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10-27 14:51
死老病事(사노병사)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501  

2022. 10. 27(목)


내가 건강과 병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져본 것이 50대 중반 때였을 것이다
물론 그 전 직장생활 때 1년에 한 번씩 의무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받을 때마다 지방간, 콜레스테롤, 고지혈증, 위염 등은 이상 수치를 보였지만
1주일만 술을 참고 재검사를 해보면 위염을 빼고는 다 정상 가깝게 돌아오니
알코올성으로 생각하고 신경도 안 썼다
아침마다 가는 리베라 사우나에서 가정의학과를 하는 형님을 만나면서
이런저런 가벼운 증상에도 겸사겸사 병원을 들르게 되었는데
어느 날 술 많이 마시니 피 검사를 해보자 신다
결과는 안 봐도 뻔했는데 형님이 하는 말

"어이, 자네 이러다가 큰일나네 피 토하고 죽어 이 사람아"

"괜찮아요. 술 좀 참고 운동하면 돌아와요"

"천만에 말씀, 어림도 없는 소리 말게 술 끊고 약 먹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절대 정상 안돼"

슬며시 빈정이 상한다.

"그래요? 알았어요."

나는 젊을 때부터 다이어트를 늘 생각해 왔다
생각만한 게 아니라 스스로 정해진 한계체중이 있어 그 기준이 넘어서면
바로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그게 평균 잡아 1~2년 주기로 돌아왔는데
내 요요현상의 환원 한계가 2년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다이어트 기간은 짧게는 15일부터 길게는 달포 정도까지 했는데 방법도 다양했다
황제, 과일, 생수, 스즈끼식, 심지어 단식원도 들어가 봤으며
나중에는 식단을 내가 개발해서 했다

병원을 나온 다음 날부터 바로 금주와 함께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헬스와 산행도 병행했다
정확히 한 달 후에 다시 피 검사를 했다
수치가 모자랄 정도로 모두 정상 수치다
나는 의기양양했고 형님은 갸웃갸웃 했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내가 평생을 그 한 달처럼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결국 형님의 주장대로 약을 먹게 되지만...)
그 후 형님은 다른 약은 권하지 않았어도
혈압 약은 먹어 두라 했다
그 당시 다이어트하기 전 내 혈압이 140/90을 왔다 갔다 했는데
나는 혈압에 대해서는 나름 주관이 있었다.
책 한 두 권 보고 맹신한 것은 아니고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몇 십 년에 걸쳐
세계인의 혈압 평균치를 20~30 낮췄다는 것.
수축기 혈압은 자기 나이에 90을 더한 것 까지 정상수치로 봐준다는 것
(50대면 140,  60대면 150) 등이다
내 동생은 나보다 10년이나 아래지만 진즉부터 혈압약 '오잘탄'을 먹고 있다
동생과 친한 죽마고우가 의사인데 그랬단다.
'혈압이 어중간하면 식이요법이나 운동 등으로 관리하면 어느 정도 잡고 갈수는 있겠으나
그런 신경 쓸 필요 없이 약 한 알 먹으면 되는데 머하러 평생을 스트레스를 받느냐'면서
자기도 아침에 혈압약을 먹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동조할 수 없었다.
관리하면 되는데 맥없이 약을 왜 먹어?
나는 최소 2년에 한 번은 건강검진을 받는다.
그때마다 알콜성 콜레스테롤이나 지방간은 항상 나온다.
혈압도 140~150  언저리가 나오는데 판정은 늘 '고혈압'이다
생각해보면 마음먹은 대로 관리가 안 된다는 말이지
그러면서도 스스로 그 정도는 고혈압이 아니라고 되뇌어 보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그게 나 혼자만의 생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건강검진 직후에는 쏘옴한 마음에 혈압약을 타 긴 하는데
한 달분쯤 받으면 두 달도 먹었다가 석 달도 먹었다가 떨어지면
다음 건강검진 때로 넘어간다.
그게 50대 중반쯤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건강하고 멀쩡한데 혈압약을 왜 먹어?' 이것이
'그냥 이거 먹어 줘야 되나?' 이렇게
체념하고 수용한 게 50중반이라는 얘기다
이제 매일 약을 먹는데 사우나에서 아침 마다 혈압을 재 본다.
항상 100/60 정도가 나온다 한 달에 한 번 처방전 받으러 병원에 가는데
이상하게도 그 날은 꼭 120/80 정도가 나온다.
어떤 게 맞는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건강에 대해 관심이 갖게 된 때는
60이 되고 택시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시간 제약이 있어 술도 마음대로 못 먹으니
건강에는 무조건 플러스 요인이 될 거라 믿고 계획도 거창했었다
하지만 체력만 믿고 하루 15시간 이상씩 일을 밀어붙이면서
나도 모르게 기와 찐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나보다
처음 겪어보는 사소한 증상은 수도 없이 많았고 
심각하게 생각하여 병원까지 가 본 게 팔과 손의 마비였다

2017년 8월 하순경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을 마친 시간은 자정이 조금 못되어서였다
수동으로 차 키를 잠그고 막 돌아서는데
순간 키가 손에서 사라진다.
아무리 땅바닥을 이리저리 찾아 봐도 없다
그러다가 문득 보니 키가 내 오른손 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나는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내 감각에서 오른 팔이 없어진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 팔을 잡아 올렸다
왼손에는 뭐가 물컹 잡히는데 오른쪽은 무감각이다
한참을 주무르니 팔꿈치가 굽혔다 펴진다.
감각은 여전히 마취가 된 듯 먹먹하다
밤새 주무르다 자다가를 반복하다가 아침이 되니 한결 낫다
나오자마자 병원에 갔는데 증세는 사라지고 뾰족한 수가 없다
원인으로는 고정된 자세로 오랜 시간 에어컨을 쏘여서 그러지 않았겠느냐는 정도였다
그 후로도 서 너 차례 그런 증상이 좌우로 왔지만 그러려니 하게 되었는데
곧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

2020. 5월 어느 날 저녁 7시경, 송천동에서였다
콜을 받고 손님을 태우고 막 출발하는데
차가 갑자기 급발진을 하는 것이었다.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신호대기 차량이 있어
그 차를 피해 아슬아슬 하게 엉뚱한 방향인 우회전을 하게 되는데
속도가 줄지 않은 채 회전을 하니 중심이 잡히지 않아 차가 휘청거리는데다가
우회전을 하자마자 주차된 차를 피하려는데 피하려면
반대 차선을 침범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반대 차로에서 차가 오고 있었다.
내 차는 더 가속되고 있고...
다른 차선의 차를 받을 수는 없으니 우측으로 붙이다보니 주차된 차를 드르륵 긁고 간다.
뒤에 탄 손님은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어, 뭐요 뭐요!" 

그리고도 차가 계속 질주하자
손님은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러고도 200여 미터를 더 질주하다가 어찌어찌 겨우 정차가 되었는데
놀란 손님은 "에이씨, 뭐여" 하고는 급히 내려버리고
나도 놀라서 잠시 멍하게 앉아있었다
원인은 급발진이 아니었다. 
내 오른발이 순간적으로 마비가 된 것이다
발에 감각이 없어지니 발의 무게가 그대로 엑셀을 눌러 차가 가속된 것이었다.
나는 마비된 시간이 1분 정도는 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니 불과 6~7초였다
차에서 내려 잠시 숨을 돌리고 발목과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해보고
조수대쪽 긁힌 부분을 살펴봤다
큰소리는 백미러가 접혀지며 난 것 같고 차옆구리는 콤파운드로 닦고
광택만 좀 내면 될 것 같다
차를 돌려 명함이라도 꽂아놓고 오려고 긁고 온 차에게로 간다.
어, 근데 차가 없다
그 블럭을 세 번 돌아 다시 그 자리에 와 봐도 없다
그 날 상황은 그렇게 끝나고 그걸 계기로 소홀했던 운동을 다시 챙긴다. 

암튼 그 전후로 이상 증상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보자면

택시 시작할 때 콩알만 하던 뒷목의 혹이 이제 호두알 만해졌다
사진을 찍어봤는데 종양은 아니고 비지밥 같은 것이라니 내버려둔다.

개인택시로 갈아 탄 뒤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공복 혈당이 120~130이다
이제는 당뇨까지? 
그런데 당화혈색소 검사를 하면 정상으로 나온다.
몇 번 되풀이되다가 보니 이제는 당뇨까지 마음 한편에서 내 병이려니 여겨진다.
이게 동기 부여되어 스쿼트운동을 제대로 하게 된다

2022. 4. 24  서울에서 행사를 마치고 기차로 내려오는데
왼쪽 뒷머리가 지릿거린다
어젯밤 술이 과한데다가 아침 해장까지 마셨으니 그러겠지 했는데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증상이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왼쪽 귀와 뺨까지도 침범하곤 한다.
그 동안 외과, 정형외과, 신경과를 거치며 CT까지 찍어봤고
한의원을 3군데를 다니며 침도 맞아봤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고 인터넷을 뒤져봐도 맨 그 소리가 그 소리다
그래서 포기하고 그냥 달고 살아야겠다.


2022년 9월 16일경, 2년6개월 전 왼쪽 복숭아뼈 부근 발목에 염증이 생겨서 퉁퉁 부어
보름여를 고생했었는데 그게 다시 재발했다


왼쪽 발목이다

그때 기억이 생생해 술도 참고 바로 병원을 찾는다. 아는 형님이 하는 정형외과다
부어있는 염증 부위에서 고름과 이물질을 뽑아 본 뒤 통풍이 의심된다고...
참으로 여러 가지 한다.


피와 고름에 섞여있는 저 하얀 석회같은 것 때문에 통풍이 의심되었다


다음날 피검사에서 다행히 통풍은 아닌 것으로 결과가 나왔지만
이 처럼 전에 없던 것들이 하나 둘 불거지면서 건강에 대한 자신은 이미 없어졌다
또 언제 어디가 아플지 불안하다
일전에 손님으로 탔던 어느 80대 중후반의 노부인
(나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인칭명사를 '할아버지' '할머니' '어르신' 이런 호칭은 버리고
'노부인' '선생' '여사님' 등 의 호칭을 써야겠다)왈
"70대 때는 아픈 곳이 1년에 하나 꼴로 생기더니
80대가 되니 한 달에 하나 씩 아픈 곳이 생기더라."

나도 이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더라는 말이지

최근에 읽은 책인데 고 이어령 선생의 작고 전 1년여를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마지막 수업'이 이 글을 쓰는 도중 떠오른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 생각은 이랬다

‘나도 죽음이 더 이상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러 가까운 이들의 죽음들이 점점 빈도를 더해가며 발생하고
특히 2년여 전에 뜻하지 않게 가버린 형을 보내면서는
죽음은 피할 수 없이 가까워지는 필연이라는 것을 스스로 받아드리려고
애쓰고 또 상당한 각오가 되어있다고 자신한다.‘

그런데 고 이어령 선생은 말기암 선고를 받은 뒤의 심경, 즉 죽음을 직접
대면하고서는 이렇게 비유를 한다.
죽음을 받아드릴 수 있고 초연하리라는 자신은 죽음이라는 호랑이가
우리 안에 갇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막상 선고를 받고 나니 그 호랑이가 우리 밖으로 나와 내 앞에 있더라.
‘죽음의 5단계’이론으로 유명하고 임종과 죽음에 대한 권위자인
정신과 의사 퀴블러 로스도 막상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의연하지 못했다더라.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병이니 죽음이니 머하러 미리 끌어다가 걱정을 해 그냥 닥치면
그때 다시 고민을 하든지
아니면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5단계를 적용하게 두든지...
내가 무슨 브레이브하트의 멜 깁슨도 아니고
어차피 어느 누구도 피해가지 못하는
정상적인 수순인 거지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