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9-03 17:05
한여름 밤의 악몽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2,029  
나는 악몽을 자주 꿨었다
 
하얀 악마들이 사방에서 달려든다
귀청이 찢어질듯한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며 조여오고...
나는 도망 갈 곳 없이, 신음소리 조차 못 내고
떨다 보면 어느새 똥오줌이 지려 있다
 
 
 
울~!울~!! 하며 속으로 잦아드는
내 잠꼬대에 눈을 뜨는 게 한 두번이 아니다... 
 
그래도 이제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점점 악몽의 횟수도 줄어가는 것 같다
 
 
나에게는 2명의 주인이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의 주인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4마리의 하얀 악마들 곁에 나를 버려두고
가버렸다
그러다가 시달림과 공포에 삶을 포기 할만 하면 한번씩 나타나
희망을 주고 다시 가버리기를 몇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러는 사이 나는 주인이 아니어도 사람이 나타나면 좋아하게 되었다
어느 누구든 오기만 하면 나는 반가워했다
4마리 하얀악마들은 사람들을 싫어해서 무조건 짖어댄다
그러는 사이 나는 꼬리를 치며 사람 곁으로 가면 사람들은
나를 쓰다듬어 주고 나는 편안해진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하얀악마들에 대한 두려움을 잊는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내가 하얀악마들에 대한 두려움도 이골이 나고...
모든 사람들이 좋아질 무렵....
 
두 명의 주인이 나를 데리러 왔다
 
달리는 차에서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온통 코로 느끼며
나는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참을 수 없이 오줌이 절로나왔다
 
둔탁한 냄새가 나는 주인이 오줌 싸는 나에게 무섭게 굴었지만
향긋한 냄새가 나는 주인은 얼른 말리며 휴지로 내 오줌을 닦아줬다
 
하얀악마들은 이제 가끔 꿈에서나 본다
 
나는 두 명의 주인이 다 좋다
둔탁한 냄새는 나를 어루만져주거나 놀아주거나 하지는 잘 않지만
매일 아침 데리고 나가준다
나는 집에서는 대소변을 못보기 때문에 항상 새벽시간에
밖으로 나가야 한다
더 놀고 싶어 빨리 응가를 안하고 시간을 끌어도 기다려준다
밥도 준다
향긋한 냄새는 나를 안아주고 뽀뽀도 해주고 간식도 많이 준다
그리고 자꾸 엄마라고 부르라 한다
나에게는 딸~! 딸~! 하고 부르며 자기는 주인이 아니고 가족이란다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부르라 하니 이제부터는 엄마라 해야겠다.
 
나는 집이 두개나 있다
낮에는 넓은 옥상에서 맘대로 논다
저녁이면 아파트 현관에서 잔다
현관과 거실 사이 문은 항상 열려있다 
하지만 나는 안쪽으로는 절대 안 들어간다
그쪽으로 가면 꼭 하얀 악마들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아서
그냥 여기가 좁아도 좋다
주인들도 어쩐지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눈치다
 
그런데 최근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매일 가던 아침 산책이 불규칙해지고 2~3일만에
가는 경우도 있다
급기야 4일간을 옥상에 가둬 둔 일이 있었는데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난생 처음으로 볼일을 봐버렸다
그리고는 어찌나 불안 했는지....
그런데 둔탁한 냄새가 올라와 나와 변을 번갈아 보더니
기특해하며 이뻐하는 눈치다
휴~~!! 살았다
 
근데 이 불안함은 왜 사라지지 않지?
 
 
 
주인들이 왠 큰 가방을 싸고 있다
 
엄마는 혼자 계속 짐을 싸고 있고 둔탁한 냄새는
나를 데리고 나갈 채비를 한다
이상하다 지금은 나가는 시간이 아닌데???
 
 
 
나가는 게 싫지는 않지만 왠지 이상하다
 
 
 
위잉~! 하고 내려가는 에레베이터 소리도 왠지 무섭다
 
 
 
어라~ 이상하다? 이렇게 풀을 뜯어 먹으면 다른 때는 못 먹게 했는데
오늘은 그냥 먹게 두네....
 
근데 밖으로 나왔어도 시간대가 아니어서 그런지 대소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가끔 가로수 밑에 고양이 녀석들의 냄새가 나서
내 냄새로 찔끔거려 겁은 줘야지....
 
둔탁한 냄새는 한참을 나를 데리고 다니더니 다시 그냥 들어가잔다
 
어 근데 왜 옥상집으로 보내지?
이 시간이면 현관집에 갈 시간인데....
 
 
 
모르는채 하고 있는데 자꾸 끌어 당긴다 
 
 
 
"나 현관집으로 가면 안돼요?"
 
몇번 버텨 봤지만 둔탁한 냄새는 단호 하다
하는 수 없이 옥상 집으로....
 
 
 
근데 왜 물이 이렇게 많고....
밥도 저렇게 많이 집 안에 넣어놨지???
 
근데 평소에 이시간이면 안보이는데.....
엄마가 슬픈 얼굴로 올라와서 쓰다듬어주고 간다
다시 불안해 진다
 
 
 
밥그릇도 다르고 위치도 바꿔지니 밥도 다른 건가?
호기심에 먹어보니 똑 같은 거다
 
밤이 점점 깊어진다
어떤때는 아주 밤 늦게도 둔탁한 냄새가 더 이상한 냄새를 풍기며
데리러 올때도 있다
그 이상한 냄새가 싫지 않은 게 그 냄새가 날 때면
둔탁한 냄새는 평소와 다르게 안아주기도 하고 핥으면 질색을 하는 손도 대주고 한다
주머니에서 먹을 것을 꺼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 냄새를 좋아한다
 
몇번을 자다가 깨었는데도 문을 열릴 줄을 모른다
 
하얀악마가 확~!! 달려들면서 놀라 눈을 뜨니 꿈이다
날이 밝아오고 있다
 
쭈우욱~~~~!!
기지개를 켜본다
이제 곧 둔탁한 냄새가 올라올 시간이다
 
딸랑이 공을 몇 번 차보고...
코로도 몇 번 밀어 본다 
옥상 난간 너머로 삐뽀삐뽀 소리가 시끄럽게 난다
 
.............................
...............
.........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물이 너무 싫다
물을 싫어하는걸 알기 때문에 비가 조금만 와도
주인들이 나를 옥상 안쪽이나 현관으로 들여 놓는다
 
이제 곧 데리러 올거야....
 
...................
 
밧줄기가 내 지붕을 굉음을 내며 내려치고 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엄마랑 둔탁한 냄새가 못 오는 걸까?
나는 평소에는 잘 안들어가는 집 안 구석에서 몸을 웅크려본다 
 
비는 그칠줋을 모르고 아무도 데리러 오는 사람도 없다
서서히 하얀악마들과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번쩍번쩍하는 빛줄기들이 하얀악마로 변신하여 덮칠 것 같다
 
밤인지 낮인지 얼마나 시간이 갔는지....
몇밤을 잤는지
비는 그치지를 않는다
무서워도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난다
밥이 다행히 집안에 있어 젖지 않았다
평소에는 배고파도 몇번 안먹고 참고 있으면
참기름도 비벼주고 달걀도 비벼주고 하는데...
 
..........................
...........
 
 
 
 
온통 물바다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비가 그칠까?
얼마나 있어야 주인들이 올까?
 
밥도 먹을 만큼 먹어 배는 빵빵한데 저 빗줄기를 보면 으~~~
차라리 참고 말지....
 
...................
.......................................
 
내가 이렇게 다 먹었나?
밥그릇에 밥도 서서히 떨어져 간다
 
나는 평소 밥 푸는 그릇으로 반 그릇이 한끼였다
아침, 저녁 두끼를 먹으니 한 그릇이 하루분이다
집안에 밥그릇을 넣어줄 때....
둔탁한 냄새는 가득가득 6번을 부어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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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몽을 꾸지 않으려고 깊은 잠은 피한다
아니 시끄러운 빗소리 때문에 깊히 잘 수가 없다
 
빗줄기가 잠시 약해진 그 틈에
악몽이 아닌 뭔지 모를 아늑한 꿈이 꾸어진다
빗소리 사이로 뭔가 익숙한 소리가 섞여 들린다
다시 빗줄기가 시끄럽게 내려쳐도 이미 들었던 소리는 끊이지를 않는다
언뜻언뜻 땅속에서 엄마와 둔탁한 냄새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러는 사이 모처럼 깊히 잠이 들었다
 
갑자기 둔탁한 냄새가 눈 앞에 나타났다
꿈이지만 너무 반갑다
벌떡 일어나보려 하지만 너무 웅크려 있어서 다리가 말을 잘 안듣는다
불편한 자세로 집에서 나오다가 밥그릇을 걷어차 엎는다
밥그릇 엎어지는 소리에 진짜 눈을 번쩍뜨니 꿈이 아니었다
확~ 안기고 싶지만 마음 뿐이고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당황하지 않고 정신을 가다듬자~'
 
 
 
 
'이거 진짜 꿈은 아니지?'
 
 
 
 
'혀를 한번 깨물어 봐야지!!!'
 
 
 
'현실이구나 근데 또 가버리면 어쩌지? 못 가게 바싹 붙어야지....'
 
 
그 지긋지긋 하던 비도 이제 그쳐있다 
 
둔탁한 냄새는 눈길을 나에게서 돌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뭘 찾는 듯 하다
그러더니 좀 의아한 표정이다
 
그러더니 급하게 목줄을 챙겨 나에게 건다
 
이 의미를 난 너무 잘 안다
 
지나간 며칠간의 악몽이 스르르 사라진다
 
 
 
 
'아~! 이 그리운 냄새 비에 냄새들이 모두 사라졌네 다시 남겨야지...'
 
어~! 그런데 이건 뭐지?
갑자기 배가 뒤틀리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본능이 솟구친다
평소에 내가 이러진 않았는데...
 
 
 
여기는 내가 일 볼데가 아닌데....
 
나는 이 이후로 4번을 더 비워야했다
내가 생각해도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둔탁한 냄새는 어떻게 알고 달걀과 참기름으로 밥을 그득히 비벼준다
 
이 시간에는 옥상으로 가 있을 시간인데 오늘은 특별 대우인가보다
 
아~ 나른하고 배부르고 편안하다
악몽의 몇일도 이 시간을 위한 전주곡이었나보다*
 
※ 8/17~8/20 3박4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일기예보에 한국은 내내 비가 왔다고....
    비를 엄청 싫어하는데...
    그래서 먹순이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