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12-10 14:37
1957년 11월 19일, 21일 그리고 12월 20일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22  
2024. 12. 10(화)

올 초에 '전주건달이야기'를 쓰면서 1957년 말에 투구봉에서 벌어진 깡패와 학생들 간의 
패싸움에 대하여 당시 참가 했던 학생들의 회고록과 투구봉에 설치된 푯말의 설명 간에
상이한 부분이 있어 당시의 신문을 찾아보려고 전북일보에 간부로 근무했던 친구 동생에게
열람을 부탁했는데 파손 위험이 있어 곤란하다는 둥 열람비용이 들 수도 있다는 둥
자기가 확인하고 알려 준다는 둥... 성질 나서 포기하고 또 한 부를 보관하고 있다는 
전북대학교 도서관을 찾아 갔다.
제 2도서관에 있다고 해서 갔더니(3월) 공사중이라서 8월 말이 지나야 가능하단다.
결국 포기하고 패싸움 부분을 두리뭉실하게 넘기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그러던 어제 마침 손님이 제 2 도서관 앞에 내린다.
공사는 다 끝나 있다.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2 도서관에는 보관된 도서나 자료는 없고 세미나실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장소로만 이용하고 있단다.
중앙도서관으로 갔다.
입구 안내 데스크에 3월에 있었던 안내원이 그대로 앉아 있다. 실버알바 인 듯....

"신문 열람을 하러 왔는데요"

"아, 신문은 제 2 도서관으로 가야 하는데요?"

3월에 했던 말을 그대로 한다.

"2 도서관에는 이제 보관된 자료는 없다는데요?"

"어, 그래요? 그러면 2층 사무실에 가서 직원에게 물어 보세요"

그러고 있는데 여직원인 듯한 세 명이 안에서 걸어 나온다.

"아 저 분들에게 물어 보세요"

한 여직원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 준다.
지하 1층에 '연속간행물'실이 있는데 거기에 보관되어 있다고....
이씨~!!!!
그러면 3월에도 여기 있었다는 말 아냐!!!
2도서관이 공사 중이었다면 이미 이쪽으로 다 옮겨 놓고 공사를 했을 거 아냐!

지하 1층이 너무 넓다. 거기에도 직원들이 있어 물어 봤더니 통통한 여직원이 직접 안내를 해 준다.
나 혼자 찾으려 했다면 엄청 헤맸을 거다.
마이크로 필름 등으로 옮겼을 줄 알았는데 그냥 실물로 보관되어 있다.
서가에 꽂혀 있는 1957년 10~12월 철을 확인하고 나온다.
오늘은 일해야 하고 쉬는 날 돋보기안경도 가지고 와서 차분히 봐야겠다.



어제 마신 술이 좀 덜 깨긴 했지만 기대를 하고 중앙도서관을 찾는다.




1층 로비인데 깨끗하다.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안내판이다.




지하 1층....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 다닐 수 있다.




저 서가에 꽂힌 철들이 다 전북일보이다.




1952년부터 1958년까지 꽂혀 있는 부분.




1957년 10 ~ 12월 3개월분이 정리되어 있다.



이렇게 깔끔하게 제본하려고 얼마나 애를 많이 썼을까.




신문은 2장, 그러니까 4면이다.



날짜를 확인하다가 한 동안 헤맨다.
표지에는 분명 10~12월로 되어 있는데 왠 9월? 근데 자세히 보니 음력이다.




연도는 단기로 표기되어 있다.
단기 4290년이니 4290 - 2333 = 1957년이다.
그러니까 1957년 11월 21일 목요일 신문이다.





1957년 11월 21일 신문 3면

내용을 보면 
제목 '일반 깡패 27명 검거, 학생 어깨와 대결하던 사건'
내용 '전주 경찰서는 현 20일 새벽, 지난 19일 학생깡패와 대결하여 결투하려고 하던 일반 깡패 27명을 
검거하고 문초 중에 있다. 전기 깡패들은 중학교 중퇴자와 전과자 그리고 극장 골목을 중심으로 행패하는
자들이라 하는데 일반 깡패들의 조사가 끝나는 대로 이들과 대결한 학생 깡패들도 소속 각급학교 훈육주임과
더불어 조사를 착수하리라 한다. 그런데 이들 대결 도화선은 일찍부터 일반 깡패들이 학생들의 금품을 
강취한 것에서 대결케 되었다 하는데 이들은 시내 다가산과 공설운동장 등에서 정식으로 결투 할려다가
경찰의 사전 진압으로 인하여 이루지 못한 것이다.'

뭔가 매끄럽지를 못하네 그 당시는 이랬는가?
그리고 투구봉 패싸움인데 투구봉은 언급도 없고 결론적으로 보면 패싸움이 일어난 게 아니고 미수에 
그쳤다는 건가?




그리고 한 달 뒤인 12월 20일자 신문 내용이다.

제목 '학생 깡패 5명도 구속 일반 어깨 4명과 동시에 기소' (한 달 전 기사에는 '일반 깡패와 학생 어깨'로 썼더만...)
내용 '일반 깡패와 학생 깡패 간에 격투가 벌어 질려다 경찰의 사전 방지로 이루지 못한 채 일반 깡패 4명이 
구속 송치 되었다 함은 기보 한 바 있거니와 그 동안 이들 깡패 사건을 담당한 이장섭 검사는 작 19일 일반 깡패를
기소하는 한편 불구속으로 전기 격투에 참여케 된 학생 깡패의 두목 5명을 동시에 구속 기소 하였는데
구속 기소된 깡패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일반 깡패 홍성관(전동크럽) 정종환(백도크럽) 김장태(백도크럽) 김일랑(백도크럽)
학생 깡패 유명현(전농고 백마크럽) 봉태복(전사 백운크럽) 장두원(신흥고 피라밑) 한봉현(전상 갈매기크럽)
정명구(전고 죽순크럽)

내가 처음 확인하고 싶었던 내용은 투구봉 사건의 날짜인데 회고록에는 1957년 12월 19일로 되어 있고
투구봉 표지판에는 1957년 11월 19일로 되어 있어 궁금했는데 위 신문 내용으로 11월 19일이 맞고
12월 19일은 기소 날짜임이 확인 되었다,
그리고 회고록에는 패싸움 상황이 일본도로 찌르고 총을 쏘고 찔리고 베이고 터지고... 이렇게 표현 했는데
이것도 과장되었고 표지판에 써 있는 '석전' 정도가 맞는 것 같다.

별 것 아니지만 알고나니 후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