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3-20 21:32
만 원 2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1,108  
저녁 술좌석이 끝난 뒤 아마 누구나 한두 번쯤은 
동료나 지인에게 택시비를 주거나 받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받는 사람이 택시비가 없어서라기보다 
우리네 정이 그렇다
그런데 직접 주면 받지 않으려하니 
택시 기사에게 줄 때가 있다
만 원짜리를 주는 게 거의 대부분인데  
이럴 경우 거스름돈에 대한 처리가 제각각이다 
자기 돈이 아니니 거스름돈이 얼마가 남건 
한 푼도 가져가지 않는 손님(기사로서는 대환영)이 있는가 하면
동전 한 닢까지 까락까락 챙겨가는 사람도 있다 
이럴 경우는 거의 살림하는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다 

제일 많은 경우는

"동전은 놔두고 지폐만 주세요" 하는 케이스이고

드물게 

"기사님이랑 갈라먹읍시다" 

하면서 가령 택시비가 6천원이 나왔다면 
2천씩 나눠 갖자고 하는 손님도 있다

한 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다.
나는 만 원짜리를 받으면 콘솔박스에 넣는 습관이 있다
그 날도 택시에 타지 않는 손님이 만 원을 주면서 
잘 부탁한다했는데 바로 그 만 원은 콘솔 박스에 넣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라디오에 너무 집중을 했는지....
목적지에 도착했고 술이 얼큰한 손님이 카드를 내밀었다
나는 무심코 카드를 긁었고 손님은 갔다
그리고 나서 택시비를 두 번 받았다고 깨달은 것이 
얼마 후인지 모르겠다.
그 뒤로는 그렇게 받는 경우에는 탑승하는 손님에게

“만 원 받았습니다” 라고 한 뒤

돈을 콘솔 박스에 넣지 않고 
눈에 보이도록 동전 컵 위에 놔둔다.
그렇게까지 해도 술이 많이 취한 손님은
막무가내로 또 돈을 주려고 하는 일도 간간이 있다

앞에서 말 한 상황들과는 또 다른 만 원의 이야기해 봐야겠다.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날...
저녁 9~10경이나 되었을까

삼천동 남양아파트 정문 부근에서 
40대 정도로 보이는 부부가 차를 잡는다.
그 부부가 탈 줄 알았는데 뒤 쪽에서 같은 또래의 
왜소한 남자가 노란 비닐봉지를 들고 혼자만 차에 오른다.
이후에 벌어진 일과 
그들이 언뜻언뜻 하는 말로 
이 상황과 그들의 관계를 미루어 짐작해 봤다 
왜소한 남자는 차림새가 좀 궁색해 보였고 
대화 하는 것으로 봐서 부부중 남편의 친구인 듯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부가 그에게 저녁을 대접했고
비닐봉지에는 인근 슈퍼에서 산 듯한 
식료품 종류들이 들어 있었는데 상하는 품목이 들어 있었는지 
도착하면 바로 냉장고에 넣으라는 말도 했다
짧지 않은 작별을 한 뒤 부부는 택시 문을 닫으며 
동시에 행선지를 말한다.

"북대 사대부고 사거리로 가주세요"

택시에 탄 남자는 
거의 말수가 없었다.
차 안에서도 없는 듯 조용했다
차는 출발했고 목적지로 가는 경우의 수는 
서너 코스 정도 되었지만 많이 막히는 시간대가 아니어서 
그리 신경 쓰며 코스 선택을 할 필요가 없었다.
차는 삼천공원에서 좌회전을 하여 상산고 뒷담 길로 접어들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기괴하게 꼬인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이리가는 거여?"

말투도 완전 반말이다
나는 그 순간 언뜻 스치는 게 
'전주대 사대부고'를 그들이 '전북대'로 잘못 말했나싶어서 
반말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고

"아. 그럼 전주대 사대부고 입니까?"

그는 내 물음은 아랑곳없이 
처음보다 혀가 더 꼬부라진 소리로 자기 말만 횡설수설 이어갔다

"왜 이길로 가냐고...
내가 길을 모를 줄 알고 돌아가냐!"

아예 막말까지 하면서 내 오른쪽 어깨 옷을 거머쥐고 흔든다.
순간 피가 솟구친다.
어린놈이 반말해도 술이 취해서 그러거니 하고 
눌러 참고 있는데 이제 손까지?

"이런, 상놈의 자식이 어디서..!"

거칠게 어깨를 돌려 손을 뿌리쳐내고 
차를 급히 도로가에 세웠다
차에서 내려 끌어내려버릴까 하다가 
문득 차량내부를 비치는 CCTV가 생각난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
마음을 가다듬어 어조를 낮췄다

"그니까 어쩌라고..."

거친 행동과 말투에 멈칫했던 녀석은 
내가 공손하게 말을 하자 다시 시비를 붙는다.
도무지 말도 경우도 통하질 않는다.
돈 안받을 테니 내리라 해도 계속 욕지거리와 지 말만 한다

이제 방법은 하나다
나중에 보니 삼천지구대가 바로 코 앞 이었는데 
부글부글 끓는 바람에 머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한참 떨어진 평화지구대까지 갔다
비상등을 켜고 지구대 앞에 주차를 하자 
마침 출입문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경찰이 밖으로 나온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그 녀석도 뭐라 중얼거리며 
따라 내리려하는데 손잡이를 못 찾아 헤매고 있다
내가 경찰에게 상황 설명을 막 하려는데 
다른 경찰 한 명이 더 나왔고 때맞춰 그 녀석도 차에서 내린다.
그가 내리고 난 뒤에는 
굳이 내가 뭘 설명하고 할 필요가 없어졌다
경찰들이 자기에게 아무 말도 안 한 상태인데 내리자마자 대뜸

"야! 느그들이 경찰이면 다여?"

경찰들도 어이없어 하더니 
나중에 나온 경찰이 주정뱅이를 많이 다뤄 본 듯

"이리 들어와! 여기가 어디라고..."

기선 제압을 하려는 듯 골마리를 틀어잡고 
지구대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나도 다른 경찰과 따라 들어가 간단히 어떻게 된 일지 설명을 했고 
그 경찰은 내 전번을 알려 달라 하더니 택시비가 얼마나 나왔냐고 묻는다.
아까 내릴 때 3,600원 이었으니 
지금쯤 4천 원 정도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회사 택시라 어려우신지는 알겠는데 
저 사람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택시비는 그냥 똥 밟은 셈 치고 포기하고 가시지요"

다른 한쪽에서는 계속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네 알겠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말씀대로 똥 밟았다 해야죠."

차로 돌아와 보니 미터기는 3,900원 찍혀있다
아깝지만 빈차를 눌러 0으로 만들고 후진해 나가려고 
고개를 돌리다보니 뒷좌석에 노란봉지가 보인다.
'에이, 귀찮아'
지구대로 가지고 들어가면서 살짝 들여다보니 
딸기, 포장된 고기, 이런저런 통조림 등 몇 만 원어치는 되어 보였다
지구대 안의 상황은 이제 주도권을 골마리 잡은 경찰이 쥐고 있었고 
봉지는 나와 얘기했던 경찰에게 주고 나왔다
시간도 아깝고 택시비도 아까웠지만 
한편으론 혹 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지구대를 나와 손님을 찾아 시내 쪽으로 7~8분쯤 왔을까?
전화가 울리는데 모르는 번호다
받아보니 아까 그 지구대 경찰이다

“혹시 택시비 받았습니까?”

“아뇨 그 정신에 택시비를 줬겠습니까?”

“하긴 그러네요. 수고하십시오.”

전화를 끊고 나니 뭔가 좀 이상하다
차를 한 쪽에 주차하고 내려서 뒷문을 열고
뒤쪽 시트를 유심히 보니 의자와 등받이 사이에 꼬깃꼬깃 
구겨진 만 원짜리 한 장이 끼어 있지 않은가 
차에 타기 전에 친구가 쥐어준 모양이다

와~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완전 양놈 지갑 주운 느낌이다
아까운 시간과 택시비가 모두 동시에 해결되어 버렸다

통쾌하다
만 원이 그냥 만 원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