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2-11 18:33
3년 (이제 비로소 택시 기사다)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1,003  

2020년 1월


3년...
3년 탈상,
서당개 3년...
중, 고교의 3년...
이 3년의 시간은
어쩌면 길다와 짧다의 경계 선상에 있고
그 시간은 익어가고, 잊혀지고, 지쳐가는
우리 일상 시간의 변곡점이 아닌가 싶다

택시를 시작한 지 3년이 지났다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2019년 12월이 결국 왔다
왜 개인택시를 살 수 있는 기사 자격이
영업용 3년 무사고를 거쳐야 하는 지도 이해가 간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택시기사'가 되었다
약속 시간에 쫓기는 손님과 덩달아 조바심 내며
시간 안에 대려고 애쓰지도 않고,
어떻게든 요금을 덜 나오게 하려고
지름길을 찾는 노력을 안 한지 오래다.
비 오는 날 유모차 밀고 있는 할머니를
이제는 외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택시를 시작할 당시
‘군대 한 번 더 갔다 온 셈 치자’
‘영창 3년 산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었었지만 지독히도 시간은 더디게 갔다
허허벌판에 대단지 아파트가 뚝딱뚝딱 들어서고
새로운 대로가 그리 쉽게 뚫리는 걸 보면서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는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꼈고
내심 ‘카이로스’를 줄곧 외치고 있었지만
결국 ‘크로노스’에서 벋어나지 못했다


‘크로노스’에 집착한 증거들...


소형 된장 종지다


일 하는 날 점심에는 항상 청량고추 3개를 먹는다


한 종지를 다 먹을때까지는 약 2개월이 걸린다


발톱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깎는다


5 리터짜리 쓰레기봉투다


꽉 차는데 한 달 반 정도 걸린다


음식물 쓰레기용 검정봉투는 한 묶음에 3~4개월 정도 쓴다


이것들 말고도
주방용 세제가 얼마 만에 떨어지는 지....
운전용 발목 양말이 얼마 만에 빵구가 나는 지....
결코 헤아리기 어려운 시간들을 병적으로 기억하려 애썼다
모두 ‘3년’이란 굴레가 만들어 낸 시간의 억압이었다.

그러나 3년을 채운 뒤 2019년 12월 31일에 차를 반납하고
회사를 그만두자 그런 시간에 대한 강박감이
일시에 없어져 버렸다 (또 다른 고민이 생겼지만....)
그리고 지난 3년을 편안히 뒤돌아보는 여유가 생겼다
택시를 시작할 때 마음먹은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허송세월만 하지도 않았다

2016년 11월 16일
택시를 시작할 때 내 돈은 단 돈 10원도 없었고 집도 절도 없었다.
신용불량자였고 은행 빚이 475억 원이었다.
하지만 그 동안 파산선고를 했고 2018. 12. 14에 빚 437억 원에 대한
면책을 받았고 신용회복을 했다
현금으로 모은 게 5천만 원 가까이 되고 회사 택시를 할 때
사고처리를 하지 않으려고 사고처리금 1천 5백만, 파산 시 부대비용,
보증금 등등 포함하면 3년 동안 순수하게 번 돈이 8천만 원이 넘는다.

그러니 회사 택시를 하면서 느꼈던 무력감, 자괴감 등은
너무 자학적인 거 아니었을까?

아~~!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