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1-18 21:20
돈오(頓悟)
 글쓴이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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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오(頓悟)


2016년 추석을 며칠 앞 둔 9월의 어느 날이다

명절에 앞서 서울 집을 미리 다녀온 ‘안해’의 표정이 밝지 않다

자세한 이야기나 전후 사정을 생략한 채, 부모님이 막일이라도 해야 할 판이라는 막연한 말을

내뱉고는 우울해 한다.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고 나 역시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처가의 자세한 경제적인 상황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동안의 느낌상 그리 어렵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던 터라 좀 의외라는 생각만 할 뿐.

그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려본다


‘그럼 좀 도와드리면 되지...’
 
누가? 어떻게?


그러던 중 어느 순간 머릿속에 번갯불이 일며 소름이 돋는다.


그런데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단돈 10원이라도 벌어 본지가 언제지?

막걸리 값하기도 부족할 만큼 나오는 연금에 안주하며 모든 생활비는 젊은 ‘안해’ 혼자 대고

있지 않은가

벌기는커녕 몇 년 전부터 중국어에 명리학에 클래식 음악 감상 등등... 배우는데 쓰는 것은 아깝지

않다며 대주는 걸 아무 생각도 없이 덜렁덜렁 받으며 한량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이 대목에서 좀 찬찬히 짚어 보고 넘어가야 되겠다.


나는 인생의 실패자 일까?

신불자에다가 돈 한 푼 꼬불쳐 둔 것도 없고 가정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으니 누가 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지 스스로는 전혀 실패자가 아니라고 안쓰럽고 공허하게 우기고 있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았고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자신만만해 한다.

지 혼자만...


그의 60여년의 삶은 어쩌면 ‘빠끔살이’였다

도무지 진지한 구석이 없었다.

베이비붐 세대치고는 부모님이 부유한 편이라서 부족함이 없이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학창시절부터

앞으로의 포부나 희망하는 직업 등 미래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다.

계획은커녕 중학교 시절부터는 일찌감치 망나니짓을 시작하여 가출에 술 담배에

오죽하면 부모님이 제발 중학교만 졸업을 하고 그 후에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을까


말썽만 피우던 중3 앨범 사진 (앨범값도 까먹어버려서 앨범도 없다)


그가 늘 자랑거리처럼 말하는 ‘나는 평생 시험을 딱 세 번 합격해봤어 첫 번째가 초등에서 중학교

들어가는 시험, 두 번째가 운전면허시험, 세 번째가 음주로 면허 취소되어서 다시 운전면허시험’


그랬다.

고등학교는 밴드부 있는 학교에 나팔 사주고 보결로 들어갔고,

전문대학은?  나도 잘 모르겠다. 군대 제대하고 나니 어찌어찌 입학이 되어

휴학계가 내져있어 다니게 되었고 직장은 결혼 때문에 다녀야 된다고 해서 통신공사(지금의 kt),

한국전력, 전일상호신용금고 이 셋 중에 선택하라 해서 전일을 들어가게 된다.

(왜 통신공사나 한전이냐고? 내가 전문대 전기과를 나왔걸랑 그때는 시험만 보면 합격하는 흔하디흔한

자격증 하나도 안 따 놓고...)

지금 생각하면 전일을 고른 게 골라도 뉘를 고른 셈, 통신공사나 한전은 전주를 떠나 발령이 날 수 있다

해서 선택하지 않았다

암튼 직장도 낙하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주변 친구나 선배들은 ‘저거 6개월 이상 다니면 손에 장을 지지지....’

그러나 직장생활을 18년이나 하게 된다 (이정현이 같이 장 지지는 놈 하나도 없더라)

하지만 18년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오늘은 충실하게 봉급 값을 다 했다’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던 것 같다


2000년 1월 1일부로 직장을 그만두고 장외주식 브릿지, 대부업, 가맥, 자금세탁, 시행사 등등

내 스스로가 원해서라기보다 주변의 도움 내지는 필요충분조건에 의해 여러 일을 재미삼아(!) 하게 된다.

그때 했던 그 어떤 일도 나 스스로 생각할 때 절실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했던 시행사가 잘못되는 바람에 몇 백억 대의 빚과 신불의 명예를 얻어 법정 스님이 되었지만

그리고는 진짜 법정 스님처럼 고요하다


고요한 지 6~7년 만에 ‘안해’의 말에 ‘돈오’가 찾아 온 것이다


“아~! 나도 뭔가 돈벌이를 해야겠구나!”


2013년에 버킷리스트에 일환으로 ‘직업상담사 2급’ 자격증을 땄었다

그 자격증을 이용해서 구직을 해보자

노사발전재단, 고용센터를 통해 고용촉진지원금 대상자도 되고 직업상담사를 원하는 업체들도 많다

하지만 나이가 걸림돌이고 설사 지원금 때문에 나를 고용한다 해도 길어야 1년의 한시 직이다 보수도

거의가 다 130~150만원 수준...


이리저리 알아보고 고민을 하던 중

중학교 친구인 박진문이를 만나게 된다.

지금 현재까지 모태솔로인데다가 구순의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놈인데

다국적 제약회사에 오래 근무를 했었고 퇴직 후 딸기밭도 하고 프렌차이저 새우 전문점을 하다가

소식이 끊겼는데 개인택시를 사 가지고 떡~! 나타난 것이다

5년 동안 잠수타고 회사 택시를 해서 개인택시 살 자격(회사 택시 3년 무사고)을 얻어 2016년 6월에

찻값+면허값 1억3천에 샀다고 의기양양하며 납납해 한다.

무사고 3년이면 되는데 1년 6개월 되던 때에 사고가 한번 있어 5년이 걸렸다고

그리고는 나에게도 적극적으로 권한다.

건강만 받쳐주면 정년도 없고 자유롭고 용돈 걱정 없고....

솔깃하네???


나를 택시업계로 발을 디디게 만든 박진문 (화심두부집에서 점심)


지금 당장 먹고 사는 문제는 걱정할 것 없으니 나도 느긋이 노후 대책을 세워???

친구 중 회사택시를 하는 놈들을 수소문 해 본다.

15년 이상을 회사택시만 한 최규진에게 연락을 해보니 언제든 할 생각이 있으면 회사에 소개해 준다고

말하란다.

마서일과 한범종도 자기가 소개해 줬다면서... 그래서 걔들에게 전화를 해 본다


먼저 약 4개월 동안 하다 만 마서일에게 연락을 해봤더니


“어이, 그거 하지 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네”


다음으로 약 6개월을 하고 있다는 한범종에게 연락을 했더니


“야, 빨리 해라 이거 진짜 재미있고 쏠쏠하다”


(나중에 보니 두 놈 말이 다 맞는 말이다)


좋다! 한 번 해 보자

3년 동안 징역사는 셈 치자

아니면 군대 한 번 더 갔다 온다고 생각하지 뭐


난 60평생을 살아오면서 거의 현재를 선택 했었다

그 순간의 끌림에 선택을 했지 미래를 보고 선택을 한 것은 거의 없었다.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쓰는 것만큼만 내 돈이여~”하면서


그래서 그런지 나는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 해도 가고 싶은 과거가 없다

항상 지금이 좋다

아니 지금이 좋다기보다 과거 어느 때로 돌아가도 지금에 이르기까지와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

뻔 하기 때문이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명리학 공부를 좀 했다 해서 운명론적으로 해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최재천 교수(국립생태원 원장, 생물학 박사)의 말처럼 DNA란 놈은 절대 바꿀 수도 바뀌지도

않기 때문에 ‘나비효과’란 영화처럼 어느 순간의 선택에 의해서 미래가 바뀔 가능성은,

나의 인생이 또 다른 모습으로 전개 될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는 말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설렘을 느끼며 계획적인 미래를 선택해 본다.


※ '안해' : 아내의 고어, 집안의 태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