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4-12 23:21
간살과 위엄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1,196  

나는 내가 이렇게나 이중인격자인줄 미처 몰랐었다
같은 상황 같은 조건에서 변수 하나에 나는 내가 이렇게 다르게 반응할지 정말 몰랐었다

2016. 11. 23(수)
이제 택시 운전대를 잡은 지 8일째다
오전 10시경이었다.
신시가지인 효자 4동 부근에서 콜을 받는다. (내 차에는 처음 차를 배정 받을 때부터 선택의
여지없이 ‘천사콜’이라는 네비시스템이 장착되어 있었다)
수병원 주차장으로 오라는 콜인데 주차장 입구를 알지도 못했거니와 주변이 공사 중이라 주차
장 진입로를 놓치고 병원 정문 쪽으로 와서야 주차장 입구를 지나쳤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200여m를 가서 유턴을 하고 다시 신호를 받고 빙빙 돌아 겨우 주차장을 찾아 들어가는 중에
고객에게서 전화가 온다. (콜이 이루어지면 내차의 내비게이션 모니터에 고객의 위치와 전화
번호가 뜨고 고객의 전화에는 내 전화번호와 차 넘버 그리고 고객과 차와의 거리가 보내진다) 

“여보세요, 왜 안 오세요? 400m 부근에 있다고 뜨던데요?”

“아, 이제 막 주차장에 들어왔습니다.”

“그러시면 주차장으로 들어와 병원 후문 쪽으로 와주세요”

차를 슬슬 진입하며 둘러보니 저쪽 후문인 듯싶은 곳에 한쪽에 목발을 집고 오른쪽 다리에 반깁스를
한 여자가 보인다.

“아 보입니다. 그리로 가겠습니다.”

듣는 순간에는 ‘무슨 놈의 여자가 한 발짝도 걷기 싫어 문 앞에까지 바싹 대라해?’ 라고 생각
했으나 더듬거리며 차에 힘들게 타는 모습을 보니 이해가 간다.
어렵게 자리를 잡고 목발까지 들여 놓은 뒤 문을 닫으며

“아이파크 정문으로 가주세요”

“..................   ”
‘아이파크가 어디더라? 송천동에도 있고 아중리에도 평화동에도 있는데....  근데 현대아파트
랑 아이파크가 같나 다르나?‘

설사 송천동 아이파크라 해도 대략의 부근만 알지 정확히 찾아 갈 자신이 없다
그러니 ‘어디 아이파크요?’ 라고 물어 볼 수도 없다
가뜩이나 수병원 주차장을 찾아 들어오는 데도 헤매고 기가 죽어 있는데 이제 목적지까지 모르다니.... 
잠깐의 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난감하게 스친다.

전주에서 60년을 살아온 토박이여서 길도 잘 알고 어지간한 데는 다 찾아 갈 성 싶었는데 막
상 운전대를 잡고 보니 모르는 곳 투성이고 특히나 무슨 놈의 아파트가 그리 많은지... 또 초등학교 중학교... 
교회는 또 어떻고....
전주에 이런 데가 있었나? 하는 뒷길들도 수도 없이 많다

암튼 난감하게 생각만 하고 있을게 아니라 모른다고 이실직고 해야지....

“죄송한데 제가 택시 한 지가 며칠 되지 않아서 잘 모르는데 좀 알려 주실래요?”

이렇게 물어보면서 점잖고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 볼 수 있나?  
어느새 잔뜩 저자세로 쌩웃음을 지으며 간살스럽게 묻는 내가 느껴진다.

그런데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여자 손님은 내가 미안할 정도로 친절하게 알려 준다

“아~! 그러세요? 이쪽 신시가지 아이파크인데 가까워요 우선 나가셔서 우회전해서 유턴한 다음 직진하세요.
그 뒤에 다시 알려드릴게요.”

가는 동안 이상하게도 말이 많아진 나를 발견한다.
택시 초짜임을 감추기라도 하고 싶은 건지 택시는 초짜지만 다른 건 아니라는 허세를 부리는
건지...

대부분의 손님들은, 아니 거의 모든 손님들이 목적지와 길을 잘 모른다면 아주 친절하게 알려
준다.  (이 글을 쓰는 현재는 택시를 한 지 5개월 정도 지났다. 3개월 정도가 지나면 길을 웬
만큼 알게 되는데 그때까지 딱 2명만 길을 모른다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명은 남자 한명은 여자였는데
모두 술이 취한 상태였다 내비게이션의 고마움을 그때 느꼈지...)

아이파크 정문에 도착했다
안에까지 모셔다 드린다니까 아니란다. 운동을 해야 하니 일부러라도 걸어야 한다고...
그럼 아까 주차장에서는?

그리고 그 날 2016. 11. 23 오후 6시경
모래내시장 전주여고 부근에서 여학생을 한 명 태운다.

승차 후 내 멘트는 50대 이상쯤으로 보이면 “어서 오십쇼”
그 이하로 보이면 “어서 오세요” 나이어린 학생이면 “어서 와요”로 정해져 있다

“어서 와요~”

“신시 아이파크요” (젊은 사람들은 신시가지를 그냥 줄여서 신시라고 한다)

‘앗! 아침에 갔던 데잖아?’
“예~~” 하고 간단명료하게 대답을 하며 이제는 근엄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전문택시기사처럼 운전도 째를 내가며(남이 보면 그래봤자 초짜라는 걸 아는데)
완벽하게 아이파크 정문에 내려준다.

아침의 나와 오후의 나
아이파트를 모르는 나와 아는 나
간살 떠는 나와 근엄한 나
그 놈이 그 놈일 진데....

손님이 타면 목적지를 말 할 때까지 잠깐의 순간이지만 잔뜩 긴장이 된다.
목적지가 아는 곳이면 나는 점잖고 말수 없는 베스트드라이버가 되고
모르는 곳이면 수다 떠는 초짜가 된다.

낮이 좋고 밤이 싫다
특히나 아침에는 아파트나 주거지에서 시내 쪽으로 출근을 하니까 모르는 곳이 거의 없는데
밤에는 이름 모를 수많은 아파트들로 찾아들어가려니....

신시가지, 호성동, 하가지구, 서곡
특히나 혁신도시, 정복해야 할 미지의 세계이다
이 미지의 세계를 헤매고 다니다가 나의 세계인 중앙동, 풍남동, 전동, 경원동, 고사동, 태평
동, 노송동, 서학동, 완산동 등으로 들어오면 어찌나 푸근하고 안심이 되는지

또 하나의 난코스 효자동의 휴먼시아 단지...
1~8단지가 불규칙으로 나열되어 있다
일부러 가서 맘먹고 알려고 숙지하면 알아지겠지만 그러긴 싫다
그 시간에 손님 태워야지 1분이 아까운데....
때가 되면 알아지겠지

2016. 11월의 2개의 사건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전주의 택시 기사들이 보면 황당한 사건일거다

1.
손님 : “중흥클래스로 가주세요”
나 : “거기가 어느 근방이죠?”
손님 : “서일초 앞인데요”
나 : “서일초요?”
손님 : “............  ” (그러면 어디를 말해야 알건데?)

2.
밤 12시경 관통도로 사거리에서 외국인을 태웠다
“맹고식스요” 꼬인 발음이다
“아파트?”
“노우 효자동 맥주..... ”
“어디지?”

이미 차는 출발하여 효자동이라고 해서 예수병원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자정이 넘었는데 난감하다
앗~! 개인택시 기사가 한쪽에 차를 받쳐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

“아저씨 맹고식스가 어디예요?”

“아~ 망고식스?”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참고로 하루 중에 택시가 가장 많이 가는 곳이 ‘망고식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