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오늘도 산에 오른다.
택시를 시작하고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나를 지탱하게 해준 4대 낙(樂)이 있었는데
산, 술, 글, 잠 이 네 가지였다.
하루 15시간씩 운전을 했었고 5일 일하고 하루 쉬었으니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던 때었다.
오로지 '개인택시'라는 하나의 목표 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른 잡념은 파고들 자리가 없었다.
지금,
어쨌든 '개인택시'라는 목표는 이뤘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빚 상환'이다.
개인택시를 살 때 진 빚이다. 사실 회사 택시를 할 때의 처절한 마음가짐으로 했다면 진즉 갚
고도 남았겠지만 목표 달성에 반 분이 풀린 마당에 세상과 단절했던 그 삼 년의 시간을 더 연
장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일 하는 날은 한 달에 25일에서 20일로 줄었고 시간도 하루 15시간에서 13시간으로 줄었다.
이제 최소한의 품위 유지는 해야 하고 쉬는 날 2만원으로 한도를 묶어놨던 막걸리 값도 좀
올려야 하고... 그러다 보니 4년 상환 계획이 5년이 되는 아직까지 미결로 남아있다.
물론 큰 뭉탱이는 깨졌고 얼마 남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이제는 좀 팽긴다.
능동적이었던 일 하는 자세도 빚 갚기 위해 억지로 하는 것 같다.
영업외 수입(피해 사고 보상금 등)이 생기거나 목표보다 초과 달성하면 그 금액을 일당 환산
해서 어김없이 남는 일 수 만큼 땡땡이를 친다. 내가 정상적으로 쉬는 날은 일하는 날과 같은
시간에 기상을 하고 하루 일과가 계획대로 진행되지만 초과 수입으로 땡땡이를 칠 때는 종일
술과 함께 영화를 보며 뜅굴거린다. 영화는 원래 좋아했는데 택시를 시작하며 시간이 없어 못
보다가 개인택시를 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되찾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이렇게 계획 없이 쉴 때는 리듬이 깨져 후유증이 2~3일 계속될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운동을 아예 안 해버린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내가 맨 처음 택시를 시작 할 때는 산행도 3년 동안 접기로 결심했었다.
2016년 11월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매일 아침 사우나에서 30분 정도 러닝머신에서 뛰었다.
그 정도 운동을 해주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로부터 6개월 후인 2017년 5월 쉬는 날에 산(소산원)으로 두릅을 따러 갔다.
겨우 두 어 시간 오르내리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어찌나 숨이 차던지 불현듯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개월 만에 이렇게 폐인이 되다니...
그래서 쉬는 날이면 산을 꼭 가야겠다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코스는 2시간 정도로 모악산 중인리의 연분암, 금선암으로 정했다.
2017년 5월 17일에 첫 번째 산행을 시작했다.
3년 동안 65번 갔으니 많이 빼 먹었다고 봐야겠지?
회사택시 3년을 채우고 개인택시를 살 때까지 운동을 안 한 약 3개월의 공백이 있었다.
개인택시를 시작하고서도 고무된 기분에 2~3개월 운동을 깜박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8~9시경 송천동에서 콜 손님을 태운 직 후 차는 출발을 했는데
내 오른 발이 엑셀 위에서 마비가 되어 버렸다. 발의 무게로 엑셀은 계속 눌러졌고
차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뛰쳐나갔다.
빨간 신호도 무시한 채 달리는 차를 나는 핸들로 조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차된 차를 긁는 요란한 소리도 들렸다. 뒤에 탄 손님은 당황해서 소리를 질렀다.
2번의 신호 위반과 약 4블럭을 질주한 뒤에야 어찌어찌 차를 멈출 수 있었다.
차가 멈추자마자 50~60대 남자 손님은 겁에 질린 듯 내려서 문을 꽝~ 닫고 가버린다.
나도 내려서 다리를 풀어보고 앉았다 일어났다 해 봤다. 오른 다리를 흔들고 털어보니 원 상
태로 돌아 온 것 같았다. 조수석 뒷 타이어 위쪽 후렌다에 긁힌 흔적이 있다. 차를 돌려 주차
된 차를 찾아 나섰다. 세 바퀴를 돌았는데 그 차가 안 보인다.
내가 장소를 착각한 게 아닌가 하고 블랙박스를 돌려 봤는데 동네 빵집 앞에 있던 그 차는
상황도 모르고 그냥 갔나보다.
마비된 시간이 나는 3~4분 되는 줄 알았는데 블랙박스로 확인해 보니 17초 였다.
신호 위반 시 정상신호로 진행하는 차가 없는 게 천만 다행이었다.
나는 지금도 급발진 사고를 매스컴에서 접하면 나 같은 케이스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다음 날 바로 병원에 가서 설명을 하고 사진도 찍고 진단을 받아봤지만 그 어떤 이상도 없다.
내 판단은 한 자세로 오랜 시간 고정되어 있는 것과 운동 부족이다.
내가 지금 산에 오르는 것, 사우나 헬스장에서 하기 싫은 스쿼트를 억지로 해야만 하는 것,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2시간 산을 타면 3일 일 할 수 있다. 스쿼트 4세트면 2일 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일당 계산 하듯 환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딱 그 만큼만 하게.
간단한 얘기를 하려 했는데 쓸데없이 길어졌다.
앞에서 말 했듯이 요즘 나는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한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산을 간다.
결국 나는 빚을 갚기 위해 산을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