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7-02 12:49
양심과 사고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1,184  

2019. 06. 28(금)  


금요일은 원래 손님이 좀 있는 편이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많았다 
최근 들어 택시 손님의 50%이상을 콜이 차지하지만
그런 날은 굳이 콜을 잡지 않아도 시내 곳곳에 손님이 있다
빈차로 송천동을 통과해 오는데 콜이 빗발친다.
운전을 하며 폰에 곁눈질을 해보지만 
대부분 영양가가 없는 것들이다
접근하는데 3분 이상  걸리거나 아니면 목적지가 인근 송천동으로,
태우러 가는 거리가
손님을 태우고 운행하는 거리보다 먼 경우의 것들이다
콜을 무시하고 송천동의 끝자락을 막 벗어나려는데
'터존부페' 앞에서 젊은 남자 손님이 탄다.

"평화동 동신아파트요“

거리도 코스도 맘에 든다.
가련광장에서 좌회전을 받아 송천동을 벗어난다.
덕진광장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법원 앞으로 가는 방법과
직진한 뒤 경기장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백제로로 접어드는 2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때그때 신호에 따라 선택을 한다.
그날은 직진으로 선택을 했다
잠시 후
자정이 가까워오는 한가한 차량 행렬을 따라
백제로로 진입해 들어간다.
전북대 신정문앞 신호가 떨어지면
경기장 사거리 백제교, 서신, 진북터널 사거리,
화산체육관까지 약 3~4키로가 순차적으로 연등된다.
백제로의 흐름에 편승하니
야구장 앞 신호가 빨간불에서 초록으로 막 바뀌고
멀리 백제교의 신호는 아직 빨간불이다
너무 밟으면 신호가 바뀌기 전에 다다르니
속도를 70~80키로 정도로 조절한다.
재수도 좋게 2, 3, 4차로에는 차들이 신호 대기 중인데
좌회전  차로와 내가 가려고 마음먹은 1차로는 비어있다
예상했던 대로 100여 미터를 남겨 놓고
빨간불은 초록불로 바뀐다.
트여있는 1차로를 향해 엑셀을 더 밟는다.
아직 출발 하지 않은 모든 차들을 뒤로하고
빠르게 교차로로 진입한다.
교차로를 절반 쯤 통과했을 때,
갑자기 앞쪽 좌측에서 우측으로 검은 차가 가로지른다.
좌회전 신호가 끊어졌는데
신호 위반을 하고 진입한 차량이다
본능적으로 브레이크에 발이 올라간다.

대부분의 사고는 인지할 시간 없이 찰나에 일어난다.
0.5초만이라도 시간이 있으면 피할 수 있다
물론 보험사기단 같이 작정을 한 경우는 예외겠지만...

내 차의 좌측 앞 범퍼는
상대 차의 조수쪽 뒷바퀴 뒤편 후렌다를 박았다
어디를 어떻게 박았건 100 : 0 으로 내가 이긴 사고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추돌하는 마지막 순간에 내가 상대 차량 방향으로 핸들을 틀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핸들을 반대로 틀고 브레이크를 깊이 밟았다면
피할 수 있는 사고였다는 것이다
모르겠다, 그렇게 피하려 했다 해서
100% 접촉이 되지 않았으리라고는 장담은 못 하겠지만
적어도 사고를 피하지 않겠다는 흑심이 있었다는 건 분명 사실이다

택시를 시작하고 2년6개월 동안 크고 작은 사고가
10여 번도 넘는다.
그 중 내가 이긴 사고는 2번인데 진 사고에서는
적게는 30~40만원 크게는 몇 백만 원까지
순수하게 살전으로 들어갔지만
내가 이긴 2번의 사고에서 나는 10전도 받아 본적이 없다
개인택시를 위해 살전이 들어간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자면
분통 터져 죽을 일이니 생략하겠지만
정말 후랴들놈의 세상이었다.

그 후 이번같이 사고가 났다면 100 : 0으로
이겼을 상황이 3번은 있었다
그 때마다 본능적으로 피했는데 피하고 나서는...

'에이 씨 박아 버릴걸’

그런데 그 3번의 상황이 모두 순간이어서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적어도 0.2 ~ 0.3초 정도 판단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그 순간 수만 가지 생각이 동시다발로 머리에 스쳤다
노자와 순자와의 싸움이었다고나 할까?

사고 자체가 누가 다치고 말고 할 상황은 아니었다.
가벼운 추돌이었으니 하지만 요즘은
이러한 사고의 1/10정도로 경미해도 바로 입원이다
사고 지점이 대로 교차로 복판인데다가
잘잘못이 블랙박스에 서로 분명히 찍힌 만큼
사고 현장을 굳이 보존할 필요가 없어
2대 모두 갓길로 차를 뺐다
뒤에 타고 있는 승객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승객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듯 했다
내가 말을 걸때까지 폰만 보고 있었다.

"사고가 나서 다른 차를 타셔야겠는데요?“

젊은 남자 승객은 어정쩡하니 내리면서

"요금은요?“

미터기를 보니 4,200원 찍혀있다

"요금은 되었고 연락처 좀 알려주고 가시죠
혹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드릴께요“

나는 내 폰에 전번을 받지 않고 메모지에 적었다
폰으로 받으면 내 전번도 상대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나중에 거의 십중팔구 제삼자의 코치를 받고
연락 오게끔 되어있다
그게 귀찮은 것도 있지만
만에 하나 내 과실이 크면 내가 물어내야 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가 받은 이유는 가해 측에서 딴소리 할 경우
엿 먹일 카드로 받은 것이다
사실 거의 쓸 일은 없겠지만...
승객은 나중에 사고에 대한 진술 등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
전번과 이름을 마지못해 알려주고는

"저 군인이라 모레  귀대해야하니 연락이 안 될지도 몰라요“

순진한 젊은이다
그런데 집에 가서 연락처도 안 따왔다고
아버지에게 혼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 상대 운전자는 전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이긴 사고인지라 내려서 여유 있게 상대차 넘버와 사고부위,
내 사고 부위만 찍고 담당인 전무에게 연락을 하고
차속에서 한가로이 음악을 듣는다.
상대 운전자는 차들 앞뒤로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고 전송을 하더니
나에게로 다가와 전화번호와 이름을 묻고 상대에게 전달한다.
보험담당자에게 보내는 것 같다
불과 1~2분도 안되어 내폰으로
접수번호와 담당자 전번이 찍힌다.
담당자는 나오지도 않고 이걸로 접보 완료란다
사안 분명한 사고이고 큰 사고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곧이어 도착한 우리 전무도 접수 번호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  끝이고 병원이나 가보라고 넌지시 이르고
혹 나중에 딴소리 할지 모르니 블랙박스 메모리를 확보해  놓으란다.
다 마무리 되고나니 자정이 약간 넘었다

차를 돌려 상대 차량의 사고 전 동선을 되집어 봤다
백제교가 끝나는 시점에서 좌회전을 시도해 봤는데
내 차량이 녹색으로 바뀌고 가속 페달을 밟았을 지점은
도로가 C자로 휜데다가 내리막으로 푹~  꺼져있어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2, 3, 4차로의 차들은 모두 정지선에 서 있어 스타트하기 전이니
좌회전 신호가 직진으로 바뀌었어도
아마 마음 놓고 위반을 했을 것이다
내가 보였을 때는 이미 속도가 붙어 있어 늦었을 것이고...
나도 같은 상황이었으면 충분히 저지를 수 있는 실수이다

그래서 사고가 날 때마다 누가 지고 이기던
꼼꼼히 복기를 해봐야한다


사고 지점...

나는 롯데백화점 방향으로 직진을 하고 상대차량은 앞 쪽에서 좌회전을 했다



다음날 찍은 사진....

흰차와 청색차 사이가 사고 지점....



상대 차량....



바퀴 앞쪽은 이미 긁혀 있었다 하고....

뒤쪽이 내가 박은 곳....



내 차 상태....



나는 다음날(토요일) Y병원을 찾아갔다



"여기 이 구멍 보이시죠?
이게 신경이 통과하는 공간인데
이쪽 것과 비교해 보세요.
이쪽 것은 시원하게 뚫려 있는데
선생님 것은 이 부분과 이 부분이 좀 답답해 보이죠?
이런 상태에서 충격이 가해지면 통증이 올 수 있고
사고 당시에는 별 증상을 못 느끼다가
3일쯤 후에 나타날 수도 있으니
경과를 두고 봐야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엄살을 부려야하나 고민하던 참인데
의사가 알아서 시원하게도 긁어준다
일단 3일쯤은 입원을 해야 한단 말이군.
거기에 한마디 덧붙여 주는 걸 잊지 않았다

"차트에는 전에부터 증상이 있었다는
소견은 올라가지 않습니다.“

참으로 여러 가지를 배려한다.

X-ray를 찍기 전 의사와 잠시 상담할 때는
왼쪽 어깨와 목이 좀 안 좋다고 했다
그런데 사진은 멀쩡한 허리며 엉덩뼈까지
이쪽 옆으로 저쪽 옆으로 돌려세우며 
열 댓 장 이상은 찍은 것 같았다
그러더니 목뼈와 척추사이 어떤 사진 한 장으로 하는 설명이었다.

"저 사진은 누구 겁니까?“

"정상적인 상태를 가진 우리 직원을 골라
샘플로 찍어 놓은 겁니다.“

쉽게 말하면
20~30대의 극히 정상적인 뼉다구와
60대 중반의 노쇠해가는 뼉다구를 비교하며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거지?

"내일이 일요일이니 월요일까지 기다려 봤다가
경과를 보고 입원을 결정하면 안 될까요?“

"아, 그러셔도 됩니다.  
근데 월요일은 오전이 오늘보다 2배는 더 밀리니
오후 3시경에 오세요.“

진료시작 시간이 9시여서 토요일 감안해서
내 딴엔 일찍 접수한다고 8시30분에 갔는데도
유독 신경외과만 2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내 앞뒤 접수한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안 관찰해보니 
내 바로 앞 순번이 나와 비슷한 나이롱 교통사고 환자 같다
엄마와 아기가 환자인 듯 하고 남편은 같은 차에 타진 않았고
뭐라 뭐라 열심히 코치를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누가 낚고 누가 낚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사와 상담 후 입원을 결정한 것 같다

간호사 왈

"식사는 점심부터 넣어드릴까요?“

여자는 남편 얼굴을 한번 보더니

“네 넣어주세요”

................................



병원에서 나오니 점심때가 되어간다


금수랑 용진이를 불러 차돌백이로 점심을.....


토요일 오후는 계속 술 사냥~~~



월요일 오전 10:30

아중리 지리연탄불생구이집....


이걸 먹고 나서 오후 3시쯤 병원에 가야한다.....

일단 입원할 생각은 없다

아니 아예 애초부터 없었다 


소주 두 어병 마셨나?

상대 보험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한다


"아직 병원에 들어가기 전인데

서로 시간 낭비말고 합의 합시다"


"어느 정도 생각하고 계신데요?"


택시에 탔던 승객을 언급하려다가

너무 치졸 한 것 같아 그만 뒀다


"흥정 할 맘 없으니 토 달 생각하지 말고

80으로 합시다"


"70으로 10만 깎으면 안될까요?"


"되었어요

나 합의 안하고 통원치료 할 거니 없던걸로 합시다"


"아 잠시요 그러면 만원 만 깎아서

79만원으로 하면 안될까요?"


보험사에서는 앞 단위를 중요시하니 항상 1만원을 깎아서

앞 단위를 줄인다


"아~ 좋아요 79만원으로 합시다"


"그럼 잠시 녹취 좀 하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


처음에는 양심에 찔리기도 했고

이 얼마나 사회적 낭비냐고 째내는 생각도 해봤지만 

또다시 이런 사고가 나면 똑같이 하리라고 벼르고 있는

보통의 소인배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