것은 팔 수 없다면 어디까지가 조리인 것이냐?
가령 라면을 끓여 주면 조리고
사발면에 물을 부어 주면 조리가 아니냐?
조리가 가열의 의미까지 있다면
오징어를 그냥 주면 괜찮고 불에 구워주면 안 되는 것이냐
그럼 골뱅이무침은 가열을 안 하니 조리가 아닌 것이냐
이런 알맹이 없는 논란의 중심에 전일이 서 있었는가하면

가정용 맥주를 판매한 것에 대해서도 자유롭지가 못했다
그 당시 잠시 유행했던 '오비베어'네 '크라운베어' 같은 체인 호프집에서
세무서에 항의를 한 것이다 사실 시공무원이나 세무공무원들이
전주의 가맥 실태를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전주만의 서민주류문화에 대해 암암리에 동조하며
묵인하고 있었을 터인데
민원이 들어오는 데는 어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00년 초 어느 해인가
전일이 가정용 맥주 판매로 세금 폭탄을 맞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1년분 치 100여만 원 정도 물었다는데
소문이 날 당시는 적게는 몇 천만 원 많게는 억대라고 했다
이 전일슈퍼가 워낙 장사가 잘되다 보니
이런 식의 황당한 루머가 떠돌곤 했다
팔복동에 큰 저온창고가 있어 갑오징어와 북어가
항상 몇 천만 원어치씩 쟁여져 있다는 루머도 있었고
(가게 홀 구석에 평반이나 되는 저온 창고가 있긴 있음)
10여 년 전에 남자 사장이 물리치료를 받고 자다가 의료사고 아닌
돌연사를 당했는데 죽고 난 뒤에 보니
마을금고 신협 등에 숨겨 놓은 예금이
몇 억도 아닌 몇 십억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루머였다
헌데 지금(2019년도)까지도 그것을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
현 여주인도 마찬가지지만 돌아가신 그 양반도 참으로 성실했다
애초 전일슈퍼가 가맥을 팔기 전에는 연탄을 팔며 배달도 했었다
가맥을 시작한 후에도 술 한 잔 마시는 걸 보지 못했고
오로지 하루 일과가 연탄불에 북어를 말리거나 굽는 거였다
내가 아는 한 그 양반의 유일한 낙은 두어 달에 한번 정도 광주로
해태타이거스 야구 보러 가는 거였다
그렇게 성실한 삶을 살고 장사는 엄청 잘 되다 보니

"저 냥반은 무슨 낙으로 산디야?“

"저 냥반 어디 돈 쓸디나 잇것어?“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이런 말들이 호사가들에게 부풀려
그런 루머가 생겨났지 않나 싶다
지금은 '전일슈퍼'와 '전일갑오'로 상호를 병기해 놨다
대한민국에서 마른갑오징어를 제일 많이 파는 가게다운 상호이다
계란말이 사건이나 가정용 맥주로 인한 세금 추징 땜에
당연히 사업자등록을 바꿨을 것이고
그때 고민하여 정한 상호일 테지
최근 젊은 층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객리단길의 '달팽이슈퍼'나 동문사거리의 '풍남슈퍼'는
족발을 비롯하여 10여 가지 안주 메뉴가 줄줄이 적혀 있으며
풍남슈퍼는 수족관까지 갖춰 회까지는 판다
물론 간판은 슈퍼이고 신고나 허가는 일반음식점으로 냈겠지만....
달걀말이가 조리네 아니네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금은 화장실로 개조한 파란 대문 안쪽이 예전에는 연탄창고였다



한쪽은 '전일갑오'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내 기준에 전주의 가맥은 전일과 초원뿐이다
그것도 전일은 젊은 층과 관광객들이 들끓어 가기가 싫고
간다면 이제 초원만 남는다. 

전일이나 초원을 가면 간혹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아이고,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제 맥주 한 잔 드시지요
저는 일행이 있어 이만..“

저 쪽 테이블에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선배가 있어
맥주 5병을 들고 가 테이블에 놓고 온다.
얼큰한 김에 이렇게 하고 말았다면
생색은 실컷 내고 계산은 저쪽 테이블에서 하게 된다

다 먹고 나면
해당 테이블의 빈병을 세어 계산을 하니까 ..........



2019.08.08(목) ~ 2019.08.10(토)  전주가맥축제(전주 종합경기장)




참가한 가맥집들.... 

빨간글씨는 접수기한을 어긴 곳들이라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