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1-08 12:07
차와 나(서문)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387  
2023. 1. 8(일)

나는 젊었을 때부터 자동차에 대해서 별 관심도 욕심도 없었다.
그저 이동이나 운송수단의 편리성을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 내가 원하는 차는 소형차(아반떼나 K3급 정도)에 
옵션만 약간 고급(그랜져급 전후)옵션을 원했으나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그런 사양은 불가능했다 
허실 삼아 주문제작을 문의해 보면 이상하게 쳐다봤다
대부분 소비자들 심리가 예를 들면 1,800만 원짜리 풀옵션 아반떼를 사느니 
올려 배기로 200더 주고 2,000만 원짜리 기본사양 소나타를 타려는 경향이 있단다 
나와는 다르지만 일리가 있고 이해도 간다 아마 그게 일반적이리라
나는 외제 차는 물론이고 국산차종도 어떤 게 비싼 건지 잘 모른다 
에쿠스나 체어맨, 티코, 모닝 같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이나 
SM5네 K7이네 G80 등 뒤에 숫자가 붙은 것들은 숫자가 높으면 좋은 차인 줄 아는데 
싼타페가 좋은지 투싼이 좋은지 쏘렌토와 스포티지는 어떤게 나은 건지 잘 모른다 
이렇게 차에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성인이 된 후부터는 
평생을 차 없이 지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직 생각 날 때 내가 탔던 차들을 기억해 보고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추려봐야겠다

내가 처음 운전대를 잡아본 것은 아마 중딩 때쯤이었을 것이다
선친께서 트럭 운수 사업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 집 옆에는 큰 주차장이 딸려 있었다
(이 주차장 부지는 나중에 운수사업을 접은 뒤 건영정기화물에 세를 내줬다) 
차는 '제무시'라는 적재함이 뒤로 들리는 덤프트럭이었는데 
그 당시 미군 중고트럭을 개조한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무시'가 차 이름이 아니고 'GMC' 회사 이름인데 
그때는 트럭에 정해진 이름이 없어 덤프트럭을 그냥 제무시 제무시 했었던 것 같다
주차장과 우리 집 본채 사이에 문간방이 있었는데 그 방에서 트럭기사와 조수가 상주했었다 
기사는 지금은 돌아가신 '최석환'씨로 운수업을 하는 동안은 기사직을 독점했었다 
결혼도 선친께서 시켰으며 운수업을 접으면서는 성심여중고 교장이었던 범신부님 빽을 빌려 
교내 매점을 내주기도 했었다
나는 "석환형, 석환형.. ."하며 잘 따랐으며 그 덕분에 선친 몰래 운전대를 한 번씩 잡았는데 
지금의 신리 나가는 대성동 비포장 직선도로에서 100미터정도를 
1단에서 2단 기어변속을 해보는 걸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4단까지 변속은 해봤지만 
커브길이나 교차로 통과는 못해봤고 빠꾸 역시 못해봤다 이게 운전의 첫 경험이었고 
19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던 즈음이었다
본격적으로 운전을 하기 시작한 때는 군 제대하고 나서부터이니 1981년이 되겠다. 
그때 면허증을 따지는 않았고 무면허로 하고 다녔다 선친께서 빨리 면허증을 따라고 나무라셨지만 
나는 대답만 하고 차일피일 미뤘다 약 7~8개월 무면허 상태였는데 
한번은 아침에 장승배기에 있는 전주골프연습장에 선친을 모시고 갔다  
연습장에서 어느 분이 인사를 한다. 
선친은 그 분에게 인사를 시키며 하시는 말씀 

"이놈이 둘째 놈인데 그렇게 운전면허를 따라고 해도 안 따고 무면허로 운전을 하고 다닌단 말세" 

그러자 그분은 빙긋이 웃으며 인도아 뒤쪽에 걸어 놓은 웃옷에서 지갑을 꺼내 오더니 
명함을 빼서 뒷면에 '조카'라고 쓰고는 싸인을 해서 주면서 혹시 경찰에게 걸리면 보여 주란다
명함 앞쪽에는 전라북도 경찰국(지금 경찰청) 보안과장 총경 안XX 라 적혀 있었다.
그로부터 서너 달 뒤 진안 장승리 검문소에 무면허 상태에서 음주, 과속으로 걸렸다
그 당시는 음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때였다 5천 원짜리를 슬며시 건넸다 
경찰은 돈을 봉창에 낼름 집어넣고는 빙글거리며 면허증을 보여만 주고 가란다. 
과속은 2~3천원이면 되었는데 5천원을 주니 찔리는 게 있다고 생각하고 
돈을 더 내라는 거지? 
그때 문득 명함이 생각났다 깝지를 뒤적거려보니 다행히 한쪽 구석에 있다 
면허증 대신 명함을 줬다 경찰은 앞뒤로 훑어보더니 낯빛이 변하여 넣었던 5천원을 다시 꺼내 
명함과 함께 주며 비굴한 웃음을 짓고는 얼른 가란다. 
명함은 그때 딱 한 번 써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요순시대 같은 이야기다
그 당시 시내에서 경찰에게 걸리면 무조건 딱지 떼거나 돈 받아먹는 게 아니었다.
경찰들은 항상 넌지시 물었다

"어디 차여?" 

딱지를 떼도 되는지 돈을 먹어도 뱃병이 없을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그때 관용차들은 넘버가 정해져있었다 도지사는 1000번, 전북대 총장이 1111,  
전주시장 6666, 경찰국장 3333,  판사와 검사들은 100X로 나갔다
내가 금융기관 총무부서에 근무할 때 싸이카에게 걸린 적이 있었다. 
총무과장 직책인 내 명함을 주며 차나 한 잔 하러 오라하자 명함을 갈무리하며 그냥 보내준다 
그로부터 2~3일이나 되었나?
싸이카 경찰복 차림으로 어김없이 찾아왔다 차를 대접하고 3만원 봉투를 주면서 가끔 놀러 오라고 하니 
그 뒤로는 분기에 한 번 정도와 양대 명절에 꼭 수금을 하러 왔다 
그리고 나는 직원들에게 혹시 경찰에게 걸리면 전일 직원이라고 하라 했더니 거의 프리패스였다 
그 시절에는 찾아오는 경찰 말고도 인근 파출소, 각 지방신문 경제부기자들 담당 소방관서 등에 
주기적으로 봉투를 했었다 
그 덕인지 어느 해인가는 11월9일 소방의 날에 '우수방화관리자'로 내무부장관 표창도 받았었다 
그때 회계 항목에는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판공비'라는 게 있어서 가능했는데 
꼭 그렇게 짜웅하는데만 쓴 것은 아니고 환경미화원이라든지 봉투 팔러오는 상이군인들, 
심지어 거지들에게도 쓰였다
어, 자동차 얘기가 엉뚱한 데로 흘렀네

내가 탔던 자동차들

1. 브리샤픽업(1981~1983?)
2. K303(1981~1983?)
3. 봉고 2740(1984?~1989?)
4. 스텔라프리머(1985)
5. 로얄프린스 1605(1986~1990?)
6. 소나타 2484(1990?~1998?)
7. 엘란트라(1995~2004?)
8. 테라칸 2128(2002?~2014)
9. 프라이드 6616(2002~2003?)
10. SM5 1711(2014?~2016)
11. K5 2206(2016. 11 ~  2019.12)
12. K5 7216(2020.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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