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3-23 23:52
전주의 사창가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484  

전주의 사창가

    

2023. 3. 23()

 

전주에는 두 곳의 사창가가 있었다.

시청 뒤편의 '선미촌'과 남부시장 부근의 '선화촌'인데

이 명칭들은 근래 들어 생겨난 것으로 선미촌을 철거해야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지면에 써질 문어체의 필요성 때문에 미화시켜 태어난 이름이다

우리들은(거기를 가 봤거나관심이 있는 사람들선미촌은 '뚝너머'

선화촌은 '개골목'이라 부른다

'뚝너머'라는 명칭의 유래는 인근에 있는 전주시청 자리가 예전에 전주역 자리였는데

지금의 홈프러스 완산점 앞 큰사거리에 역으로 진입하는 철도 건널목이 있었고

그 건널목을 건너야 사창가로 갈 수 있었다.

여수순천에서 올라오는 전라선 철로는 한벽당 굴을 지나 오목대와 현 한옥마을 뒤편을 거쳐 전주역으로 들어오는데

굴에서부터 한옥마을이 끝나는 곳까지는 지대가 낮아 철도 공사를 할 당시 높게 뚝을 쌓아 철길을 만들었는데

그 당시 한옥마을에서 군경묘지가 있는 남노송동을 가려면 철길 밑 굴다리로 통과해야 할 만큼 뚝이 높았다

지금도 한옥마을에 '굴다리 수퍼'라는 상호가 그 부근에 있다

그 뚝이 건널목까지 이어지지는 않지만 정확히는 '건널목너머' '역너머'라고 해야 될 사창가가

'뚝너머'로 굳혀진 것이다

별것도 아닌 보통명사가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 꺼려하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개골목'은 이런저런 설이 있지만 내가 믿고 싶은 설은

개골목 바로 옆에 있는 코오롱상가 자리가 예전에 오성소주라는 주조장이 있었는데

술을 빚고 나면 나오는 술찌개미를 개골목 방향으로 버렸다고 한다

없이 살던 시절 그걸 주어 먹으려고 넝마주이나 거지들이 찌개미 버리는 시간이 되면

골목길에 개떼 같이 모여 기다렸다고 해서 '개골목'이라 했다고 한다

어쨌든 개골목이라는 명칭은 사창가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사용했었다

      

술찌개미가 나왔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본 개골목(2023. 2. 19 사진)

      

그런데 서두에 왜 '두 곳의 사창가가 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썼냐면

2021년 12월 31일 현재로 뚝너머의 창녀촌은 사라졌다

전주시청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어서 몇 십 년 전부터 존치여부에 대한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2004년인가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면서 단속이 강력해졌지만

뚝너머는 끈질기고 화려하게 살아남아 왔었다

하지만 전주한옥마을이 뜨면서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늘자 한옥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뚝너머가 외지인에게 노출되기 시작하고 전주시 이미지 문제가 대외적으로 제기됨에 따라

시와 시민단체들은 더 이상 소극적으로만 대처해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고

2015년경부터는 적극적으로 당근(철거보상금)과 채찍(불법영업에 대한 벌금 및 과태료)을 병용

하며 밀어붙인 결과 한 집 두 집 무너져갔고 결정적으로 코로나 유행과 맞물리면서 골목 안쪽

에서 끝끝내 버티던 몇 집도 마침내 손을 들고 말았다

코로나가 최고조로 창궐하던 2021년 말

아쉽게도 뚝너머의 사창가는 단 한 집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전주시에서 뚝너머 말살정책으로 처음 시도 했던 게 쇼윈도우를 가리기 위한 가로수 심기와 대형 화단 배치하기

 

  

그리고 예술촌으로 탈바꿈 하게 시민단체의 노력도 끈질겼다(2023. 1. 11 사진)

 

나는 1970년 중2 14살에 뚝너머에서 동정을 잃었다

뭐 잃었다기보다 갖다 바쳤다고 해야 맞겠지만

나는 입버릇처럼 동네 4년 선배들에게 반강제적으로 끌려가 당했다고 말은 하지만

내가 정말로 가기 싫어 완강하게 거절했다면 그래도 가능했을까

처음 간 날 선배 한 명이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여자에게 말했다

 

"야 아다리시니까 확실하게 따먹어!"

 

그러면서 여자와 같이 키득거렸지만 별로 굴욕적이지도 않았고

실전에서는 처음이지만 리드 당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그 선배가 입대하고 휴가 나왔을 때 나는 고딩이었는데 청출어람을 뛰어넘어

거의 뚝너머 박사가 되어 선배를 안내했다


3때는 학교 서쪽 담을 넘어 10여 미터의 골목을 지나면 바로 뚝너머가 나왔는데

점심시간이면 담을 넘어서 후다닥 닦지도 않고 다녀와서 아직 채 쪼그라지지 않고 번질거리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추태를 부린 적도 있었다.

또 그 즈음 선친의 카메라 아사히펜탁스를 훔쳐 화대를 내기 위해 뚝너머 복판에 있는

중앙전당포에 잡힌 게 아니고 아예 팔아먹었는데 그 안에 막내동생 돌 사진 필름이 들어 있어서

지금은 중년이 된 막내 돌 사진이 없다

그 시기 화대는 숏타임은 300원 긴밤은 1,5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긴밤의 특징은 성행위와 숙박이 아가씨 개인 방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가씨들은 자기가 소속된 여인숙이나 하숙집에 각자의 방이 있어 거기서 기거를 하였다

대부분 비키니 옷장과 앉은뱅이 화장대한 쪽엔 요가 깔려있었다

긴밤 이래봐야 밤새 내내 같이 있는 게 아니고

일단 아가씨방에서 한 번 하고나면 혼자 방을 지키고 있고

아가씨는 밤새 숏방을 다니며 영업을 한다.

설사 손님이 없어도 자기 방에는 들어오지 않고 주인 방이나 다른데서 놀다가

손님이 거의 끊어지는 새벽 4~5시가 되어서야 기어들어온다

그러면 그때부터 아침에 나갈 때까지 잘하면 두 번 그렇지 않으면 한 번 정도 더 할 수 있는 게 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5배나 더 지불하고 긴밤을 선택하는 이유는

숏방에는 없는 가구들과 곯콤하지만 향긋한 싸구려 분 냄새 풍기는 방이 여자 없는 남자들에게는

비록 하룻밤이지만 살림이라도 차린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긴밤을 선호하지 않았지만 하게 되면 원칙이 있었다

나이가 많거나 못생긴 여자를 긴밤 파트너로 선택했다

둘 다면 더욱 좋고 왜냐하면 인기가 없는 여자들은 손님이 많지 않으니 같이 있는 시간도 길었고

또 서비스와 친절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그런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성병이 있다 해도 만성화가 되어 전염 확률이 낮았다

그 당시는 보건증 같은 건 아예 없었고 콘돔 사용도 잘 안 해서 성병을 많이들 걸렸거든...

앞서 내가 뚝너머박사라 했는데 그중에 성병에도 일가견이 있다

나는 성병을 많이도 걸려봤다 심지어 거의 여성들만 걸리는 '트리코모나스'라는 것도 걸려봤으니...

처음 걸렸던 게 급성요도염이었는데

팬티에 누런 농이 묻어나오고 소변을 볼 때는 마치 불덩어리가 뚫고 나오는 듯한 통증에

두 손을 벽에 대고 온 몸에 힘을 주고 참으며 싸야했다

오줌 싸기가 두려워 물도 안마셨다

그래서 찾은 병원이 지금의 일품향 맞은편에 덕수의원이었다

키가 작고 머리가 벗어진 원장님이었는데 그 당시 교도소 담당 보건의사였다

증세를 듣더니 손가락 굵기의 쇠젓가락을 다짜고짜 요도에 찔러 넣고 끝을 나보고 잡고 있으라더니

고무장갑 낀 두 손바닥으로 내 꼬추를 사정없이 비벼대는 게 아닌가 요도에 잡혀있는 고름주머니가 터져라 이거지

그런데 이 무지막지한 통증도 다음에 올 날카로운 통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쇠대롱을 뺀 다음 주사바늘을 제거한 통통한 주사기에 소독약인 듯한 액체를 가득 담더니 요도에 꽂고

왼손으로는 귀두 끝을 야무지게 움켜쥐더니 소독약을 밀어 넣고는 주사기는 빼고 왼손은 움켜 쥔 상태에서

앞으로 잡아당기면서 오른손으로는 자루를 잡고 딸딸이 치 듯 앞뒤로 마구 훑어대는 것이었다.

~~~! 다시 생각하기가 끔찍하다

그런 무식한 치료법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차피 완치는 약으로 되는 거니 그렇게까지 악랄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성병이 '매독' '임질' '곤지름이렇게 똑 떨어지는 이름이면 거의가 특효약이 있어 치료가 어렵지 않다

내가 처음 걸렸던 급성요도염 같은 것도 농을 채취하여 포도상구균을 추출해서 하루정도 배양한 뒤

A군 항생제 B, C... 투여해봐서 듣는 약으로 처방해서 주사 맞고 약 먹으면 딱 하루 만에 거짓말처럼 농이 멎는다.

그렇게 멈췄다 해도 검사해서 균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최소 5일 이상 약을 먹어줘야지

증세가 멈췄다고 2~3일 만에 술을 먹거나 해서 재발을 하게 되면 이제 그 약에는 내성이 생겨 안 들을 확률이 높다

내가 한참 성병에 걸릴 당시 늘 하던 말이 있었다

 

"성병 이거 감기만도 못해"

 

사실 그랬다 병원가기가 쪽팔리고 거역스러워서 그렇지 전문 비뇨기과를 가면 거의 직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잡균류 성병에 걸리는 것인데 예를 들어 '비임균성요도염이렇게 ''자가

들어가면 골치 아프다

일단 일정 균을 추출하여 배양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A군 약을 2~3일 써보고 안되면 B로 바꾸고..

이렇게 막고 품는 식으로 치료해야 하는데 재수가 좋아 몇 번 바꾸지 않고 맞는 약을 찾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이런 균들은 이 놈 저 년 몸들을 옮겨 다니며 이 약 저 약에 내성이 생겨 완치가 쉽지 않다

그런데 다행(?)이라면 다행이랄 것이 이런 병들은 증세가 심하지 않다

소변 볼 때 통증도 아침 첫 오줌 첫 방울이 밀려 나올때만 좀 쎄~~! 하고 농도 나오는 듯

마는 듯 좀 근질거릴 뿐이다

몸 컨디션이 좋으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전혀 증상이 없을 때도 있다

일상생활 하는데도 별 불편함이 없다 만성화되고 있다는 거지

내가 '비임균성요도염'에 걸렸을 때 카톨릭센터 부근에 있는 이국재비뇨기과를 다녔다

거의 보름을 다니면서 사흘 주사 맞고 검사하고 약 바꾸고를 되풀이 했는데

말수가 아예 없는 원장은 연신 머리만 갸웃거렸다

보름동안 전혀 차도가 없자

원장은 일주일 띠고 다시 오란다 어찌나 반갑던지 왜냐하면 보름 동안 매일 그 독한 항생제를 맞아대니

양쪽 엉덩이가 독덩어리 같이 깡치가 박혀 죽을 지경이었거든..

일주일 후 원장은 메모지에 '트로비신'이라 써주며 그 부근 영광약국에 가서 사오란다

그때는 처방전이 필요 없을 때였다

지금 영광약국은 대학병원 앞에 있지만 그 당시는 지금의 전통문화전당 맞은편에 있었다.

약국에 물어보니 트로비신이 임질 특효약으로 강력하단다.

하루 한 방씩 5일을 맞았다

결론적으로 트로비신도 효과가 없었다.

나는 그 즈음 거의 포기했었다 그냥 그렇게 달고 살아야겠다고...

트로비신이 나가리가 되고 다시 일주일을 쉬고 병원을 찾았다

원장은 그날 최고로 많은 말을 했다

 

"이 약을 써보는데 이것도 듣지 않으면 나로서는 방법이 없네요"

 

그러면서 쪽지에 '세파트릭스'라고 써준다

'세파트릭스' '트로비신' (이 이름들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이 났는지 신기하네)

영광약국에 쪽지를 건네니 3세대 신약이라면서 이틀 후에나 오란다.

근데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하루 분 주사 한 방 가격이 뚝너머 긴밤 값과 맘먹었다

세파트릭스 첫 주사를 맞은 다음날 바로 느낌이 왔다

성병은 맞는 약이 들어오면 다음날 즉시 효과가 나타나거든

3일을 맞고 검사해보니(검사라는 게 무슨 균을 보는 게 아니고 백혈구 시체 수를 세는 것임)

정상수치가 나오니 안심해도 된단다.

~~ 그래도 안전하게 이틀 정도 주사를 더 맞았다

그리고 5일 정도 지나서 한 번 와 보란다.

5일 후 검사를 해보더니 이제 병원에 안 와도 된다고...

그 이후 나는 방어책을 마련해야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성행위 전후에 '마이신안연고'를 요도에 짜 넣고 소독을 하는 것이다

근데 왜 하필 '마이신안연고'일까

이것에 대한 내 일리 있는 궤변은 이렇다

무식하게 예를 들어 제약회사에서 항생제를 만드는데 약 재료를 선풍기 바람에 부친다 하자

입자가 굵은 것은 앞쪽에 떨어질 것이고 미세한 것은 멀리 갈 것이다

이걸 세 구간으로 나눠서 가장 굵은 부분은 먹는 약으로 중간 부분은 주사약으로 입자가

제일 가는 것은 안약을 만든다는 거지

왜 미세한 것으로 안약을 만드냐 하면 눈은 핏줄이 바깥으로 노출되어 있어 예민하니까

부작용도 없어야 하고 흡수도 빨라야 하는 만큼 미세한 게 필요 하다는 얘기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마이신안연고를 예방약으로 사용한 후에는 성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잘 생각해보니 그 후로는 뚝너머를 잘 가지 않았네

 

내 뚝너머 단골집은 '월촌집'과 '전능집두 곳이 있었는데 고때인가?

가출을 해서 열흘 정도를 전능집에서 돈 없이 숙식하며 지낸 적도 있었다

그때의 뚝너머는 최근 없어지기 직전의 쇼윈도우에 야한 옷을 입고 스스로를 전시하는 컨셉이 아니었고

길거리에 나와 자기들이 호객행위를 하였다

한참 성행했던 90년대에는 90여 업소에 아가씨는 수는 100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이제 그 아가씨들은 단란주점으로 안마시술소로 모텔 콜걸 등으로 스며들었고

2023년 현재 뚝너머 자리는 거의 70~80%가 용도를 찾지 못하고 텅 빈 채 휘황찬란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골목 안 쪽으로는 거의 대부분이 이렇게 비어 있다(2023. 1. 11 사진)

 

내가 개골목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가본 게 고딩 때였다

몇 학년인가는 기억이 없고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후였던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남부시장 방천길을 따라 갔는데 처음 가보는 거지만

뚝너머를 자주 다닐 때라서 별 거리낌이 없었다.

화대가 얼마였는지 상대가 어땠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고

다만 가기 전에 집에서 마스터베이션을 한번 하고 갔다

허무하게 너무 빨리 사정해 버릴까봐

 

개골목은 지금도 활발하게 성업 중이다

 



서천교 부근에서 본 개골목 (2023. 2. 2 밤 10:30)

  

(앞으로 지칭하는 '아가씨'는 업소여자라는 뜻이다 실제는 중년이상의 아줌마들이다)

뚝너머와 비교해서 아가씨들 연령이 뚝너머는 20~30대인데 반해 개골목은 40대 이상이고

드나드는 손님 층도 개골목은 최소 50대 이상이고

화대도 없어질 당시 뚝너머는 8만원인데 개골목은 3만원으로 레벨이 완전히 달라

뚝너머가 없어짐으로 인한 풍선효과도 누리지 못했고

코로나의 한파는 똑같이 겪었지만

2023년 3월 현재로 38개 업소에 76명의 아가씨들이 등록되어 있는데

잘 버는 상위 클래스 몇몇은 한달 수입이 천만 원이 넘는다고 하니

매일 15명 이상의 손님을 받아야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가씨들의 수익구조를 보면 일단 화대가 3만원인데 업소와 반반씩 나눠야하니

한 번 손님을 받는데 15,000원 수입이라는 얘기다

하루에 20명을 받으면서 하루도 쉬지 않아야 한달에 900만원이다

그러니 천만원대 수입을 올리려면 '철궁이 아니고서는

기본화대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가장 일반적으로 시도하는 게

 

"입으로 한번 해줄게 목욕비나 좀 줄래요?"

 

그러라고 하면 만원이 추가되는데 거의 모든 손님이 거절하지 않는다고

막상 행위는 10~20초간 흉내만 낸단다.

그리고 보통은 아가씨들이 하의만 벗는데 홀라당 다 벗어주는데 또 만원 추가 ...

심지어 코로나 시절에는 마스크 벗어주는데도 만원을 요구했다는...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게 시간 타임이다 기본 3만원은 한 타임으로 20분이다

예전에는 '끝났다'라는 의미는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싸야...' 끝나는 인간미 있는 한 판이었지만

지금 여기는 넣든 못 넣든 싸든 못 싸든 20분이 지나면 끝난다.

그러니 술 한 잔 먹고 기분 내려면 2~3타임(6~9만원)은 예사로 끊어야 한다.

타임으로 끊는 건 업소와 반반씩 나눠야하고 타임내에서 서비스로 받는 것은 아가씨 몫이다

지금 당장 개골목에 가 보면 낮이건 밤이건 여자들이 출입구나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다

실제 아가씨들과 비슷한 연령대이지만 그녀들은 아가씨가 아니고 호객과 안내를 하는 종업원이다

아가씨들은 절대 나오면 안 된다 이것은 업주들을 위한 불문율인데

가령 예를 들면 내가 '한양여인숙'에서 '춘자'를 만났는데 너무 맘에 든다.

그래서 '춘자'를 만나려고 또 '한양'으로 간다.

그런데 가다보니 '명동여인숙'앞에 춘자가 노닥거리고 있을게 아닌가

', '명동'에서 춘자를 불러도 되는군'

이렇게 손님이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개골목 내부 시스템상으로는 38개업소에서 76명 중 누구를 불러도 상관 없지만

'한양'에서 춘자를 찾아야 그 손님이 한양 단골이 되고 설사 춘자가 부재중이라 해도 한양에서는 절대 그 손님을 놓칠 리 없다

 

"아이고오늘 춘자가 집에 일이 있어 못 나왔는데 훨씬 더 좋은 시악시로 불러줄께요"

 

업소마다 한 명 이상 씩 종업원들이 있어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2023. 3. 15 사진)

  

개골목 아가씨의 99%는 강원충청 등 외지인들이다

그러니 이런 눈치 저런 눈치 안 보고 악착같이 버는 것이다

그런데 아가씨들이 그렇게 각박한 것만은 아니다 

'확대기'라는 기구를 저마다 가지고 다니며 서지 않을 경우

경우 그 기구를 사용하여 서비스로 세워준단다 

꼬추에 끼워 진공 펌프하는 원리인데

술 취해서 안 서는 50~60대나 기력이 떨어져 안 서는 70~80대나 일단은 선단다.

그 물리적으로 세운 것이 삽입이나 될지 삽입이 되었다 한들 몇쪼금이나 갈 까만은

아무것도 안 되어도 20분만 지나면 화대를 공 먹는 것에 대한 아가씨들의 최소한의 면피양심 아닐까?

나야 지금도 '실데나필'과 '카버젝트'로 무장하고 상시 전투 준비중이지만...



2023년 1월 어느 날 남부시장 임실식당이다

  

'선화촌 회장' ; " 아따 형님은 뭐가 그렇게 궁금허요?"

 

'' : "한번 가보고는 싶은데 용기가 안 나니 그냥 물어보기라도 하는 거지"

 

'회장' : "걱정말고 와요 내가 기가맥힌 놈으로 하나 너줄랑게 "

 

'' : "어이제수씨도 늘 왔다갔다 하는데 들키기라도 하면 먼 쪽인가"

 

'회장' : "참내 긍게 누가 우리집서 한대요저 안창으로 들어가야지요"

 

'' : "알았어 생각해 볼께"

 

말은 그렇게 했지만

10대 때는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갔지만

지금은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말지 안 가고 싶다

 

개골목 회장의 역할은 업소마다 매달 일정 금액 회비를 받아

보건소나 경찰 등 대외적인 섭외도 맡고 술 취해서 시비 붙는 진상 손님들 처리와

아가씨들을 총체적으로 관리한다.

 

'회장' : "에이씨 우리 업소들은 공식적으로 인정도 안 해주면서

14, 15일에 아가씨들 보건증 검사는 왜 까락까락 허는지 모르것어"

 

지금도 개골목은 70~80대들이 의외로 많이 간다.

그렇다면 단순히 몸만을 팔고 사는 것을 뛰어 넘어

뭔가 찐덕거리는 괘미나

묘한 스릴이 숨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