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3-01 21:37
취직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1,197  

보통 이렇게들 말한다.

“택시 운전이나 혀~!”

특별한 기술이나 자본도 없고 어렵고 답답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나 역시 택시운전을 일반 노가다(막노동)와 비슷한 동급으로 여기며 거의 인생의 막장이라고
생각했었고 지금도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걸?
그러니 만큼 택시 운전을 목적으로, 생각하고 마음먹고 준비하고 할 때는 비감한 각오로 온갖
감심이상(甘心利想)으로 굳게 무장만 하면 끝날 줄 알았지
더구나 시험도 봤고, 정밀적성검사도 끝났고, 가스 교육도 받았으니....
하지만 웬걸 ‘택시 운전이나’가 아니라 택시 운전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주에 십 수 개의 택시회사가 있는데 그 중 S교통이라는 데가 무슨 이유인지 폐업 당했다가
최근 다시 신설을 했는데 대대적인 기사 모집이 있고 다른 회사에 비해 조건이 좀 낫다는
정보를 범종이라는 택시 6개월 차 친구에게 들었다
S교통에 전화로 상담을 해보니 서류를 준비해 오란다.

1. 이력서
2. 택시운전자격증 사본
3. 운전적성정밀검사 종합판정표
4. 가스안전교육 이수증
5. 범죄수사경력 사실원
6. 운전경력증명서
7. 가족관계증명서
8. 주민등록등본 3통
9. 주민등록초본 1통
10. 증명사진 5매

쩝...  많기도 하네...
하지만 등본 3통이라든지 사진 5매라든지 이런 걸 준비해 오라는 걸 보면 바로 채용하기는 할 모양이다

범죄수사경력사실원이나 운전경력증명서 모두 경찰서 민원실에서 발급받는 것인데
이런 서류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운전경력증명서에는 88년도에 사고 난 것, 99. 12. 16 음주취소, 2001. 2. 13 재발급,
2004. 11. 11 ~ 2005. 2. 1 음주로 정지....  흐흐  다 나와 있다

암튼 서류를 모두 준비하여 S교통을 찾아 갔다
나간 집 같이 썰렁하게 텅 빈 회사에는 상무라는 사람이 혼자 있다가 별로 반갑지도 않게
맞이한다. 얼른 봐도 결정권이 있게 보이지는 않는데 택시운전이 처음이라서 해서 그랬는지
쓸데없는 사설이 길다
한참을 영양가 없는 말을 한쪽 귀로 흘리고 있자니 본인도 느꼈는지 ‘많이 힘들 건대요?’라는
말로 마무리를 하고 2~3일 후에 결정하여 연락 준단다.

5일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 전화를 걸어보니 부적격이라네....

지기미 그럼 X빤다고 등본을 3통씩이나 떼고 사진은 뭐 하러 가져오라해

서류를 찾으러 갔더니 그 상무라는 사람이 서류를 건네주며 넌지시 건네는 말을 들으니 신설
회사라서 노조 관계를 염두에 두고 위에서 좀 꺼리는 듯하다고....
내가 노조를 얼마나 싫어하는데...
이력서를 곧이곧대로 쓰는 것이 아니었나?

역시 나는 내 힘만으로는 되는 것이 없나보다

하는 수 없이 규진이에게 Y교통에 알아보라고 하고 혹시 몰라서 행종이 아는 형님이 전무로 있고
행종이도 잠시 일을 했다는 E교통에도 연락을 해보라고 부탁을 했다

즉시 두 군데 모두 오란다.
두 군데를 놓고 요리조리 재 보다가 행종이가 말해준 E교통을 선택한다.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행종이에 대한 믿음이 앞서서겠지
전화로 준비할 서류를 물어보니 E교통은 서류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다.

2016. 11. 14(월) 10:00경
행종이가 소개해준 김전무님과 약속을 잡고 팔복동에 있는 E교통을 찾아갔다

김전무님을 찾으니 상상했던 모습과 비슷한 분이 나서며 대뜸 반말이다

“응~ 왔어?”

하지만 그 반말에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이상하게 오래 전부터 알았음직한 친밀감이 든다.
내가 행종이 친구이고 그 분과 행종이가 그만큼 가깝다는 이야기겠지

그리고는 일절 다른 군더더기 없이, 다른 말도 없이 서류를 받아들고 건성으로 넘겨보고는
서랍에서 바로 고용계약서를 꺼내 능숙한 동작으로 작성을 하며 간단한 설명을 곁들인다.

“다른 회사도 다 그러지만 3개월간은 수습기간이라서 사고 나면 보험이 안 돼~”

“네...”

“여기 이름 쓰고 싸인 하고.... ”

그리고는 문도 닫히지 않은 옆방으로 데리고 간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더니 소리도 없이 어떤 사람이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데 사장인 모양이다
사장에게 서류를 건네고 인사를 시킨다.
사장은 약 3초에 걸쳐 서류를 드르륵 넘기더니 나를 보며 웃는 얼굴로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는 서류를 다시 김전무님에게 건넨다.

방을 나오자 김전무님이 하는 말

“자 그럼 모레(16일 수요일) 9시에 나와... 나올 수 있지?”

잉? 이렇게 간단해?
불과 20분도 채 안되어 채용 절차가 끝나버린다

나는 내심 빨라도 3~4일은 걸리고 일단 일을 시작하면 술을 못 먹으니 그 사이 술이나 실컷
먹을랬더만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하면 안 될까요?” 라는 말이 입 밖에 막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예~ ” 하고 만다.


E 교통에 소개해준 행종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