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3-05 12:45
차와 나(3)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391  
2023. 3. 5(일)


내가 탔던 자동차들

1. 브리샤픽업(1981~1983?)
2. K303(1981~1983?)
3. 봉고 2740(1984?~1989?)
4. 스텔라프리머(1985)
5. 로얄프린스 1605(1986?~1990?)
6. 소나타 2484(1990?~1998)
7. 엘란트라(1995~2004?)
8. 테라칸 2128(2002?~2014)
9. 프라이드 6616(2002~2003?)
10. SM5 1711(2014?~2016)
11. K5 2206(2016. 11 ~  2019.12)
12. K5 7216(2020. 2~   )


3. 봉고 2740(1984?~1989?)



1세대 12인승 봉고차였고 그것도 빨간색이었다.
모든 의자와 등받이에 커버를 맞춰 씌웠고 심지어 커튼까지 달았다 
목받이를 빼고 의자들을 뒤로 눕히면 완벽한 침대가 되었다
선친의 생각일리는 없고 아마 어머님의 발상이리라 그리고 그 당시는 그게 유행이었다. 
덕분에 나는 대실료 꽤나 아낄 수 있었다 물수건으로 얼룩 닦아내는 게 일이긴 하였지만...
이 봉고차와는 대실 말고도 여러 가지 사연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는 미신을 잘 믿지 않는 나에게 징크스가 생겨나게 할 뻔 했고 
또 하나는 약 3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결되어 있는 사건이다

1984년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지금의 다가동 전주풍남관광호텔 자리에 그녀의 월세방이 있었다 
그녀는 '내 기억 속의 여자들 8화'의 주인공으로 룸싸롱 마담을 하고 있었으며 
나와의 사이는 살림도 아니고 동거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였다
정리를 하고 나올 때 내 짐이 겨우 사과 궤짝으로 하나 정도 밖에 안 되었으니..
.
그날도 석 달 후 잡아 놓은 결혼날짜를 어떻게 알려야하나 고민 하던 날 중 하나였고 
여느 때 처럼 내가 간다는 말에 가게를 일찍 정리하고 들어왔다 
그래봤자 새벽 2시였지만 가게에서 싸가지고 온 과일 안주에 쏘맥 몇 잔 했는데 
그날도 결혼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나가보니  차가 없어졌다
그녀의 집은 다가동이고 차를  주차했던 곳은 좁은 2차로 건너편으로 고사동이었다 
좁은 길이지만 그 길이 동 경계였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차량 도난신고를 하는데 
다가동파출소와 고시동파출소가 서로 미룬다. 
그때 어느 파출소로 결론이 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차를 찾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보름정도가 지나고 12월이 되어 찾는 걸 포기하고 보험 청구 절차를 알아보고 있는데 
회사로 전화가 걸려 온다 그다지 친한 친구는 아니었는데

"니 차가 왜 여기 며칠째 있냐?"

"뭐! 어딘데?"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몇 차례 헤매다가 도착했다 꽁무니가 보인다
'2740'  맞다!

지금의 진북동 우성아파트 서쪽편 막다른 골목에 있었는데 
그때는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이어서 아주 외진 곳이었다.
사고 난 흔적이나 부서진 곳은 없었지만 잔뜩 먼지가 쌓인 채 앞바퀴 바람이 빠져 
폭삭 주저앉아 있는 꼴이 누가 봐도 버려진 차로 보였다 
차량 전문 절도범은 아니고 키박스 정도나 조작할 줄 아는 좀도둑이었나 보다 
차량 내부는 예상했던 대로 카세트는 뜯겨져 사라졌고 
글러브 박스는 뒤져서 조수석 의자위에  흩뜨려 놨다  
기름이 거의 앵꼬 상태인걸 보니 끌고 다니다가 기름이 떨어질 것 같으니 
한적한 곳에 처박아 둔 것 같다 
레카를 부르고 카세트 새로 달고 손보는데  몇 십만 원 들었지만 
차 잃어버렸다고 지천 한마디 안하시던 선친 볼 낯이 생겨 다행이었다.
차를 잃어버렸다는 부담감이 크게 작용하였는지 11월에 대한 느낌이 안 좋았는데 
89년 11월에는 큰 놈이 경끼를 하여 각시가 놀라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작은 놈이 9달 만에 나와 졸지에 3명의 환자를 떠안았는가 하면 
작은놈 7살 11월에는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졌었다 
하긴 고사 '새옹지마'에서는 다리 부러진 게 결국 나쁜 일도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 세 번뿐이었다 일생 동안 더 나쁜 일들이 여러 달에 걸쳐 나뉘어 벌어졌고 
11월은 그냥 세 번의 우연이었다.

또 하나의 사건은 1987년 5월에 시작된다. 
일요일이었고 뒤쪽엔 선친과 가정부아줌마가 타고 있었고 앞자리 조수석엔 각시가 있었다. 
진안 농장 가는 길이었는데 아침 7시 경으로 시골길은 더 없이 한적했다 
화심순두부집에서 약 1키로 못 미친 조그만 동네를 지나치는 중이었다. 
나는 원래 운전습관이 과속을 잘 안한다. 
더구나 동네를 지나니 만큼 아마 시속 40키로가 채 안되었을 것이다

"어맛!!"

각시의 외마디 비명과 동시에 '텅~!' 하고 뭐가 차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차를 급히 세우고 조수대 백미러로 뒤쪽을 보려는데 백미러가 떨어져나가고 없다
차를 길가로 대고 내려서 보니 10여 미터 뒤에 사람이 쓰러져있다 
가까이 가보니 40대 초중반의 왜소한 남자였다 
옆에는 백미러가 나뒹굴고 있었는데 남자의 머리를 때렸나보다 
기절한 듯 의식은 없는 듯한데 이상하게 숨은 헐떡거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 남자들이 일을 나가려고 모여 시간되기를 기다리던 중 
서로 장난치며 쫒고 쫒기며 뛰다가 그 피해자가 길로 튀어 나온 것이다
차에 실으려고 내 팔을 피해자의 목과 무릎 밑에 넣고 들자 왼쪽 다리 정강이 부분이 
푹~! 꺾이며 덜렁거린다. 
아, 부러졌다  
뛰쳐 나올 때 왼발이 들린 상태에서 범퍼에 부딪힌 것이다
그와 동시에 옆으로 돌출된 백미러는 피해자의 얼굴을 때리며 떨어져나갔는데 
그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떨어지는 바람에 충격이 완충되어 얼굴과 머리는 타박상만 입었고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피해자를 차에 실었는데 아무도 따라 나서는 사람이 없다
뜨내기로 그 동네에 눌러 산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친척도 연고도 없다고...  
아줌마와 각시를 현장에 내려놓고 병원으로 갔는데 나중에 각시를 통해 들은 내용이다 
대학병원으로 가는 도중 피해자는 깨어났는데 정신이 없는 듯 횡설수설 했다
응급실에 도착하여 임시 보호자 자격으로 수속을 밟아 입원을 시킨 다음 선친은 집에 모셔다 드리고 
다시 현장으로 갔다 누가 신고를 했는지 소양파출소와 북전주경찰서에서 나와 있었다.
현장조사를 하는데 주민들 진술과 우리 주장이 일치하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고 위치에 차를 세우고 사진 한 장 찍고 끝났다 
그 후 경찰은 병원으로 가서 피해자에게 진술을 확인시키고 지장을 받고 마무리가 되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한다.
보험처리를 하려고 보험회사에 연락을 하니 보험에 가입이 안 되어 있단다.

'이게 무슨 소리!'

확인을 해보니 보험 만기가 5일이 지나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보험갱신 우편물 전달이 안 되었던 것이다

'이거 큰일났다'

경상도 아니고 복합골절로 진단이 12주나 나왔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를 바꿔치기했다
그 당시 선친께서 투자하신 건표고, 은행, 호두 등 임산물을 수매하는 회사가 있었는데 
거기에 회색 봉고차가 두 대 있었다. 
그 중 한 대가 사고 낸 걸로 바꾼 것이다
보험사 직원은 임산물 회사 사장이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여서 설득을 했고
경찰 쪽은 그 당시 북전주경찰서장이 선친께서 수족 같이 생각하는 후배라서 전화 한 통화로 
처음 받았던 조서를 무효화 하고 조서를 다시 꾸미기로 한다.
조서를 다시 꾸미는데 문제가 되는 것이 피해자에게 다시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처음 조서대로 하면 피해자 과실이 있어 보험사에서 보상이 나오지 않으니 
피해자를 생각해 주는 척하며 피해자가 차로 뛰어 든 것이 아니라 
길가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운전 부주의로 쳤다는 내용으로 바꾼 것이다. 
피해자가 생각보다 어수룩해서 다시 서명을 해줬고 바꿔치기한 차로 사진도 다시 찍었다
보험도 바로 접수를 해서 모든 게 정상적으로 처리가 되어 끝나는 듯 했다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피해자의 직계 가족은 없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수소문하여 아재뻘 되는 친척을 찾았다
그 친척은 전주시장 차를 운전하다가 정년퇴직한 사람이었는데 사고 내용을 듣고 다시 조서를 
받았다는 점에서 의문을 갖고 현장까지 와서 둘러보고는 북서에 재조사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재조사가 들어가면 검찰이 개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사건은 바야흐로 복잡하게 꼬이고 있었다.
물론 선친이 검찰 쪽에 손이 닿지 않는 것도 아니고 
사촌 형님이 대검에 간부로 있기도 했지만 모양새 빠지게 이런 사안으로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되니 보험사 직원도 담당 경찰도 불안해했다
당사자인 내가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했다

“아버지, 200만원만 주세요 제가 그 친척을 직접 찾아가봐야겠네요”

내 봉급이 45만원이었을 때니 그리 적은 돈은 아니다
선친은 가타부타 말씀도 안하시고 선뜻 은행에서 찾아 주셨다
회사 퇴근을 하고 과일바구니를 사들고 미리 수소문해 두었던 그 친척집을 찾아 갔다
지금의 대학병원 앞 쪽 골목의 단층 단독주택이었다.
내가 사고 운전자였다고 말하고 모든 걸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무보험차라서 보험이 들은 차로 바꿔치기 하는 바람에 조서를 다시 꾸몄고 사고 내용은
첫 번째 조서대로라고....
그 친척이라는 사람이 깜짝 놀라했다
시장 차를 오래 운전해서 그런지 그 방면엔 트인 사람이었다.

“아이고, 그럼 재조사하면 큰일 나겠네요 내일 바로 요청 취소해야겠네요.”

무보험이 되면 병원비니 뭐니 가해자가 물어야하는데 막말로 내가 배 째라고 하면
그 피해자도 우선 깝깝할 수밖에 없고 소송으로 가면 자기가 나서야 할 판이니
그러면서 자기 생각에는 운전자 측에서 큰 과실로 사고를 내놓고 어물쩡하게 넘어가려는지 
알았다는 것이다

‘아, 이렇게 간단히 끝날 줄이야’

하지만 못을 박아야 했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100만원만 꺼냈음. 나도 뭐 떨어지는 게 있어야지)

“이거 얼마 되지 않지만 받아주십시오”

그 친척은 손사래를 치며 당치않다는 듯 사양을 하며

“그거 XX(피해자)에게나 갖다 주세요 참 불쌍한 놈입니다”

결국 100만원은 피해자에게 갖다 줬다

이 사건은 가해자도 쉬쉬, 피해자도 쉬쉬, 경찰도 쉬쉬, 보험사도 쉬쉬 하는
이상한 사건으로 끝났다

그때 그 보험사 직원 ‘태사장’ 나 보다 3~4세 위쯤 되는데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보험을 가입하고 있다
작년(2022년) 3월 운전자 보험이 만기되어 신규로 설계해 왔는데....
음 너무 과하네...  그런데 그냥 가입했다
그러고 나니 물티슈 한 박스 주더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