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9-28 12:29
내 기억 속의 여자들(20화)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836  

20. 젊은 날의 사리

'CMI'(CSY)


내가 과거  여자들과 교제했던 패턴을 보면
특별히 이유 있는 몇 건을 빼고는 
'맺음'은 있는데 '끊음'이 없다
그러니 몇 년을 안 보다가 불쑥 연락을 하여 만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십 수 년 만에 보는 경우도 있다
아. 이십년도 넘어서 본 적도 있었군
그런데 이것은 내가 능력이 있거나 잘나서가 아니라
상대도 역시 나 같은 부류니 가능한 거 아닐까?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오랜만에 봐도 불편하지 않고
부담이 없으니 상대도 응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이런 끈끈한 인연에는 지우지 못할 정이 있어서라기보다
한때 찬란했던 색정의 찌꺼기가 눌어붙어서 일 것이다
그러니 재회 후에 아무런 감정소모 없이
또 언제 깰지 모를 동면에 들어가는 거겠지
그 동면이라는 것에서 깨지 않는 상대는
'끊음' 없이 그렇게 잊혀지는 거고...

그 드문 '끊음'을 올(21년) 4월에 시도하였다
그것도 무려 23년여를 이어온 관계였다
그녀가 비록 싱글이지만 그 긴 시간을 나만 바라봤을 리는 없고
그녀야말로 서로가 맞아 색정으로 끌어 온
대표적이 케이스라고 봐야할 것이다
나를 만나기 직전에 일찌감치 이혼을 한 그녀는
경제적으로는 넉넉한 편이었는데 무슨 팔자인지 계속 이사를 다녔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익산에 살았는데
그 뒤 전주로 수원으로 안양으로 여수로 지금은 통영에 살고 있다
안양에 있을 때 나는 명리학에 한참 빠져있었는데
그때 그녀 이름을 지어 개명하게 되었다
작명을 완성하여 팩스로 보내주던 날 (2015. 11. 6)
공교롭게도 내 손가락이 잘렸는데
개명한 후 그녀는 돈을 더 많이 벌었다
내 손가락의 기운이 그녀의 이름으로 스며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결코 놀지 못하는 성격 탓인지 직업도 수없이 바뀌었다
간호사에서 톨게이트 매표소로 옷가게로 한의원 사무장으로
일식집 서빙으로 생선가게 동업에 카페주인으로
현재는 맛사지샵 사장이다
그녀가 이사할때마다 한번 이상씩은 그녀의 집에 가 봤는데
1~2년 텀일 때도 있었고 6~7년만일  경우도 있었다
지금 마시지샵을 하며 살고 있는 통영만 못 가봤는데
작년 12월부터 두 세 차례 초대를 받았는데
그 때마다 구차한 핑계거리로 미루다가
올 4월의 연락에서 선을 그었다
색정의 딱지가 아물어 떨어졌는지.
내 짜여진 시간에서 틈을 낼 수가 없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긴 항로에 닻을 내린 것이다
세월이 세월이니 만큼 그녀와의 에피소드는 셀 수 없이 많지만
끝에 이르렀으니 맨 처음으로 돌아가 봐야겠다.

난 40을 갓 넘었고 그녀는 20대 후반이었다
애가 있는 이혼녀였지만 난 숫처녀 대하듯 신경을 썼다
몸을 섞은 것은 처음 만나고 한 달 후쯤인가?
지금은 없어진 대낮의 코아호텔에서였다
그녀는 열정적이고 격렬했다 숫처녀 대하듯 한 게 민망했다
그 격렬함은 그 후로도 계속 끝까지 변함이 없었다.
그 날 호텔 앞에서 익산까지 택시를 잡아주며
10만 원짜리 수표를 쥐어줬다
그 수표는 다음 만남에서 부담스럽게
토스카나 반코트로 돌아왔다

이제 그녀는 다 지우고 사리 모으듯
젊은 날의 이 첫 기억으로만 남겨둬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