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열에게 25 3/28(金)
AM 05:45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처음 소식을 듣고는 여러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과를 낼 수 있는 결정적인 카드가 없었고 괜히 여기 저기 들쑤셔 봤자
소문만 날 것 같아 그냥 함구하고 순리대로 따라 가기로 한 것이다.
너의 입장에서 보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을 터인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 미안하구나.
주변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작은 아빠들이나 객주 고모에게 조차도 말하지 않았다.
너의 허물을 알리기 싫기도 했지만 내 걱정을 그들에게 전가시키고 싶지 않았다.
너의 생일에 고모가 커피를 보냈는데 답이 없다고 형열이 무슨 일 있냐고 묻기에
모른다고 했다.
훗날 덤덤하게 회고담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때 네가 직접 얘기 하도록 해라.
나는 아직도 네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고 앞으로도 알고 싶지 않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탓 하고 싶지도 않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며 산다.
아버지도 사실 할아버지의 배경이 없었다면
잘못 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 몇 번 있었다.
실제로 할아버지의 힘이 미치지 못했던 군대에서는 3번이나 영창을 갔었다.
지금도 택시를 한답시고 하루에 무조건 10번 이상은 법을 어길 것이다.
평소 너희들을 키우면서 특별하게 가훈이나 좌우명을 내세운 적은 없지만 현재
상황에서 또 아버지의 입장에서 한마디 하자면 원론적인 말 같지만
'기본적인 인간성은 잃지 마라'는 것과 어느 상황이든
결코 '비겁하거나 비굴하지 마라'는 것이다.
네가 처한 입장과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원칙적인 내 생각이다.
너도 이제 40이라니 예전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내가 직접 들은 건 아니고 지인 분에게 전해들은 건데
'내 나이 40에 집 한 채와 트럭 1대 반(지분이니)과 현찰 100만원이 있으니 이만하면
잘 살은 건가?'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할아버지 40세면 1962년이고 아버지는 6살 때이다. 집과 차는 그렇다고 치고
그 당시 100만원이면 화랑담배가 5원이었고 현재 담뱃값이 5천원이니 환산하면
10억쯤 되겠구나.
사람의 성공을 오로지 돈으로만 평가한다면 할아버지는 성공하셨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럼 이제 아버지를 보자. 내가 40세 때면 1996년이고 너는 막 열 살이 넘었겠구나.
아파트가 한 채 있었고 직장이 있었지만 내가 직접 일군 게 아니고 모두 할아버지의
온상에서 거저 얻은 것 아니겠더냐.
그마저 지금은 다 날려버리고 이 꼴을 하고 있고 말이다.
너의 40은 어떠냐?
니 스스로는 폄하해서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내 판단은 다르다.
너는 부모에게 10전 한 푼 받은 것도 없이 비빌 언덕도 없이 홀로 서울 바닥에서
견디지 않았느냐.
더구나 결혼도 너희들 끼리 하고 말이다. 아비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예전 나이 40이면 불혹을 들먹이며 인생을 정리하려는 단계지만 현재의 40은 아직
시작도 안 한 나이다. 나는 정확히 60 부터 다시 시작했다.
너의 지금 시간은 너의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무게겠지만 흐름에 있어서 1년은
찰나에 불과하다. 무게를 잘 견디고 찰나의 시간에서 새로운 걸 깨닫는다면 그 1년은
너의 일생에서 결코 마이너스 시간은 아닐 것이다.
쉬운 말을 어렵게 했구나. 쉽게 말하면
이순신 장군도 안중근 의사도 김대중 전 대통령도 모두 빵잽이 였다.
내 주위에도 갔다 온 사람들 많지만 아무런 문제없이 잘들 살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염려되는 건 네가 아니라 여원이다.
얼마나 놀랬고 마음고생이 심했겠냐? 옥바라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의연하게 버티는 것 같아도 많이 힘들 것이다.
어련히 네가 알아서 하겠냐마는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비록 피동적인 상황이지만 잘 활용해서 몸도 돌보고 생각도 잘 해서 니 인생에서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바라겠다.
나 또한 너에게 처음 보내는 편지인데 이런 내용이라서 유감스럽구나.
요즘은 자판에 익숙해져서 정감 있는 손 편지가 아닌 걸 이해해라.
- 아버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