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11-28 15:23
무당 개구리의 짝짓기 2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703  

2021. 11. 28(일)


얼마 전 산행에서 무당개구리의 짝짓기를 보고
예전의 일이 떠올라 그때를 일을 돌이켜 써봤는데
전편에서는 막상 본론은 나오기도 전에 사설이 너무 길어 일단락 했었고
다시 이어나가보기로 한다.

날 샌 마약파티와 아침을 주스로 때운 탓에
점심이 되기도 전에 배가 출출했다
조철현도 같은 심정이었는지

"형님, 점심 뭐 드실래요?"

나는 이미 생각이 있었다.

"어이, 여기 보신 잘하는데 있는가?"

조철현은 눈을 번쩍 뜨며

"형님, 여기 보신 천국입니다 천국,
기가 막힌 데로 모실게요"

중국이 우리보다 보신문화가 열배는 더 발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외국의 동물보호단체들은 왜 우리나라만 상대로 지랄들일까
하긴 요즘에 와서는 국내에서도 반려견의 증가로 기피가 심해지고 있지만...

위해시에서도 외지고 허름한 집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먹던 대로 배받이 수육을 찾았다
내맘에 드는 딱 그 부위만 주는데  쟁반 같은 접시에  수북이 담아왔다
한국 가격으로 따지면 20만원어치는 족히 될것 같았는데 80위안,
우리 돈 12,000원 정도다
오히려 우리나라 소주를 시켰는데 소주 값이 1병에 150위안(23.000원)이다
그런데 내가 이 점심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개고기나 소주 값을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점심을 먹으며 예기치 않게 진행된 어떤 상황 때문이다
식사가 막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담사박에게 전화가 걸려와 
잠시 나가서 받고 들어오더니 투덜거리며 털어놓는 얘기가

위해시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공안부장인 백부도
홀어미 밑에 있는 서른 살도 넘은 조카 한 명을 건사 못하여 걱정인데
그 짐을 자꾸 자기에게 떠맡긴단다.
대가족 사촌들 가운데 유일하게 직업이 변변치 못한데
그동안은 인도네시아에서 배를 타다가 왔고
본인이 원하는 것은 인천항과 위해항을 오가며 따이공(보따리장사)을 하는 것인데
문제는 따이공을 하려면 1년 이상짜리 비자가 필요한데
그 1년 이상 비자는 단번에 뚝 떨어지는 게 아니고
1개월 초청비자 다음, 3개월 취업비자를 거쳐
6개월짜리 취업비자까지 받아 마치고 나야 다음단계로 1년짜리를 받을 수 있다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1개월짜리 초청비자는 형이 어떻게 해줬다는데
취업비자는 실제 취업확인절차를 거쳐야하니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친구가 목포에서 2년 계약으로 공사를 따냈는데
한국인부들은 비싸기도 하거니와 걸핏하면 술 먹고 일을 빵구내고
골치가 아프다며 싸고 믿을만한 외국인을 구해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아직 유효한지 모르겠다.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OK를 하며 빨리 여권부터 팩스로 보내 달라 했다
오히려 친구가 더 급했다
상황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오후 5시경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이쪽 수속은 최대한 빨리 진행 할테니 9월 초에 입국할 수 있나 알아봐라"

담시박에게 내용을 전했더니 입이 함박만 해지며 즉시
백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린다.
그 뒤로 내 일정이 바뀌어버린다
그날 저녁 내가 한잔 사려던 계획도 얻어먹는 걸로 변했고
그 다음날 귀국도 미루어지고
그날 받은 저녁 대접은 내 평생 받아본 2번의 최고 대접 중 하나로 꼽힌다.
위해시에서 제일 큰 식당이라는데
원통형의 피사의 사탑 같은 건물이었다.
7층이라는데 중앙은 맨 위 천정까지 뻥 뚫려 있고
벽 쪽으로만 룸이나 홀이 배치되어있는 형태였다
우리는 아주 완만한 경사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3층 정도의 호화로운 룸으로
안내되었는데 룸에는 이미 풍채 좋은 공안부장 부부와
20대 초반의 아들이 먼저 와 있었다.
중국 사람들의 진정한 접대는 가족을 동반해야 한단다.
그리고 그때 또 하나 배운 것이 있는데
아더왕의 원탁의 기사들은 평등을 위해 원탁을 사용했다는데
중국의 원탁에서는 확실한 서열이 있었다.
출입문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곳이 상석이고
상석을 기준으로 바로 왼쪽이 2번 상석의 오른쪽이 3번,
물주나 가장 쫄병이 문을 등지고 앉는단다.
그 날의 배치는 상석에 공안부장이고 우측으로는 가족들이 앉았고
좌측에 나, 그리고 담사박이 문을 등지고 앉았다
메뉴는 우리나라 중국집의 코스요리 같은 것이었는데
가지 수도 종류도 어찌나 많았는지 기억도 안 나고
그 중 몇 개는 샹차이 향 때문에 못 먹었다
다만 그 저녁자리에서 잊지 못할 특이한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공안부장이 중국에서 완전한 '펑요우~'(친구)가 되려면
술을 일곱잔을 건배해야 한다면서 35~40도 짜리 독주를 안주 먹을 틈도 없이
거푸 들이켰던 것과
또 하나는 룸에 음식 서빙과는 관계없는 두 명의 종업원이 있었는데
그들은 오로지 물수건 담당이었다.
탁자 위에는 밑이 평평한 U자 형태의 자기로 된 물수건 받침이 있었고
그 위에 하얗고 시원한 물수건이 놓여있었는데
손을 닦거나 하면 바로 새것으로 바꿔주는 것은 물론이고
손가락 하나만 살짝 문질러도 즉시즉시 바꿔주는데
나중에는 미안해서 물수건을 쓰지 못 할 정도였다

중국 한족들의 성향이 대체적으로 의리는 있지만 공짜는 없다
공짜가 없다는 건 덕을 보면 확실히 갚는다는 뜻도 된다.
나에게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하는걸 보면 조카의 초청이
얼마나 절박했고 절실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조카의 이름이 '아동'이였는데 결과적으로
'아동'이나 내 친구나 서로 대만족이었다.
임금은 한국 인부보다 절반도 안 되었는데 일은 두 세 몫을 했고
친구와 숙식을 같이 하니 일정을 빵구낼 일도 없었다.
1년 비자를 받아 목적을 달성했는데도 친구가 부탁을 하여
같이 2년을 지냈다 덕분에 '아동'이도 장사 밑천을 한 몫 챙겼을 것이다
나하고도 가깝게 지냈는데 짜장면과 순대국밥을 아주 좋아했고
명절이나 비자가  만료되어 일시 출국할 때면 어머니와 애인 선물을 내가 골라 줬는데
상표를 유심히 보다가 made in China 라고 쓰여 있으면 혀를 끌끌 차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한쪽으로 제쳐놔 버렸다
몇 년 후 관광여행차 인천항에 갔는데
'따이공'일을 하고 있는 '아동'이와 우연히 만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아동'이는 그 큰 덩치에 눈물까지 그렁거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공안부장의 접대는
그 저녁식사로 끝났지만 담사박의 접대는 아직 시작도 안했다  

다음날부터 귀국 할 때까지 4~5일 동안 담사박에게 받은 대접은 거의가 마약파티였다
조철현 일행도 같이 동참했는데 조철현이 제안한 사업계획을 거절하기로 마음먹은 상황에서
첫날 받은 접대가 부담이었는데 그걸 갚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후련하고 편안해졌다
마약의 종류는 뭐가 뭔지 모르게 여러 가지였지만
즐기는 패턴은 첫날과 별반 다를 게 없었는데
며칠째 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낮에 판을 벌린 파티가 좀 파격적이었다.
점심 반주를 할 때 알약을 받아먹었는데 그건 마약이 아니고
발기촉진제여서 대강 짐작은 했었다 
그날의 메인은 '꿀럭꿀럭'이라는 증류수 같은 액체를 통해 기체를 들이마시는 약이었는데
이 약은 섹스용 약이었다.
담사박, 조철현, 나 셋이서 호텔스위트룸을 찾아 들어갔을 때는
이미 아가씨들 3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앳되고 날씬하고 예뻤지만 눈은 공허하게 영혼도 감정도 없어보였다
우리 셋은 각자 하나씩 '꿀럭꿀럭' 병을 들고 연기를 틀이 켰고
여자들에게는 담사박이 먹는 약을 주는 것 같았다
'꿀럭꿀럭'의 효과는 흥분상태와 발기는 유지하면서 사정을 억제한다는데
그 목적은 여자 셋과 우리가 돌려가며 리그전으로 하자는데 있었다.
그것도 서로서로 다 보이는 한 방에서...
파트너 체인지 타이밍과 침대에서 할 지 소파, 또는 바닥에서 할지는 나더러 결정하란다.
옷을 다 벗은 그녀들의 몸매는 거의 체조선수 수준이었다.
나는 소파를 차지했다
여자에게 무슨 약을 먹였는지 이미 젖어있었다
하지만 너무 가냘 퍼서 그런지 신선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미처 깊이 느끼기도 전에 다른데 신경이 쓰였다
담사박과 조철현은 정상적인 섹스를 하는 게 아니었다. 
둘 다 가학적이었는데 조철현은 머리칼을 움켜쥔 채 우악스럽게 오럴을 시켰고
담사박은 뭘 어떻게 하는지 여자가 비명을 감춘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나는 일시에 흥이 깨지고 말았다
애초에도 약기운이나 술김이 아니면 응하지도 않았을 룰이었지만
실제 겪으니 잠깐이지만 나와 몸을 섞은 여자를 그들에게 주는 것도 싫었지만
잔혹하게 헤집어진 그녀들을 안기는 더더욱 싫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대충 물기를 닦고 나오니 방안 분위기가 싸늘했다
내 파트너가 뭘 잘못해서 내가 화가 난줄 알고 그녀를 추궁 중인 것 같았다

"어이, 아냐 아냐 쟤  때문이 아니고
그냥 이 상황이 내 취향에는 안 맞네
우리 이대로 옮겨가 룸에서 술이나 한잔하세 내가 살께"

둘 다 좋다고는 했지만 조철현은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룸 오픈시간이 너무 일렀지만 담사박이 연락을 하여 일찍 열게 했고
나는 난생 처음으로 룸살롱에서 배달된 보신수육을 먹어봤다
파트너는 처음 그대로 유지되었고 조철현은 술 마시는 도중에
기어이 파트너를 다른 방으로 끌고 갔다
술자리가 끝나고 2차를 나갔는데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내 파트너는 고마워하는 눈치였고 섹스에서 아주 능동적이었다.
술값을 내가 계산하려 했지만 담사박이 말렸다
형이 준 여비가 비행기 표 외에 300백만 원이었는데
30만원도 못썼다

귀국 후 조철현과는 완전히 연락이 두절되었고 
담사박과는 '아동'이 때문에 가끔 통화를 했는데
'아동'이 중국을 다녀올 때마다
그 편에 짝퉁 명품 등산복이나 지갑 같은 걸 보내오곤 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마약 생각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 후 몇년 동안 '빼빼빼빼~~'  하는 테크노 음악만 나오면
나도 몰래 저절로 도리도리를 하다가 스스로 흠칫 놀라며 쓴웃음을 짓곤 했다 


사람이 개구리와 같을 수는 없자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