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1-30 12:09
내 기억 속의 여자들(16, 17화)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1,397  

16, 17. 바람과 때 타올


'NES'
'LUS'

두 여자를 같이 쓰는 이유는 서로 알거나 관련이 있는 게 아니고
우연하게도 공통점이 많아서이다
둘 다 전주에 살고 있고 계속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싱글들이었다.
현재까지 N은 33년, L은 28년을 알고 지내고 있지만
지금은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고 우연히 지나가다 들르면
안부나 묻는 사이가 되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공통점은 둘 다
나와의 섹스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씩뿐이었고
그 장소는 미용실에 딸린 그녀들의 안방이었다.
섹스 시기는 N은 33년 전 처음 알았던 해이고 L은 25년 전쯤이다
둘 모두 미모나 몸매가 그다지 빠지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딱 한 번씩만 잤던 이유는 지금부터 더듬어 봐야겠다.

N을 처음 본 것은 1986년 금융기관 다닐 때
연체자 건물에 압류를 하기 위해 재산조사를 나가서였다
그녀는 그 연체자 건물에 세입자였다
미용실과 안방, 그리고 조그만 부엌이 딸려있었다
그 당시 자세한 정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건물에 법수속이 진행될 경우
그녀의 전세금이 온전히 보전 될 거란 보장이 없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은 교통사고로 죽고 혼자
네 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게 안쓰러워 조심스레 가게를 옮길 것을 권했고
인근으로 피해 없이 가게를 이전했다
그녀와 잤던 곳은 이전한 직 후 가게에서였다
상당히 늦은 밤으로 기억하는데
술이 취해 불 꺼진 미용실 문을 두드렸다
손에는 와인병과 꽃송이가 들려 있었을 것이다
와인 맛도 모르면서 그 시절 한때 잘 써먹던 수법이었다.
문을 연 그녀의 표정은 놀라움과 반가움이 섞여 있었다.

"술 한 잔 먹고 가도 될까요?“

그녀는 흔쾌히 안으로 안내를 한다.

"홀은 바깥에서 보이니 방으로 들어가요“

네 살짜리 꼬마는 잠들어 있고 이사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수선한데다가 장난감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그녀는 급히 한쪽으로 밀어 놓는다.
그녀는 술을 전혀 못 마셨는데 그날은 분위기 때문인지
와인은 술도 아니라는 내 말을 믿어서였는지
반 컵 정도를 마시고는 얼굴이 벌게져서 숨을 가빠 해했다
나는 농담같이 던졌다

"좀 취하는데 저 윗목에서 한숨 자고가도 될까요?“

그녀는 별 망설임 없이

"그럼요“

그리고는 아이를 아랫목 쪽으로 조심스레 밀어 놓고
비키니 옷장에서 얄포롬한 요를 꺼내 깔아 준다.
그녀는 아이 쪽에 누었고 나는 살짝 간격을 두고
그녀를 등지고 누었다
처음부터 잠 잘 생각이 없었지만 좀 취했다고 잠이 올 리가 있나
그녀도 술기운 때문에 숨소리가 거칠 뿐 잠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잠결에 뒤척이는 척 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돌아누우며 왼팔을 올렸다
팔은 그녀의 오목가슴과 가슴 사이에 얹혀
팔 윗부분에 그녀의 가슴이 느껴졌다
그녀는 한번 흠칫 하더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숨만 약간 더 거칠어 졌을까?
만약 그녀가 내 팔을 들어 원위치를 시켰다면
조금 더 자는 척하다가 그냥 나왔을 것이다
나는 다시 잠덧을 하는 체 팔을 배 쪽으로 내리다가 다시 올려
아예 가슴 위로 걸쳐버렸다
그녀는 움찔하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자세는 그대로였다
나 또한 그 자세로 인내하고 있었다.
그녀가 마른 침을 세 번 정도 더 삼키기를 기다렸다가
손으로 슬며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때부터 솔직한 시간이 뜨겁게 흘렀다
진짜 잠이 들었다
갈증에 눈이 떠졌다
팬티 바람에 맨 처음처럼 그녀를 등지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보고는 소스라쳐 놀랐다
꼬마가 우리 머리맡에 우둑 허니 앉아있는 게 아닌가!
나는 재빨리 내 옷들을 챙겨 미용실로 나와서 입었다
그녀석이 언제부터 무엇을 봤건 꿈이었다고 생각하길 바라며
미용실을 나왔다

그날 이후 미용실을 다시 찾은 건 적어도 1년이 지나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3년 만에 들르기도 하고 한 달에 두어 번 들르기도 하고
그러니까 일부러 가는 게 아니고 그 근방에 볼일이 있을 때만 가는 셈이었다.
그것도 손님이 있으면 바로 돌아 나왔다
그녀와는 단 한 번도 밖에서 술 한 잔, 밥 한 끼 먹은 적도 없었다.
그녀와의 관계가 한번으로 끝난 것은
너무 쉽게 정복해서 가볍게 여겨 매력이 없는 것인지
아들 녀석에 대한 죄책감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 꼬마에게 바랐듯이
그날 일이 진짜 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알고 십 수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날도 여느 때처럼 지나가다 들렀다
손에는 빵봉지를  들었을까?
빈 손으로 가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
강아지를 안고 있던 그녀가 불쑥 한 마디 던진다.

"동주씨는 사람이야 바람이야?"


L은 14화 K의 단골 미용실이었는데 내 헤어스타일을 바꿔보라고
소개를 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얼마 전까지 20년 이상 단골이 되었다
그녀는  얼굴과 몸매가 수준 이상이었는데
독신주의인데다가 차갑고 까칠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K가 안심하고 소개해줬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여자를 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와 관계를 갖기까지 3년여 동안
머리 스타일에 따라 최소 한두 달에 한번 이상 머리를 깎으러 갔지만
단 한마디의 농담도 단 한 번의 수작도 부리지 않았다
고도의 밑밥을 뿌린 셈이지만
만약 밑밥을 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그냥 미용실주인과 손님의 사이였을 것이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밑밥이라기보다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라 해야 맞을 것 같다
사적인 대화를 먼저 건넨 것은 그녀였다
머리를 감고 서서 거울을 보며 말리고 있는데,
나는 예나 지금이나 머리를 깎고 나서 머리를 감는 거나 말리는 것은
내손으로 직접 한다

"양과장님 오늘 퇴근하고 시간 있으신가요?
아는 언니가 얼마 전에 백반집을 개업했는데
화분은 이미 보냈고 그래도 한번쯤은 가봐줘야 할 것 같아서요.
그동안 양과장님 고마운데 대접도 할 겸요“

"아, 그래요? 근데 어쩌죠
오늘 내일은 곤란할것 같고 2~3일 후 쯤 연락할께요
그 안에 다른 사람하고 다녀오면 어쩔 수 없고요“

"아뇨 시간 나실때 연락 주세요. 기다릴게요“

물론 오늘이나 내일이나 난 약속이 없었다.
아니 약속이 있어도 취소라도 하고 같이 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럴수록 참고 뜸을 들여야 한다
일부러 3일을 넘기고 4일째 되는 날
스스로 제일 멋지다는 옷을 골라 입고 오후에 전화를 했다

"죄송합니다. 요즘 좀 바빠서 깜박했네요.
저번에 그 식사 아직 유효한가요?“

"그렇지 않아도 연락이 없으시길래
삐삐라도 쳐봐야하나 생각 중이었어요“

식당은 아무리 봐도 최근 개업은 아니고
최소 두어 달은 되어보였다
그녀는 술은 아예 한 방울도 못 마신단다.
하지만 한번  말문이 터지자 멈추질 않았다
가정사로부터 자신의 이야기까지 끝이 없다
그 동안 내 머리 깎을 때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다
그 이야기 중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섬뜩한 대목이 있는데
그녀의 꿈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꿈을 잘 꾸지 않는데 만약 꿈속에서 누구를 보면
그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했다
몇 가지를 이야기했는데 하나 예를 들자면

20대 초반(이 당시는 30대 초중반)에
상당히 거칠고 폭력적인 남자를 사귄 적이 있는데
헤어지고 싶어도 무서워서 말을 못 꺼내고 있던 차에
그 남자가 미용실에 와서 난동을 부리는 꿈을 꿨는데
며칠 뒤 폭력 사건과 연루되어 철장신세를 졌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 아니고
2년 후쯤 그가 출소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늘 불안에 떨고 있었는데
다행히 찾아오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거의 잊어 갈 무렵 어느 비오는 날 저녁,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여 창 쪽을 봤더니
창밖의 이차선 도로 가운데 그 남자가 비를 철철 맞으며 서서
미용실을 바라보고 서 있더라는 것이다
소스라쳐 놀라 가위와 빗을 떨어트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꿈이었는데
그로부터 몇 달 뒤에 그 남자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따져보니 죽었을 때가 그 꿈을 꾸었을 즈음 이었다는 이야기다

다른 꿈 이야기들도 아프고, 사고 나고 등등
전에 알았던 남자들과 연관되어 있어 그래서 독신주의를 고집하게 되었다는데
이야기 끝에 덧붙이는 말이 황당하였다

"양과장님은 기가 쎄서 내 꿈에 안 나타날 것 같아요“

까불지 말라고 협박하는 건가?
아니면 자기가 영화 '기적'의 테레사(?)수녀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이후 30년 가까이 알면서 내 꿈은 꾼 적이 없다는데
꾸었어도 안 꾸었다하면 내가 알 리가 있나
근데 혹시 내가 사업에 실패하고 그런 것들이 그녀가 내 꿈을 꾸어서 일까? 
흐흐 근데 내가 그런 미신을 전혀 믿지 않는데 뭐...
암튼 그녀와의 첫 만남은 내 의도대로 흘러갔으며
저녁식사 후에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미용실에 바래다주고 돌아섰다
첫 만남에서 그녀를 대강 파악하고 자신감을 얻은 나는
곧바로 다음 작업으로 넘어갔다
그래도 바로 서두르지는 않고
20여일 후 머리 깎는 자리에서 말을 꺼냈다

"이번에는 내가 저녁을 사는데
장소가 좀 까다로운데 괜찮겠어요?“

"어딘데요?“

"............  “

잠시 뜸을 들이다가 쉽게 말했다

"은숙(가칭)씨 방이요“

그녀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듯 멈칫하다가
이내 까르르 유쾌하게 웃으며 말한다.

"제 방이 궁금하세요?
여자들 방이 더 지저분해요
며칠 정리 좀 하고 초대할게요“

의외의 시원한 대답에 아예 더 진행을 시켜버려야겠다

"그럼 그 날 자고 가도 되죠?“

더 크게 웃으며

"아뇨 그건 그 날 하는 것 봐서요.“

(음.. 안된다고는 안하는군)

며칠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고
나는 예우 차원에서 때밀이에게 온몸에 오일, 우유 마사지를 받았다
CD플레이어와 양초도 준비했다
그 당시는 CD플레이어와 소형스피커, 양초, 말못할 것들
등등이 상시로 세팅되어 가방에 담겨 대기하고 있었다.
그 날 무슨 음악을 들었고 무슨 음식을 시켜먹었는지는 아물아물하다
하지만 확실히 기억하는 건 그녀는
최성수의 'TV를 보면서'란 노래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나중에 우연히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청승맞은 게 그녀와 딱 어울리는 노래였다
그 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섹스는 마치 오래 사귄 사람들처럼
서로 밀땅도 없이 감미로웠지만 좀 아쉬웠다
아쉬운 김에 나는 담배를 태워 물며 다음 계획을 말했다

"다음번엔 호텔방을 잡아 룸써비스로 맛있는 것도 시키고
오늘같이 촛불도 켜고 그날은 최성수 CD도 듣고
욕조에 물 받아 거품 목욕도 하고...“

기분 좋게 말하고 있는데 그녀가 불쑥 끼어든다.

"때 타올도 있어요?“

나는 술이 확~ 깨는 느낌이었고
그 뒤로 어떻게 하고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자고 오지는 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녀와 사적인 만남은 그걸로 끝이었다
지금 와서는 '때타올'이 뭐가 어때서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분위기 깨는 그 한마디에 정이 뚝 떨어졌었다
그 한 번의 정사로 끝난 상황에 대해 그녀는 지금도 이유를 모를 것이다
남녀관계를 가볍게 유희로 즐기는 바람둥이라고나 여기겠지
그 뒤로도 흔연스럽게 머리를 깎으러 갔고
밍밍한 내 태도에 그녀도 예전의 냉냉한 표정을 되찾았다
난 오히려 그게 더 편했다
언제부터인지 난 그녀에게 말을 낮췄고 미용실을 나서면서 하는 인사말도 정해졌다

"내 꿈 꾸지마!“

그러면 그녀는 얄궂은 표정을 지으며

"꿀래요!“

그녀는 4~5년전 4살 연하인 퇴역 군인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나는 지금도 그녀들 미용실 부근을 가면
빈손으로 차 한 잔도 안 하는 깜짝 방문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N에게 나는 '바람'일 거고
L은 나에게 '때타올'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